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60화 (60/430)

 060화

[6회차] 환영합니다, 졸업생님!

“용사?”

“너도 용사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우리는 서로의 직업부터 확인했다.

나는 용사였다가 이곳에 들어온 직후부터 ‘직업 없음’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상대는 어떨까?

직업은 왕자(王子).

소속된 나라가 강하면 강할수록 예뻐지는 ‘공주’랑 달리, 실용적인 전투력이 강해지는 ‘왕자’는 변수가 많다.

막말로, 초강대국의 왕자면 터무니없이 강하다.

“신성이 Z등급이라고…?”

“그러는 너는 Z등급이 둘이네.”

일단, 나는 왕자의 외모를 관찰했다.

그는 동화 속의 파릇파릇한 왕자들이랑 달리, 깎지 않은 지저분한 턱수염이 살짝 자란 30대 중반 외모의 사내였다.

복장 또한 일반적인 왕자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청동조각상 같은 근육질 몸 위에 반짝반짝 은색 삼각팬티 한 장. 소화하기 쉽지 않은 색감인데, 그마저도 묘하게 어울렸다.

내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저만한 능력이면 흉터 하나 안 남는 자연치유가 될 터인데, 그의 몸에는 무수한 상처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천사가 아닌 인간인데 그만한 신성이라….”

“너는 고등교육과정 졸업생인가?”

우리는 탐색을 계속했다.

서로의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는 평행선이 쭉 이어졌지만, 하나라도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스킬은 절대적인 전투력의 지표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도 약간 차이 났을 때의 얘기다.

상대는 Z등급 스킬이 둘.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초월영역에 들어서기 위해 한계돌파를 하려면 다른 스킬들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까닭이다.

그 말은 즉, 상대는 최소 내 2배에 달하는 스킬을 갈아버린 전적이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경력과 경험도 풍부할 터.

이대로 맞붙는다면 위험할 수 있다.

교생 아가씨. 이 녀석은 뭐야?

▶경악: 구세대 용사예요! 자세한 설명은 교직원 규칙에 저촉돼서 알려드릴 수 없지만, 판타지아 차원에 있어선 안 되는 존재예요. 여길 어떻게 알고 들어왔는지….

구세대 용사?

전대 용사를 뜻하는 건 절대 아니리라.

왜냐하면, 내가 아는 용사들은 이 왕자처럼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왕의 페널티와 Z등급 기력 하나면 마왕 페도나르를 간단히 압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이상하군. 내가 받은 보고서 내용이랑 너무 달라.”

왕자가 나를 동물원 원숭이처럼 쳐다본다.

“뭐, 이 새끼야?”

“...현시대 용사들은 오합지졸이라고 들었거늘. 피나는 노력으로 능력을 키우는 대신, 놀고 마시며 쌓은 인맥과 친목으로 비열하게 협공하는 요령만 배웠다고….”

말끝을 흐린 왕자가 움직였다.

대화에 집중하는 내 방심을 노린 기습이었다.

당장 문제는,

‘빨라-!’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의 움직임에 감탄하는 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펑! 번쩍!

내가 X자로 교차시킨 팔등이랑 왕자의 오른손 주먹이 충돌했다.

회피나 반격은 아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만큼 왕자의 공격은 빠르고 강했다.

“미친…!”

내 입에서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건 왕자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했다. 그는 부러진 자기 오른손 손목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두둑.

왕자가 부러진 자기 손목을 대수롭지 않게 교정하며 말했다.

“신성의 일반속성 반사 효과. 하필이면 스킬이 전부 봉인된 수련의 방에서 마주치다니….”

객관적으로, 순수한 기량에선 왕자가 나보다 우위였다.

하지만 주변 환경이 나를 위기에서 모면하게 해줬다. 아니,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승리의 열쇠가 되어줬다.

왜냐하면,

▷종류: 스킬

▷명칭: 신성

▷등급: Z

▶ZZ: 신성한 응징을 행사한다. (0%)

▶Z: 아무튼 신성하다.

▷SSS: 경배받는다.

▷SS: 신성한 반사를 행사한다.

▷S: 일반속성 공격을 무시한다.

▷A: 찬양한다.

▷B: 마기를 정화한다.

▷C: 신성한 방어를 행사한다.

▷D: 축복한다.

▷E: 마기를 견뎌낸다.

▷F: 신성한 공격을 행사한다.

뜻하지 않은 죽음의 위기.

나는 심장이 떨리는 와중에도 빠르게 상황을 분석했다.

상대의 능력치에는 ‘마기’와 ‘신성’이 없었다. 마검과 성검 같은 특수속성 무기도 없었다.

그가 나에게 피해를 줄 수단은 전무(全無).

‘아니, 꼭 그렇지도 않군.’

스킬 기력의 Z등급 효과는 몰라도 SSS등급까진 알고 있다. 그렇기에 현재로썬 무시해도 괜찮다.

문제는 Z등급의 침투(浸透).

원래 이 스킬은 방어기지나 보안시설 같은 출입금지구역을 은밀하게 침투하는 용도의 보조계열에 속한다.

