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화
[5회차] Unirrrrrr~!
콸콸콸-!
시커먼 맹독이 천사들의 궁전 위로 떨어졌다.
새처럼 등의 날개로 비행하며 이동하는 천사들만을 위한 건축물답게 계단이 없는 독특한 양식의 백색 궁전.
사르르···.
그 궁전의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생긴 지붕부터 검게 물들며 녹아내렸다.
“용의 숨결이다!”
“피, 피해!”
“히익?! 저게 뭐야?!”
식겁한 수많은 천사가 살던 궁전에서 뛰쳐나왔다.
치이이이···.
치익···.
하지만 탈출한 천사는 정말 극소수였다.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다짜고짜 치사성 100%의 숨결부터 토해내는 망룡왕은 자연재해 그 자체.
아예 눈치채지 못했거나, 했어도 빠져나올 시간이 모자랐던 절대다수의 천사가 궁전이랑 명운을 같이했다.
피해 규모나 사망자는 계산되지 않았다.
몰살 이벤트 상품을 보관하는 역할 외에는 축제랑 동떨어져 있던 천사들로선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Chaooo~!”
젊은 망룡왕은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고는 기쁨의 포효를 질렀다.
용에게 다른 종족의 성별과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여자, 어린애, 노인, 갓난아기···.
예외를 두지 않았다.
남녀노소(男女老少)를 조금이라도 따질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광범위한 살상력을 내포한 맹독의 숨결을 내뱉지도 않았을 것이다.
“멈춰라! 이 악마야!”
하늘에서 천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 모두가 999레벨 초월.
스킬들도 하나같이 SS등급과 S등급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A등급 하나에도 벌벌 떠는 지상에선 상상도 못 할 능력치들.
▶해설: 고등교육과정이니까요!
교생 아가씨가 시원시원하게 답했다.
수학 과목으로 치자면, 미적분과 통계는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고등교육과정이 참 쉽네.”
나는 흑백의 회오리를 두른 성검2를 횡으로 휘둘렀다.
펑! 콰광! 서걱! 쾅!
스키장 면적의 공간이 붕괴했다.
그 사정권 안에 있던 천사들도 한 줌의 먼지로 사라졌다. 사기적인 신성 보호막을 꿰뚫는 마기와 신성의 하모니.
이 앞에선 천사나 인간이나 다 똑같았다.
고등교육과정이 천사를 몰살시키는 거라면, 나는 이미 졸업에 근접했을 것이다.
▶난감: 고등교육과정은 다 죽이라는 교육프로그램이 아니에요. 선과 악의 개념을 뚜렷하게 이해하고 판단하라는 개념의 심오한 학문이죠···.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천사들이 먼저 나를 공격했다.
여기에 선(善)이 파고들 여지가 있을까?
99명이 착하다고 주장해도, 나를 공격했다면 그 누가 되었든 똑같이 보복 조치를 할 뿐이다.
“커어억!”
“아앜?!”
천사들은 내가 생성한 회오리에 취약했다.
여기에 살짝 닿기만 해도 팔다리가 하나씩 뚝 떨어지면서 고통의 비명을 지르다가 추락했다.
무적 치트키에 의존해온 오합지졸 천사 따위는, 1회차 동료들의 횡포를 꿋꿋하게 견디며 성장한 내 상대가 못 됐다.
대신전 때보다 훨씬 수월했다.
이것이 바로 우정의 힘!
성녀H의 축복을 받으면서 폭발적으로 강화된 나와 망룡왕의 콤비를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멈춰라! 이놈들!”
“Unirrrrrr~!”
말 울음소리와 함께 등장한 천사의 외침.
유니콘(Unicorn)이라고 불리는 ‘날개 달린 백마’ 위에 탄 청년이 우리의 비행속도를 따라잡았다.
그리고 뾰족한 창으로 용의 비늘을 찔렀다.
푹!
“Chaooo-?!”
단 한 번도 피해다운 피해를 받아본 적 없었던 망룡왕의 비늘 사이로 붉은색 피가 흘러내렸다.
주르륵.
나도 이때만큼은 놀라고 말았다.
