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28화 (28/430)

 028화

[3회차] Ulluuuuu...!

쿵! 쿵! 쿵! 쿵!

땅이 울릴 만큼 거대한 덩치로 뛰는 울룰루는 굉장히 빨랐다. A등급 스킬까지 달고 있으니 어련할까.

“망할 레벨!”

나는 마왕 페도나르를 손쉽게 잡으려고 경험치 획득을 피해왔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게 될 줄이야!

객관적으로, 울룰루는 5대 재앙에 비빌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15레벨로 잡긴 무리다.

...오!

“CuCu...?”

53레벨 야생 오크를 발견했다.

“빨리 뒤져!”

“KuKu~~?!”

“더! 더! 더! 더!”

일직선으로 쭉 돌진하는 울룰루를 추적하면서 사냥도 병행했다. 레벨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려면 다른 방도가 없었다.

“Ulluuuu!”

그렇다고 아주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놈의 출현에 놀란 몬스터들이 숲에서 뛰쳐나왔다. 나는 그것들을 아낌없이 때려죽이며 경험치를 수확했다.

그러나 이 또한 한계가 있었다.

레벨 높은 보스는 웬만해선 자기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탓이다. 울룰루가 난동 부려도 꿈쩍하지 않았다.

역시, 부족한 시간이 문제다.

“거, 거인이다!”

“우리 마을로 온다! 도망쳐!”

“오오! 신이시여….”

“히이익?! 엄마얏?!”

울룰루의 이동 경로 위에 있는 어느 마을.

공황에 빠진 마을주인들은 허겁지겁 마을 밖으로 도망쳤다. 멍하니 구경하고 있다간 밟혀 죽을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Ulluuu.”

울룰루는 전방에 가로막은 마을을 신경 쓰지 않았다. 잡초를 상대하듯 대충 걷어차며 지나갔다.

하지만 여기에는 파괴SS의 묘리가 담겨있다.

특수한 파동이 퍼져나갔다.

콰직! 쾅!

마을 하나가 흔적도 없이 파괴됐다.

“아, 안 돼…!”

평판 점수 깎이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했다.

마을, 도시, 마을, 마을, 도시, 마을….

줄줄이 도미노처럼 파괴돼간다.

현기증이 몰려온다.

“용사님~!”

수풀에서 무작위로 튀어나오는 야생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울룰루를 추적하던 나는 하늘을 힐끔 올려다봤다.

라누벨이 비행마법으로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바로 지시를 내렸다.

“마법으로 놈의 발목이라도 잡아!”

“네!”

라누벨의 활약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다.

200레벨짜리 마법사가 999레벨을 넘어선 거인의 진격을 무슨 수로 저지하겠는가? 썩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시했을 뿐이다.

멈칫하게라도 할 수 있다면 기적-

“Ulluuu~~?!”

콰당-! 우당탕! 쿵-!

울룰루가 요란하게 넘어졌다.

한여름에 뜬금없이 생성된 조잡한 빙판을 밟고, 그 거대한 덩치가 몸개그 하며 맥없이 미끄러진 것이다.

“용사님! 라누벨이 해냈어요!”

라누벨이 손가락으로 내게 브이(V)를 그리며 귀여운 척했다.

“...어이없네.”

하지만 나도 이번만큼은 라누벨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거슬리는 귀여운 척도 넘어갔다.

자, 그럼.

라누벨이 제공해준 이 초현실적인 기적의 기회를 허투루 날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가 가진 능력들을 총동원했다.

불끈!

힘줄이 돋아난 근육을 최대로 활성화했다.

내분비샘에서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심장은 폭주 기관차처럼 마구 뛰었다.

막대한 열량 소모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삼킨 물질을 완전분해할 때까지 굴리는 슬라임처럼, 내 몸속의 소화기관에서 음식물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기 때문이다.

타액의 아밀라아제.

위액의 펩신.

쓸개즙의 지방 유화.

이자액의 트립신, 키모트립신, 리파아제.

장액의 말타아제, 펩티다아제.

