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화
[5회차] Follow, plz
▷종족: 다크 휴먼
▷레벨: 999+
▷직업: 영웅(경험치 200%)
▷스킬: 마법SS 마술SS 투지S 마기S 내성S…
▷상태: 포박, 봉인, 경악, 전율
대신전에 갇힌 악마숭배자들은 강했다. 하나하나가 최상급 악마에 버금가거나 능가했으며, 종족과 직업, 스킬도 다양했다.
성녀가 이들을 처분하지 않은 이유를 알 만했다.
이대로 죽이기엔 너무나 아까운 전력.
어떻게든 재활용하고 싶은 게 당연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꿇어라.”
“그러겠나이다. 마(魔)의 왕이시여!”
독방에 홀로 찾아온 내게 양아치처럼 껄렁대던 악마숭배자. 하지만 그는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를 보자마자 부랴부랴 땅에 머리를 박으며 부복했다.
내 마기는 SSS등급으로 마왕 페도나르랑 같다.
악마 사회에서는 마기 높은 자가 무조건 상관이고 어른. 이 상하관계는 악마숭배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구차한 설교나 설득 따위는 필요 없었다.
솨아아아-
내가 신분증처럼 마기를 슬쩍 보여주면, 아무리 태도가 불량한 악마숭배자라도 순한 양으로 변했다.
너무 쉬워서 하품마저 나올 지경이다.
▶당혹: 성자 이벤트의 취지는 이게 아니었을 텐데요….
어허! 교생 아가씨. 결과만 같으면 되는 거야!
롤플레잉게임에서도 곧장 이용되는 방식이다.
게임공략사이트의 공략집으로 임무 내용을 먼저 숙지하고, 기사단장Q가 찾아달라는 졸병, 구해오라는 물건과 전리품 등을 한꺼번에 가져다줘서 보상만 연속으로 챙기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여기는 게임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다.
악마숭배자들을 교화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면, 성녀H에게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그건 바람직한 전개가 아니다.
또한,
“3호.”
“말씀하십시오. 나의 주인이시여.”
“네 몸속에 든 불필요한 힘을 나에게 넘겨라.”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나는 부수적인 수익도 창출하는 중이다.
악마숭배자 중 일부는 ‘신성’을 몸에 품고 있었다. 마기의 매력에 빠져서 타락하긴 했어도 실낱같은 희망을 간직한 것이다.
▷종족: 휴먼
▷레벨: 999+
▷직업: 수도사(신앙→신성↑)
▷스킬: 격투SS 맷집S 신앙S 신성S 마기A…
▷상태: 포박, 봉인, 고뇌, 숭배
망설임과 번뇌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해주기로 했다.
나는 독방 안에서조차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악마숭배자 수도사에게 다가간 후, 신성C 빨대를 꽂았다.
쪼오오옥-
▷종족: 다크 휴먼
▷레벨: 999+
▷직업: 광신도(신앙→광기↑)
▷스킬: 격투SS 마기SS 맷집S 신앙S 광기S …
▷상태: 포박, 봉인, 평온, 숭배
갈팡질팡하던 악마숭배자의 표정에서 갈등이 사라졌다.
어정쩡한 하이브리드였던 스킬 구성도, 마기 속성으로 특화에 성공하면서 전투력이 급상승했다.
성장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신성C→신성B
현재 직업이 용사가 아니라서 숙련도 상승 효율은 꽝이었지만, 대신전에는 신성을 내려놓지 못하고 번뇌하는 중생들이 많았다.
그들 모두를 구원해주리라!
심지어 무료다.
나란 놈의 오지랖이란…!
“어머! 하루 만에 세 분이나…!”
악마숭배자 셋이 얌전해진 ‘결과’를 본 성녀H가 경악했다.
“흉흉한 야만인들이라서 쉽진 않았습니다.”
앙탈이 심한 상등급 신성을 흡수하느라 진땀 좀 뺐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성자님께서 얼마나 힘드셨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들을 교화할 엄두도 못 낸 울보인걸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녀H가 내게 공손히 인사했다.
나는 가볍게 손사래 치며 겸손하게 응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아! 그리고 작은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대신전 밖에 잡것- 신뢰하는 일행이 있습니다. 그들이 대신전에서 머물 수 있도록 조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성녀H가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시원하게 답했다.
그리하여 K부녀도 대신전으로 입장.
이 둘은 천사들을 낚을 소중한 미끼다. 내가 없는 곳에서 천사들의 습격으로 죽어버리면 곤란하다.
그런데,
“당신은…!”
출입을 허가해준 성녀H를 본 보스K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리, 어딘가에서 만난 적 있던가요?”
