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화
[5회차] 성스러움이 넘쳐난다! ⑱
“헛! 저거, 성녀 아니야?”
“옆의 남자는 소문의 성자?”
“둘이 어딜 가는 거지?”
몇몇 졸업생이 대신전을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대신전이지만, 시작 도시의 각종 이벤트랑 연계되면서 제한적으로 개방되어있는 덕분이다.
여러 루트를 통해서 대신전에 방문한 졸업생이 적지 않았으나, 정원의 규모가 워낙 압도적이라서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대신전의 아름다운 정원을 넋 놓고 구경하던 그들은 우리를 발견하고는 동료들이랑 수군거렸다.
그리고 호기심을 못 찾고 슬금슬금 쫓아왔다.
“어? 어디로 사라졌지?”
“이상하다. 여긴 외길인데?”
하지만 그들은 금세 우리를 놓치고 길을 잃었다. 그만큼 우리가 나아가는 길은 복잡하고 어두침침했다.
성녀H가 말했다.
“성자님. 제 손을 잡아주세요. 사, 사심은 없어요! 그렇다고 전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세요!”
“이건, 인식 장애 마법?”
“비슷합니다. 원시적인 풍수지리학과 용혈을 토대로 정원수와 돌을 규칙적으로 배치한 주술이에요.”
...지구과학이란 건가?
내 전문이 아니므로 그러려니 넘어가자.
그렇게 얼마나 깊숙이 들어갔을까?
영원히 멈출 것 같지 않았던 성녀H의 걸음이 느려지다가 끝내 제자리에 멈췄다.
“성녀님. 도착한 겁니까?”
“네. 여기에요.”
대낮임에도 무척 어두운 장소였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된 정육각기둥의 작은 정자가 있고, 주위에는 나무와 음지식물이 벽처럼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성녀H의 말대로 조용한 장소였다.
힐끔힐끔.
딱 하나 빼고.
대신전을 지키는 골렘은 여기에도 있었다.
“하실 말씀이란 것은···?”
“여기라면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도 보지 못하고, 아무도 듣지 못할 거예요. 정말 죄송합니다, 성자님! 저는 거짓말을 했어요! 이제 이 욕망과 감정을 더는 감출 수가 없어요!”
격하게 외친 성녀H가 내게 돌진해왔다.
나는 피할 수 있음에도 가만히 그녀를 받아줬다.
몰랑~
성녀H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몰랑몰랑한 가슴을 바짝 맞댔다.
하지만 이다음 전개는 생각하지 않은 걸까?
그녀는 파르르 몸을 떨기만 할 뿐이었다.
그게 아니면,
“하아···!”
이 미지근한 접촉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 걸까.
성녀H는 내 귓가에 들릴 만큼 뜨겁고 거친 숨결을 몰아쉬었다. 몸은 어린아이가 떼쓰듯 계속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것도 영원하진 않았다.
움찔.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눈치챈 성녀H가 슬금슬금 몸을 빼려 했다.
하지만 이걸 순순히 용납한다면 남자가 아니다.
꽉.
“성녀님. 당신은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오른팔로 그녀의 잘록한 등허리를 힘껏 끌어안으며 못 빠져나가게 붙잡았다.
왼팔은 천천히, 그녀의 귀부터 아래로 스치듯 더듬어갔다.
“흐읏! 하, 하지만 저는···.”
“우리는 이미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몸으로.
교직원 일동이 엄선한 성녀H의 괘씸한 수녀복은 매듭 하나만 풀면 후루룩 흘러내리게 디자인되어 있다.
휘릭, 스르륵···.
목 뒤의 리본을 풀자마자 바나나 껍질처럼 수녀복이 벗겨졌다.
“웃···!”
놀란 성녀H가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은근히 기대했음에도 막상 현실로 닥치면 느낌이 다른 법.
그녀는 떨어지는 옷가지를 붙잡으려고 애처롭게 손을 뻗었으나, 끝끝내 잡지 않고 놔뒀다.
툭.
대신, 중력을 거부한 그녀의 가슴이 흘러내리는 옷을 붙잡았다.
