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45화 (45/430)

 045화

[5회차] 너는 얼마면 돼?

“성자님. 이쪽입니다.”

은은한 미소를 쭉 유지한 성녀가 천도복숭아처럼 생긴 엉덩이를 좌우로 음란하게 씰룩이며 앞장섰다.

성녀를 지구인 감성에 맞춘 것 같다.

뭇 남성이 좋아할 법한 배덕함과 순결함이 뒤섞인 수녀복, 미장원에서 최소 3시간은 손봤을 스타일, 깔끔한 화장, 고운 피부….

옷걸이와 옷의 완벽한 조화였다.

능력치도 미쳤다.

▷종족: 그랜드 휴먼

▷레벨: 999+

▷직업: 성녀(신앙→부활↑)

▷스킬: 불사SSS 신앙SS 신성SS 마성S 고결S…

▷상태: 양호

허허! 불사가 SSS등급?

겉보기엔 가녀린 여인이지만, 성녀의 레벨과 스킬 구성은 살아있는 요새나 다름없었다.

어느 정도냐?

이 성녀를 홀딱 벗겨서 알몸으로 치열한 전쟁터 한복판에 던져놔도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할 것이다.

씰룩쌜룩~

“흠….”

물론, 불끈 달아오른 사내들이 그녀의 엉덩이를 가만 놔두지 않겠지만, 물리적인 피해는 전혀 없을 것이다.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아!

나는 성녀H를 뒤따라가면서 주위를 관찰했다.

만약, 탈출해야 할 상황이 온다면 지형과 경비 등을 머릿속에 입력해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내 시선을 눈치챈 걸까?

“성자님. 참 아름다운 정원이지요? 지치고 혼란스러운 심신의 안정에 도움이 됩니다. 민간에게 개방하고 싶지만,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어있어서 아쉬울 따름이에요.”

성녀H가 걸음을 늦추며 운을 뗐다.

나도 맞장구를 쳐줬다.

“네. 말씀처럼 멋진 양식장이군요.”

연못에 인어들이 노니는 시점에 끝난 얘기다. 판타지아와 지구를 통틀어서 이곳보다 먹음직스러운 정원은 없으리라.

하지만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정원 곳곳에 배치된 석상의 존재 탓이다.

▷종족: 골렘

▷레벨: 999+

▷직업: 파수꾼(방어→오감↑)

▷스킬: 색적SSS 오감SS 추적SS 격투SS 협동S…

▷상태: 대기

보디빌더 같은 우락부락한 근육질 나체 사내들이 정원 곳곳에 바위처럼 배치되어있다.

놈들은 눈동자만 때굴때굴 굴리면서 내 움직임을 쫓았다.

골렘(Golem).

영혼 없는 마법의 흙덩어리.

공정 방식에 따라서 토벌하는 방식이 달라지며, 대체로 생명체의 심장에 해당하는 핵을 파괴하면 가동을 멈춘다.

그건 다시 말해, 핵만 멀쩡하면 몇 번이고 부활한다는 뜻이다.

골렘마다 지능, 성능 수준은 천차만별.

놈들은 판타지아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는 신전, 사원, 유적 등에서 파수꾼으로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골렘의 용도는 전투로 한정되어 있지 않다.

건설, 청소, 노동, 실험, 호위….

형태와 크기에 따라 다양하게 쓰인다.

▶당혹: 어떤 졸업생도 대신전에서 일단 나가면 다시 들어오지 못해요. 그런데 강한수 생도님은 어이없게 성공해버렸네요….

교생 아가씨. 잘 들어.

상식은 깨라고 있는 거야. 히쭉.

그나저나….

도적으로 행운만 믿고 침투했으면 진짜 죽을 뻔했다.

골렘의 색적SSS.

적을 찾아내는 스킬이다.

도적과 성검2로 증폭한 행운 효과가 아무리 사기적이라도 A등급일 뿐이다. 상대가 SSS등급이라면 들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싸워서 이길 수 있느냐?

“성자님. 골렘이 마음에 드시나요?”

눈치가 비상한 성녀H가 친근하게 옆으로 다가오며 묻는다.

“이렇게 강한 골렘은 처음 봅니다.”

“후후! 그럴 거예요. 이 골렘들은 대신전을 지으신 신께서 직접 빚으신 인형들이니까요. 총 3,141기의 골렘이 대신전 실내외를 완벽하게 지키고 있어요.”

“정말…. 엄청나군요.”

응. 무리. 절대 무리.

이대로는 대신전의 보물창고 문턱도 넘지 못할 것이다.