성녀H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럴 리가요. 하하! 능히 국보(國寶)로 지정되어야 마땅한 성녀님의 성스러움에 감탄했을 뿐입니다. 하하하!”
“후후! 과찬이세요.”
용무를 마친 성녀H는 씽긋 웃어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삐쩍 마른 요정이랑 비교 자체가 모욕인 성녀H의 성스러운 엉덩이 율동을 보며, 보스K가 내게 소곤소곤 말했다.
“용사님. 저 성녀를 조심하십시오.”
매우 진지한 얼굴로 충고한다.
그렇다면 나도 진지하게 응할 필요가 있었다.
“위 아니면 아래?”
“둘 다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 흠흠! 성녀의 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녀는 교직원이랑 매우 밀접한 관계입니다.”
“그쯤은 나도 알아.”
“예? 그걸 어떻게…?”
보스K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간단해. 용사 페스티벌에 소환된 졸업생은 예외 없이 성녀H를 만나면서 시작하기 때문이지.”
프롤로그 진행자가 평범한 원주민일 리 없다.
그렇기에 손에 넣으려는 거고.
K부녀의 안전까지 확보한 나는 성자 이벤트에 집중했다.
*
성자 이벤트.
그 시작은 분명히 ‘악마숭배자 교화’였다.
성자가 악마숭배자 1명을 설득해서 아군으로 끌어들일 때마다 1포인트가 주어지는 선택보상 이벤트.
하지만 모든 사업이 다 그러하듯, 예기치 않은 사태나 변수로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성자 이벤트도 그러했다.
“나는 성자님 외에는 신뢰할 수 없다!”
“내게 부탁하지 말고 성자님께 말해라.”
“성자님만이 나의 진리고 믿음일지니….”
교화된 악마숭배자들은 대신전과 성녀H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그들이 얌전해진 이유는 인류애가 아닌 탓이다.
나를 향한 절대적인 충성!
진정한 악마숭배자라고 할 수 있다.
성녀H는 곤혹스럽다는 얼굴로 내가 말했다.
“큰일이에요. 영웅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어요. 이래서는 교화한 의미가….”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운을 뗐다.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교화됐어도 대신전에 오랫동안 가둔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그간 쌓인 앙금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 또한 제가 설득하면 해결될지도 모르는데….”
나는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눈치 빠른 성녀H는 그 의미를 바로 이해했다.
“위대한 성자님. 제가 영웅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게 도와주신다면 1인당 추가로 1포인트를 드리겠습니다.”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1인당 2포인트!
악마숭배자가 514명이니, 최대 1024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다. 그거면 보물창고에 보관된 괜찮은 보상은 얼추 다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감탄: 강한수 생도님. 사기를 잘 치시네요.
사기가 아니라 사업이라구. 교생 아가씨.
이벤트가 시작되고부터 이틀이 지난 현재까지 내가 쌓은 이벤트 점수는 4포인트.
의심을 피하고 성녀H를 애태우고자 속도를 조절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조금씩 속도를 올릴 계획이다.
우선은 교화한 악마숭배자 넷부터.
“들어라. 1호부터 4호.”
“네. 주인님.”
“명하십시오. 왕이시여.”
“성녀H의 비위를 맞추면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줘라. 그것이 우리의 비원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오오!”
“명을 받듭니다!”
내 지시를 받은 악마숭배자들은 성녀H에게 우호적으로 접근했다. 그녀의 대화에 순순히 응하고, 지시에도 잘 따랐다.
아직 경계를 완전히 낮출 순 없기에 수갑과 족쇄는 차고 있지만, 갑갑한 독방에서 나올 수 있게 됐다.
이미 만두 왕국에서 악마숭배자들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나로선 손쉬웠다.
악마숭배자들은 들끓는 공격성과 적대감을 감추고, 웃는 얼굴로 대신전 생활에 서서히 녹아들었다.
덕분에 포인트 작업도 순조로웠다.
4포인트→8포인트
1인당 2포인트씩 체계가 완성됐다.
이때부터 나도 속도를 올렸다.
“하! 음란하게 생긴 성녀 다음은 코흘리개 성자인가? 위선으로 똘똘 뭉친 신의 앞잡이 놈아, 잘 들어라! 인류의 희망을 우습게 여기는 네놈들에게 나는 절대로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악마숭배자인 건 아니다.
용사 파티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용사에게 적대적인 악마숭배자로 낙인 찍힌 자도 더러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억울한 사연을 듣지 않았다.
내 관심사는 능력치뿐.
