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31화 (31/430)

 031화

[3회차] 이 용사는 물지 않아요!

우리는 경험치를 쓸어담았다.

울룰루의 목적지가 있을 법한 경로를 따라 쭉 걸으며, 근처의 사냥터란 사냥터는 몽땅 거치는 중이다.

마스터 몰랑이 사는 마을을 찾아갈 때처럼 단숨에 날아가면 가장 좋겠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에 샅샅이 뒤지며 갈 수밖에 없었다.

“용사님~ 이래도 괜찮을까요?”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선 라누벨이 입술을 빼쭉 내밀며 불만을 토로했다.

“뭐가?”

“저희가 먼저 찾아가서 일방적으로 도륙하는 거요. 역대 용사님들은 나쁜 짓을 한 몬스터와 악당들만 혼내주셨어요.”

“그러니 세상이 이 꼴이지.”

“네?”

“역대 용사들은 위선자야. 사람이 죽거나 다쳐서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구해줬잖아. 지크만 봐도 알 수 있지.”

부르면 정말 어디든지 달려간다.

그리고 무료로 도와준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아낌없이 퍼주는 무료봉사자다.

하지만 이걸 냉정하게 바라보면, 누군가 불러주기 전에는 절대 나서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살인이든 약탈이든 문제가 터져서 피해가 발생한 후에 해결한다. 미리 예방할 생각 따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평판 작업에는 좋을 것 같다.

“라누벨. 네 의견도 일리가 있어.”

“그렇죠…?”

“그래. 우리가 잡은 최상위 몬스터가 벌써 몇 마리째인데, 사람들이 전혀 안 알아주잖아.”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지난 두 달 동안 야금야금 상승한 지크 파티의 명성에 반해, 우리는 그 수천 배의 위협을 몰살시키고도 제자리걸음 상태였다.

요령이 부족한 걸까?

이건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에…. 맞는 말 갖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라누벨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귀여운 척했다.

나는 지적하려다가 멈칫했다.

“멈춰. 전방에 트롤 4마리.”

트롤(Troll).

지구에서는 북유럽 신화와 스칸디나비아, 스코틀랜드 전설에 등장하는 괴물이다.

신화마다 생김새는 다르지만, 판타지아의 트롤은 ‘악랄한 도깨비’라고 불리는 신장 3m의 흉측한 요정이다.

특징은 매부리코와 뾰족한 귀, 길고 두꺼운 팔.

하지만 트롤의 무서움은 외형이 아니다.

심장을 잃기 전까지는 머리가 잘려도 죽지 않는 판타지 같은 생존력. 재생력 또한 매우 우수해서 잘린 신체마저도 금방 복구한다.

무엇보다도 악랄하다.

체인질링(Changeling).

일명, 아이 바꿔치기.

트롤은 인간의 갓난아이와 5세 미만의 어린아이만을 노골적으로 노린다. 도둑처럼 마을이나 도시로 조용히 숨어들기도 한다.

그리고 잡아먹는다.

먹을 때마다 심장이 늘어나며 강해지기 때문이다.

“Trooog?”

“Troon.”

“Trooook!”

나는 지금까지 트롤이 보이는 족족 척살해왔다.

하지만 지크 파티의 얍삽하면서도 비열한 평판 작업을 보면서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저놈들은 아직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뭔가 저지른 후에 처리해야 할까?

▷종족: 트롤

▷레벨: 158

▷직업: 도적(약자→행운↑)

▷스킬: 내성E 추적E 질주F 심장F

▷상태: 평온, 공복

트롤 고유의 스킬 ‘심장’이 F등급이다. 이건 심장이 1개뿐이란 뜻으로, 자연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트롤일 확률이 높다.

나머지 3마리의 능력치도 엇비슷했다.

아! 들켰네.

“Trool…?”

“Trooos?”

“Troom…!”

놈들은 우리를 발견하고는 슬금슬금 도망쳤다.

적당히 강했다면 막무가내로 덤볐겠지만, 격차가 이리 뚜렷하면 아예 엄두를 못 낸다.

내 751레벨의 위엄이었다.

“용사님~! 트롤들이 도망쳐요!”

라누벨이 발을 동동 구르며 쫑알댔다.

“이번에는 그냥 무시해봐. 저것들이 인간을 공격했다는 증거도 없잖아? 지크의 비폭력주의를 흉내 내보자고.”

트롤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저 파릇파릇한 경험치를 그냥 보낸다니?

내 성미에는 안 맞는 방식이었지만, 졸업을 위해서 일단은 참아보기로 했다.

그때,

“용사님.”

성녀A가 나를 불러세웠다.

지난 보름 동안, 나는 치료와 부활이 필요 없어서 그녀를 공기 취급했다.

성녀A도 나는 무시한 채 아쿠아만 챙겼었다.

그런데 무슨 심경 변화일까?

“왜?”