실소가 절로 나왔다.
나는 그 최후의 저항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 날려줬다.
사르르륵···.
수녀복이 정원의 수풀 위로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그리고 드러난 성녀H의 나신(裸身).
“진짜 판타지네···.”
나도 모르게 감상이 튀어나왔다.
교직원 일동이 열심히 준비한 용사 페스티벌.
이 축제에 초대된 손님들을 환대하는 간판스타의 비주얼이 별로라면 큰일이잖은가?
그렇기에 성녀H는 철저하게 대중적이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아름답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외모. 그걸 위해서라면 현실성과 인체구조쯤은 대수롭지 않게 무시했다.
“우으···.”
성녀H가 어깨를 움츠리며 더욱 적극적으로 내게 안겼다.
긴장한 몸은 애처로웠으며, 바짝 오므린 허벅지 사이는 조잡한 천 쪼가리로 간신히 지켜지는 중이었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벌거벗은 미녀만 보면 눈 뒤집혀서 돌진하는 판타지 야만인들이랑 질적으로 다르다.
신사적인 지구인답게 밖에서부터 천천히 접근했다.
먼저 윗입술.
“흠···.”
“우음···.”
나는 성녀H라는 철옹성이 먼저 백기를 들고 도개교를 내릴 때까지 주위에서 농성하는 작전을 실행했다.
지친 그녀가 정복해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그 순간이 벌써 기대되기 시작-
▶힐끔: 괜히 저까지 설레네요···.
음? 교생 아가씨가 왜 여기 있어?
신고하기 전에 얼른 빠져!
“너도!”
나는 성녀H의 축축하게 젖은 성문을 뜯어서 힘껏 던졌다.
“아앗?! 서, 성자님! 그건···!”
탁!
내가 던진 삼각형 천 쪼가리가 아까부터 계속 거슬리는 골렘의 안면을 덮었다. 젖어있는 탓에 접착력이 매우 우수했다.
이것으로 시야를 완벽하게 차단한 셈.
골렘이 무척 유감이란 듯이 돌로 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파수꾼이란 임무 탓에 움직이진 않았다.
“성녀님.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안 쓸 수가- 하읏···!?”
여기서부터는 어른들의 시간이다.
*
그 뒤로 며칠이 흘렀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외부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던 내성(內城)까지 함락당한 성녀H는 오늘도 정복자의 방문을 환영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빨대를 꽂았다.
쪼오옥-
그리고 빨아들였다.
한 번, 두 번, 다섯 번, 열 번···.
▷종족: 그랜드 휴먼
▷레벨: 999+
▷직업: 성녀(신앙→부활↑)
▷스킬: 불사SSS 신앙SS 신성SS 마성S 고결S···
▷상태: 흥분, 쾌락, 행복
내 추측대로 성녀H는 특별했다.
그녀의 신성SS는 아무리 빨아들여도 마르질 않았다.
악마숭배자 중에도 SS등급인 자가 있었다. 하지만 빨대를 꽂고 흡수하다 보면 금방 고갈됐다.
그런데 성녀H의 신성은 무한했다.
능력치로 표시되지 않는 외부 힘이 적용된다는 방증.
치이익···.
내가 성녀H에게 주입한 마기는 전부 소멸했다.
이 또한 능력치 외 간섭이라고 추측됐다.
▶해석: 맞아요. 손님을 맞이하는 성녀가 죽거나 타락하면 축제 진행이 안 되니까요. 대신전의 경비체계가 비상식적으로 높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랍니다.
교생 아가씨가 내 추측을 긍정했다.
하지만 나로선 나쁠 게 없었다.
신성A→신성SS
대신전의 514명 악마숭배자가 보유한 신성을 몽땅 흡수하고도 A등급이 고작이었던 나는 SS등급까지 찍을 수 있었다.
신성이 무한한 성녀H 덕분!
그러나 SSS등급에는 끝내 도달하지 못했다. 숙련도 99.99%에서 멈춘 탓이다.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포인트를 쓸 때가 왔군.”