하지만 등급이 높아지면, 장소와 물건을 넘어서며 그 영역이 대폭 넓어진다.

생물의 몸에 침투한다는 식으로.

스킬 ‘관통’의 영역에 살짝 걸치는 셈이다.

“난적임은 틀림없지만, 이 또한 수련의 일환이겠지.”

나를 바라보면서 피식 웃는 왕자.

그가 아직 여유를 잃지 않은 것도 침투Z의 효과 때문일 것이다.

“수련이 아니라 네 제삿날일걸?”

나는 왕자를 도발하면서 이번에는 먼저 움직였다.

왕자에게 Z등급 스킬이 2가지 있지만, 침투는 순수전투가 아닌 보조계열 스킬이다.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나에게는 마스터 몰랑의 가르침이 있었다. 그 육체의 견고함은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섰다.

신성은 치트키로 취급되는 최강의 스킬이고.

즉, 내 방어력은 왕자의 공격력을 한참 뛰어넘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첫 공방에서 내가 패배했을 것이다.

하지만 왕자는 아직 이걸 눈치채지 못 챘다.

부우웅-

나는 허리춤에 꽂아둔 나무몽둥이를 뽑아서 휘둘렀다.

초심자의 방에 배치된 목각인형의 것을 빼앗았을 때까지만 해도 잠깐 쓰고 버릴 계획이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손맛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점차 내 성스러움으로 강화됐다.

여태 안 부러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느리군.”

왕자의 핀잔이 들렸다.

“나도 알아!”

바로 받아친 나는 나무몽둥이를 그대로 휘둘렀다.

이에, 입가를 슬쩍 올리며 비웃음을 머금은 왕자의 주먹이 내 왼쪽 가슴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허술해.”

“나도 알아!”

빠각! 번쩍!

내가 왕자의 머리를 노리고 작두처럼 수직으로 내리그은 나무몽둥이는 왼쪽 어깨에 적중했다.

반면, 왕자의 주먹은 정확히 내 왼쪽 가슴을 때렸다.

정황만 보면 내가 압도적인 손해.

하지만 그 결과는 달랐다.

왕자의 왼쪽 어깨는 부러지면서 왼팔이 덜렁거렸지만, 내 왼쪽 가슴은 옷이 찢어지고 살짝 멍이 드는 선에서 멈췄다.

“큭! 어, 어떻게- 컥?!”

눈을 크게 부릅뜨며 당황하는 왕자의 머리통을 이번에야말로 나무몽둥이로 후려쳐줬다. 기습이라서 그 위력은 약했지만, 뇌진탕을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나도 알아!”

내 몸이 튼튼하다는 것쯤은 아주 잘 안다.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내가 좋아하는 싸움법이며, 숙련된 기교랍시고 깔짝깔짝 회피하면서 공격하는 얌체족들을 상대로 굉장히 효과적이다.

이 왕자처럼 방심하는 녀석에게도.

퍽, 퍽, 퍼벅, 퍽, 퍽…!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나는, 비틀거리며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려는 왕자를 끊임없이 따라잡으며 몰아붙였다.

정신 못 차리도록 머리통만 노골적으로 노렸다.

이건 규칙과 예의를 지키는 스포츠가 아니다. 상대가 영원히 재기불능에 빠져도 뭐라고 비난할 사람 하나 없다.

“커엌~?!”

왕자의 잘생긴 얼굴이 케첩으로 가득해졌다.

드높았던 콧대는 겸손해지고, 굵직한 입술은 립스틱을 바른 것처럼 새빨갛게 변했다.

간신히 뜬 그의 두 눈은 초점이 잡혀있질 않았다.

이제, 완벽하게 마무리할 차례다.

▶당황: 저기, 강한수 생도님? 지금은 이것저것 심문해야 할 타이밍 아닌가요…?

불쑥 튀어나온 교생 아가씨가 재미없는 제안을 하네.

그러다가 도망치면 책임질래?

▶부정: 아뇨! 참견해서 죄송합니다!

나도 말로는 다 이겼다는 듯이 우쭐대긴 했지만,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원인불명의 현상 때문이다.

‘대체, 왜 안 죽는 거야? 왜! 왜!’

이미 한참 전에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몸인데, 왕자는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다.

나는 그의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를 여러 번 부러트렸다. 그래도 왕자는 죽질 않았다.

기력Z에 그런 효과가 있는 건…. 음?

척, 철컹철컹.

착, 철컥철컥.

바로 그때, 어두컴컴한 수련장 천장에서 떨어진 강철인형 5기가 눈치 없이 내게 돌격해왔다.

이대로 혼전이 되면 왕자를 놓칠지도 모른다.

“그럴 순 없지!”

덥석. 우드득.

나는 왕자의 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미 몇 번째 부러트리는지 세는 게 무의미할 지경.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부러진 척추와 근육이 재생하지 못하도록 손아귀의 힘을 유지하면서 계속 압박했다.

“끄윽…?!”

탁탁.

호흡곤란으로 얼굴이 새파래진 왕자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면서 발악했지만, 나는 계속 그의 목을 조여갔다.

그러면서 둔기처럼 휘둘렀다.

