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43화 (43/430)

 043화

[5회차] 요정왕은 인간을 찬양해!

츄우우웁-!

천사가 보스K에게 맹독처럼 심어둔 신성SS가 빨대(신성D)를 타고 서서히 내 몸쪽으로 유도됐다.

처음에는 도도한 미녀처럼 꿈쩍도 안 했던 신성SS지만, 빨대 반대편에 넘실거리는 마기SSS를 보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우우웅!

신성SS는 보스K를 공격했던 것처럼 앙탈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끝끝내 나를 ‘파괴’하지 못했다.

그리고 새 주인을 맞이했다.

신성D→신성C

단시간에 스킬을 생성하고 C등급까지 한 방에!

썩 나쁘지 않은 수확이었다.

▶당혹: 용사 페스티벌에 고등교육과정은 없어요. 그런데 강한수 생도님은 진도가 너무 빨라요. 축제는 쉬라고 있는 거랍니다! 시험준비는 축제 끝나고 하시는 게 어떠세요? 쉬는 것도 공부란 말이 있잖아요~

얘가 대한민국 어머님들에게 따귀 맞을 소리 하네.

선행학습은 내 고향에선 상식이야.

▶전율: 그, 그런가요. 무서운 곳이네요….

나는 보스K를 위아래로 쓱 살폈다.

신성SS에 좀먹히면서 죽어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빠르게 건강을 되찾았다.

그러나 약간의 후유증이 있었는지 어딘가 전체적으로 늙어버린 분위기를 풍겼다.

뭐, 그거야 내가 알 바 아니고.

“보스K. 몸 좀 추스렸으면 대화를 하고 싶은데.”

천사들의 방해로 시작조차 못 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됐다.

“짐의 이름은- 아닙니다. 은인이시여. 뭐든 물어보십시오. 원하신다면 제 딸아이의 몸무게부터 생년월일까지 싹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바마마?!”

“하하! 나의 사랑스러운 딸아. 오늘부로 짐은 왕이 아니니 편히 부르거라.”

근엄한 왕이 아닌 아버지의 말투로 보스K가 말했다. 평범한 아버지의 범주에 넣기엔 지나치게 많이 엇나간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내게 딸을 떠넘기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아바마마.”

“어허!”

“...아버지. 소녀는 아직 준비가….”

“용사님이랑 이미 살도 섞지 않았느냐?”

“그, 그건…!”

나는 요정 부녀의 김칫국 촌극을 가만히 지켜봤다.

착각은 자유라고 하잖은가?

하지만 보스K의 주도로 자녀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걸 보고는 안 되겠다 싶어서 참견하기로 했다.

사심 없는 냉철한 어조로 요구했다.

“그 천사가 입막음하려던 내용부터 읊어봐.”

*

사람이 살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을 자주 겪는다.

가령, 세계의 진실이란 중대사를 들어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내용이라서 별 감흥 없을 수도 있다.

이걸 꽝이라고 부르던가?

“내가 양식장 물고기 신세란 것쯤은 이미 알아.”

도덕 선생을 만난 2회차부터 깨달았다.

“그, 그렇습니까...”

보스K가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본인 딴에는 굉장히 중대한 발표를 한 모양인데, 위대한 용사님께서 이미 다 알고 계셔서 무척 놀랐다는 얼굴이다.

교직원, 성적표, 회귀, 시험장, 졸업, 평행세계….

내가 몸소 겪어서 다 아는 내용뿐이었다.

머나먼 과거, 보스K도 용사의 동료였다고 한다.

그의 정보 출처는 3회차 용사.

자신들이 용사를 키우기 위한 복제품 혹은 소모품이란 사실에 대단히 충격받았었다고 한다.

“이해해. 나도 충격과 공포였거든.”

마왕 페도나르를 쓰러트리면 지구로 귀환할 줄 알았더니, 갑자기 성적표와 회귀가 기다리고 있었다.

교직원의 존재는 2회차부터 눈치챘다.

그때는 정말 뒷목 잡았었다.

망할 도덕 선생.

화딱지 나는데 부채질까지 했었다.

이번에 경질된 모양인데, 우가우가 원시인 용사를 가르치는 원시지구 같은 차원으로 발령됐으면 좋겠다.

“용사님. 제 딸아이는 안 궁금하십니까?”

보스K가 남자들끼리만 공유되는 능글맞은 눈빛으로 넌지시 내게 질문했다.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듯했다.

내가 해줄 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요정K는 내 취향이 아니야. 서로 즐기는 정도라면 몰라도, 나는 이 대륙에서 30년쯤 지내다가 떠날 거거든.”

“30년입니까?”

“최대 30년.”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다.

“떠나시는 건 안 말리겠습니다. 그전에 몸과 마음이 전부 큰 손녀 하나만 주고 떠나십시오.”

보스K는 그렇게 말하면서 바로 옆에서 걷는 요정K의 특정 부위를 매우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애증(愛憎)이 담긴 눈빛으로.

“이 자식. 부모로서 완전히 글러 먹었네.”

