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8화 (8/430)

 008화

[2회차] 죽음의 입맞춤

출입구 하나가 무너져 내렸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어두컴컴한 터널에 잠복해있던 경비들로 막지 못할 만큼 강력한 불청객이 암시장을 침입했다는 신호였다.

지하 5층 깊이에 뚫어놓은 터널이 무너지면 꼼짝없이 생매장돼야 정상이지만, 침입자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터널 붕괴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꾸물꾸물.

균열이 간 천장에서 사정없이 떨어지던 흙과 바위 등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탓이다.

‘땅의 정령.’

대자연 속에 존재하는 순수한 영혼이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 가지 속성을 하나로 모으면, 마왕 페도나르도 상대할 수 있다고 전해지는 판타지 정신생명체다.

이 정령이랑 친해진 사람은 간단한 부탁만으로 마법사의 마법보다 굉장한 기적을 손쉽게 행사할 수 있다.

바로 지금처럼.

쿠구구구-!

터널은 무너지긴커녕 이전보다 폭이 더욱 확장됐다. 위에서 누르는 막대한 질량의 흙과 바위를 역으로 밀어내서 단단히 굳힌다.

정령 한둘 동원돼선 어렵다.

못해도 수십.

아무나 가능한 정령 친화력이 아니다. 이만큼이나 많은 정령을 능숙하게 부릴 존재라면-

“요정인가!”

“정령을 부리는 요정이 침입했다!”

“막아! 경비! 경비!”

인간의 상위호환으로 취급되는 요정밖에 없다.

암시장 곳곳에 잠복해있던 경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손님이 죽거나 다치면 암흑상회 평판에 금이 가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경비들의 평균 레벨은 150.

웬만한 왕국의 기사보다 레벨이 높았다.

그만큼 많은 아수라장을 헤쳐왔다는 증거였으며, 암흑상회에 소속된 경비답게 더욱 독종들만 모아놨다.

반면,

“모두 공격!”

“동족을 구하자!”

침입자는 다수의 요정이었다.

그들은 특수한 누에고치의 실로 짠 얇은 비단을 겹치고 겹쳐서 방어력을 높인 요정 고유의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주로 다루는 무기는 활.

여기에 정령과 검술이 간간이 섞어서 쓴다.

평균 레벨은 200으로, 암시장 경비들보다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적진 한복판이었으며, 수적 열세 또한 치명적이었다.

그런데도 요정들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정령들이여-!”

소리 높여 외치는 한 여성의 존재 덕분이다.

그녀는 다른 요정들보다 귀가 길었다. 복장은 남들이랑 똑같으나 몸 주위에 흐르는 분위기가 달랐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종족: 아크 엘프

▷레벨: 284

▷직업: 주술사(축복=정령↑)

▷스킬: 정령S 기품A 매력A 궁술B 축복C…

▷상태: 침착

요정 왕족이 누추한 암시장까지 행차했다.

심지어 낯이 익었다.

동족을 구하기 위해 더 많은 동족을 위기로 몰아넣는 이상한 악취미는 1회차랑 똑같았다.

요정왕(妖精王) 실비아.

현재는 공주에 지나지 않지만, 요정왕이 쿠데타로 죽으면서 모험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왕위를 계승한다.

미래의 요정왕인 셈.

모험에 동참하기 전이라서 아직은 레벨이 낮았다. 하지만 타고난 혈통인 그녀의 스킬 등급은 전성기 못지않게 매우 높았다.

특히, 정령S가 깡패였다.

“으아아악?!”

“사, 살려줘~!”

“불이야!”

뱀처럼 생긴 불의 정령들이 불을 뿜으며 날뛸 때마다 경비들이 혼비백산하며 비명을 질렀다. 마법으로 어떻게든 대항해보지만, 정령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실비아 공주의 호위로 따라온 요정들도 강했다. 뒤편에서 마법 주문을 읊는 마법사를 활로 저격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늑대탈 손님! 이쪽으로!”

그 와중에도 손님들의 대비를 우선시하는 암시장의 직업정신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반면,

“용사님. 저희도 구출에 가세할까요?”

그들의 노력을 비웃듯 라누벨이 제안했다.

