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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화.신들의 수호자 (2) (492/500)

492 신들의 수호자 (2)

그것은 광활한 우주였다. 튜토리얼을 시작하기 전 그가 보았던 것과도 비슷한, 끝도 없이 펼쳐진 우주.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무언가 생겨나고 있었다.

거대한 나무의 형태를 한 하나의 세계가.

‘저거……?’

퍽이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튜토리얼에서 보던 세계의 모습이니까.

그리고 이제는 알고 있었다. 저 단층들이 지상과 천상, 그리고 신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가만히 그 형성 과정을 지켜보던 로칸은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가만히 고정되어 서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령처럼 지상과, 천상, 신계를 훑으며 그 생성 과정을 엿본 것이다.

한데 이상한 게 있었다.

세계의 형상은 더 로드의 그것인데, 그 구성원들이 평범치 않은 것이다.

‘뭐야, 저것들은?’

그것은 무엇도 아니었다. 특정 종족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신도 아니었다.

찰흙 같기도 하고, 아메바 같기도 했다.

잠시 후,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점점 형태라 할 수 있는 것들을 갖추더니 로칸도 아는 종족의 형상을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렇게 종족들이 생겨난 것일까?’

처음 그것들 간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거의 동일한 힘을 지니고 있었고, 생김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점차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외형뿐 아니라 구조와 성격, 특성 따위에 의해 힘의 우위가 생겨났고, 그들이 창조주가 되어 만들어 낸 피조물들의 세력 등에 따라 다시 계급이 나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랬다. 그들은 신이었다.

태초의 신들.

그들에게서 분화된 존재들이 물 잔을 타고 흐르는 물처럼 천상으로 지상으로 내려갔고, 각자 자리를 잡으며 세계를 채워 갔다.

‘처음 보는 놈들도 있는데…….’

잠깐은 평온했지만 평화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었다.

종족 신들은 서로 사이가 괜찮았지만, 그들의 피조물들이 서로 대립하고 먹고 먹히는 관계가 됨에 따라 묘한 관계가 되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윽고 멸종에 가까울 만큼 수가 줄어 버린 종족들도 있었다.

일부는 종족 신의 발 빠른 대처로 인해 진화하여 살아남았지만 대응이 늦은 종족들은 단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자식 같은 피조물들을 잃어버린 종족 신이 상대 종족의 신에게 싸움을 건 것이다.

유치한 감정싸움은 서로를 소멸시키는 사생결단으로 이어졌고, 그런 존재들이 늘어나며 서로 파벌을 이루거나 반목하는 이들이 늘어 갔다.

신계 전체가 여러 패로 갈려 전쟁을 시작했다.

[수호자의 조건][퀘스트]

태초 신들에게 일어난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십시오.

당신의 역량에 따라 세계 전체가 멸망할 수도 있습니다.

-성공 조건 : 태초 신들의 갈등과 분쟁 해소

-성공 보상 : 결과에 따른 해결 능력 평가 점수 부여

-특수 조건 : 소멸하는 신들의 수에 따라 평가 점수 감소

‘응?’

그때, 로칸의 눈앞으로 퀘스트 창이 나타났다.

직접 그들 사이에 뛰어들어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라는 것이다.

성공 조건과 보상도 이상하다.

아니, 퀘스트의 이름부터가 수상쩍었다.

‘수호자의 조건이라니…….’

이건 마치 차기 신들의 수호자를 뽑는 시험 같지 않은가?

“한 방 먹은 건가.”

뭔가 유산 같은 것을 남기는 것처럼 굴더니 광풍과 로칸, 둘 중 하나를 신들의 수호자로 만들려는 수작이었다.

‘어쩐다…….’

그런 귀찮은 일을 과연 떠맡아야 할까?

신들의 수호자에게 어떤 능력과 권한이 부여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광풍이라면 이것을 알아차리자마자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것은 그의 성격에 맞지 않으니까.

