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57화 (57/430)

 057화

[6회차] 이 현자는 안전합니다!

교생 아가씨도 이런 현자는 처음 보는 모양이다.

미녀의 속옷 좀 봤다고 코피를 쏟으며 죽어간다니? 나도 이렇게 눈앞에서 보지 못했다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으으….”

피를 흥건하게 쏟은 현자는 꼼짝달싹 못 했다.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라도 인간인 이상, 피가 부족해지면 빈혈 증상이 올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빈혈은 철분 결핍으로 혈액 내 적혈구가 부족해져서 발생하지만, 이처럼 예기치 않은 출혈사고로 혈액 자체가 모자라도 결과적으로는 같다.

빈혈로 산소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각종 신체문제로 이어진다.

특히, 중추신경계의 뇌 조직이 영향을 크게 받는다.

정상적인 판단을 못 해서 이상행동을 하거나, 정신이 혼미해지고 의식을 잃는다.

여기서 더 심해지면 죽음까지.

이 외에도 저혈압, 간과 신장의 기능장애 등이 온다.

그러니 헌혈은 적당히 하고 피를 소중히….

“오빠.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냥 조용히 있으면 본전은 할 텐데.”

“라누벨 말이야?”

“그래, 너.”

나는 피투성이가 된 현자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대마법사나 되는 녀석이니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살아나겠지만, 이 친절한 용사님이 특별히 치료해주기로 했다.

탁.

현자의 머리에 오른손을 얹었다.

“내 손을 느껴봐. 그러면 행복해질 거야.”

우우웅-!

신성Z의 성스러운 빛이 현자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읔-?!”

현자의 마기는 A등급이다.

두 눈이 뛰어나올 만큼 굉장한 미녀만 보면, 코피가 터지면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특수체질 때문에 습득한 것이다.

그는 살기 위해서 마기를 흡수했다. 마기가 강해질수록 악마의 강인한 육체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자는 악마숭배자랑 질적으로 다르다.

악마랑 계약해서 마기를 얻은 게 아니라, 자연에서 여러 방식을 통해 차근차근 쌓아 올린 것이다.

그렇기에 마기가 굉장히 안정되어 있다.

악마숭배자 특유의 공격성과 폭력성이 그에게는 없다. 순수한 학문으로서 마기를 체내에 저장해뒀다.

지금까진 말이다.

휘이이잉~!

내 신성Z랑 충돌한 현자의 마기A가 뒤흔들렸다.

분탕이란 표현은 대단히 실례다. 마기를 정화하다가 살짝 삐끗했을 뿐이다.

“어이쿠! 신성이 미끄러졌네.”

안정되어 있던 마기A가 날뛰기 시작했다. 신성Z를 보고 공포에 빠져서 사방팔방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소유주의 육체를 벗어나진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했다.

이걸 통제해야 할 현자는 현재 혼수상태.

마기A는 빠르게 불완전해졌다.

“으으으-!”

“저런! 괴롭구나? 이 용사님이 도와줄게!”

스르륵-

이번에는 마기SSS를 현자의 몸에 밀어 넣었다.

갈 곳 잃고 방황하던 어린 마기는, SSS급 큰형님을 보자마자 넙죽 엎드리며 충성을 맹세했다.

그리고 소유주의 정신을 잠식해갔다.

“으읔!”

현자는 심심풀이로 최강의 대마법사란 칭호를 단 게 아니다.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무의식으로 정신방어를 시도했다.

무척이나 가소로운 저항.

“현자야. 나를 믿어봐.”

“아…. 음….”

내 성스러운 목소리가 현자의 정신방어를 무력화했다.

훌륭한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듣고 안심해버린 환자(현자)는 완전한 숙면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혼탁해진 마기A에 잠식됐다.

▷종족: 다크 휴먼

▷레벨: 350

▷직업: 현자(동정→마력↑)

▷스킬: 마력SSS 마법S 마술S 마기S 마성A…

▷상태: 타락

괴로워하던 현자의 표정이 급속도로 안정됐다.

응급조치가 끝났다.

“와! 오빠. 현자님을 치료해준 거야?”

“그래.”

“그렇구나. 이런 변태는 콱 죽어버려도 괜찮을 텐데.”

라누벨이 현자를 바라보며 심한 말을 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신사를 옹호해줬다.

“귀여운 척하는 여동생이 사는 세계 따위는 멸망해버려도 괜찮을 텐데.”

“너무해! 라누벨은 자연산이야!”

“그건 네 생각이고.”

현자의 연구실에는 값비싼 연구재료가 많았다.

바리바리 싸 들고 경쟁 관계의 마법사나 암흑상회에 보여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터.

하지만 나는 깔끔히 포기했다. 편협하고 불합리한 채점관에게 괜한 트집 잡히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 목적이었던 ‘현자의 지팡이’만 챙겼다.

