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화
[6회차] 캡틴 판타지
“위대한 용사님. 5기의 골렘은 땅, 불, 바람, 물, 마음. 정령이랑 같은 5가지 속성을 각각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합체함으로써 각 속성의 약점은 사라지고 마법 공격에 면역이 됩니다. 또한, 각기 다른 속성의 마법 대포는 상황에 맞춰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굉장하지 않습니까?”
현자의 설명이었다.
“5가지 속성이라...”
“그렇습니다.”
“신성과 마기가 빠졌네.”
“송구하게도 그 두 속성은 실패했습니다. 무분별하게 날뛰는 마기는 정제하기가 너무 어려웠고, 그 실존마저 불확실한 천사들의 신성은 아예 구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래?”
웃음이 절로 나왔다.
신성을 구할 방법이 없다고?
나는 현자에게 슈퍼로봇 소유권을 넘겨받자마자 신성과 축복을 최대로 부여했다.
파아앗!
▷종족: 엘리멘탈 골렘
▷레벨: 900
▷직업: 수호자(수호→피해↓)
▷스킬: 근력SS 맷집S 신성S 수호S 화염S…
▷상태: 몸통, 합체, 축복
신성을 흡수한 5기의 골렘은 따로따로 성장했다.
그 까닭에 변신&합체가 끝난 슈퍼로봇의 능력치는 레벨과 스킬이 통합 비슷한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종족: 울트라 골렘
▷레벨: 999+
▷직업: 수호신(수호→가호↑)
▷스킬: 근력SSS 맷집SS 신성SS 면역SS 수호SS…
▷상태: 합체, 축복
여기에 마기까지 담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반발을 일으키는 바람에 거기까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이미 현 능력치만으로도 마왕 페도나르 빼고는 다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자가 경고하듯 말했다.
“이 골렘의 성능은 판타지아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유례가 없을 만큼 우수하지만, 그만큼 마력을 많이 소모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용사님이라도….”
“현자야.”
“넵.”
“용사의 마력은 무한하다. 절 새겨들어.”
“켁! 그건 사기 아닙니까?!”
“괜히 용사님이겠니? 잘 보라구.”
내가 용사 페스티벌에서 성녀H로 얻은 스킬 ‘무한’에는 등급하락을 막는 효과가 있다.
신성, 마기, 체력, 마력, 기력, 내력….
이런 자원계통 스킬은, 자원이 고갈된 후에 휴식을 취하지 않고 계속 쥐어짜면 등급이 하락해버린다.
하지만 나는 이 굴레에서 완벽하게 해방된 셈.
슈우우우-
가진 마력을 몽땅 때려 박았다.
마력E→마력C
고양이 거인을 쓰러트리면서 얻게 된 쥐꼬리만큼의 마력. 그것이 골렘의 동력을 충전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두 천재가 특별제작한 최고의 골렘 5기를 합친 탓에 필요로 하는 동력도 5배!
평범한 골렘의 50배에 달했다.
그래서 빨아들이는 마력의 양도 엄청났다.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이 시점에 마력고갈로 폐인이 됐을 터. 하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마법과 마술을 쓸 줄 모르는 내가 마력 등급만 쭉쭉 상승했다.
그렇게 등급이 상승함에 따라 한 번에 공급할 수 있는 마력의 양도 부쩍 늘어났다. 아무리 마력이 무한하더라도 매초 쥐어짤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그 최대치가 늘어난 것이다.
“맙소사….”
마력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자는 그걸 육안(肉眼)으로 보고 이해했다. 그리고 부르르 몸을 떨며 전율했다.
하지만 모두가 놀란 건 아니었다.
나는 똑같이 마법사임에도 어리둥절한 표정만 짓고 있는 누추한 여동생을 불렀다.
“라누벨.”
“네, 왕자님!”
“그냥 용사님이라고 불러. 그리고 귀여운 척하지 마라.”
“용사님! 라누벨은 자연산이에요!”
나는 그녀의 구차한 변명 따위 무시하고 이어서 말했다.
“내가 암흑상회랑 최근에- 6년 전에 거래했던 최초의 용사 정보는 어떻게 됐어?”
고양이의 저주로 내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무산되긴 했지만, 골렘D의 설계도를 원했던 암흑상회라면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딘가에 그 정보를 수집해서 보관해뒀을 터.
“에…. 그러니까….”
“......”
“라누벨은 전혀 모르겠어요.”
“참 자랑이다!”
처음부터 라누벨에게 기대하지 않기를 잘했다.
마력C→마력A
슈퍼로봇의 거대한 마력탱크에 마력이 꽉 찼을 때쯤, 스킬 마력이 A등급까지 성장해 있었다.
여기서 더 올리려면 먼저 마력을 소모해줄 필요가 있었다.
즉, 지금부터 실전투입이다.
“가자! 캡틴 판타지(Captain-Fantasy)!”