“쳇, 이러면 할 수 밖에 없군.”

그렇기에 로칸은 입술을 깨물며 신계에 내려앉았다.

광풍이 정말로 포기를 해 버렸을지도 모르니 자신이라도 일단 퀘스트를 완수해야 하지 않겠나?

수호자가 되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지금은 조막만 한 힘이라도 더 얻어 두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 시간을 들여 이곳에 온 것이고.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면 된다 이거지?”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서로 양보하고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져 서로를 이해하는 것일 터였다.

그러나 이미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그들에게 로칸의 말 따위가 통할까?

가능하니 이런 퀘스트를 만들긴 했겠지만 로칸은 그런 정공법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아니, 지금 상황이라면 오히려 자신이 하려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믿었다.

“폭력의 신.”

언제라도 전투가 벌어지고 서로를 소멸시키는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순간, 로칸이 스스로의 격을 발했다.

단일 신의 전투력으로는 이미 최고에 가까울 만큼 강력한 신성을 발하는 그였기에 신계 전체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전부 꿇어라. 뒈지기 싫으면.”

로칸이 택한 방법은 도발이었다.

아니 군림이었다.

누구도 덤빌 수 없는 압도적인 무력. 그것을 놈들에게 각인 시킨다면 누가 있어 함부로 소란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저건 뭐야?”

“어디서 감히 망발을……!”

당연히 반발이 일어났다.

슬슬 힘의 차이가 나타나고, 다른 신을 소멸시킨 이들이 더 큰 힘을 보유하게 되었다지만 그래봤자 상급 신의 수준일 뿐인 것이다.

일부는 고유 신성의 특성 때문에 더 큰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한 모양이지만 개의치 않았다.

최상위 신이든, 공허의 군주든 몽땅 때려잡는 것이 로칸이었으니까.

“그래? 그럼 일단 좀 맞자.”

씨익.

반발하고 나선 신들을 바라보며 로칸이 미소를 지었다.

폭력의 시간이 도래했다.

“…….”

본보기로 많은 신들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다섯. 딱 다섯을 개 패듯 쥐어 패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싸움? 전쟁? 감히 그 따위 것은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기침 소리라도 내었다간 초주검이 될 정도로 얻어터질 것이 뻔한데 누가 감히 허튼 생각을 할 수 있겠나.

설령 상대 파벌의 신들을 모두 잡아 죽인다 해도 도저히 로칸과 겨루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공포라는 것이, 각인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었다.

로칸은 설령 차후 비등한 힘을 갖게 되더라도 함부로 덤빌 생각조차 들지 못하게 하는 공포의 각인을 폭력으로서 그들에게 새겨 주었다.

[‘수호자의 조건’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해결 능력 점수 평가가 시작됩니다.]

그렇게 폭력에 의한 평화가 찾아오자 시스템은 즉각 평가를 매겼다.

일단 퀘스트는 클리어.

그렇다면 평가 점수는 몇 점일까?

‘평화적이지 않았다고 박하게 주는 건 아니겠지?’

[해결 능력 점수 : 95점]

살짝 걱정을 했지만 오히려 생각보다 점수가 높게 나왔다.

다섯 명을 쥐어 팼기 때문일까? 그래도 죽이지는 않았는데.

어느 부분에서 5점이 깎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정도면 어디 내놔도 합격점이다.

“윽.”

그 순간, 로칸의 몸이 다시 우주로 튕겨져 나갔다.

신계를 비롯한 천상과 지상의 시간이 가속화되었고 불안한 평화 속에 시간이 계속해서 흘러갔다.

중간중간 다시 불화가 싹트고, 국지적인 싸움도 벌어졌지만 다행히 큰 싸움으로까지는 번지지 않았다.

그때마다 로칸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정작 로칸은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의 아바타 같은 무언가가 문제를 대신 해결했고, 다시 시간이 지나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응?”

거대한 나무 모양의 세계의 주변으로 묘한 구멍 같은 것이 생겨난 것이다.