“하하! 요정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1000년 전에는 자식, 후에는 친구. 2000년부터는 이웃.”

그만큼 오래 사는 요정이기에 가능한 개념이었다.

하물며, 보스K와 요정K는 이 지하감옥에서 단둘이 영겁의 세월을 함께 생활해왔다. 그동안 근친혼이 안 이루어진 게 신기할 지경.

현재는 아버지와 딸보다는 오누이에 가까워 보였다.

그나저나….

“너희는 언제까지 쫓아올 거냐?”

보스K와 요정K는 병아리처럼 쫄래쫄래 지상까지 따라왔다. 그 뒤에도 계속 함께하는 중이었다.

반나절쯤 지난 것 같다.

“저와 딸아이가 살아있다는 걸 눈치챈 천사들이 곧 추격자를 보내올 겁니다. 과거의 전성기처럼 신성에 대항할 수단이 생길 때까지는 용사님께 빌붙어서 생활할 계획입니다.”

“염치없지만, 소녀도 부탁드릴게요.”

K부녀가 간절히 애원했다. 그들에게는 목숨과 자유가 걸린 문제이기에 대단히 절박할 터였다.

단칼에 거절하려던 나는 생각을 바꿨다.

“보스K. 천사들이 추격자를 보낸다고 어째서 확신하지?”

현재, 스킬 신성은 C등급이었다.

이것만으로도 판타지아 대륙의 교황과 추기경의 자리를 위협할 수준이었지만, 나는 S등급 미만은 스킬로 취급하지 않는다.

아! 행운A 빼고.

▷종류: 스킬

▷명칭: 행운(++)

▷등급: A(++)

▷S: 운이 마르지 않는다.

▷A: 우주의 기운이 자주 돕는다. (++)

▷B: 함정을 항상 무시한다. (++)

▷C: 운이 엄청 상승한다. (++)

▷D: 추락해도 안전하다. (++)

▷E: 눈먼 화살을 전부 피한다. (++)

▷F: 운이 좋아진다.

내 마음 같아서는 직업이 ‘도적’으로 쭉 유지됐으면 좋겠지만, 내가 도둑질하지 않으면 직업은 금세 엉뚱한 거로 바뀔 것이다.

그전에 S등급까진 올려두고 싶다.

S등급 효과처럼 운이 마르지 않는다면, 그 뒤부터는 굳이 애써서 행운 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숙련도가 서서히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최우선 과제 중 하나였다.

보스K가 내 질문에 답했다.

“천사들은 혼돈의 존재를 경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양이긴 하더라.”

나는 마기SSS와 성검2 조합으로 천사들을 일방적으로 도륙했다. 내가 강하다기보다는 그것들이 지나치게 약했다.

레벨과 스킬만 높은 싸움의 초짜들.

다 이유가 있었다.

“용사님께서 보셨다시피, 고등급 신성에는 반대속성 ‘마기’나 동일속성 ‘신성’ 외의 공격은 전부 튕겨내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천사들은 적수를 찾기 힘듭니다. 악마와 혼돈 빼고.”

천사들은 전투경험이 굉장히 열악하다.

HP가 깎이지 않는 치트키를 쓰고 싸우기에 회피나 방어 같은 기교와 기술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탓이다.

맷집 같은 스킬 숙련도 또한 쌓을 기회가 없다.

그렇기에 악마와 혼돈의 공격에 취약하다.

단, 여기에 변수가 적용된다.

악마는 태생적으로 천사에게 매우 약하다.

천사의 무적 치트키를 깨부술 ‘마기’가 있긴 하지만, 악마라는 종족특성이 천사의 ‘신성’에 더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렇기에 악마도 기각.

결국, 혼돈의 존재만이 약점 없이 천사보다 우세할 수 있다.

“천적이라서 노린다? 그런 것치고는 너희가 너무 약하던데?”

천사 하나를 어쩌지 못해서 빌빌거리던 보스K와 요정K의 발버둥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만큼 참담했다.

“흠흠. 신성 속성이 깃든 전용무기를 압류당하고, 스킬 마기도 봉인된 탓입니다.”

“저도요!”

천사의 무적 치트키를 깨부술 수단을 빼앗겨서 패배했다고 주장하는 K부녀였다.

“아무튼, 천사가 너희를 앞으로도 노릴 거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네.”

그리하여, 나는 K부녀의 동행을 수락했다.

천사를 유인할 미끼로서.

충동적으로 내린 판단은 아니었다. 내가 천사들을 통해서 수집한 정보와 K부녀의 주장을 취합한 결론이었다.

교생 아가씨. 하나만 물어봅시다.

▶오한: 이유가 뭘까요? 갑자기 어깨가 쌀쌀해졌어요. 상식적인 질문이라면 성심성의껏 답변해드릴게요!

천사들은 어디에 살아? 걔들도 먹고 싸는 서식지 같은 게 있을 텐데.

▶식겁: 쳐들어가시려고요?!

왜? 대단히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는데.

미끼를 푸는 것보다 이쪽이 효율적이다.