▷종족: 그랜드 엔젤
▷레벨: 999+
▷직업: 기사(충절→불굴↑)
▷스킬: 신성SSS 창술SS 불굴SS 관통SS 승마SS···
▷상태: 경계, 투지
이렇게 탐스러운 SSS급 천사가 여태까지 뭐하다가 이제야 어슬렁어슬렁 나온 걸까?
“Unirrrr~!”
놈이 타고 있는 유니콘도 그랬다.
이마에는 뿔, 등에는 한 쌍의 날개가 달린 이 말은 신성한 생물로 매우 유명한데, 그 뿔에는 제법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다.
영웅과 미녀만을 태우는 놈의 비행 능력도 일품이다.
휙휙!
모기처럼 주변을 맴도는 유니콘을 잡기 위해서 망룡왕이 꼬리를 이리저리 휘둘러보지만, 유니콘은 한 방만 맞아도 위협적인 그 공격들을 전부 여유롭게 회피했다.
심지어,
파지지직-!
머리의 뿔에서 쏜 뇌전(雷電) 비슷한 빛줄기가 망룡왕의 피부를 긁고 지나갔다.
단단한 칠흑빛 비늘이 줄줄이 파괴되고 안쪽의 살점이 가차 없이 뜯겨나갔다.
망룡왕의 덩치에 비하면 생채기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것도 야금야금 쌓이면 무시하지 못하리라.
“약한 벌레답게 싸우는군.”
망룡왕의 머리 위에 탄 나는 코웃음을 터트렸다.
정정당당하지 못하게 찔끔찔끔 치고 빠지는 식으로 야비하게 싸우는 천사와 유니콘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망룡왕 뇌비우스는 혼자가 아니다.
저 벌레들에게 상호보완, 적재적소가 무엇인지 똑똑히 가르쳐주겠다.
나는 성녀H에게 턱짓으로 지시했다.
“네, 주인님. 아아~♪”
추락하지 않도록 망룡왕의 뿔을 잡고 있던 성녀H가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를 불렀다.
스르륵···.
망룡왕의 상처들이 순식간에 회복됐다.
SSS급 천사가 창으로 찌른 관통상, 유니콘의 뇌전으로 생긴 생채기, 여러 천사가 입힌 자잘한 부상 등이 말끔히 사라졌다.
손해가 전혀 없던 건 아니다.
단지,
망룡왕: 9000레벨→8999레벨
성녀H: 2000레벨→2001레벨
요런 식으로 피해가 미미할 뿐!
이마저도 피해란 느낌이 별로 없었다. 치유 받는 망룡왕 뇌비우스의 레벨이 깎일 때마다, 치유해주는 성녀H의 레벨이 오르기 때문이다.
절대로 약해지지 않는 용사 파티처럼.
“Chaoooo!”
성녀H의 보조를 받는 망룡왕은 물러서거나 지치지 않았다. 미미하게 하락한 레벨마저도 천사들을 학살하면서 보충 중.
그 사실을 벌레들도 눈치챘다.
이대로는 답이 없음을.
“이놈들-!”
“Unirrrrrr~!”
찔끔찔끔 공격하길 포기한 천사와 유니콘이 우리의 비행속도를 앞지르고 나아간 후, 망룡왕의 머리를 노렸다.
놈들의 첫 표적은 용의 눈.
망룡왕의 시력을 빼앗고, 더 나아가서 눈구멍을 관통하며 뇌까지 직접적인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나설 차례였다.
“우정의 힘으로.”
나는 게릴라 작전으로 비겁하게 싸우는 천사와 유니콘의 뒤를 추적하지 않았다.
언젠가 알아서 이곳으로 올 줄 알았기에.
또한, 기다리고 있었던 만큼 준비된 공격 또한 알찼다.
파아앙-!
날벌레처럼 알짱대는 천사들을 원거리에서 몰살시키며 때를 기다리던 나는 일직선으로 도약했다.
“뭣이···?!”
“Unirr~?!”
SSS급 천사와 유니콘이 동시에 식겁한다.
내가 계속 망룡왕의 머리 위에 장승처럼 서서 싸울 거라고 굳게 믿었던 듯했다.
하지만 내 특기는 미지근한 원거리 공격이 아니다.