▷종족: 휴먼
▷레벨: 999+
▷직업: 추기경(교세→신성↑)
▷스킬: 신성SS 마술S 마력S 체력A 정신A…
▷상태: 포박, 봉인, 불굴
전직 추기경이었군?
올곧은 푸른 눈동자가 인상적인 그 중년인은 참으로 먹음직스러운 신성SS를 한가득 품고 있었다.
그는 제멋대로 사연을 읊기 시작했다.
추기경이던 시절, 그는 얍삽하게 평판 올리는 지크 같은 용사의 만행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 뒤, 이런 호색한 위선자를 용사랍시고 소환한 판타지 신(神)에게 실망하고 분노해서 반기를 들었지만, 결과는 보다시피 처참했다.
이래서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하는 법이다.
나는 꼼짝달싹 못 하는 정의로운 추기경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신성B 빨대를 꽂았다.
“이놈!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 으갸갸갹?!”
“조금만 참으라구, 친구.”
곧 편안해질 테니.
▷종족: 다크 휴먼
▷레벨: 999+
▷직업: 대사제(교세→마성↑)
▷스킬: 마술S 마기S 마력S 마성A 체력A…
▷상태: 포박, 봉인, 환희
내 마기를 듬뿍 주입받은 추기경의 표정은 한없이 평온하게 바뀌었다. 마약에 뿅 간 얼굴이 저러할까.
그 어디에도 과거의 고뇌를 찾아볼 수 없었다.
1급 청정수처럼 맑았던 눈동자가 심연의 바다처럼 탁해지고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는 듯했지만, 전부 기분 탓이다.
대사제가 된 그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오오! 당신이 나의 희망임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그간의 내 삶은 어찌 이리도 어리석었던 말인가! 진정한 구도자이신 당신께 제 신명을 바치겠나이다.”
그러면서 내 발등에 입술을 맞췄다.
사내새끼가 불결하게….
“9호. 네 활약을 기대하마.”
“맡겨주십시오!”
이렇게, 하나둘 교화된 악마숭배자가 늘어났다.
그들의 주요업무는 이벤트 감독관이기도 한 성녀H의 주변을 서성이면서 “우리는 교화됐어요!”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아! 저는 인류를 사랑합니다.”
“세상을 성녀님만큼 아름답게!”
“성녀님. 그간 막말해서 죄송합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성녀님.”
순진한 성녀H도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대화와 사과에 응했다. 그녀 또한 신뢰를 굳건히 하기 위해 적극적이었다.
“괜찮아요! 여러분!”
성실하게! 친절하게! 아름답게!
하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16포인트→314포인트
악마숭배자의 숫자가 적을 때는 괜찮았다. 하지만 100명이 넘어간 시점부터 성녀H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1명당 10분씩만 대화해도 하루가 지나버린다.
그래도 성녀H는 쉴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유도했다.
▶눈물: 성녀가 너무 불쌍해요! 어째서 그녀에게는 근로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 걸까요?
교생 아가씨. 삶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이것은 밑밥을 까는 전초전에 불과하다.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악마숭배자들은, 정신적인 피로에 찌든 성녀H에게 은근슬쩍 내 이야기를 꺼냈다.
그들의 우상숭배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성녀님. 저기, 보이십니까?”
“연못에서 쉬시는 성자님이 보이시네요.”
“그렇습니다. 인어를 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성자님의 모습이 참 멋지지 않습니까?”
“저건 좀…. 아, 네. 정말 멋지시네요.”
또 예를 들어,
“성자님처럼 대단하신 분이 여태 홀몸이라니. 이건 인류의 비극입니다. 성녀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네. 공감해요.”
“그러면 성녀님만 믿겠습니다.”
“네. 맡겨만 주…. 네?!”
같은 여자의 예를 들면,
“성녀님. 혹시 보셨나요?”
“뭘요?”
“성자님의 알몸이요. 저는 몰래 보았답니다. 아아! 그분의 넓은 품에 안긴 채로 꽉 박혀봤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요!”
“아, 저기. 그렇게 대단하던가요…?”
악마숭배자들이 온종일 성녀H를 부추겼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었지만, 교화된 악마숭배자가 200명을 넘어간 시점부터 그녀는 일방적으로 휘둘렸다.
그리고 마침내,
“성자님. 꼭 드릴 말씀이 있어요.”
성녀H가 다리를 비비 꼬면서 내가 말을 걸었다.
“하십시오.”
“그…. 정원에서 해도 될까요? 여기는 보는 눈이 많아서…. 아무도 찾지 않는 조용한 장소가 있어요.”
“그러면 가시지요.”
나는 성녀H를 뒤따라 정원 깊숙이 들어갔다.
아주 깊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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