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화
[3회차] 평판의 대가
“용사님! 제정신이세요?! 용사가 평판을 올리려고 인간의 도시를 공격한다니요?! 전대미문이에요!”
성녀A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쫑알댔다.
“어허! 공격한다니. 이 성녀가 경칠 소리 하네. 나는 알레르기 때문에 기침했을 뿐이야. 여기에 놀란 야생동물이 뛰쳐나와서 우연히 도시로 돌격한 거지.”
전대미문?
아니다. 과거에도 수차례 있었던 사건이다.
용사가 강적이랑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에서 지형지물을 파괴한다.
그러면 그곳에 살던 몬스터들이 겁먹고 대규모로 줄행랑을 치면서, 근처 도시와 마을을 습격하는 형태로 이어졌다.
“그걸 말이라고….”
“자! 얼른 구하러 가자!”
우리는 위협받는 도시로 조금 빠르게 이동했다.
성녀A의 걱정처럼 큰 문제는 아직 없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이 아니다.
망룡왕을 사칭한 내 포효는 몬스터만 들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위기감을 느꼈다.
용(dragon)의 포효.
이 판타지에선 군부대 총성만큼 흔하다.
몬스터들이 서식지를 뛰쳐나올 것까지도 예상했다.
“몬스터 대군이 몰려온다!”
“어서 영주님께 이 소식을!”
“봉화를 올리고 종을 쳐!”
판타지 원주민들에게 피난과 대피는 일상이다.
물론, 망룡왕의 포효쯤 되면, 핵무기가 떨어지는 폭발음만큼이나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지만.
“LuLu...!”
“Trooot!”
“Mu~!”
몬스터 대군이 무질서하게 도시로 돌진했다.
울룰루가 날뛸 때도 꿈쩍 않던 보스 몬스터마저 도망치는 행렬에 간간이 섞여 있었다.
그만큼 망룡왕 뇌비우스가 유명하다는 방증.
내가 친애하는 동료다운 위엄이다.
나는 잡것들이랑 그런 몬스터 대군을 앞질러서 도시로 들어갔다.
평소 같으면 성의 입구에서 검문 절차가 있었겠지만, 비상사태이기에 도시는 성문을 활짝 개방하고 모든 사람을 안으로 받았다.
그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빠르게 진행됐다.
딩딩딩-!
도시 곳곳에 설치된 종이 시끄럽게 울었다.
“몬스터 대군이 도시로 몰려온다!”
“전설의 망룡왕이 500년 만에 깨어난 건가!”
“용감한 남자는 무기를 들라!”
2회차에서 많이 본 광경이다.
망룡왕이랑 파티를 맺고 중앙대륙 여기저기 모험할 당시, 사람들은 우리를 저렇게 환영해줬었다.
충격, 공포, 절망, 탄식, 광란, 공황….
개성적인 반응들을 보여줬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가게를 닫고 집으로 도망치고, 말을 탄 기사들이 거리를 질주하며 시민의 참전을 독려했다.
평화로웠던 도시가 순식간에 전장 한복판이 돼버렸다.
때가 무르익었다.
나는 가파른 성벽을 밟으며 망루로 올라가서 큰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이 용사에게 맡겨주십시오!”
홍보를 겸한 일장연설을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사망자가 속출할 것이다. 그러면 구해주고도 욕먹는 사태가 벌어진다.
말할 시간 있으면 싸우라고.
그렇게 불만이면 네놈들이 직접 싸우던가 용사활동비를 지원하라고 윽박지르고 싶지만, 평판을 위해 꾹 참았다.
망루에서 뛰어내린 나는 몬스터 대군을 향해 달렸다.
“용사님~! 저희는 뭘 할까요?”
“함께 싸우겠습니다!”
“아쿠아가 간다면 저도.”
잡것들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한다. 기껏 무대를 마련했는데, 어디서 숟가락을 얹으려고.
“너희는 자기 몸이나 지켜! 방해다!”
“......”
“......”
불만 가득한 눈빛들.
나는 어쩔 수 없이 잡것들에게 성문을 지키라고 대충 둘러댔다. 여기가 뚫리면 시민들이 위험하다는 숭고한 양념을 쳐서.
잡것들은 그제야 수긍하고 물러났다.
“하! 우정의 힘은 무슨.”
약자들이 쓰는 비겁한 수단일 뿐이다.
혼자서 마왕의 뚝배기와 모가지를 날린 전적이 있는 3회차 용사님에게는 하등 쓸모없는 잡기다.
“쓰레기 청소는 현자 놈의 역할이었는데.”
현자는 광범위 마법으로 몬스터와 악마 대군을 쓸어버렸었다.
