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화
[5회차] 용사여! 부디 내 딸을... 켁?!
두드드드드-!
외부의 충격으로 궁궐의 흔들림이 더욱 심해졌다.
보스K랑 느긋하게 대화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저쪽에서 오든 이쪽에서 가든 금방 마주치게 될 것이다.
나는 성검2를 재차 소환했다.
그리고 SSS등급 마기와 패기를 온몸에 둘렀다.
“어디, 그 천사의 면상이나 볼까?”
“저희도 돕….”
“됐어. 죽지나 마.”
요정 부녀(父女)의 협력 의사는 거절했다.
나는 이들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는 실수는 1회차 때 질리도록 많이 해봤다.
막말로,
이 부녀가 흉악범일 수도 있다.
너무 큰 잘못을 저질러서 무기징역 선고를 받은 거라면? 그렇다면 지금 쳐들어오는 자들이 올바르다는 결론이 나온다.
“OwOw~!”
“OwOwooo~!”
나를 발견한 오우거들이 떼로 덤벼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들이랑 놀아줄 시간이 없었다. 베는 시간조차 아까웠기에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다.
쾅-!
그런데 침입자들은 그럴 마음이 없는 듯했다.
“OwOwoo~?!”
“OwOw~?!”
어떤 빛에 관통당한 오우거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갔다.
파스스스….
이 지하감옥에선 절대 죽지 않는다는 보스K의 설명이랑 달리, 빛에 당한 오우거들의 시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문제의 빛이 쏘아져 날아온 방향을 주시했다.
우선은 그전에 확인부터.
교생 아가씨. 천사의 정체를 알아?
▶대답: 당연히 알죠! 악마랑 대비되는 속성의 존재입니다. 이건 대외비인데요. 마왕을 쓰러트린 졸업생이 판타지아 대륙에 계속 남길 원하면, 자연스럽게 고등교육과정으로 넘어가게 돼요. 이때 상대하는 주요 적이 천사들이에요.
초등교육과정은 악마란 걸까?
교생 아가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고등학생에게 대학교 문제집을 풀라고 내준 꼴이기 때문이다.
‘천사라…?’
용사 경력 11년 차에 접어든 나조차 천사를 본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리고 그런 천사는 대체로 추방된 죄인.
본인들은 “나는 과거에 천사였다. 놀랐지?”라고 말하지만, 그때는 솔직히 별 감흥 없었다.
추방되며 천사의 힘을 잃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기꾼들이 하는 말들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지금도 그러했다.
뿅! 뿅! 뿅!
수십 발의 빛이 내게 쏘아져 날아왔다.
“싸우지 않고 건설적인 대화로 풀 수도 있는데.”
저들은 국가의 안녕을 해치는 황녀의 마차를 습격한 정의로운 암살자들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었다.
저러니 매번 오해를 사서 억울하게 퇴장하지.
“이번에도 그럴 거고.”
남에게 맞고 넘어갈 만큼 나는 착하지 않다.
이때도 행운은 꾸준히 발동했다.
휙, 휙, 휙.
천사들이 쏘는 모든 빛이 내 몸을 거짓말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빛 한 점도 내 몸에 닿지 못했다.
실소가 절로 나오는 상황.
직업 용사보다 도적이 압도적으로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슬슬, 침입자들의 윤곽이 내 시야에 잡혔다.
▷종족: 엔젤
▷레벨: 999+
▷직업: 파수꾼(방어→오감↑)
▷스킬: 신성S 가호S 영광S 질서S 심판A…
▷상태: 당혹
정말로 천사였다.
종족에서부터 이미 “나는 천사다!”라고 밝히고 있었지만, 등에 매달린 2쌍의 순백 날개가 상상 속 천사의 이미지랑 비슷했다.
그리고 다들 선량하게 생겼다.
“역시 용사의 소행이군요.”
“죄인을 풀어준 죄로 척살합니다.”
“편히 죽을 생각은 버리시오.”
벌레 한 마리도 못 잡게 생긴 얼굴로 심한 말을 했다.
만나자마자 죽이고 시작하기?