탄수화물은 포도당으로,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지방은 글리세롤로 바뀐다. 그리고 소장과 대장의 융털로 흡수된다.

여기서 열량(calorie)이란?

영양소 분해로 생성된 에너지원이다.

즉, 소화기관은 생체 원자력발전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마스터 몰랑, 만세~~!”

인간 본연의 소화능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 마스터 몰랑의 완전분해효소가 가미되어야 진정한 핵발전소가 완성된다.

그 힘을 담아서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우선은 허리디스크…!”

막 일어서려는 울룰루의 등에 올라탄 후,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를 무릎으로 정확하게 찍었다.

덩치가 크니 디스크를 찌르기도 좋았다.

“Ulluu…!”

거대한 두 손으로 대지를 짚은 울룰루가 분노의 포효를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쿵, 쿠구궁.

하지만 도로 절규하며 바닥을 굴렀다.

삐끗한 허리가 무거운 상체를 견디지 못한 탓이다.

“큰일이네. 화력이 부족해.”

역시 레벨이 문제다.

마스터 몰랑의 가르침과 무지막지한 스킬들의 조합으로 동레벨의 마왕도 가지고 노는 나지만, 상대는 그런 페널티가 없는 거인이었다.

내 공격은 유효했으나, 딱 그뿐이다.

결정력이 없었다.

“용사님! 저희도 가세하겠습니다!”

“한수야! 도와줄게!”

내가 빠르게 사냥을 못 하고 미적거리니, 뒤늦게 따라잡은 잡것들이 경험치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우르르 몰려왔다.

뒷목이 땅기기 시작했다.

“뭔가 방법이…. 아!”

있었다.

여전히 부활의 후유증으로 빌빌거리는 아쿠아.

여긴 인어가 살기 좋은 물속이 아닌 육지였으며 열대야였다. 평범한 인어였으면 벌써 열사병에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쿠아는 억지로 쫓아왔다.

“아쿠아! 네 도움이 필요해!”

“헉, 헉헉. 용사님. 제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 싸우고자 창은 챙겨왔으나 그다지 도움은 안 될 겁니다.”

“괜찮아!”

“무, 무슨…. 또?! 우읍!”

나는 아쿠아의 입술을 빼앗았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줬다.

우득.

“용사님! 이게 무슨 짓이에요! 그녀를 왜…!”

한 박자 늦게 도착한 성녀A가 그 현장을 포착하고는 내게 따지듯 소리 질렀다.

나는 힘없이 늘어진 아쿠아를 내려놓으며 부탁했다.

“부활시켜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요! 용사님을 도와주려고 힘든 몸을 이끌고 온 아쿠아를 죽인 게 문제라고요!”

“나도 알아.”

울룰루가 허리디스크를 극복하고 일어서려 한다.

지금이 아니면 시간이 없었다.

“알면서도 그랬다고요?!”

“아쿠아가 상실한 레벨은 내가 책임지고 채워줄 거야. 그러니 그만 짹짹거려.”

“짹짹?!”

쫑알대는 성녀A를 무시하고 힘을 활성화했다.

푸화아아아-!

내 주위로 폭풍이 휘몰아쳤다.

게임은 지금부터다.

▷종족: 카오스 휴먼

▷레벨: 85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패기SSS 마기SS 내성SS 혼돈SS 맹독SS…

▷상태: 성장

318레벨 인어 경험치를 맛있게 먹었다.

시간이 좀 더 넉넉했다면 야생 몬스터를 잡았겠지만, 100레벨 이상은 사냥터 중앙지에서 보스로 군림한다.

지금은 찾아갈 여유가 없다.

그래서 맛있는 인어 도시락을 깠다.

21레벨 → 85레벨

단순한 수학식으로는 약 4배쯤 강해진 셈이지만, 고등급 스킬의 상호보완과 상승효과로 실질적인 성장 폭은 계산이 어렵다.

단 하나 알 수 있는 건, 매우 강해진다는 것뿐.

“우선은 한 방…!”

스킬의 폭풍을 몰면서 울룰루에게 도약했다.

막 일어선 울룰루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다시 달리려고 했다. 저 달리려는 본능은 어떻게 안 되는 걸까?