독약과 함정 같은 간접살해, 대규모 학살 계통의 사냥법은 경험치를 적게 받는 페널티가 있다.
그걸 고려하더라도 현자는 레벨을 날로 먹었다.
이제는 내가 그럴 차례다.
▷종류: 스킬
▷명칭: 몰살
▷등급: SS
▷SSS: 경험치 감소가 사라진다.
▷SS: 광범위 피해를 준다.
▷S: 지형의 구애를 안 받는다.
▷A: 피해 범위가 매우 넓어진다.
▷B: 피해 위력이 매우 증가한다.
▷C: 관통 속성이 추가된다.
▷D: 피해 범위가 넓어진다.
▷E: 피해 위력이 증가한다.
▷F: 범위 피해를 준다.
몰살SS.
대단히 아름다운 스킬이다.
보통은 칼을 휘두르면 2차원 선상을 베면서 끝난다. 하지만 이 스킬이 가미되면 3차원 면을 난도질하게 된다.
스킬 몰살은 S등급까진 “이게 몰살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귀여운 수준이고, SS등급부터가 진짜라고 할 수 있다.
정말 광범위하게 긁어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른 스킬의 효과들이 더해진다. 몰살처럼 최적화되어 있진 않더라도 부분적으로.
패기SSS 파괴SS 투기S 학살S 관통S…
“엔드미온이 아쉽네.”
정령검 엔드미온.
내 입맛에 맞춰서 잘 길들여놨는데, 회귀하면서 사라졌다. 요정 나라에 가서 또 구해와도 헛고생이기에 포기했다.
다른 무기도 마찬가지.
그래서 나는 맨손이나 싸구려 무기를 쓴다.
이건 회귀해도 얼마든지 쓸 수 있으니까.
부우웅--!
몬스터 대군이 몰려오는 방향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그러나 헛손질로 끝나지 않았다.
“HuHu~?!”
“Ow~~?!”
“keeee~!?”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내 일격(一擊)에 뼈와 살이 뭉개졌다. 놈들은 어째서 자기가 죽는지 짐작조차 못 할 것이다.
몰살SS.
야구장 면적의 부채꼴 피해.
범위 피해의 위력은 체감상 5% 내외다. 원래 내 주먹의 5% 물리력이 광범위하게 반영된다는 뜻이다.
F등급은 위력이 1%쯤 하며, 범위는 탁구대쯤 한다.
차이가 극명하다고 할 수 있다.
퍼버버벅--
실시간으로 몬스터 대군이 고깃덩어리로 변했다.
몰살 스킬에 재사용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모자원이나 제한조건, 딜레이 또한 없다.
고작 5%지만, 내 주먹이 마왕의 뚝배기를 깰 만큼 막강하면 5%만으로도 커다란 바위를 가루로 만들 수 있다.
그런 공격이 광범위하게.
“원, 투, 원 투~♪”
이 전투는 진지함이나 치열함이랑 거리가 멀다. 실력 차이가 극명하기 때문이다.
몬스터 평균 레벨은 50 내외.
경험치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보스 1마리를 찾아가서 죽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지금 하는 것은, 내 평판을 위해 먼지 같은 피라미들을 밟는 단순한 반복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OwOw-!”
간혹 한두 마리가 몰살SS를 뚫고 내게 접근했다.
맷집이나 철벽같은 방어계통 스킬에 ‘범위 피해’를 상쇄하거나 줄여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퍽-!
약간의 번거로움에 지나지 않는다.
범위 피해가 안 통한다면 직접 타격하면 그만. 옷에 몬스터의 피와 살이 안 튀도록 피해야 한다는 귀찮음이 있을 뿐이다.
몰살 작업도 곧 끝났다.
평원에 더는 살아있는 몬스터가 없었다.
살던 곳으로 도망친 극소수가 있지만, 도시의 위협은 완벽하게 사라졌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훼손된 밭과 논의 농작물 피해가 약간 있긴 했어도, 시민의 원망을 들어야 할 인명피해는 없었다.
751레벨→ 754레벨
레벨도 정말 소소하게 올랐다.
경험치 페널티가 진짜 양심 없는 수준이다.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시민 여러분! 용사 강한수의 활약으로 도시는 안전합니다!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십시오!”
“......”
“......”
그런데 어째 반응들이 시원찮다.
뒤쪽의 도시 성벽을 돌아보니, 내 활약에 다들 놀라서 넋을 놓고 있었다.
“용사님! 용사님! 정말 굉장하셨어요!”
폴짝폴짝 뛰며 달려온 라누벨만 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은근슬쩍 안기려고만 안 했으면 100점이었을 텐데.