1회차 때, 자기가 과거에 천사였다고 주장했던 대다수 사기꾼은 적어도 외모와 행동이 일치했었다.
선량하고 규칙을 준수하며 양심적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대체 뭘까?
“아아, 자기들이 무조건 정의라는 눈빛이군.”
내 1회차 동료들이 딱 저랬다.
자신들이 하는 행동을 일절 의심하지 않는다.
도움을 요청하는 1명의 소녀를 위해, 비슷한 나잇대의 딸아이를 가졌을지도 모를 수백 명을 학살한다.
이 천사들이 취하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아무런 짓도 안 했다.
우연히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이 이벤트 장소를 불태워버렸을 뿐이다. 그리고 등장한 지하통로.
나는 호기심에 들어왔을 뿐이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대뜸 죽이려고 한다.
“뭐, 좋아.”
나도 주절주절 떠드는 것보다 이런 전개가 빨라서 좋다.
펄럭펄럭.
천사들은 폭이 좁은 궁궐 안에서까지 저공비행 하며 이동했다. 멀쩡한 두 다리는 장식인 모양이다.
나는 벽과 기둥을 밟으면서 입체기동으로 접근했다.
날개를 가진 천사들의 비행 능력은 여기서 큰 이점이 안 됐다.
사방이 막힌 공간.
이곳에서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어째서 안 맞는- 컥?!”
나는 투덜대는 천사 남성의 면상으로 손을 뻗었다. 그자의 두 눈구멍에 손가락을 쑤셔주면서 볼링공처럼 붙잡았다.
그리고 굴렸다.
“꺄앗?!”
피투성이로 날아온 동료랑 충돌한 천사 여성이 깜찍한 비명을 지르면서 함께 나뒹굴었다.
나는 궁궐 천장을 밟으며 그쪽으로 단숨에 도약했다.
푹푹.
성검2로 두 천사를 꼬치처럼 찔러줬다.
“우선 둘.”
혹시라도 부활하면 귀찮기에 마기를 힘껏 끌어올렸다. 해본 적은 없지만, 상반되는 힘이랑 충돌하면 멀쩡하진 않을 터.
성검2를 휘감는 시커먼 기운.
여기에 노출된 두 천사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리고 예쁘게 외쳤다.
“아아아아~!”
“꺄아악~!”
하지만 그 둘의 노래는 길지 않았다.
젊고 탱탱했던 피부가 순식간에 쭈글쭈글해진 두 천사는, 중년을 넘어서서 금세 노인으로, 미라 같은 시체로 변했다.
그걸로 끝.
부활의 징조는 없었다.
“용사가 마기라니!”
“이 마기는 마왕급이다!”
“천신이시여, 이 어찌….”
궁궐의 중심부에 있는 요정 부녀(父女)에게로 향하던 천사들이 일제히 방향을 틀더니, 내게 달려들었다.
최대 위협으로 판단한 걸까? 아니면 동료애?
뭐가 됐든 나로선 추적할 수고를 덜어서 편했다.
뿅! 뿅! 뿅!
비처럼 쏟아지는 빛무리의 향연.
하지만 그중 단 한 발도 내 몸에 닿지 못했다. 이쯤 되면 다른 공격수단을 꺼내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있다면 말이다.
“커억-?!”
나는 천사의 목을 붙잡았다.
만약, 이 천사가 보스의 딸 같은 전사였다면, 곧바로 내 보물 1호를 걷어차거나 주먹질하며 저항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러지 못했다. 혼비백산하여 무의미하게 팔다리를 버둥거릴 뿐.
마치, 어린애를 상대하는 기분이다.
“허술해.”
우득.
더 상대해주기도 귀찮았던 나는, 천사의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를 부러트렸다.
마무리는 이번에도 마기.
천사의 목을 중심으로 한여름의 아이스크림처럼 온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도망쳐요! 전원 후퇴!”
“어서 상부에 보고를…!”
“이 용사는 대체 뭔가요!?”
더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천사들이 몸을 돌렸다.