▶경고: 강한수 생도님이 강하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고등교육과정을 담당한 천사들은 훨씬 강합니다. 그리고 이건 비밀 아닌 비밀인데요. 애초에 천사들은 판타지아 차원에 살지 않아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가 같은 건물을 쓰지 않는 것처럼요.

지름길이나 편법이 없다고 주장하는 교생 아가씨.

나는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했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인지 초등학교인지는 모르겠고, 내가 간절히 바라면 우주의 기운이 도와주겠지.”

행운 증폭!

도적은 판타지아 최강의 직업이다.

단, 직업이 바뀌지 않게 유지하려면 도적질은 필수.

나는 착하게 살고 싶지만, 이 야박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도적질해야 할 팔자였다.

...지금은 용사도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교생 아가씨의 말대로, 축제는 즐기라고 있는 거다. 여기서는 인성과 평판 점수로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다.

이번 5회차는 성적표와 졸업 개념이 없다.

쓰러트릴 마왕이 일단 없잖은가?

용사 페스티벌이 끝나면 6회차로 넘어갈 것이다.

또 라누벨이 귀여운 척하면서 “환영합니다, 용사님!”이라고 인사하며 내 속을 뒤집어주리라.

상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였다.

화병으로 내가 쓰러지기 전에 휴식이 필요하다.

축제는 축제답게 즐기자!

“도적질이라면 대도시가 역시 최고이려나?”

▶당황: 설마…?

교생 아가씨. 내비게이션 부탁해요. 얼른~

*

나와 K부녀는 페스티벌 대륙의 정중앙에 자리한 가장 큰 도시인 ‘시작 도시’로 이동했다.

스페인어처럼 혀 굴러가는 그럴싸한 도시 이름을 행인3으로부터 들었지만, 발음이 어렵고 정감이 안 가서 포기했다.

시작 도시까지 얼추 닷새쯤 걸렸을까?

여기서도 나는 심한 차별을 느꼈다.

“나는 동굴에서 시작했거늘!”

나를 제외한 졸업생들은 모두 이 도시에서 시작했다.

속옷 없는 그 후줄근한 복장으로 시작하는 건 똑같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어여쁜 성녀님이 참가자들에게 그럴싸한 옷과 기본 장비, 초기자금을 무상으로 제공해줬다.

하나부터 열까지 차별!

나는 이 부당한 대우에 깊은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와아! 오랜만에 태양을 보니 기분 좋네요! 공기도 맑고.”

요정K가 평평한 가슴을 활짝 펴며 탄성을 터트렸다.

“용케도 오랫동안 안 미쳤네?”

나는 판타지아 대륙에 갇혀 있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던데.

하지만 이 요정은 그 좁은 궁궐에서 성희롱하는 아버지와 흉측한 오우거들이랑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

아주 기나긴 세월 동안.

그 지루함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던 걸까?

“글쎄요. 요정이니깐?”

태양을 봐서 기분 좋다던 요정K의 상큼하기까지 한 그 한마디로 내 모든 의문은 부질없어졌다.

은행나무가 3000년 동안 한 자리에서 어떻게 살 수 있었냐고 따지는 거나 다름없다.

아무튼,

“드, 드리겠습니다!”

“해치지 말아주세요!”

우리는 커플로 짐작되는 행인14와 행인15에게 모자를 선물 받았다.

정의로운 용사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성검2를 어깨에 걸친 채, 웃는 얼굴로 모자를 칭찬했더니 순순히 넘겨줬다.

“옜다. 이걸로 귀를 가려.”

모자로 가린다고 해서 안 들키진 않는다.

나처럼 졸업생들도 남의 능력치를 마음껏 볼 수 있기 때문이다. K부녀의 종족을 들키는 건 시간문제.

하지만 나는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오오! 인간들의 도시로구나! 아아! 사방에서 흔들리는 열매들이 어찌 저리도 탐스럽단 말인가! 짐의 두 눈을 어디에 둬야 좋을지 참으로 모르겠도다. 인간 최고! 요정 쓰레기!”

시작 도시의 동쪽 출입구.

지나가는 인간 아가씨들을 본 보스K가 노골적인 동족 혐오를 외치기 시작했다.

저 자식, 3대 요정왕이라고 하지 않았나?

쿠데타 당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사님. 저런 아버지라서 정말 죄송합니다….”

뾰족한 귀 끝까지 새빨개진 요정K가 내게 꾸벅 사죄했다.

“아니. 이해해.”

내가 아는 요정왕도 유감스럽기 때문이다.

저건 아무래도 유전인 모양이다.

바로 그때,

“어?! 너, 강한수지? 그렇지?”

지크가 아닌 누군가가 내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그 소리의 근원지를 돌아본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시더라?”

그곳에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양아치가 있었다.

“나야, 나! 판타지 세계의 여러 종족 미녀들이랑 흥미진진한 모험을 떠난다고 했던….”

“아하! 너구나!”

“강한수. 드디어 기억났냐?”

“그래, 너!”

“전혀 안 났잖아! 이 망할 자식아!”

그때부터 벌써 11년이나 지났는데 어쩌라고?

나는 고등학교 동창A랑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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