“...그래.”
시민들의 박수갈채까진 기대하지 않았지만, 환호는커녕 살았다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다.
...뭐가 잘못된 걸까?
내가 모르는 곳에서 심각한 피해가 있었는지 두루 살폈다.
하지만 이 도시의 시장이나 영주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을 듯했다.
“가, 가, 감사합니다! 용사님!”
헐레벌떡 뛰어나온 영주는 굉장히 젊었다.
본인도 싸울 생각이었는지 예쁜 깡통 같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내 활약으로 헛짓이 돼버렸지만.
대신, 목숨을 건졌으니 된 게 아닐까?
감사하는 게 당연하다.
“용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수고비를 받고 싶지만, 평판의 극대화를 위해 꾹 참았다. 내 활약과 수고를 고려하면 이 성을 통째로 넘겨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아는 걸까?
영주는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내가 수고비로 성을 달라고 할 걸 걱정하는 듯했다.
바로 그때였다.
“용사님! 용사님! 정신 차리세요!”
한 젊은 처자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이 정적을 깼다.
...내 정신은 멀쩡하다만?
“으으윽...”
내가 아니었다.
용사 사칭범도 아니었다.
지크였다.
몬스터 대군을 피해서 가까운 이 도시까지 흘러든 듯했다.
지크의 복장은 참으로 꾀죄죄했다.
무료봉사만 해온 녀석에게 무슨 돈이 있겠는가?
정성스럽게 닦은 흔적이 여기저기 묻어난 낡은 가죽 갑옷은 줘도 안 입을 싸구려였다.
그나마 무기는 좀 나았다.
사브르(Sabre) 계열의 한손검.
판타지 세계의 기사들이 가장 애용하는 검 중 하나다.
말 탄 병사가 한 손으로 다룰 수 있도록 가볍고 길게 제작됐다. 특징이라면, 외날에다가 완만하게 굽혀져 있다.
저 검의 출처는 왕비의 보고서에도 있었다.
지크가 20레벨대 산적들에게 납치된 대장장이의 딸을 구해준 후, 그 대장장이에게 받은 가보(家寶)였다.
하지만 희귀한 금속으로 만든 검은 아니다.
아마추어의 혼신과 정성이 깃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무슨 일이야?”
“헉! 지크 님이잖아!”
“어쩌다가 이런 부상을...!”
시민 중 일부가 지크를 알아보고는 호들갑 떨었다.
흘러드는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니, 귀족의 마차에 치일 뻔한 저 처자를 구해주고 자기는 자빠졌다는 듯했다.
진짜 덜떨어진….
“역시 용사님이십니다!”
“지크 님 덕분에 제 딸이 살았습니다!”
“제 친구를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시민들이 지크를 부축하면서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고작 여자 하나 구한 일이 삽시간에 대단한 업적으로 둔갑했다. 몬스터를 무찌른 용사도 내가 아닌 지크로 착각하는 자마저 등장했다.
“...기가 막히네.”
내가 몬스터를 몰살시키지 않았으면 싹 죽었을 인간들이 엉뚱한 녀석의 평판을 올려주고 있었다.
불쾌감을 넘어서서 짙은 패배감을 느꼈다.
“용사님~ 저희는 용사님의 활약을 알고 있어요!”
“정말 멋지셨어요. 용사님~♪”
“당신은 여전히 터무니없는 양아치 용사군요.”
잡것들이 그런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내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여자 셋의 칭찬 따위로 졸업할 수 있었다면 진즉 했을 것이다.
“지크의 강점을 알겠군.”
마냥 얼빠진 녀석인 줄 알았는데 전부 연기였다.
나는 녀석에게 여론조작의 진수를 보았다.
“그래. 대전제부터 잘못됐던 거야.”
사람을 얼마나 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2회차에서 나는 최소한의 금전손해와 인명피해로 마왕 페도나르를 처치했다. 하지만 내 평판은 1회차 때보다 더욱 떨어졌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여론.
우매한 판타지 원주민들이 “이 용사는 착하고 대단해!”라고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진실은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잡것들아. 가자. 울룰루의 목적지까지. 중간에 사냥은 없다.”
“네? 네.”
소꿉장난 같은 무료봉사는 오늘로 끝났다.
지금부터는 냉전(冷戰)이다.
“언론을 통제한다.”
도둑연합, 암살단, 흑막, 정보상인….
내 수족처럼 움직일 수 있는 악마숭배자들과 암흑기사단에 명령했다.
판타지아 대륙의 모든 정보망을 점령하라고.
전문용어로 선전(propaganda).
평판 SS학점을 찍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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