“당신이 강하다는 사실은 슬픈 노래 호수의 울룰루 사태 때부터 현재까지 질리도록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약하고 얼빠진 지크 님에게 집착하시는 건가요?”

성녀A가 당사자 없는 곳에서 심한 말을 했다.

지크가 그녀의 평을 들었다면 목매달고 자살하지 않았을까.

확실히, 성녀A의 의심은 타당했다.

교직원 일당과 졸업시스템을 모르는 절대다수의 원주민들은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마왕을 잡는다고 끝이 아니다.

나도 따지고 싶다.

“역으로 묻자. 네가 본 지크의 장점은 뭔데?”

“......”

“...뭔데?”

“보채지 마세요! 생각 중이잖아요!”

성녀A가 드물게 짜증 섞인 어조로 내게 핀잔 줬다. 내가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한 모양이다.

“지크 님의 장점. 희망이요.”

성녀A는 용사의 특전을 안다.

경험치 500%.

하지만 마왕의 페널티가 굉장하다는 건 모른다. 1회차의 성녀A처럼 ‘마왕은 용사에게 취약하다.’는 정도의 지식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마왕을 쓰러트릴 수 있는 희망.

여기까진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리고?”

“없습니다.”

“...음? 없다고?”

“네. 없어요. 용사는 용사입니다. 용사라는 직업을 빼고 본다면, 지크 님은 여자를 밝히는 17살짜리 남성일 뿐이에요. 하지만 용사이기에 그는 특별한 겁니다.”

성녀A의 설명을 들으니, 교직원 일동의 목적이 더욱 의심스러워졌다.

나도 지크가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취향이 좀 독특하긴 하지만.

“...라고 지금까지 쭉 생각했었는데요. 당신을 계속 보고 있으면, 선택받은 용사의 인품과 상식이 못해도 정상인은 돼야 한다고 절절히 느끼는 중입니다.”

“켁! 내가 어때서?”

“정상인은 인어를 죽이지 않아요….”

우리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트롤 4마리의 뒤를 추적했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Troor…!”

“Trooob…!”

“트롤의 습격이다!”

“헉! 무려 4마리나!”

트롤들이 산길을 지나가는 귀족 마차를 습격했다.

기사와 병사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지만, 트롤들은 자신들의 재생력을 믿고 돌파를 시도했다.

모두가 똑같은 목적을 갖고.

“놈들이 마차를 노린다!”

“지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패로 막- 크악?!”

트롤은 마차를 둘러싼 인간들의 날붙이를 맨몸으로 맞으면서 돌진했다. 피해가 상당했으나, 1마리가 기어코 마차까지 도달했다.

콰직-!

튼튼한 원목으로 된 마차의 문짝이 트롤의 거대한 손에 뜯겨나갔다.

놈들의 목적은 인간의 몰살이 아니다.

“꺅-?!”

마차 안에서 놀란 여성의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청순한 녹색 드레스를 입은 귀족 여인의 품에는 자그마한 생명이 안겨 있었다.

“Troood…!”

“아, 안 돼! 차라리 날 먹어…!”

마차를 부순 트롤의 목적은 여자가 아니었다. 자신을 희생하려는 그녀의 애원 따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트롤의 목적은?

“Troov!”

여인이 안고 있는 갓난아이.

트롤이 악랄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퍽-!

응. 거기까지.

나는 트롤의 등을 수도(手刀)로 가볍게 내리쳤다.

“Trooow~?!”

그것만으로도 전투는 끝났다.

심장이고 뭐고 몸이 납작하게 짓눌린 트롤은 즉사. 변두리에서 얼쩡대는 나머지 3마리는 아쿠아와 라누벨이 처리했다.

부상자들은 성녀A가 치료하면서 마무리!

깔끔한 전투였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귀족 여인은 아이를 부둥켜안은 채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나는 10년 경력의 예의범절을 발휘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저는 용사고, 이쪽은 잡것들입니다.”

“아! 용사님이셨군요. 저기….”

“정말 죄송합니다.”

“네?”

“목적지까지 함께해드리고 싶지만, 시간이 아까-운 건 아닌데, 한시가 급한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마시길! 제 부하들이 여러분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지켜줄 겁니다.”

지크의 무료봉사는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나는 모든 수단을 이용할 생각이다.

척! 척! 척!

얼마 안 지나서 내 지원병력이 도착했다.

암흑기사단.

나는 이들로 왕궁기사단의 빈자리를 채우고, 남은 병력은 차출해서 주변국의 악마추종자들을 힘으로 복속시켰다.

제법 쓸만한 잡것들이다.

“헉! 저들은 마인…!”

“저렇게나 많이?!”

“악마의 하수인들이 어째서….”

마차를 호위하는 기사와 병사들이 식겁했다. 경장갑을 걸친 암흑기사들의 머리에 난 돌기를 본 탓이리라.

그들의 짐작대로다.