철컹?!

철컥?!

얻어맞은 강철인형들이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내 능력이 완전했다면 아주 박살을 내줬겠지만, 레벨과 스킬이 봉인된 현재로썬 저것들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종족: 아이언 골렘

▷레벨: 1

▷직업: 창기병(승마=창술↑)

▷스킬: 창술A 내성B 마기C 금강D

▷상태: 광폭, 강화

스킬 하나 없는 순수한 1레벨로 이딴 인형들을 5기나 쓰러트리란 건 억지다.

하지만 그렇기에 ‘초월자의 방’이라고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초월영역 스킬이 필수란 의미.

우드득- 푸직!

마침내, 왕자의 목이 완전히 절단됐다. 머리통과 몸통이 완전히 분리되면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훨훨 날아갔다.

그 뒤, 나는 강철인형 5기에 집중했다.

“싹 다 뒤져버려!”

뭉개져도 깡통처럼 버티는 강철인형들은 끈질겼다. 비겁하게 협공까지 해오니 열불마저 났다.

하지만 내 성스러움도 그들 못지않았다.

번쩍! 번쩍!

악마처럼 마기를 품은 강철인형의 내부에서 내 신성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면서 강철의 몸이 은박지처럼 갈기갈기 찢겼다.

물론, 나도 녀석들의 C급 마기를 완전히 무시할 순 없었다. 저들이 내지른 창 공격은 신성으로 무시하거나 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투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철컹.

마지막 강철인형이 쓰러졌다.

“자…. 그러면, 음?”

왕자의 시체를 찾던 나는 당혹스러웠다.

저 구석에 처박아둔 왕자의 대갈통이 어디로 사라진 걸까?

해답은 출입구 쪽에 있었다.

“현시대 용사는 들어라!”

확실하게 죽여놨던 왕자가 부활한 모습으로 내게 호기롭게 외쳤다. 하지만 초췌해진 얼굴은 그의 상태가 멀쩡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살아났지?”

“여기는 원래 그런 장소다.”

“...그렇군.”

안 죽어봐서 몰랐다.

“내게 준 수모. 절대로 잊지 않겠다. 수련의 방 밖에서 다시 만나면 그때는 절대 가만두지 않- 크어엌!?”

으드득.

내게 삿대질하던 왕자가 허리를 부여잡으며 절규했다.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

저기도 습관적으로 참 많이 부러트린 부위다. 이 수련장의 부활도 고질적인 허리디스크는 어쩌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면 내 시술이 그만큼 완벽했던가!

허리를 지탱하듯 손을 얹은 왕자는 쩔뚝거리며 방의 출입구로 도망쳤다.

나는 그를 뒤쫓지 않았다.

할 수 없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밖에서 만나면 내가 확실히 불리해.”

내가 이길 수 있었던 건, 왕자가 일반속성 공격밖에 할 수 없었던 게 가장 컸다.

수련의 동굴 밖으로 나간 그가 스킬을 전부 회복한다면 마기나 신성을 분명히 품고 있을 터.

그러면 내 이점이 사라진다.

진짜로 죽을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강철인형은 5기를 파괴한 이후부터 더는 출현하지 않았다.

그 대신,

짤랑짤랑!

어김없이 방을 지키는 보스가 등장했다.

보스는 내가 좋아하는 금화 소리를 내면서 위협적으로 돌격해왔다.

능력치가 아주 무시무시했다.

▷종족: 골드 골렘

▷레벨: 1

▷직업: 수호자(수호→피해↓)

▷스킬: 수호SSS 검술A 면역A 체력A

▷상태: 흥분

일명, 황금인형.

이 보스는 아무도 여길 통과하지 못하게 막으려고 배치해둔 것 같았다. 스킬의 등급이 지나치고, 직업이 수호자인 것도 수상했다.

하지만 나는 피식 웃었다.

왜냐하면,

캉-! 번쩍!

나를 황금의 칼로 찌른 보스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스킬에 마기나 신성이 없고, 왕자처럼 편법으로 뚫을 수단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보스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짤랑짤랑?!

하지만 이 보스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내게 덤볐다.

놈이 가만히 있었다면 SSS등급 수호를 뚫을 수단을 가지지 않은 나로선 난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스는 알아서 자멸해줬다.

반사에는 ‘수호’의 피해감소도 발동하지 않았다.

짤랑! 드르륵!

황금의 검으로 부지런히 칼질하던 보스가 끝내 쓰러지고, 다음 방으로 향하는 입구가 열렸다.

[졸업자의 방]

이름부터 의미심장했다.

방 안에는 인형 대신 요정 1마리가 있었다.

“환영합니다, 용사님!”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귀하게 꾸민 미모의 여사제가 빵긋 인사해왔다.

그런데 그녀의 첫 대사가 무척 거슬렸다.

“귀여운 척하지 마라. 죽인다.”

환영한다면서 입구에 흉흉한 인형들을 잔뜩 배치했다.

누구처럼 참 뻔뻔하지 않은가?

“귀여운 척은 제가 아니라- 어흠. 아무튼,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용사님께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6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