억지로라도 세워야겠다.

나는 울룰루의 오른발 아킬레스건을 힘껏 걷어찼다.

딱-!

힘줄이 끊어지는 경쾌한 소리.

순수한 물리력이었다면 충격은 줄 수 있어도, 안쪽의 근섬유를 절단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방금 한 방에는,

패기SSS 마기SS 혼돈SS 맹독SS 근력SS 민첩SS 투기SS 학살S 격투S 체술S 파괴S 심판S 금강S 몰살S 추적S 기력S 관통A 투과A 각력A 집중A 연계A 참격A 신속A 강타A 투시A 살인A 용살A 습격A 절개A 파열A 투살A…

수많은 스킬의 효과가 중첩되어 있다.

이것들의 조화와 조합이 증폭을 거듭했다.

“Ulluuuu~~?!”

견디지 못한 울룰루가 헛발질하며 고꾸라졌다.

나는 분노를 담아서 외쳤다.

“이것은 아쿠아의 복수다!”

저 멀리서 “당신이 죽였잖아요!”라는 성녀A의 딴죽은 무시하고, 울룰루의 메기처럼 생긴 널찍한 머리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퍼엉.

물컹한 머리가 움푹 들어갔다.

“Ulluu….”

울룰루의 조그마한 두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놈은 덩치도 크고 레벨도 높다.

하지만 오랜 수면과 휴식으로 스킬 등급이 대폭 낮아졌다. 파괴SS가 걸리긴 했으나, 스킬 하나로 내게 비비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는 오른팔을 뒤로 감으며 말했다.

“아쉽네. 뇌비우스보다 일찍 만났다면 우리는 좋은 한 팀이 됐을지도 모르는데.”

지금은 아니다.

망룡왕 2탄은 사양이다.

내 졸업장을 위해서 빨리 퇴장해주길 바란다.

퍼엉-!

움푹 들어간 울룰루의 머리에 추가타격.

호수에서 싸웠다면 이리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울룰루는 수왕의 가호 상승효과를 포기하고 육지로 올라왔다.

녀석은 왜 이런 미련한 선택을 한 걸까?

“Ulluuu, luuu.”

울룰루가 양팔을 앞으로 뻗는다. 공격하려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어린아이가 무언가를 달라고 보채듯이 계속 앞으로….

쿵, 쿠웅!

놈은 숨이 끊어질 때까지 헛손질하다가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잠꼬대나 몽유병이었던 걸까.

하지만 나는 울룰루의 행동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내가 용사 경력 10년 차다.

척하면 척이다.

“울룰루가 가려던 방향에 뭐가 있더라…?”

원한은커녕 면식조차 없는 만두 국왕을 죽이려고 돌진하던 건 절대 아닐 것이다.

울룰루가 원한을 따졌다면, 500년이나 자신을 봉인한 인어들부터 몰살시켰을 테니까.

하지만 놈은 깨어나자마자 육지를 달렸다.

저 방향에 뭐가 있기에?

그때, 대량의 경험치가 내 몸으로 흡수됐다.

레벨이 쭉쭉 상승했다.

85레벨→750레벨

지나치게 쭉쭉 상승한 것 같지만, 마왕 페도나르를 수월하게 상대하기엔 여전히 충분한 ‘낮은 레벨’이었다.

몸에서 힘이 넘쳐났다.

워낙 스킬 등급들이 높아서 이쪽은 변화가…. 어?

■■F→■■E

딱 하나 있었다.

내게 2회차 스킬을 고스란히 계승하게 해준 고마운 블랙박스의 등급이 한 단계 상승했다.

F등급에서 E등급으로!

여기에 맞춰서 효과도 추가됐다.

▷종류: 스킬

▷명칭: ■■

▷등급: E

▷D: □□□□ □□□.

▷E: 파괴되지 않는다.

▷F: 망각하지 않는다.

“파괴되지 않는다…?”

나는 손톱으로 내 손등을 긁어봤다.

주르륵….