▶소름: 어여쁜 성녀를 찰떡이라고 부를 때부터 짐작하긴 했지만, 그 촌스러운 이름은 좀….
쯧쯧! 교생 아가씨가 로망을 모르네.
슈퍼로봇의 이름은 직관적일수록 강렬해서 좋은 법이다.
우리는 6회차의 평화를 지배할 것이다.
압도적인 힘으로!
쿠웅- 쿠웅- 쿠웅-
캡틴 판타지는 붉은색 골렘이 몰려있는 곳을 향해 힘차게 달렸다.
등 뒤에 부스터가 잔뜩 달려 있긴 했지만, 그건 나중에 있을지도 모를 공중전에 대비해서 아껴뒀다.
몰려있는 붉은색 골렘의 국적은 다양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암흑상회의 하수인이나 다름없기에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었다.
“다 죽일 연놈들인데 굳이….”
암흑상회는 골렘 시장 독점체제의 최대 방해꾼인 현자의 탑을 2년째 공격하고 있었다. 북대륙의 모든 나라를 동원해서.
하지만 함락에는 실패했다.
대신, 설산M으로 향하는 길을 제외한 세 방위를 포위하고 고립시킴으로써, 현자의 탑에서 생산하는 푸른색 골렘의 판매와 재료공급을 끊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까지는.
이곳은 포위한 전진기지 중 하나였다.
“헉! 저건 대체 뭐야?!”
“엄청나게 크잖아?!”
“현자의 탑에서 괴물 출현-!”
북대륙 연합군이 내 슈퍼로봇을 보고 식겁한다.
“아주 좋은 반응이야.”
이것이 전장의 소음 그리고 냄새.
비실비실한 디자인의 붉은색 골렘보다 신장만 2배 이상 큰 골렘의 머리 위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지상은 실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위이이잉-
몸 곳곳에 스파이크처럼 달린 드릴이 회전을 시작했다.
“전부 파괴해버려! 캡틴 판타지!”
▶화끈: 그 이름은…. 우으….
나의 슈퍼로봇은 적진 한복판을 향해 돌격했다.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유치원생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어른처럼.
하지만 아이를 상대하듯 상냥하진 않았다.
콰광! 펑! 파직! 쾅!
캡틴 판타지의 드릴에 닿은 모든 붉은색 골렘이 줄줄이 분쇄되며 파괴됐다.
골렘만 부서지는 게 아니다.
전진기지 곳곳에 배치된 막사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던 마법사와 공학자, 상인 등도 함께 갈려 나갔다.
“반격해라!”
“적은 혼자다!”
“겁먹지 마!”
내 기습으로 큰 타격을 받은 연합군이었지만, 현자의 탑을 포위 중인 붉은색 골렘은 여전히 많았다.
5, 10, 20, 50, 100, 200….
빠르게 숫자를 불린 그것들이 일제히 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내게는 가소로울 뿐이었다.
번쩍! 콰르르-!
번쩍! 퍼직-!
캡틴 판타지는 신성 S등급과 SS등급 효과로 모든 일반피해를 무시하고 반사했다.
단단한 골렘 외장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려면 마기나 신성이 깃든 특수한 장비로 공격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처럼 자멸하게 된다.
쾅! 콰직! 덜컹!
캡틴 판타지의 다리랑 충돌한 모든 골렘이 돌격하던 기세 그대로 고꾸라졌다.
“하핫! 전탄 발사!”
펑! 펑! 펑! 펑! 펑!
현자가 알려준 5가지 속성의 마법 포탄이 일제히 쏘아졌다. 그리고 화려하게 적진 한복판에서 폭발했다.
그만큼 마력탱크의 마력도 빠르게 고갈됐지만, 나로선 환영할 일이었다.
마력A→마력S
다시 충전하는 과정에서 마력 숙련도가 급상승했다.
하지만 적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
“절대로 물러서지 마라!”
“놈도 마력이 무한하진 않을 터!”
“침착해! 소모전으로 끌고 가!”
북대륙 연합군은 끊임없이 전력을 투입했다.
내가 언젠가 지치길 희망하면서 정말 쉴 틈 없이 쏟아부었다. 그러다가 슬슬 이상하다고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
이미 쏟아부은 전력이 많았으니까.
암흑상회의 특징이다.
성과가 없다면 있을 때까지 재투자하거나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결국에는 이득을 낸다.
그렇기에 연합군은 항복하지 않았다.
전쟁을 멈추지 못했다.
몰살S→몰살SSS
마력S→마력SS
정복F→정복SS
북대륙에 산재한 모든 붉은색 골렘 전력이 파탄 날 때까지.
물론, 캡틴 판타지는 건재했다.
*
전쟁이라고 불리기도 민망한 전쟁이 막을 내렸다.
