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0화 (30/430)

 030화

[3회차] 용사님은 모험 중

아무래도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그대로 비틀거리며 술집에서 뛰쳐나간 지크.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다음날 짐보따리 챙겨서 모험을 떠났다.

거참! 여전히 사춘기인가?

▷설득: 갈대는 약하지만 다른 나무들을 엮는다고 합니다. 한 손이 다른 손을 씻겨주고요. 그래서 걱정입니다. 동료를 잃은 충격으로 후보가 뒤틀린 듯한···.

그러면 죽일까요?

망한 시험지와 썩은 동아줄을 붙잡을 생각은 없다. 3회차가 망했다면 4회차로 넘어가면 그만.

내가 레벨을 안 올리려는 이유도 그것을 위함이다.

마왕의 페널티.

용사 레벨이 낮을수록 마왕도 약해진다.

평판이 망했거나 안 풀린다 싶으면, 언제든 마왕 페도나르를 암살하고 재시험을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황당: 강한수 학생. 마왕은 동네북이 아닙니다.

누가 뭐랍니까.

▷두통: 남들처럼 사랑과 우정으로 이겨주세요···.

“용사님! 용사님! 큰일 났어요!”

저 멀리, 그렇게 밤새 처먹고도 벌써 술에서 깬 라누벨이 깜찍한 척하며 달려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다가온 그녀에게 물었다.

“왜? 포르말린에 담가진 기분이야?”

술에 찌든 라누벨은 죽어도 시체가 썩지 않을 것 같다.

“용사님! 지금은 그런 못 알아들을 소리나 하고 계실 때가 아니에요! 지크 님에게 여자가 생겼어요!”

“...정말로?”

“네! 그것도 셋이나요! 굉장하지 않아요?!”

굉장함을 넘어서서 기적처럼 들렸다.

지크의 모험에 동행한 동료는 총 3명이었다.

각각 직업은 사제, 궁수, 도적.

셋 다 왕국의 용병중개소에서 제법 알아주는 실력파 미녀들이라고 한다.

사제는 유명한 백작 가문의 영애고, 궁수는 전직 노예였던 요정. 도적은 신분이 불분명하다고 한다.

아무튼, 젊고 예쁘단다.

“거참, 신통방통하네.”

날이면 날마다 알렉스에게 처맞기 바쁘던 녀석이 여자는 언제? 그것도 미녀로만 셋이나?

나는 마왕을 바로 죽인다는 계획을 잠시 보류했다.

그 지크가 여자들이랑 모험이라니?

아씨! 너무 궁금하잖아!

...하지만 지크의 탈주로 내가 할 일들이 늘어났다. 이놈의 무료봉사는 정말 끝이 없다.

“망할 알렉스. 똥을 싸지르고 뒤지다니.”

알렉스는 죽어서도 내 속을 썩이고 있었다.

용사 지크를 살리고 싶으면 자기만 희생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왕궁기사단도 함께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그 결과, 왕국의 국력이 곤두박질쳤다.

일반병사는 타격이 없어서 아직은 치안에 문제없지만, 정예라고 부를 수 있는 현장지휘관이 대폭 감소해버렸다.

왕궁의 경비가 허술해진 것도 당연지사.

이대로는 곤란했다.

내가 왕국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건, 직접 명령받은 수많은 악마숭배자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비밀이 새나갈 것이다.

그때, 왕국의 상태가 좋지 않다면 내 평판과 인성에 치명적인 타격이 올 것이다.

안 그래도 홍수로 엉망이거늘!

현재로썬 지크의 모험을 신경 쓸 틈이 없다.

“악마숭배자들을 전력으로 돌려야 해.”

이 판타지 세계는 사악할수록 레벨과 스킬이 높다. 타인을 죽이면 경험치와 숙련도가 오르기 때문이다.

악마숭배자들도 다르지 않다.

정계(政界)와 상계(商界)에 깊숙이 파고든 자도 있고, 1회차에선 만두 왕국을 멸망시킬 만큼 강했던 무장세력도 있었다.

암흑기사단

이들은 왕국만이 아니라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다.

비밀리에 재능있는 고아들을 거둬들여서 혹독한 훈련으로 단련시킨 최정예.

만두 왕국에도 암흑기사단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왕궁기사단을 앞지르고 왕국을 전복시킬 만큼 강해지려면 앞으로 3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B급 악마가 추진해서 그렇다.

하지만 나 같은 SS급이 나서면 ‘요정왕 먹기’나 다름없다.

“용사님! 용사님!”

라누벨이 끈덕지게 따라와서 쫑알댄다.

“또 왜?”

“지크를 안 따라가실 거예요?”

“너, 미쳤니? 내 평판과 왕국은 어쩌라고? 원래는 내가 아닌 지크가 왕국을 지탱했어야 했어. 알렉스가 자기 때문에 죽었으면 그 책임도 져야지. 이 새끼가 발랑 까져서는 여자들이랑 여행을 떠나버리네.”