무력이 아닌 다른 수단의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러자면 내가 대신전으로 초대받은 이유부터 아는 게 급선무였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범위도.

▷종족: 카오스 휴먼

▷레벨: 999+

▷직업: 성자(신성=날조↑)

▷스킬: 패기SSS 마기SSS 몰살SS 혼돈SS 파괴SS 내성SS 맹독SS 근력SS 맷집SS 민첩SS 투기SS 오감SS 검술SS 위엄SS 망각SS 통치SS 수영SS 권투SS 검기SS 학살SS 불사S 격투S 체술S 불굴S 돌파S 체력S 색적S 심판S 숨결S 회복S 인내S 활력S 근성S 선동S 저항S 날조S 재생S 면역S 냉정S 철벽S 금강S 투창S 포효S 도발S 광기S 추적S 기력S…

▷상태: 성검, 거룩

전투에 특화된 아름다운 스킬 구성!

그래서 문제였다.

지금처럼 무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이다.

전투 외의 스킬은 등급이 낮아서 활용도가 매우 낮다. 패왕 간디의 비폭력주의 같은 방식은 내게 적합하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자님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드디어 이벤트 내용이 튀어나오려 한다.

사실, 이게 가장 큰 의문.

성녀H의 능력치는 매우 준수한 편이다. 혼자서 도시의 모든 환자를 치료할 수 있을 만큼 굉장하다.

그런 성녀H가, 이제 막 ‘치유마법’에 눈을 뜬 새내기에게 부탁할 일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경청하겠습니다. 성녀님.”

롤플레잉게임이라면 가능하다.

사지 멀쩡하고 능력도 되는 기사단장Q가, 코흘리개 플레이어들에게 중요한 비밀을 맡기거나 도움을 요청한다.

뭐, 아주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임무마다 그럴싸한 이유를 다 붙였다면, 게임개발자들은 머리에 쥐가 나서 진즉 쓰러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긴 현실.

현실이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판타지였지만, 적어도 이들은 게임처럼 작위적으로 기획된 임무를 부탁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성녀H가 할 수 없는 일이 뭘까?

지금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성녀H가 탄식하듯 서론을 읊었다.

“저희는 대신전에 다수의 악마숭배자를 가둬놨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처형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영웅들이라서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위대한 성자님. 그 영웅들이 다시 인류의 편이 될 수 있도록 설득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호오…?”

아주 흥미로운 임무를 제안받았다.

악마숭배자.

내 전문이잖아?

누워서 용(龍) 먹는 수준이다.

▶오한: 강한수 생도님? 아까부터 불길한 느낌밖에 안 드는 건 단순한 기분 탓이겠죠?

당연히 기분 탓이야. 교생 아가씨.

나는 매우 자신 있거든! 나만 믿으라구!

▶정정: 대신전의 안위를 걱정한 거였어요….

*

나는 용사 페스티벌 시스템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쉬울 게 없는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축제이기에, 판타지 대륙에서처럼 무료봉사란 개념이 통하지 않았다.

Give and take.

이벤트를 완수하면 무조건 보상이 주어진다.

그런고로,

정원을 지나서 대신전 내부로 내려온 우리는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여기서부터는 철저한 노사관계의 비즈니스였다.

“악마숭배자는 총 514명이에요.”

성녀H가 미로처럼 나열된 독방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5백? 생각보다 많네.”

“그렇습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성자는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고 악마숭배자들만 쌓이길 반복한 탓이에요. 그러니 성자님. 최대한 많은 악마숭배자를 교화해주세요.”

성녀H는 간절히 부탁하면서 포인트(point)를 언급했다.

악마숭배자 1명당 1포인트.

이 포인트를 부지런히 쌓아서 원하는 보물이랑 교환하는 보상방식이었다. 굉장히 합리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쉬운 이벤트는 아니었다.

“헤이! 용사 전용 구멍. 노래 좀 불러봐.”

“여기서 풀려나면 네년 가랑이부터 찢어주마!”

“성녀야. 이리 와봐. 이 오빠가 뚫어줄게. 킥킥!”

“나를 교화? 풋! 네년의 임신이 더 빠를걸?”

독방에 갇힌 악마숭배자들이 내뱉는 온갖 음담패설과 인신모독이 성녀H에게 쏟아졌다.

치료와 부활로는 따라올 직업이 없는 부동의 1위 성녀였지만, 남을 설득하는 일은 굉장히 서툴렀다.

사방에서 토해내는 폭언과 욕설을 견디지 못한 성녀H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악의(惡意)로 넘쳐나는 대신전.

여기가 진정한 마왕의 성이 아닐까?