▶당황: 그건 괜찮은 건가요?

괜찮고말고.

이건 정당한 절차로 얻은 합법이다.

성녀H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현자는, 애인처럼 소중히 아끼던 자신의 지팡이를 던졌다. 이것은 좋은 구경을 시켜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표시다.

신사들만 아는 대화법이다.

▶수긍: 그, 그렇군요.

우리는 빈혈로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현자는 놔둔 채, 집주인의 감사선물만 챙겨서 곧장 탑을 내려왔다.

나오는 길에 지팡이가 주목받는 일은 없었다.

내 ‘창고’에 고이 넣어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도시를 떠나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웠다. 현자의 탑은 판타지아 대륙에서 마법이 가장 발달한 관광명소이기 때문이다.

마법을 중심으로 이것저것 잘 개발되어 있다.

교통, 문화, 오락, 요리, 교육, 여자, 도박….

이 중에서 내가 관심 있는 분야는 도박이다.

시작 마을에서 벌어들인 돈이 꽤 되고, 행운을 시험하기에는 도박보다 더 좋은 게 없었다.

“라누벨. 따라와.”

현재 내 행운은 A등급.

무한E의 효과 덕분에 등급이 하락하진 않았지만, A등급에서 만족할 생각은 없다.

이처럼 기회가 있을 때 틈틈이 숙련도를 올려둬야 한다.

겸사겸사 노리는 것도 있고.

“오빠. 이번에는 어디 가?”

사준 기억이 없는 마법구슬을 양팔로 끌어안고 있는 라누벨이 질문해왔다.

저거랑 똑같은 걸 현자의 연구실에서 봤던 것 같은데 말이지….

아무튼, 나는 짤막하게 대답해줬다.

“경마장.”

*

도박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가벼운 카드 도구를 이용한 화투, 트럼프, 마작, 포커 같은 부류가 있고, 빙고 게임이나 슬롯머신 같은 성인 오락도 있다.

그 외에도 복권, 로또, 투견, 토토 등이 있다.

이들은 공통점은?

사람이 모여든다는 것이다.

현자의 탑 동부의 시장에는 거대한 공공도박장이 있다.

그러나 여기선 일반적인 도박이 인기가 없다. 마법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도시답게 마법을 이용한 단 하나의 도박만이 흥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자의 탑의 명물.

그 도박장을 고상하게 일컬어,

경마장(競魔場).

어떤 마법사가 더 강한지 맞추는 게임이다.

규칙은 투기장이랑 매우 흡사하다.

높으신 왕족과 귀족부터 어린아이와 노인까지 누구나 가볍게 돈을 걸고 승자를 맞추는 가족오락이다. 진지하게 전 재산을 쏟아붓는 승부사도 간혹 있지만.

돈을 딸 확률은 50%.

하지만 경기에 나가는 마법사의 실력을 어림짐작할 줄 안다면 이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스포츠토토랑 비슷하다.

“태워버려!”

“지면 가만 안 둬!”

“던져서 부숴!”

원형경기장을 빙 둘러싼 관중석에서 수만 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고함을 질러댔다. 응원인지 협박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다.

나와 라누벨은 경마장 밖의 접수처로 이동했다.

“어서 오세요! 성스러운 손님!”

어딜 가던 이놈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찰랑.

나는 접수처 아가씨에게 돈주머니를 내밀며 말했다.

“이 돈을 다섯 등분해서 5번, 9번, 11번, 16번, 23번 친구들에게 골고루 걸어줘.”

“5번, 9번, 11번, 16번, 23번. 접수했습니다.”

경마장선수의 능력치를 보고 고른 게 아니다. 행운을 올리려면 우주의 기운에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

이 번호들은 순수하게 찍은 것이다.

“예쁜 언니. 라누벨은 5번, 8번, 11번, 22번.”

“5번, 8번, 11번, 22번. 접수됐습니다, 귀여운 아가씨.”

“룰루루~♪”

라누벨도 나를 따라서 슬그머니 돈을 걸었다.

싱글벙글 웃음꽃으로 가득한 그녀는, 접수하는 내내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지나가는 남정네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어쩜 저리도 탐스- 앜?!”

“아씨! 앞 좀 똑바로 보고 다녀!”

“와! 흔들흔들 미쳤다. 헉!”

“어이쿠!?”

쾅당! 우당탕!

경마장 접수처 일대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이래서 귀여운 척하지 말라는 거다.

나는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끼치는 라누벨을 데리고 곧장 경마장 구석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접수용지를 확인했다.

“나랑 번호가 살짝 다르네.”

“맞아. 승부야!”

라누벨이 건방진 소리를 하며 도발해왔다.

나로선 가소로울 따름이다.