유일한 공격수단인 빛줄기가 안 통하고, 자신들이 전혀 상대가 안 된다는 걸 깨닫자마자 줄행랑치는 것이다.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성검2를 휘둘렀다.
시비를 걸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내 출장료는 비싸다.
서걱, 서걱-
쿠구구궁!
몰살 스킬은 생명체로 제한되어 있지 않다.
내가 허공에 내지른 칼질은 천사들의 날개와 육체를 긁고, 그 앞쪽의 기둥과 천장을 무너트렸다.
탈출로를 봉인한 것이다.
“용사여! 어째서 저 악의 종자들을 편드는 것인가!”
벌벌 떠는 천사 중 하나가 용기 내어 외쳤다.
“그 종자들이 뭔데?”
“타락한 용사의 동료들이다! 마왕을 쓰러트린다는 본분을 잊은 용사를 설득하긴커녕 잘못된 길을 부추긴 악(惡)!”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그 천사의 용기와 성의에 보답해주기로 했다.
푹-
성검2로 찌르고,
치지직…!
마기SSS로 갈아버렸다.
“히이잌?!”
“허걱!”
“신이시여….”
그 이후부터는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닭장에 갇힌 닭들이랑 술래잡기하는 기분으로 상큼하게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목을 비틀어줬다.
물론, 바로 죽이진 않았다.
“속옷이 시커먼 천사 아가씨.”
“사, 살려주세요-!”
“순순히 죽고 싶으면 내 질문을 추측해봐.”
“옛?!”
나는 생포한 천사에게 던지는 질문을 한정하지 않았다.
자유주제의 논술형 문제를 냈다.
그러면 가끔 예상 밖의 정보가 튀어나왔다.
“빛과 어둠, 신성과 마기.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혼돈의 종자들은 세상을 좀먹는 악입니다! 용사여! 눈을 뜨세요! 우유부단한 혼돈은 중도(中道)를 표방하면서 더욱 큰 재앙을 부릅니다!”
“더 말해봐.”
“이제 끝- 컥?!”
요런 정보.
박쥐 같은 중립국이라서 미워한다는 것 같다.
“용사님! 정신 차리시고 진실을 보세요! 그 칼은 신(神)에게 반기를 든 혼돈의 용사가 사용했던 5번째 성검! 쓰면 쓸수록 당신의 영혼을 좀먹으면서 서서히 파괴할 거예요! 꺄읔?!”
이런 정보도 있고!
성검이 최소 5자루가 더 있다고 해서 설렜다.
그것들을 전부 모으면,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 판타지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었으려나?
나는 천사들을 하나하나 심문하면서 죽였다.
예외는 없었다.
“멋진 용사님. 당신이 바라시는 노예가 되어드릴게요. 저의 몸은 지금부터 당신만의 것- 꺄읔?!”
항복이든 충성맹세든 전부 죽였다.
“이년이 어디서 약을 팔아. 퉤!”
약자가 강자에게 지배받는다.
이 야만적인 세계에선 너무나 당연한 논리다.
그런데 약자가 “너의 노예가 되어줄게. 고마운 줄 알아.” 같은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실비아 같은 년!
내가 가장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부류다.
“용사여! 우리는 천사입니다! 신의 사도! 신에게 선택받은 용사가 우리를 적대한다는 건 말도 안- 커억?!”
“그 이유만으로도 너희는 멸종해야 해!”
나를 이 끔찍한 세계로 납치한 판타지 신의 앞잡이란다.
오늘부터 내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천사는 앞으로 이유 불문하고 보이는 족족 삭제다.
판타지 신이 뒷목 잡을 때까지!
▶깜짝: 강한수 생도님. 천사를 싫어하는 마왕의 꿈이랑 너무 흡사하신 거 아닌가요?!
나는 괜찮아. 교생 아가씨.
▶으쓱: 네. 큰 문제는 없겠죠. 천사랑 마주치는 전개는 고등교육과정. 진정한 선(善)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심화 과정입니다. 용사 페스티벌이 끝나고 강한수 생도님이 판타지아로 돌아가시면, 천사랑 마주칠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이번에는 좀 의외였지만, 그건 여기가 페스티벌이라서 가능한 특수성이죠.