▷종족: 다크 휴먼

▷레벨: 265

▷직업: 투사(위기→투기↑)

▷스킬: 암살A 민첩B 체력B 마기C 투기C…

▷상태: 맹신

마기에 물든 인간.

마인(魔人).

이들은 2회차의 짐꾼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이번에 부른 암흑기사단 1분대의 인원은 10명. 개개인의 전투력은 이미 하급 악마를 간단히 썰어버릴 수준이었다.

전원이 힘을 합치면 중급 악마도 처치 가능.

트롤 100마리가 돌격해와도 끄떡없다.

솔직히, 마차 호위 따위에 쓰기엔 좀 많이 과한 전력이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위대한 용사님.”

“흠.”

하지만 나는 서비스 정신을 발휘했다.

기껏 살려놨더니 “용사님의 마무리가 시원찮았어요.”라고 뒷말이 나오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도와주고도 욕먹는 것만큼 짜증 나는 일도 없다.

그래서 확실하게 하기로 했다.

“이들을 목적지까지 호위해라.”

“명을 받듭니다.”

나는 바짝 긴장한 귀족 여인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자신 있는 분야다.

“목적지까지 안심하셔도 됩니다.”

“아, 안 도와주셔도 돼요! 위대한 용사님!”

이래서 귀족은 상대하기 피곤하다. 꼭 시답잖은 예의를 차린답시고 한 번씩 튕겨서 사람을 번거롭게 한다.

“부인. 사양하지 마십시오.”

“힉?! 네! 죄송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호위를 받겠습니다!”

“겁내지 마십시오. 트롤은 다 죽었습니다.”

“네, 네네…!”

흉흉한 트롤 앞에서 아기를 지킬 때는 제법 강단 있는 여자인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본 모양이다.

*

부상자들의 치료와 수리를 마친 마차는 곧 출발했다. 그 주위를 암흑기사 10명이 감싸듯 호위했다.

마치, 어린 양들을 몰이하는 늑대 같다.

“용사님께서 마인까지 복종시키신 줄은 몰랐습니다. 비슷한 사례가 과거에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성녀A가 곤란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녀를 무시하고 하늘을 슬쩍 올려다봤다.

해가 떨어지려 한다.

“위기에 빠진 사람만 돕는 지크의 비열한 방식이 효과가 있는 건 확실한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잡것들에게 안 맡기고 우리가 호위했으면 더욱 지체됐겠지.”

그건 곤란하다.

우리는 울룰루의 진격 방향을 나아가는 중이다.

그 메기의 최종목적지가 어디였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대로 쭉 가면 숨겨진 유적이든 미궁이든 뭔가 나오지 않겠는가?

1회차의 지식으로는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고고학자 라누벨도 모르는 듯했다.

‘이건 서둘러야 해.’

내 감이 말해주고 있다.

도덕 선생이 눈치채기 전에 그곳에 가야 한다고.

하지만 이대로 정직하게 가면 들킬 것이다. 졸업하려고 애쓴다는 모습을 계속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번 여행의 실질적인 목적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용사님~♪”

내가 미쳤다고 이 물고기 년을 계속 키우겠는가? 이미 레벨은 한참 전에 복구가 끝난 상태다. 이자까지 곁들여서.

하지만 나는 웃었다.

“그래. 아쿠아. 일단은 내 옷에서 그 파렴치한 손부터 빼렴. 잘라버리기 전에.”

지크의 방식을 조금만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위기에 빠지길 기다리는 건 번거롭다.

그러니 위기를 조성해보자.

숨을 깊게 들이켰다.

그리고 힘차게 토해냈다.

“Chaooooooo~~!!”

내가 친애하는 동료, 망룡왕 뇌비우스의 포효를 흉내 냈다. 단순한 소리뿐이라면 5대 재앙의 이름을 먹칠할 뿐이다.

혼돈SS! 파괴SS! 망각SS!

나는 진심을 담아서 내질렀다.

그리고 반응이 왔다.

“KuKu~!?”

“Troooop~?!”

“OwOw~?!”

이 일대에 사는 모든 몬스터가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원초적인 공포에 휩싸인 놈들은 포효의 근원지로부터 멀어지고자 무작정 달렸다.

두두두두-

쿵, 쿵, 쿵-

놈들이 밟아대는 땅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숲의 나무들이 도미노처럼 줄줄이 쓰러졌다.

“우으…. 저기, 용사님. 뭘 하신 거예요~?”

내 우렁찬 포효를 바로 옆에서 얻어맞은 세 여자는 혼절했다. 그중 가장 먼저 정신을 회복한 라누벨이 내게 질문했다.

아주 좋은 질문이다.

나는 씩 웃으며 전문용어로 답했다.

“평판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에 재채기가 좀 세게 나왔네.”

“...예?”

“모르면 됐어.”

이제, 위기에 빠진 도시를 구하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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