웅웅--

라누벨은 마법으로 반투명한 방패를 소환했다. 그걸로 사방에서 튀어오는 불똥들을 부지런히 방어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겁먹거나 당황한 얼굴이 아니었다. 침투한 요정들을 도와서 암시장을 혼쭐내길 원하는 올곧은 눈빛. 경매가 진행되는 내내 불편해하더니 마침내 폭발한 듯했다.

그 숭고한 정의감은 잘 알겠다.

“너는 대피소에 가서 대기해.”

“옛?! 어째서요?!”

말대꾸하지 말라고 그리 일렀거늘.

“구출에 가세한다고? 너 바보니? 우리가 조금 전에 구출한 용병은 어쩌라고? 이대로 죽게 놔둘까? 맙소사! 앞으로 쭉 함께할 동료를 버리겠다니! 너,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아….”

이미 우리를 뺀 손님들은 전부 피신한 상태였다.

하지만 족쇄를 차서 움직임이 제한된 상당수의 노예가 전투에 휘말려서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나는 라누벨의 등을 떠밀었다.

“여기는 용사인 내가 알아서 할게. 너는 새로운 동료랑 대피소에서 기다리고 있어. 돈주머니 잘 지키고.”

“우우…. 네.”

라누벨은 마지못해 움직였다.

죽긴 싫었던 용병도 순순히 그녀의 보호를 받으며 따라갔다.

그리고 나 혼자 남았다.

계획대로.

“사회자!”

“헉! 손님! 도망치지 않으시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저 요정은 내 소유가 맞겠지?”

사회자는 당황한 와중에도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선급이 기본원칙이나, 정황상 낙찰이 확실한 손님의 소유가 틀림없습니다. 지금부터 이 요정의 생살여탈권은 늑대탈 손님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함께 대피소로 이동하십시오. 마취약을 먹인 상태라서 반항은 미약할 겁니다.”

사회자는 바보가 아니다.

역으로 매우 똑똑한 엘리트에 속한다.

침투한 요정들의 목적이 이 노예란 사실을 눈치챘다. 그리고 전황이 썩 좋지 못하다는 것도 파악했다.

저주와 약물에 찌든 요정을 챙길 틈이 없었다.

그래서 손님에게 떠넘기기로 한 것이다.

“자네, 수완이 좋군.”

딱 내가 원하는 대답이었다.

“과찬이십니다.”

그 말을 끝으로 사회자는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무대 위의 광대 같았던 이 남자야말로 암시장의 숨은 실력자였다.

호위가 변변찮은 손님들을 대피소로 옮기는데 전념한 암시장 정예들도 속속 합류하기 시작했다.

나는 미래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서 미래의 요정왕은 생포된다.

그리고 노예로 전락한다.

이 난리를 치고도 그녀는 생채기 하나 없이 이 암시장에 버젓이 출품된다. 화풀이나 능욕 같은 저열한 보복은 당하지 않는다.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에.

그렇게 경매로 벌어들인 수익 일부는 그녀에게 살해당한 경비의 유가족들에게 전달된다.

그것도 나름 좋은 전개이다만….

“안녕. 요정 아가씨.”

사건의 발단인 851레벨 요정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그녀는 몽롱한 상태에서도 나를 단번에 알아봤다. 평범한 인간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눈치챈 듯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네가 살아있으면 실비아가 항복할 거야. 내 말뜻을 이해했어?”

미래의 요정왕은 전투에서 패배한 게 아니다.

함께 싸운 모든 요정이 죽고 그녀만 건재한 상황에서, 암시장 간부는 이 요정으로 인질극을 실행한다.

부하와 친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에 빠진 그녀는 전투를 포기하고 붙잡힌다. 그리고 노예로 팔린다.

당사자에게 대충 들은 사연이다.

“...네. 그 아이는 여리죠.”

이 요정은 제대로 이해한 듯했다.

정신이 약물과 저주에 찌든 힘겨운 상태일 텐데도, 죽음과 희생을 각오한 초연한 표정을 자아냈다.

죽음이 두려운 나로선 불가능한 마음가짐.

마지막 불꽃처럼 아름답게 타오른다.

나는 요정의 잘록한 허리를 왼팔로 우악스럽게 끌어안았다. 오른손으로는 그녀의 뒷목을 지탱하며 머리를 고정했다.