끝끝내 모든 악마숭배자의 교화를 마쳤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하루 안에 전부 복종시킬 수 있었지만, 나는 의도적으로 시간을 조절했다.
대신전에는 성녀H만 있는 게 아니다.
인어, 정원사, 청소부, 요리사···.
그들 전부를 속여야 했다.
물론, 500명이 넘는 악마숭배자에게 온종일 내 찬양을 들으며 보낸 성녀H의 정신과 사상은 시커멓게 변질했기에 신경 쓸 필요 없다.
몸과 마음도 이미 내 수중에 있었고.
이제 남은 건?
“시스템적으로 종속이 되려나 모르겠네.”
이건 해보기 전까진 알 수 없었다.
현재까지 1028포인트.
내가 날조로 욱여넣은 성녀H의 몸값은 500포인트.
그녀를 구매하고도 넉넉할 만큼의 포인트를 모았다. 하지만 이게 과연 시스템적으로 허용될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우선,
[하급 신성 상승 물약: 3포인트]
[중급 신성 상승 물약: 7포인트]
[상급 신성 상승 물약: 13포인트]
[최상급 신성 상승 물약: 20포인트]
...
스킬 신성 숙련도를 올려주는 물약을 몽땅 구매한 후, 등급이 오를 때까지 계속 마셨다.
그리고 마침내,
신성SS→신성SSS
숙련도 99.99%를 돌파하여 SSS등급에 도달했다.
무림고수가 벽을 넘으면 딱 이러할까!
“...대단한데?”
효과를 확인한 나는 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먹다 남은 찌꺼기 같은 나머지 물약은 선심 쓰듯 K부녀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이것으로 둘은 천사들의 무적 치트키를 뚫을 수단이 생겼다.
“오오! 정말 감사합니다!”
“용사님께서 이 귀한 물약을···.”
고마워할 거 없다.
천사들에게 개죽음당하지 말라고 주는 거니까.
나는 여기에 추가로 ‘마기’ 속성이 걸린 무기들을 구매했다. 이 또한 K부녀를 위한 거였다.
이래도 죽으면 어쩔 수 없고.
“성자님. 896포인트 남았어요.”
감독관으로 보물창고까지 동행한 성녀H가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 목에 걸린 가격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떤 성녀의 전부: 500포인트]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신성SS까지 올린 이상, 성녀H에게 더는 볼일 없었다. 굳이 500포인트를 투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긴 한데,
“궁금하단 말이지.”
프롤로그에서 안내자(성녀H)가 등장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용사 페스티벌에 막 입장한 졸업생들이 허둥대는 모습을 볼 수만 있다면, 500포인트가 아깝지 않다!
또한, 축제를 준비한 교직원 일동도 뒷목 잡을 게 분명하다.
거기까지 고려하면 무조건 남는 장사다.
▶당혹: 강한수 생도님. 정말로 하시려고요?
교생 아가씨. 그걸 말이라고 해?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나는 남은 포인트를 빠르게 소모하기 시작했다.
[하급 소환 상승 물약: 2포인트]
[중급 소환 상승 물약: 5포인트]
[상급 소환 상승 물약: 9포인트]
[최상급 소환 상승 물약: 14포인트]
...
스킬 소환.
내게 없는 스킬이다.
블랙박스 효과 덕분에 회귀해도 성검2가 남았었기에 시도해볼 생각이다.
내가 소환한 존재도 그대로 유지될까?
그걸 확인하고자 스킬 ‘소환’의 숙련도를 강제로 올렸다.
수련이나 공부 없이 물약의 힘으로!
소환F→소환E→소환D
물약을 퍼마시고도 겨우 D등급.
용사의 경험치 500% 특전이 없는 게 뼈아팠다.
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실험을 위한 스킬이기 때문이다.
그 뒤, 첫날부터 눈도장 찍어뒀던 물약으로 손을 뻗었다.
[하급 창고 확장 물약: 5포인트]
[중급 창고 확장 물약: 10포인트]
[상급 창고 확장 물약: 15포인트]
[최상급 창고 확장 물약: 20포인트]
...
