소설리스트

491화.신들의 수호자 (1) (491/500)

491 신들의 수호자 (1)

광풍과 로칸. 둘은 확정이다.

일단 차원의 힘을 사용하는 카이륜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이 둘뿐이기도 했고, 신계의 공간을 도약하며 놈을 쫓을 수 있는 것이 둘뿐이기도 했다.

“내가 필요하겠군. 공허의 나부랭이들을 처리하는 데는 내가 제격이지.”

먼저 나선 것은 다름 아닌 마신이었다.

하늘의 특이점에 들어가 있던 그였지만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로 돌아서자 특이점에 있던 신들도 모두 돌아온 것이다.

단숨에 카이륜에게로 날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그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광풍과 로칸은 카이륜을 만나기 전까지 힘을, 신성을 아껴야 할 테니 대신 공허의 신들을 상대할 전력이 필요했으니까.

“그가 마지막에 사용했던 속박의 힘. 그게 뭔지 알 것 같아요. 그가 정말 카이스만처럼 차원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그건 아마도 다른 세계에서 대지의 힘을 끌어온 것일 거예요. 그거라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대지의 힘?”

두 번째로 나선 것은 정령 신이었다.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그것은 중력과도 비슷했다.

진짜 중력인지, 아니면 정령 신의 말처럼 어떤 대지의 힘인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을 해소해 낼 수 있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는 아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가능성.

결국 카이륜을 쓰러뜨리는 것이 최종 목표인 만큼 놈의 수법을 해소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로칸과 광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 신이라면 전투력도 전투력이지만 아군을 강화해 주는 버프 계열의 신성이 특히 강력하고 여차하면 이쪽도 정령들을 소환해 물량으로 비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요. 만약 놈이 사용하는 게 원소의 힘이 아니라면 제가 어떻게든 해 볼 수 있을지 모르죠.”

마지막으로 나선 것은 천신이었다.

신성 변환에 강점을 보이는 천신이라면 만약 정령 신의 추측이 틀렸다 해도 어떻게든 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이걸로 결정됐군.”

그 후에도 최상위 신들 중 둘이 더 지원했지만 기각되었다.

지원자는 드래곤 로드와 천둥의 신이었지만 아쉽게도 그들에게는 내세울 만한 장점이 부족한 것이다.

전투력은 쓸 만하지만 다른 공허의 신들에게나 통하는 것이지, 카이륜에게는 글쎄.

최종 목표가 정해져 있는 만큼 선발 기준은 냉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로칸과 광풍, 정령 신, 천신, 마신이 한 팀이 되었고 나머지 신들은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 공허의 군단을 방어하고 신계를 지키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지금부터 6시간 후 이동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전까지 모두 완벽한 상태로 만들어 두세요.”

하지만 곧장 추격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공허의 군단과 격전을 치르는 동안 아무래도 공허의 신성이 대거 흡수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설사 승리하더라도 이 중 누군가가 공허의 신이 되어 버리면 일이 커질 수 있다.

6시간이라는 시간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었다.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해 공허의 신성을 해소하고 출발하기로 결정한 뒤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놈의 상처가 위중하고 카이스만의 신성이 그리 쉽게 흡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 딱 그 정도가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었다.

놈이 회복하고 카이스만의 신성을 모두 흡수해 내려면 적어도 하루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그렇게 다섯 신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신들이 막간의 평화를 이용하여 공허 정화 작업을 시작했다.

***

로칸과 광풍 역시 내면의 공허를 정화해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들의 방식은, 공허의 신이 모습을 드러내게 만든 뒤 쳐부수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음흉한 놈이 걸리면 시간이 지체되기 마련이지만 그들에게는 시간 가속이 있었다.

역으로 신성을 쏟아 틈을 만들어 주면 놈들을 낚아 올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

그렇게 공허의 신들을 쳐부수고, 이름을 붙여 하위 신으로 만들기를 반복하던 로칸의 표정에 놀람의 빛이 떠올랐다.

이제 그의 세계 명부마도에서는 지상으로 올라오는 놈들을 사냥할 뿐 아니라 직접 지하 세계로 이동해 가며 공략하고 있었기에 그가 흡수한 수많은 공허의 신들이 성깔을 부려 댔지만, 그중 제법 익숙한 기운을 목격한 것이다.

‘공허의 광전사!’

다름 아닌 공허의 광전사였다.

그가 남긴 공허의 신성을 흡수했으니 언젠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빠른 등장이었다.

“빙의.”

그와 동시에 로칸이 처음으로 자신의 세계에 내려앉았다.

명부마도의 전사들 중 하나의 몸으로.

본인의 몸을 세계에 투영시켜 나타나는 강림이나 현신도 사용할 수 있지만 신성의 소모가 너무 컸을 뿐 아니라 그러면 너무 쉽기 때문이었다.

“한번 놀아 볼까?”

공허의 광전사는 처음 보았을 때부터 한판 붙어 보고 싶었던 존재다.

창과 검, 도끼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그와 조금 다른 스타일의 광전사였지만 그 힘에 있어서는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조각난 신성을 흡수했기 때문인지 녀석의 힘은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기억마저 조각났는지 로칸을 보며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둘에게는 말이 필요 없었다.

콰앙!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존재가 격돌했다.

공허의 광전사는 먼저 창을 들어 거리의 이점을 살리려들었지만 로칸은 거리를 내어 주지 않았다. 피하고, 흘리고, 쳐 내며 놈을 간격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다음은 검.

도끼에 비해 빠른 회수와 유연한 몸놀림을 보일 수 있는 검을 사용해 로칸의 몸을 난자하려 들었지만 무리였다.