가까이서 피 튀기는 직접 전투!
취미는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 선물해주기다.
우선은 유니콘부터.
빠각.
“Unirrrr~?!”
나는 유니콘의 날갯죽지를 힘껏 걷어찼다.
인간이 아닌 말이라서 신체구조를 모른다는 게 아쉽다. 알았다면 영원히 허리 못 펴는 마생(馬生)을 살게 해줬을 텐데.
“이놈! 신성한 생물을 공격하다니···!”
SSS급 천사가 분개하면서 내게 창을 찔러왔다.
허공에서 유니콘을 걷어차느라 잠시 멈칫한 나는 그 잽싼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푹!
의도한 계획대로.
덥석.
나는 창끝이 내 옆구리를 찌르는 즉시, SSS급 천사의 멋들어진 창 자루를 왼손으로 꽉 붙잡았다.
“조금 아팠다?”
나는 SSS급 천사를 향해 히쭉 웃어 보였다.
“이, 이놈이···?”
갈비뼈를 주고 두개골을 깎는다!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호리호리한 몸으로 얍삽하게 싸우는 연놈들을 상대로, 내가 가장 선호하는 전술이다.
푹!
SSS급 천사의 어깨에 성검2를 박아줬다.
“큭-!”
“어쭈?”
하지만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내가 원래 노린 부위는 어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놈의 얌전하게 생긴 머리.
그러나 SSS급 천사의 판단력이 빨랐다.
이미 허리가 맛이 가서 더는 비행이 힘든 유니콘의 안장을 박차며 도약 후, 내게 붙들린 창까지 과감히 포기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Chaooo-!”
“Unirr~?!”
넙죽!
주인에게 버림받은 유니콘은 빌빌거리며 도망치다가 망룡왕 뇌비우스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어째서 이런 끔찍한 짓을···!”
“먼저 시비 걸고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잠깐의 대화는 그걸로 끝.
날개를 펄럭이며 후퇴한 SSS급 천사의 빈손에 빛의 알갱이가 모여들었다.
왼손에는 활대, 오른손에는 화살.
끼이익--
SSS급 천사는 곧장 활시위를 당겼다.
노리는 표적은 당연히 나.
“어이쿠!”
하지만 내 공격이 더 빨랐다.
손이 미끄러지면서 쏘아진 성검2가 마기와 신성을 두른 회오리의 추진력까지 받으면서 일직선으로 쭉 날아갔다.
푹!
그리고 SSS급 천사의 아랫배에 예쁘게 박혔다.
“커어어엌?!”
우아하게 활시위를 당기던 SSS급 천사의 눈이 크게 뜨였다. 뒤늦게 고개를 아래로 숙여서 성검2를 보았다.
치지직-!
우리의 신성SSS는 충돌 직후에 중화됐으나, 내 마기SSS가 안쪽으로 침투하면서 천사의 몸을 빠른 속도로 붕괴시켰다.
나는 천사의 죽음을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경험치만 들어왔으면 됐다.
“수고하셨어요, 주인님.”
망룡왕 뇌비우스의 머리 위로 떨어지듯 귀환한 나를, 성녀H가 환한 미소로 환대해줬다.
“전황은?”
굳이 확인해볼 필요도 없을 듯했다.
천사들이 살던 백색의 궁전은 이미 망룡왕의 분노로 시커멓게 변했고, 궁전 주변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성녀H에게 물었다.
“986명이 살아있어요.”
성녀H가 망설임 없이 정확한 숫자를 보고했다.
용사가 상대의 능력치를 볼 수 있듯이, 부활이란 특전을 가진 성녀는 주변의 사망자와 생존자 수를 파악할 수 있다.
생명감지기라고 할까.
“허! 이 독극물로 가득한 폐허 속에 천사가 아직 986마리나 살아있다고?”
“그렇습니다.”
“계속 확인해줘. 0명이 될 때까지.”
“네, 주인님.”
성녀의 특수능력.
그것은 후환을 안 남기는 탐지기로 최적화되어 있다.