그리고 깊게 입맞춤했다.

“으음….”

“우읍?!”

탁탁, 힘없는 주먹으로 두드리는 미약한 앙탈이 있었으나 잠깐뿐이었다.

뾰족한 귀 끝을 살살 간지럽혀주자, 그녀는 자동반사처럼 양팔로 내 등을 더듬듯 끌어안으며 호응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혀와 타액을 빨며 깊게 탐닉했다. 난생처음인 듯한 그녀는 서툴렀으나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덕분에 이 요정의 마음이 깊숙이 전해져왔다.

그녀는 실비아 공주를 걱정하고 있다.

하찮은 자신 때문에 항복하진 않길 원한다. 비참한 노예생활을 잠시라도 경험해보지 않길 바란다.

그 간절한 소망이 몸짓 하나하나에서 느껴졌다.

덕분에 나도 즐길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워.

우득-!

동그랗게 치켜뜬 요정의 두 눈이 사르르 감겼다. 목이 부러진 그녀의 가느다란 팔다리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레벨을 90%가량 깎는 악마의 저주 덕분에 어렵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여운을 즐기듯 천천히 그녀에게서 입술을 뗐다. 그리고 바닥에 가지런히 눕혀줬다.

851레벨을 죽였다.

“게임 시스템은 진짜 멋진 병맛이야!”

그리고 방대한 힘이 전해져왔다.

▷종족: 아크 휴먼

▷레벨: 165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통역A 살인D 축복E 거래E 검기F…

▷상태: 고양

평범한 방식으로 성장했다면 족히 1년은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851레벨을 죽이면서 단숨에 레벨이 폭등했다.

심지어 이 요정은 죽으면서 나를 축복해줬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구먼.

“흥~ 흐응~♪”

재능과 혈통 따위 필요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자를 죽이기만 하면 너도나도 강자가 될 수 있다.

흠. 죽이려면 약간의 노력과 운은 필요하려나?

아무튼,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있다.

꿈과 희망이 넘치는 아름다운 판타지!

물론, 내가 이길 때만 좋다.

“늑대탈 손님?! 어째서 노예를…!?”

사회자가 경악한다.

비싼 돈 들여서 산 요정을 죽인 이유를 이해 못 한 탓이다. 우리가 이 혼란 속에서 뜨겁게 입맞춤할 때부터 저 얼굴이었다.

그가 당황할 만하다.

“문제없어. 돈은 제대로 줄게.”

남들 기준에선 비효율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851레벨 전사를 죽여서 레벨을 올리기보다는, 회유해서 부하로 거두는 편이 압도적으로 이득이다. 아니, 애초에 암시장에선 이 요정이 851레벨이란 사실조차 몰랐다.

하지만 나는 용사.

경험치 5배 특전을 받고 있다.

즉, 851레벨 요정을 5명 죽인 거나 다름없는 효율. 그리고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 주위에는 ‘경험치’가 많이 남았-

피용-!

화살촉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요정 궁수의 소행이었다.

꽤 가까운 거리에서 내가 851레벨 요정을 죽이는 광경을 목격한 시점부터 ‘적’으로 인식한 것이다.

분노와 슬픔으로 일그러진 예쁜 얼굴.

그 궁수만 화난 게 아니었다.

“네놈이 감히 스승님을…!”

미래의 요정왕이 통곡하듯 절규했다.

죽인 851레벨 요정이 그녀의 스승이었던 모양이다. 정령은 타고나는 부분이 크니, 궁술을 배운 게 아닐까.

전투 중이던 요정들도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암시장 경비들이 그들 앞을 막지 않았다면, 일제히 내게 달려들었을 만큼 그 기세가 제법 흉흉했다.

“이거 참….”

스르릉-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어정쩡한 검을 주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묵직한 대검이 아닌, 양손과 한손 사이의 어중간한 바스타드(bastard) 계열. 하지만 대충 쓰고 버리기엔 딱 적당했다.

현재 내 레벨은 165.

4레벨로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젠 가능하다.

가령,

“자! 내 꿈을 위해 힘차게 베어볼까!”

나는 받은 만큼 일한다.

요정 공주님이 노예로 전락할 일은 없을 것이다. 히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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