압도적인 공격력 앞에 어설픈 변화 따위는 통하지 않았으니까. 차라리 극쾌의 찌르기를 선보이던 창 쪽이 더 나을 정도였다.

까아아앙!

결국 놈은 도끼를 들었다.

철천지원수를 만난 것처럼 둘은 서로를 베기 위해 쉬지 않고 도끼를 휘둘렀다.

그 묵직한 울림이 손과 몸을 뒤흔들 때마다 그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너로군.”

세계 속에서 꼬박 사흘을 싸웠다. 근육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힘을 주어 도끼를 휘둘렀다.

그제야 상대도 로칸을 알아보았다.

조각난 신성이 전투의 열기에 이어 붙은 것처럼 잊어버렸던 기억의 일부를 되찾은 것이다.

“계속할까, 아니면 나중에 한판 붙을래?”

그에게 로칸은 가벼운 제안을 했다.

이 자리에서 끝장을 보는 것도 좋지만 제대로 된 힘을 갖추고 다시 붙어 보는 것이 더 좋았으니까.

그 뜻을 알아들은 공허의 광전사가 피식 웃으며 무기를 내렸다. 공격 대신 짧은 물음을 로칸에게 던졌다.

“그래서, 내 이름은 뭐지?”

“흠, 이름을 짓는 재주는 없다만……. 카루타 어때?”

“카루타……. 괜찮군.”

[폭력과 파괴의 신 로칸이 공허의 광전사를 ‘카루타’라 명명합니다.]

[광전사의 신 카루타가 세계 : 명부마도에 뿌리를 내립니다.]

[상대가 당신의 존중을 받아들입니다.]

[광전사의 신 카루타를 하위 신으로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이름을 부여하는 순간, 전투는 종료되었다.

공허의 광전사는 광전사의 신 카루타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뿌리를 내렸고 로칸의 하위 신으로서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 순간, 세계의 신성이 크게 증폭되었다.

광전사의 권능이 세계에 퍼지며 전사들을 더욱 강화시켰다.

아니, 그뿐이 아니다.

새로운 이름, 새로운 신성을 얻게 된 카루타는 보다 적극적으로 로칸에게 협조하기 시작했다.

“꿇어라. 덤비는 놈들은 모조리 죽을 것이다.”

로칸을 대신하여 속속 피어나는 공허의 꽃봉오리들을 꺾기 시작했다.

굳이 로칸이 나서지 않아도 공허의 신들을 복속시키며 하위 신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럼 나중에 보지.”

그 모습에 로칸도 만족하며 다시 세계를 떠났다.

카이륜에게 당하며 많은 신성을 잃어버렸다지만 로칸과 비슷한 부류의 신이기 때문에 힘을 회복하는 속도는 무척 빠를 터였다.

그에게만 맡겨 두어도 공허의 신들을 대부분 정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혹여나 딴마음을 품는 놈들에 대한 통제도 가능했다.

문제는 차후 힘을 회복한 카루타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만, 그 또한 나쁜 일은 아니다.

그만큼 재미난 전투가 기다리고 있지 않겠나?

게다가 어차피 하위 신들을 복속시킨다 해도 카루타에게 신성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성이 늘어나고, 자신은 세계 바깥에서도 계속해서 강해질 것이기에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다 됐냐?”

감았던 눈을 뜨는 로칸의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광풍이었다.

세계를 들여다보는 동안 지켜 주기 위함은 아니다.

집결 시간까지는 약 4시간이 남았고, 그 안에 함께 가야 할 곳이 있었으니까.

“가시죠.”

그것을 알기에 로칸도 서둘러 채비를 했다.

4시간으로 충분할지는 모르지만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카이스만의 유언이 되어 버린 정보.

그가 이야기했던 어떤 장소를 향해 둘이 걸음을 서둘렀다.

“여기인가?”

“지도로 보면 맞는 것 같은데요.”

그곳은 신계의 중심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신들의 도시가 신계의 중앙에 위치한 듯 보이지만 어디를 기준점으로 보냐에 따라 조금 다른 것이다.

적어도 그들이 카이스만에게 공유받은 신계 지도에 따르면 신들의 도시가 아니라 바로 이곳이 신계의 중심이었다.

“저거로군.”

“맞는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숨겨진 ‘문’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차원 문.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카이스만이 괜히 이곳을 찾으라고 한 것은 아닐 터였다.

저 안에 뭔가가 있겠지.

공허에, 혹은 카이륜에게 대항할 수 있는 무언가가 말이다.

“제가 할까요?”

끄덕.

광풍의 눈빛을 교환한 로칸이 문의 앞에 섰다. 잘 감추어 둔 문에 자신의 신성을 불어 넣으며 조작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그러자 감추어져 있던 문이 모습을 드러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 너머에서 느껴지는 것은 막대한 신성.

특이점의 그것보다도 거대한 신성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가실까요?”

로칸과 광풍은 환하게 두 팔 벌려 그들을 환영하는 문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놀라운 시스템의 알림을 확인했다.

[카이스만의 시험에 도전하시겠습니까?]

‘시험이라고?’

놀랍고도 당황스러웠다. 뭔가를 찾거나 가져가라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시험이라니?

이걸 통해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로칸이 광풍을 돌아보았다.

그 역시 같은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물러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도전을 회피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럼 클리어한 뒤에 뵙죠.”

로칸도 망설임 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설마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구조는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 해도 둘 중 누가 들어가든 성공할 테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몸이 각각 어딘가로 전이되었다.

차원의 문과 연결된 미지의 공간으로.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어떤 시험을 받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카이스만의 안배인 만큼 적어도 그들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눈을 떴을 때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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