▶당혹: 강한수 생도님? 성녀의 특수능력은 희망을 잃지 않고 생존자를 찾거나, 부활 가능한 사망자 수를 파악하는 용도랍니다. 확실하게 몰살시키라고 주어진 능력이 아니에요!
쯧쯧. 교생 아가씨가 뭘 모르네.
능력의 다양한 가능성을 개발하지 않고 편견에 사로잡혀서는 발전할 수 없어.
▶쫑긋: 이것도 자기계발이란 말씀이신가요? 으음···.
고민에 빠져든 교생 아가씨를 놔두고, 천사들의 서식지 주변을 빙글 둘러봤다.
“메인이벤트 보상도 녹아버린 건 아니겠지···?”
내게 천사를 몰살시킨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없었다.
“Chaoooo!”
그것은 친애하는 동료의 바람일 뿐.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용사 페스티벌 최고상품’을 셋이서 나누지 않고 독점하는 것이다.
“보상이라면 저기에 있어요, 주인님.”
성녀H가 손끝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뜬 채 그곳을 세심하게 주시했다.
“과연···.”
망룡왕의 맹독에 녹아내린 백색의 궁전 정중앙쯤 될까. 방공호처럼 파괴되지 않은 무언가가 폐허에 파묻혀 있었다.
“Chaooo.”
펄럭.
자신이 만든 끔찍한 작품을 흐뭇하게 감상하던 망룡왕도, 나와 성녀H의 대화를 들은 직후에 그것을 발견했다.
맹독과 독가스로 가득한 도시.
그 한복판에 새싹처럼 튀어나온 무엇인가를.
쿵-!
망룡왕 뇌비우스가 그 앞에 착지했다.
외형은 직사각형으로 생긴 금고.
수천 명의 사람이 들어가도 될 크기였기에, 보물창고인지 방공호인지 그 용도가 헷갈렸다.
어쩌면 둘 다가 아닐까?
끼기긱-
끼익―
망룡왕이 그것을 양손으로 붙잡은 후, 부서트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마치, 왕도마뱀이 호두를 까는 듯했다.
처음에는 쉽게 뭉개질 것 같았지만, 어느 기점부터 내부에서 밀어내는 물리력이 적용됐다.
끼긱, 끼이익-
압축과 팽창의 반복.
이 안에 특별한 무엇인가가 들어있는 건 확실한 듯했다.
“Chaooo~”
망룡왕은 이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온몸으로 짓누르거나 턱으로 깨물면 그냥 파괴될 텐데도, 양손만을 이용해서 천천히 압박하는 중이었다.
쿠구구구.
이젠 아예 끄집어내서 좌우로 굴리기까지.
나는 팔짱을 낀 채 그 광경을 가만히 구경했다.
성녀H가 옆에서 소곤소곤 말했다.
“주인님. 생존자 986명의 생체반응이 저 안에 집중되어 있어요.”
“그래? 뇌비우스.”
뚝.
망룡왕이 내 부름에 흉흉한 장난을 멈췄다.
바보가 아니라면, 저 안의 책임자도 우리가 공격을 멈춘 의미를 바로 이해했을 터.
덜컹.
잠시 후, 용의 손톱에 수없이 긁히고 일그러진 상자 안에서 일련의 천사 무리가 쭈뼛쭈뼛 걸어 나왔다.
나는 그 선두에 선 남자에게 먼저 질문했다.
“당신이 천사의 대표?”
희멀겋게 생긴 남자가 우두머리처럼 등장한 시점부터 흥미는 벌써 절반 이하로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대화의 여지를 안 남길 수준은 아니었다.
그 천사가 차분히 답했다.
“그렇습니다. 혼돈의 용사여. 제 이름은···.”
“대표A. 본론만.”
자비를 구걸하는 구질구질한 내용은 사양이다.
나는 피해자, 저쪽은 가해자.
그것부터 똑바로 짚고 넘어가자.
“내가 피해자야. 알겠어?”
“그 무슨 억지···. 아, 알겠습니다!”
나는 난폭한 천사들에게 공격받아서 무척 놀랐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심장이 벌렁벌렁 뛴다.
정신적인 피해보상을 정당하게 요구하는 바이다!
▶의문: 강한수 생도님이 아프다고요···?
왜? 나는 아프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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