인성이 쓰레기 수준이다.

그런데도 지크가 인성 A학점이라고?

교직원 일동이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웠다.

▷옹호: 이 후보는 책임을 외면하고 현실도피 하는 게 아닙니다. 모험으로 강해져서 생명의 은혜를 보답할···.

그때까지 왕국은 누가 지키고요?

▷침묵: 그가 빨리 강해지길 빌어야지요···.

허술하다.

너무나 방만하다.

현재, 400레벨 악마 1마리만 침범해도 이 왕궁은 지옥으로 변한다.

순식간에 만두 국왕과 두 왕자는 죽고, 왕비와 공주는 수많은 악마의 노리개로 전락할 것이다.

지금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왕위를 찬탈할 수 있다.

악마숭배자들은 이미 왕국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지배 중이다. 왕국에서 내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평화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답답: 강한수 학생. 현실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마세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기질입니다. 꿈과 희망을 가슴 깊숙이 안아보세요. 그러면 역경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걸 현실도피라고 합니다만?

도덕 선생이 하고 싶은 말은 잘 알겠다.

지크는 자기가 성장할 때까지 왕국은 무사할 거라는 꿈과 희망을 품고 모험을 떠났다.

현재를 보지 않고 막연한 미래만을 쫓고 있다.

하! 완전히 도박꾼이잖아?

하지만 나는 다르다.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이끌 것이다.

그래서 이 자리를 준비했다.

“왕궁기사단이 유명무실해졌다. 앞으로는 제군들이 이 왕국의 미래다.”

“......”

“...꿀꺽.”

내 앞에는 300명의 젊은 남녀가 정렬 중이었다.

아직은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이지만, 앞으로 3년 이내에 이 왕국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는 살인귀로 돌변한다.

지금은 가소로울 따름이지만.

▷종족: 휴먼

▷레벨: 117

▷직업: 전사(전쟁→체력↑)

▷스킬: 암살B 맷집C 체력D 투기E 마기F···

▷상태: 불안, 긴장

오직 전투만을 중시한 스킬 구성.

그 등급도 저 나잇대에 가지기 힘든 수준이었다.

약 1만 명의 아이들을 비정한 전쟁 같은 살인적인 훈련에 투입해서 300명만 남았다.

훈련법이 알렉스만큼이나 제정신이 아니다.

사람을 갈아서 만든 결과물.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앞으로 이들을 3년이나 더 굴러서 200명이 낙오되고 100명만이 끝까지 남는다. 1만 명 중에서 1%만 살아남은 셈.

효율마저 의심스러운 훈련 방식.

그래서 나는 중단시켰다.

“제대로 된 이름조차 가지지 못한 너희에게 기회를 주겠다! 강해져서 스스로 이름을 찾아라! 내가 그 길을 제시해줄 테니.”

마기SS를 활성화했다.

B급 악마랑 격이 다른 극상의 힘!

야만인들은 이걸 ‘악마의 계약’이라고 부른다.

파아앗-!

내 몸에서 방출된 어둠의 기운이 300명의 젊은 남녀에게 골고루 흡수되며 자취를 감췄다.

그들의 능력치에 바로 변화가 찾아왔다.

▷종족: 다크 휴먼

▷레벨: 117

▷직업: 투사(위기→투기↑)

▷스킬: 암살B 마기C 맷집C 체력D 투기E···

▷상태: 변이, 맹신, 환희

종족, 직업, 스킬, 상태.

레벨 빼고 모든 게 달라졌다.

외모도, 판타지 원주민답게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가지각색이었다가 검은색으로 통일됐다.

자세히 보면, 귓바퀴 위쪽에 돌기 같은 게 생겼다. 순수한 악마는 아니기에 뿔이 자라다가 만 것이다.

그래도 순수한 인간보다는 월등한 육체가 됐다.

종족 보정치가 달라졌다.

“너희는 다시 태어났다. 나를 믿는가?”

“믿어요!”

“믿습니다!”

마음에 드는 반응들이다.

명예와 체면을 위해 수련을 등한시하고, 숙녀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일반적인 기사들이랑 차별됐다.

이들은 용사 같은 경험치 특전이 없다.

그런데도 이만한 성장을 이룩해냈다. 나는 여기에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내 1회차 지식을 활짝 풀자.

“지금부터 너희에게 걸맞은 사냥터를 알려주겠다. 기한은 한 달. 죽을 각오로 200레벨을 찍어라. 아! 실패해도 낙심하지 마라. 약자에게는 약자에 어울리는 일을 맡길 테니. 가라!”

“1소대 출발!”

“2소대 준비!”

“3소대 대기!”

미래의 암흑기사단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저들이 성장해서 알렉스와 지크가 싸지른 똥을 치워줄 것이다. 그리고 내게 긍정적인 평판을 안겨주리라.

앞으로 한 달.

좀 팍팍한 일정이 되겠지만, 내가 왕국에 체류하면서 암흑기사단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데 이만큼이면 충분하다.