특수성이라?
그렇다면 축제를 최대한 오래 끌면서 즐겨할 듯했다.
내가 이번에 천사들을 죽이고 얻은 스킬 탓이다.
신성F→신성E→신성D
신성(神聖).
성녀나 교황 같은 종교계 최상위직업만 얻을 수 있는 스킬.
일부 몬스터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인간 기준으로 D등급이면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반짝반짝.
내 손바닥 위에서 신성D가 찬란하게 빛났다.
“어, 어떻게 마기와 신성을 동시에…?”
성검2에 찔려 숨넘어가기 직전인 마지막 천사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이렇게 잘난 용사님은 처음 보는 모양이다.
나는 마기SSS로 마무리하며 답했다.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당장은 쓸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나는 요정 부녀가 있는 심층부 쪽으로 몸을 돌렸다.
*
용사 페스티벌이 벌어지는 대륙 어딘가에 매립되어있던 이 지하감옥은 아주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었다.
요정들이 사는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에 짓눌린 채, 머나먼 미래에 찾아올 감옥의 붕괴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바로 조금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원통하도다….”
“비밀을 끌어안고 사라져라, 3대 요정왕.”
싹 몰살시킨 줄 알았는데, 천사 하나가 삐져나간 듯했다.
솔직히 거기까진 상관없다.
문제라면, 나를 긴장시켰던 보스가 고작 천사 하나를 어쩌지 못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는 점이다.
딸은 어디로?
“아바마마에게서 떨어져!”
내 의문이 끝나기 무섭게, 넝마 꼴인 보스의 딸이 레이피어로 천사의 등을 찔렀다.
반짝!
그리고 새하얀 빛이 터졌다.
레이피어 칼끝이 천사에게 닿자마자 신성SS가 접촉지점에서 폭사했다.
“꺅?!”
그리고 보스의 딸은 허무하게 튕겨 날아갔다.
챙그랑.
손아귀가 찢어지며 놓친 레이피어도 바닥에 떨어졌다.
“기다려라. 네년도 곧 죽여줄 테니. 물론, 굴욕과 수치 속에서 죄를 반성하고 후회하도록 선처해주마. 내가 친히. 흐흐.”
칼에 찔리고도 멀쩡한 천사가 악당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량한 얼굴로 저런 표정이라니….
“지크 같은 놈이로군.”
그래서 더는 못 봐주겠다.
내 손에서 미끄러진 성검2가 일직선으로 쭉 날아갔다.
푹-
용사님! 나이스 샷!
“커억?! 어떻게 내 신성을 뚫은- 이, 이것은 마기…?!”
철퍼덕.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에 성검2가 박힌 천사가 횡설수설하다가 추하게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 새끼, 너무 약한 거 아니야?”
대사와 전투력이 반비례했다.
생각해보니, 모든 천사가 약했던 것 같다.
▶설명: 강력한 신성은 같은 속성을 띈 신성과 성검, 반대속성의 마기가 아니면 전부 튕겨내요.
오! 교생 아가씨. 해설 고마워.
▶걱정: 그나저나 너무 안타깝네요. 중요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요정 신사분이 곧 죽겠어요.
아차차!
보스K를 깜빡했다.
사기적인 신성으로 보호받는 천사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그는 열심히 유언을 남기는 중이었다.
“요, 용사여…. 내 딸아이를 부탁하오…. 가슴은 작아도 마음은 넓은 착한 아이라오….”
“아바마마! 이 상황에도 농담을…!”
부녀(父女)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천사에게 당해서 죽으면 부활할 수 없는 듯했다.
나는 딸을 부탁하는 보스K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켁켁!”
“무책임한 새끼야! 내 취향과 의사도 존중하지 않고 멋대로 딸을 떠넘기지 마라! 진짜 민폐니까!”
나는 이번에 얻은 따끈따끈한 스킬을 활성화했다.
신성D를 보스K의 몸에 빨대처럼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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