바로 피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내 사기적인 자연치유력으로 순식간에 회복되긴 했지만, 육체가 파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물리적인 효과가 아닌 걸까?

“용사님~!”

내 상념을 깨듯 라누벨이 외쳤다.

비행마법으로 날아온 그녀는 건방지게도 내 품에 뛰어들려 했다. 양팔을 벌리며 힘껏 다이빙한다.

덥석.

한 손으로 라누벨의 안면을 붙잡았다.

“앗, 아앗?!”

“어디서 귀여운 척이야.”

울룰루의 목적지 추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당장 처리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쏴아아아--!

촤아아--!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울룰루의 죽음을 애도하듯 정말 펑펑 쏟아져 내렸다.

전설이 사실이었던 걸까?

울 틈도 없이 죽여버리긴 했지만.

울룰루의 거대한 시신은 그 비에 녹아내렸다.

“말도 안 돼…. 수호신 울룰루를 저 양아치가 혼자서…? 선대 용사이셨던 아버지조차 포기한 거신(巨神)인데….”

성녀A의 힘으로 부활한 인어공주 아쿠아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양아치란 표현이 거슬렸으나 이번만 참아주기로 했다.

내게 죽으면서 레벨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종족: 머메이드

▷레벨: 236

▷직업: 영웅(경험치 200%)

▷스킬: 창술S 내열A 질주A 노래B 만능C…

▷상태: 당혹, 불쾌, 흥분, 발정

...발정?

몇 초간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하다가 내 레벨이 문뜩 떠올랐다.

750레벨.

오! 맙소사!

“용사님께서 저를 책임져주신다면서요?”

비슷한 발언을 하긴 했었다.

내 평판과 인성 점수를 위해, 성녀A에게 아쿠아의 레벨은 책임지고 복구시켜준다고 약속했었다.

결코, 미래를 책임진다는 말은 안 했다.

“비린내 나는 몸으로 들러붙지 마. 가증스러운 물고기 년아.”

“용사님~♪”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방금까지 적대적이던 아쿠아가 욕망 가득한 눈빛으로 내 몸을 쓱 훑으며 아양을 떨었다.

먹이를 발견한 암상어 같다.

한 박자 늦게, 지크와 성녀A가 도착했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를 홀딱 맞은 우리랑 달리, 두 사람의 옷은 먼지 하나 없이 뽀송뽀송했다.

동행한 성왕국의 마법사들이 생활보조마법으로 우산처럼 비를 차단해준 덕분이었다.

지크가 의지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3레벨 주제에 뭔가 있어 보인다.

“한수야!”

“말해.”

“나는 전설의 성검을 찾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어! 이대로는 너에게 계속 뒤처지기만 할 것 같아서. 내 옆의 성녀님이랑 함께.”

“......”

지목된 성녀A는 내게 찰싹 달라붙으려고 애쓰는 아쿠아를 멍하니 쳐다보는 중이었다.

“저기, 성녀님?”

“아! 네.”

지크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그녀는 말했다.

“...그런 방법도 있다는 예시였습니다, 지크 님. 오해는 마시길! 저는 오늘부터 용사의 후예인 아쿠아의 신변을 보호할 생각입니다. 저 불결한 용사가 그녀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네에?!”

“그렇게 됐으니 성검은 자력으로 찾아보세요. 찾는 과정도 지크 님의 성장에 보탬이 될 겁니다.”

“그, 그럴 수가…!”

...대충 이야기가 정리된 듯하다.

지크가 당당히 나가고 성녀A가 멋대로 합류했다.

촤아아아-!

쏴아아―!

이 와중에도 비는 억수로 내렸다. 막힌 둑이 무너진 것처럼 정말 쉴 새 없이 전국적으로 쏟아졌다.

이젠 호숫물을 차지한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었다.

끔찍했던 가뭄이 단숨에 해결됐다.

만두 왕국뿐만 아니라, 가뭄에 고통받고 있던 중앙대륙의 모든 나라에서 나를 찬양하기 바빴다.

내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평판 오르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우후후후!

그런데….

“비가 왜 안 그치는 거야?!”

닷새 만에 평판이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2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