“부, 부탁드립니다! 성자님!”

성녀H가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내게 애원했다.

“그전에 성녀님. 포인트로 살 수 있는 보물 목록부터 볼 수 없겠습니까? 그래야 일할 의욕이 날 것 같습니다.”

“아!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우리는 대신전 내부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가는 길목마다 골렘은 기본.

여기에 비하면 마왕의 성은 애들 놀이터다.

나는 이걸 뭔 배짱으로 뚫으려고 했던 걸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철컥철컥, 끼이익-

복도 끝의 거대한 미닫이문 잠금장치가 차례차례 풀리고, 골렘 2기가 좌우에서 두꺼운 문짝을 밀어서 열었다.

쿵, 쿵.

안색을 회복한 성녀H가 말했다.

“여기예요. 용사 페스티벌의 거의 모든 대형 이벤트 보상은 전부 이곳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메인이벤트도?”

나 빼고 모든 용사를 죽이는 신나는 이벤트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하군!

▶울상: 강한수 생도님! 혼자가 아니라 3명이에요! 그렇다고 2명만 남기고 다 죽이라는 이벤트도 아니고요! 취지는 어디까지나 사랑과 우정의 협력체계랍니다! 축제를 대체 어떻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교생 아가씨가 심오한 질문을 하네.

축제는 축제일 뿐이잖아?

“유감스럽게도 메인이벤트 보상은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보물창고에 쌓인 보상들도 훌륭한 편이에요. 그리고 좋은 보상일수록 포인트도 많이 필요하니 큰 의미는 없습니다. 성자님. 이 검을 봐주시겠어요?”

성녀H가 진열된 검 한 자루를 가리켰다.

“성마검 소드마스타…?”

“네. 제대로 보셨습니다. 검신이라고 불리는 사내가 애용하는 검의 모조품입니다. 성능은 진품의 절반 수준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칼자루에 매달린 가격표를 봐주세요.”

[어떤 검신의 마검: 15포인트]

“15포인트?”

“네. 성자님께서 대신전의 악마숭배자 15명을 교화시키시는 데 성공하면, 이 검을 소유하실 수 있어요.”

원리는 이해했다.

나는 보물창고의 상품들을 빠르게 훑었다.

처음 보는 물건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딘가에서 봤던 낯익은 것들이 듬성듬성 섞여 있었다.

[어떤 인어의 빗자루: 12포인트]

[어떤 여왕의 목걸이: 3포인트]

[어떤 요정왕의 활: 15포인트]

[어떤 황녀의 가터벨트: 34포인트]

[어떤 고고학자의 망원경: 7포인트]

[어떤 현자의 지팡이: 17포인트]

...

나는 보물창고를 3바퀴 돌아본 후에 입맛을 다셨다.

“마음에 드는 게 없네.”

스킬 숙련도를 올려주는 소모성 물약 외에는 끌리지 않았다. 장비는 전부 모조품이고, 성검2에 비견될 무기는 없었다.

그나마 비빌 수 있는 거라면?

[어떤 용사의 검: 100포인트]

성검1의 모조품이었다.

하지만 초보자용 오토매틱 교보재로 놀 시기는 지났기에, 저것은 내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철이나 다름없었다.

내 불만에 성녀H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성자님. 끌리시는 게 없으시더라도 현재 보물창고에 있는 보물 중에서 골라주세요.”

나는 그녀의 말에 솔깃했다.

현재 보물창고 안에 있는 보물 중에서?

그렇다면,

“성녀님은 얼마지?”

“네? 후후! 농담도 잘하시네요. 저는 상품이 아니에요.”

“하지만 보물창고에 현재 있잖아?”

나는 팍팍 우기기로 했다.

“그, 그건….”

“악마숭배자가 교화되길 바라면서 정작 자신은 뺀다니? 인류의 평화를 위해 헌신해야 할 성녀로서 실격 아닐까?”

“음….”

“내 말이 틀렸어?”

“아니요. 성자님의 지적이 옳습니다.”

성녀H가 교화됐다.

▶경악: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죠?! 어째서 성녀가 강한수 생도님의 비논리적인 날조에 설득당한…. 설마?!

교생 아가씨. 흥분하지 마.

나는 성자로서 정정당당하게 싸우겠다.

“그래서 성녀님은 얼마?”

“저는….”

이날부터 성녀H는 목에 가격표를 달고 다녔다.

[어떤 성녀의 전부: 500포인트]

그리고 나는?

“너는 S급이니? 나는 SSS급이야.”

“헉?!”

이것이 악마숭배자들과 나의 마기(魔氣)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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