그 뒤에는 나도 왕국을 나와서 대륙을 여행할 계획이다.

인성논란에 휩싸이지 않게 주의하면서 업적을 쌓고, 평판은 이 왕국을 중심으로 점차 확장할 것이다.

‘울룰루.’

놈의 목적지를 조사하는 게 이번 여행목표다.

그래도 영 아니다 싶으면 바로 마왕 잡으러 가면 그만이고.

조급해할 필요는···.

“용사님! 정말 굉장하세요!”

얌전히 지켜보고 있던 라누벨이 생뚱맞게 아부했다.

“뭐가?”

“용사님의 분위기가 하도 무시무시해서 마왕 페도나르의 화신인 줄 알았어요! 연기력이 엄청 뛰어나세요!”

“...야. 라누벨.”

“네?”

“마왕을 본 적은 있니?”

나는 목숨을 건 정상회담만 2번째인데.

“에···. 아뇨. 없는데요.”

“없으면 말을 하지 마! 너처럼 덜떨어진 애들이 꼭 추측성 유언비어를 퍼트려서 남의 평판을 떨어트려 놓지! 내가 죽이지 않고 나쁜 말로 할 때 닥쳐!”

“우우···.”

2회차 평판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긍이 안 된다.

나는 악마들을 몰살시켰다.

귀중한 천연기념물을 사냥한 게 아니다.

그런데 평판은 오르긴커녕 오히려 떨어졌다.

이건, 2회차 라누벨이 제대로 일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러니 이번에는 다른 수단을 강구해봐야 한다.

현재 성적을 추측해봤다.

1) 전투력: 신경 안 씀.

2) 업적: 요정왕 또 잡자!

3) 평판: 망하기 직전.

4) 인성: 문제없음.

울룰루 사냥으로 개판이 된 평판을 복구하는 게 급선무다. 이걸 어떻게 하지 않으면 4회차 확정.

하지만 내게도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악마추종자들.

놈들은 대륙 곳곳에 퍼져있다. 이들을 싹 규합해서 “강한수 용사님! 최고!” 여론을 조장하도록 명령할 생각이다.

우매한 야만인들은 속이기 쉽다.

“완벽해.”

그 첫발은 만두 왕국이 될 것이다.

*

어느새 2달이 흘렀다.

내 완벽한 계획은 별 탈 없이 진행됐다.

암흑기사단은 정말로 한 달 만에 전원이 200레벨을 넘겼다. 300레벨에 근접한 녀석도 적지 않았다.

같은 시간.

지크가 꾸린 소소한 하렘도 성장했다.

하지만 보고받을 때마다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남편과 자식들을 여의고 혼자 사는 할머니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이틀 동안 청소와 요리, 빨래 등을 하면서 체류하는 건 대체···?”

용사는 노인복지도 신경 써야 한다는 걸까.

지크의 모험은 괴상했다.

용사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복지활동이 대부분이었다. 힘들게 쓰러트린 경험치를 살려주는 이상행동도 적지 않았다.

덕분에 지크 파티의 성장은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용사B: 125레벨→124레벨

사제A: 56레벨→73레벨

궁수A: 245레벨→247레벨

도적A: 118레벨→125레벨

모험을 떠났더니 약해지는 놀라운 마법!

지크는 용사의 경험치 500% 특전을 받고도 레벨이 하락하는 기적적인 성장을 보여주는 중이었다.

이젠 부정할 수 없다.

지크는 마조히스트가 틀림없다.

용사B를 치료해주며 쑥쑥 성장한 사제A가 그 증거.

“용사님. 또 지크를 걱정하고 계세요? 나의 용사님은 너무 다정하신 것 같아요~♪”

“BuBu···!?”

아쿠아가 창으로 615레벨 오크 족장의 목을 찌르며 말했다.

“아쿠아! 아쿠아! 다친 데는 없나요?”

“너무 멋진 용사님 덕분에 이번에도 없어요~♪”

“...그렇군요.”

아쿠아의 뒤편에는, 여행 내내 심기가 불편한 성녀A가 있었다. 따라올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그녀는 기어코 쫓아왔다.

울룰루의 목적지를 찾는 여행.

이제 보름쯤 지났다.

용사A: 750레벨→ 751레벨

학자A: 200레벨→ 352레벨

영웅A: 236레벨→ 537레벨

성녀A: 124레벨→ 124레벨

지크의 모험을 참고해서 잡것들을 업어 키우는 중이다.

도덕 선생님. 보고 계십니까?

제 인성과 평판 점수에 잘 반영해주세요.

“용사님! 라누벨은 너무너무 힘들어요!”

라누벨이 귀여운 척하며 수풀에 주저앉는다.

...애가 착한 용사를 시험하네.

“당장 일어나! 너처럼 근성 없는 애들은 붙잡혀서 몸으로 대화해봐야 정신 차리지! 그렇게 경험해보고 싶어?”

“히익?!”

아무튼, 매우 순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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