그저 이상 현상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 안에서 어떤 존재들이 튀어나왔다.

신계와 천상, 지상으로 퍼져 나갔다.

‘침공?’

아니다. 침공까지는 아닌지 별다른 전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 종류가 모두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 모습에 로칸은 ‘구멍’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차원 문…….”

그것은 차원 문이었다.

지상도, 천상도, 신계도 아닌 또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차원 문.

그것을 통해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방문했고, 아직까지는 별 탈 없이 교류를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마주친 서로 다른 두 문명 사이에서는 분란이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이것들을 줄 테니 마나석을 다오. 거래에 응한다면 유혈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따위 것이 뭐라고……!”

그들 중 한 차원의 존재들이 무리한 거래를 요구한 것이다.

마나석과 신급의 무구들을 요구하며 자신들은 쓰레기에 가까운 잡동사니들을 거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다.

당연히 협상은 결렬되었다.

그러자 놈들은 기다렸다는 듯 신계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신들은 처음 보는 능력에 당황하며 크게 밀려 났다.

신계의 일부 영토를 빼앗기고 일부 신들은 소멸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또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나섰다. 그들을 대신 방어해 줄 테니 자신들과 교역을 하자는 것이다.

당연히 조건이 좋을 리는 없다. 당장 횡포를 부리고 있는 이들보다는 나은 조건이지만 그래봤자 신계가 크게 손해를 보는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조건을 수락하기는 했지만,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신계가 두 차원의 전쟁터로 변하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신들이 입은 것이다.

전쟁은 신계를 넘어 천상과 지상으로까지 번졌고 그들의 세계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이대로라면 세계 자체가 멸망할 판이었다.

그렇기에 신들은 하나로 뭉쳤다.

자신들의 대표자를 세우고 신성을 응집시켜 기원을 올렸다.

기적을 일으켰다.

지이이이이잉!

차원의 힘을 가진 강력한 신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 덕에 모두가 약화되었지만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새로 탄생한 신이 다루는 능력은 차원.

그 차원의 힘으로 차원 침략자들을 세계에서 쫓아내고 거대한 나무 형태의 세계 전체에 차원의 방벽을 두른 것이다.

다른 차원에서 간섭하거나 침략할 수 없도록.

다른 차원으로의 연결 통로를 끊고 스스로 고립되었다.

‘스케일이 장난 아닌데?’

로칸은 그 모습들을 속속 눈에 담았다.

아마도 이것은 신계, 아니 더 로드의 진실한 역사.

살아 움직이는 역사를 목격하게 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을 터였고, 그 자체로 귀중한 정보가 되었다.

‘저건?’

그 후로도 시간이 가속되는 세계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로칸의 표정이 변했다.

익숙한 기운, 익숙한 얼굴이 나타난 것이다.

카이스만과 카이륜.

‘그렇게 된 거로군.’

창조된 신은 힘을 회복하는 신들을 지키며 오랜 세월을 보냈다. 다른 신들과 달리 소수의 자식들을 낳을 뿐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강대한 신성과 차원의 힘을 지닌 채 태어났으며 대를 이어 신들의 수호자로서 평생을 바쳤다.

‘이러니 차원의 힘을 쓰는 신이 없을 수밖에 없지.’

그렇게 몇 대인지 셀 수 없는 시간이 지나 태어난 것이 카이스만과 카이륜.

신들의 수호자가 쌍둥이를 잉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모든 신들은 기뻐했고, 아이들은 서로를 학습하며 빠르게 차원의 힘을 쓰는 법을 익혀 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현재가 되었다.

[‘수호자의 의미’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퀘스트가 저절로 생성되었다가 완료되었다.

그저 감상하는 것이 목표인 퀘스트였던 모양.

환한 빛과 함께 로칸의 몸이 다시 어떤 공간으로 이동했다.

특이점과 같이 온통 신성으로 들어차 있는 공간.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마지막 퀘스트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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