스킬 창고.
판타지아 대륙에선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스킬이다.
교생 아가씨? 해설 부탁해!
▶난감: 강한수 생도님의 짐작이 맞아요. 창고는 판타지아 대륙에 풀리지 않은 금지된 스킬이에요. 동료들이랑 무거운 짐을 분담할 필요가 사라지면 협동심을 키울 수 없잖아요? 이 스킬을 미끼로 졸업생들의 페스티벌 참여율을 높인다는 취지도 있어요.
격하게 공감한다.
나도 2회차에선 ‘짐꾼’을 뒀었기 때문이다.
이건 구매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보물창고에 있는 창고 확장 물약을 싹 구매해서 복용했다.
창고F→창고E→창고D
D등급으로 얼마나 들어가는지는 나중에 확인해보자.
이제 남은 포인트는?
“성자님. 535포인트 남으셨어요.”
성녀H가 초조한 어조로 알려줬다. 그녀의 눈빛 또한 여유로웠던 처음이랑 달리 무척 간절하게 바뀌었다.
535포인트.
나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하급 정력 상승 물약: 1포인트]
[어떤 황녀의 가터벨트: 34포인트]
[어떤 성녀의 전부: 500포인트]
내게 귀속됐음을 알리는 빛이 성녀H와 가터벨트를 감쌌다. 성공할지 긴가민가했었는데 정말로 된 것이다.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정력 물약은 바로 벌컥!
이것으로 모든 포인트를 소모한 셈이다.
▶체념: 축제용 성녀가 개인에게 귀속되면 진행은 누가···? 저도 이제 모르겠어요···.
하하! 교생 아가씨. 편하게 생각해.
성녀 하나 먹었다고 축제가 망하지는···. 음?
끼긱!
드르륵!
보물창고 입구를 정승처럼 서서 지키고 있던 골렘 2기가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사전경고도 없이 내게 달려들었다.
“요건 몰랐네!”
대신전의 핵심인 성녀H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일까?
그래도 골렘 2기라면 해볼 만했다.
나는 잽싸게 성검2를 소환해서 스킬을 증폭한 후, 황소처럼 덤벼오는 골렘을 향해 육탄전을 걸었다.
그리고 번쩍!
쾅-!
콰당-!
벌러덩 자빠진 두 골렘이 보물창고를 나뒹굴었다. 바닥과 벽에 균열이 생기고, 각종 보상이 파괴되거나 이리저리 날아갔다.
골렘의 단단한 몸도 무사하지 못했다.
“하핫!”
그 꼴을 본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대신전을 수호하는 골렘은 분명 강하다. 하지만 신성SSS의 가호를 받는 내 상대는 아니었다.
상성이 좋지 못하다고 할까.
끼익!
끼이익!
대신전 곳곳에 흩어져 있던 골렘들이 이변을 눈치채고 일제히 가동했다.
쿵! 쿵! 쿵! 쿵!
3,139기의 거인이 보물창고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성자님···!”
“용사님···!”
성녀H와 요정K가 초조한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보스K는?
이 긴급한 상황에 보물창고를 돌아다니면서 각종 스킬 상승 물약을 부지런히 퍼마시는 중이었다.
나랑 눈이 마주친 그가 외쳤다.
“꿀꺽! 강해져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용사님!”
정력 상승 물약 위주로 퍼마시면서 잘도 지껄이는구나!
“됐어. 너 말고도 도와줄 녀석들이 많아.”
나는 신성SSS에 이어서 마기SSS를 활성화했다.
쏴아아아-
▶애도: 선배님들···.
대신전에는 골렘만 잔뜩 있는 게 아니다.
나를 따르는 514명의 악마숭배자가 곳곳에 대기 중이다. 자신들을 가둔 대신전에 복수할 날을 기다리면서.
그 순간이 마침내 도래했다.
“싹 쓸어버려.”
대신전의 골렘만이 아니라 시작 도시까지 깔끔하게!
성자 이벤트는 자체 종료.
지금부터는 신나는 몰살 이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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