진정한 용사라면 도박도 잘해야 하는 법. 아이템 강화에 실패해서 10강 무기가 깨져버린 용사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오냐. 라누벨. 너에게 사회의 매정함을 가르쳐주지.”

행운 숙련도를 올리는 게 목적이지만, 돈을 잃을 생각도 없다.

우리는 경마장 안으로 이동했다.

쾅!

콰당!

원형경기장 중앙에서는 두 골렘이 한창 대결하고 있었다.

때리고, 밟고, 꺾고, 던지고….

레슬링이 따로 없었다.

“연구비, 연구비, 연구비, 연구비…!”

“하늘에 계신 어머니, 아버지! 저에게 힘을…!”

고렘을 조종하는 마법사들은 안전한 뒤편에서 마력을 쏟아부으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승리 조건은 상대의 골렘을 무력화하거나 항복을 받아내는 것.

대결하는 두 마법사는 정말 필사적이었다.

골렘은 경마장에서 무상으로 제공해주지 않는 까닭이다.

제작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

업그레이드 비용도 별개다.

이 탓에 한 번 대결할 때마다 수리비도 엄청나게 깨진다.

그나마 이기면 다행이다. 배당금이 아무리 낮아도 수리비는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배하면 본전도 못 건진다.

마법의 양탄자 운전기사들이 대부분 여기 출신인 것도 다 그런 연유가 있다.

잠시 후,

“3번 마법사. 승리!”

경마장사회자가 시원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와아아!”

“3번 최고다!”

“저주한다! 4번 자식!”

“오예!”

두 마법사와 관객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그 틈에 경마장 관계자들이 파괴된 골렘의 잔해들을 경기장 밖으로 치웠다.

곧바로 다음 경기가 시작됐다.

5번, 6번 마법사의 골렘이 맞붙었다.

쾅!

쿠웅!

평균 신장이 5m에 달하는 골렘의 결투는 그 자체만으로도 박진감이 넘친다. 그러면서도 검투장처럼 누군가 죽지 않는다.

경마가 가족게임인 이유다.

“잔인하지만 않으면 어린애도 괜찮다니….”

내 입가에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판타지 원주민들의 사고방식은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자극적인 오락거리가 극단적으로 부족한 이 세계에서 경마장의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음을 안다.

또한,

그만큼 지저분한 뒷돈이 오간다는 것도 안다.

“오빠. 누구 찾아?”

“너는 5번이 이기게 해달라고 빌기나 해.”

라누벨에게 핀잔준 후, 나는 경마장 관중석을 쭉 훑었다. 바글바글한 시민들의 얼굴과 성별을 일일이 확인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포기했다.

시기상으로 너무 일렀다.

교육과정이 바뀌기 전이랑 비교했을 때, 용사는 지금쯤 중앙대륙에서 알렉스에게 신나게 얻어맞고 있을 시기였던 탓이다.

이처럼 북대륙에서 활동할 수 없다.

“사부님. 누굴 찾으십니까?”

바로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 네가 여기에?”

“여기는 제가 다스리는 도시입니다만….”

양쪽 콧구멍을 휴지로 틀어막은 소년이 난감하다는 듯이 황금색 더벅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주위의 누구도 이 소년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입은 후줄근한 평상복 때문만은 아니리라.

코피 흘리는 현자라니?

지나가던 슬라임이 몰랑거릴 것이다.

“너, 어떻게 벌써 회복했냐?”

1회차 때도 현자는 종종 코피를 쏟았었다. 하지만 이처럼 빠르게 회복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충성스러운 악마숭배자로 다시 태어난 현자.

그는 회복의 비밀을 아낌없이 공개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모아둔 피로 수혈했습니다.”

“허….”

가장 길었던 1회차를 곰곰이 돌이켜보면, 현자 놈은 빈혈로 자주 쓰러지면서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동료 중 하나였다.

결국에는 내 경험치가 됐지만.

“사부님!”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현자가 또 이상한 호칭으로 나를 불렀다.

“뭐래?”

“저에게 연애를 가르쳐주십시오! 고결한 수녀복 사이로 수줍게 고개 내민 검은색 끈과 망사를 본 순간- 푸확?!”

자기 머릿속에 녹화해둔 검은색 비디오를 재생한 현자가 또 코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털썩.

“피, 피다?!”

“엄마얏?!”

“애가 쓰러졌다!”

피투성이가 된 소년을 발견한 구경꾼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라누벨이 발끝으로 현자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오빠. 성검 아줌마가 이 변태를 동행시켰으면 좋겠대.”

성검3의 메인스토리가 새로운 동료 영입을 제안했다.

만약, 모험 도중에 현자가 죽는다면…?

“오, 맙소사….”

난이도가 급상승했다.

Easy(쉬움)→Inferno(지옥불)

5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