여전히 다른 대륙에선 치고받고 싸우는 중이었지만, 북대륙은 정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거의 모든 왕국이 항복 의사를 보내왔다.
하지만 나는 항복을 받아주지 않았다.
▶당혹: 왜요?
교생 아가씨가 이상한 질문을 하네.
현재, 북대륙의 정치경제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모든 나라가 암흑상회에 빚을 지면서 무지막지한 세금을 백성들에게 부과한 탓이다.
사람들은 돈 때문에 별의별 짓을 다 했다.
살인, 약탈, 매춘, 협박, 납치….
이렇게 만든 주모자들을 용서한다고?
“안 될 말이지. 전부 사형(死刑)이야.”
댕강! 댕강! 댕강!
북대륙에 산재한 영지와 도시, 마을 등을 순회하면서 왕족과 귀족, 암흑상회 관계자들을 전부 공개처형 했다.
남자, 여자, 아이, 노인, 친척, 이웃….
조금이라도 관련됐다면 예외를 두지 않았다.
그들 중 일부는 억울하다고 외치거나, 무고한 아내와 어린 자식들만은 살려달라고 구걸하는 자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청원들을 전부 기각했다.
어차피 살아남더라도 분노한 백성들에게 맞아 죽을 게 뻔하니까. 여자라면 죽음 위에 끔찍한 경험이 얹어질 뿐.
내가 책임지고 보호한다는 건 더욱 있을 수 없다.
“한쑤 왕자님, 만세!”
“용사님, 감사합니다!”
“흑흑! 고맙습니다.”
처형식을 구경하던 수많은 백성이 눈물, 콧물 질질 짜내면서 나를 찬양해댔다.
평판이 오르는 건 좋은데, 기쁘진 않았다.
거지들의 왕(王)이 된 기분이다.
“현자야. 뒷일을 부탁해.”
그래서 현자에게 맡기기로 했다.
나는 슈퍼로봇으로 활약하고 싶은 거지, 파괴된 나라와 도시, 마을 등을 재건하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자가 늠름하게 대답했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의 하늘 같은 여신님께서 잘 처리하고 계십니다. 용사였던 그녀는 전장에선 용맹하지만, 고요한 서류작업에도 매우 능숙합니다. 물론, 침대에서도- 아웈!”
“당신의 입방정은….”
골렘D의 팔꿈치에 옆구리를 찔린 현자가 맥없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입으로는 헤벌쭉 웃고 있었다.
놀랍게도 코피를 쏟진 않았다.
아름다운 여성이라도 골렘은 괜찮다는 걸까?
그 기준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현자의 호언장담대로다.
골렘D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를 전혀 느끼지 않는 탓에 서류작업 같은 것도 매우 잘했다.
그 안에 깃든 성검3의 영혼이 따분하다고 느낄 순 있지만, 고통받는 북대륙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정의로움으로 충만한 성검3는 가혹한 노동시간에도 불평 한마디 안 했다.
▶흐뭇: 묘하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네요.
성검3가 현자를 동료로 받자고 제안했을 때부터 수상했었다.
살아생전에 아름답고 고결한 용사였다고?
남자에 굶주린 노처녀였을 뿐이다.
▶난감: 그렇게 말씀하실 것까지는….
내가 없는 곳에서 나름대로 활약한 얼음공주도 어느새 ‘왕자비’ 혹은 ‘용사님 마누라’로 사람들에게 불리고 있었다.
“이년이 선동과 날조를….”
멀쩡한 총각을 유부남으로 만들려고 한다.
괘씸죄로 얼음공주의 볼기짝을 날려줄 생각이었는데,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았다. 또 어딘가에서 사람을 얼려버리는 중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북대륙을 정리해갔다.
이번 전쟁을 주도한 암흑상회 심층부까지 쭉...!
우르르 쾅쾅!
번개처럼 떨어진 시커먼 마기가 5기의 골렘을 급습했다.
“캡틴 판타지~?!”
펑! 팡! 풍!
나의 자랑스러운 슈퍼로봇이 폭죽처럼 공중분해 됐다.
신성으로 보호받는다고 자만한 걸까? 적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변신&합체하다가 벌어진 참극이었다.
현기증이 몰려왔다.
“합체하는데 공격하다니!”
로망을 모르는 비겁한 놈!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흥! 내 마음이- 꺄앗?!”
“푸하하하!”
비겁한 놈이 아니라 년이었다. 그런데 품고 있는 마기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심지어 점점 늘어났다.
이건 SSS급 이상인데?
번쩍-!
나는 망설임 없이 신성한 번개를 쏘아서 그년의 예쁘장한 머리통을 쪼개줬다.
음? 생각보다 돌머리였나.
“비겁한 자식! 변신하는데 공격하다니!”
“흥! 내 마음이다!”
▶황당: 묘하게 어울리는 비겁한 커플이네요….
우리의 운명적인 만남은 비겁하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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