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76화 (76/430)

 076화

[7회차] 너는 내 여자니까!

동창A 왈.

지구는 현재 대격변을 맞이했다고 한다.

터무니없이 강한 외계인을 주축으로 한, 발키리라고 불리는 전투용 안드로이드의 대규모 공습 탓이었다.

이때부터 용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아무런 대비가 안 되어있던 초창기에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가 맥없이 당하긴 했지만, 나머지 대륙들은 사랑과 우정의 힘으로 외계인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현재는 발키리 패잔병들을 처리하는 중이라고….

“...그렇군.”

교직원 일동이 강조한 사랑과 우정의 힘이 내 예상보다 훨씬 강했던 걸까?

아니면 그 외계인 집단이랑 ‘최초의 용사’는 별개의 조직인 걸까?

뭐가 됐든 현재로선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나는 굳이 동창A랑 친해지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다. 함께 백룡을 타고 날아가면서 이 친구가 다 떠벌렸기 때문이다.

이게 경쟁심리란 걸까?

동창A의 자기 자랑은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적당히 맞장구쳐주면서 전부 들어줬다. 지구에 관한 정보가 생각보다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동창A의 잡소리 중 절반은 여자친구 이야기였는데, 여사제를 본 직후부터 겸손해지면서 여자 관련된 이야기는 싹 회피했다.

덕분에 유익한 정보로 자동 필터링 됐다.

“내가 버려진 아파트에서 발키리 둘을 어떻게 이겼냐면….

동창A의 전투력은 지구에서 중상위권. 당사자의 주장이기에 자기애(自己愛)와 과장을 살짝 빼면 중위권쯤 되는 것으로 짐작된다.

나는 그의 능력치를 재차 확인해봤다.

▷종족: 아크 휴먼

▷레벨: 588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통역A 체력A 기력B 매력C 검술D 정력D 설교D 협동D 우정E 지력E 보법E 수영E 맷집E 탐색E 정령E 불굴E 회복E 행운F 관찰F 화염F 마력F 내성F 마법F 마술F 친교F 요리F 연애F 색적F 채집F 재련F 휴식F 소환F 창고F 정령F 축복F 냉기F

▷상태: 의욕, 공복, 성검

판타지아 야만인들이 사는 마을이나 도시 어디를 가더라도 맞고 다니진 않겠지만, 흔하디흔한 중급 악마랑 마주쳐도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약한 것도 사실.

능력치 좋다고 말하긴 힘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쓸모없는 동료들 이하다.

본인도 3년을 모험한 경험자이니 그 사실을 모르진 않을 텐데도, 동창A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그 이유를 간단히 말하자면….

부탁해, 교생 아가씨!

▶종족: 아크 휴먼

▶레벨: 734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조련SS 환각S 저주S 개종B 매력E 정력E 세뇌F

▶상태: 양호

오! 교생 아가씨가 일한다!

▶뿌잉: 언제나 일하고 있었거든요! 수련의 동굴은 들어갈 수 없어서 도움이 못 됐지만요!

현재, 남들에게 보이는 내 능력치는 괴상했다.

동창A가 레벨이 부족해도 내 앞에서 나름 어깨를 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스킬 구성이 정말 제멋대로였다.

조합이나 상승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번 회차에서 올린 레벨과 스킬만 표시된 탓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블랙박스를 활성화하지 않았을 때의 얘기.

진실은?

▷종족: 카오스 휴먼

▷레벨: 999+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신성Z 축복Z 마기Z 날조SSS 조련SS 소환S 환각S 저주S 행운A 통역A 개종B 창고C ■■C 매력D 축제E 정력E 무한E 세뇌F

▷상태: 성검, 성녀

블랙박스를 활성화했음에도 은하수의 별처럼 바글바글했던 스킬 숫자가 대폭 줄어들었다. 마기를 Z등급으로 한계돌파 한다고 깡그리 때려 박은 탓이었다.

그래도 중요한 스킬은 다 남겨뒀고, 마기Z를 달성했기에 그다지 미련은 없었다.

여전히 따로 노는 스킬이 있었지만, 그건 사소한 문제다.

“Quuuu-!”

나와 동창A는 백구를 타고 다시 설산M으로 돌아왔다.

없는 사람을 만나러 온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동창A가 옆에 있기에 겉으로 티 내진 않았다.

“강한수, 표정 풀어라.”

“내가 뭘?”

나는 평소의 평온한 표정 그대로다.

“지금의 네 얼굴을 보고 있으면, 마왕마저 선한 캐릭터로 보일 지경이야.”

“말이 심하네!”

“거울을 보고 말…. 헉! 산꼭대기가 왜 저래?!”

얼음공주가 살던 눈 덮인 성채를 본 동창A가 경악했다.

그 마음을 조금 이해한다.

근방에 숨어있던 고양이 거인이랑 내가 싸우면서 이 일대가 싹 초토화했기 때문이다. M자 모양이었던 산등선도 평평해졌다.

성채는….

눈에 파묻힌 돌무더기만 남았다.

쿵!

우리는 일단 그 폐허 위에 착지했다.

내심 찔렸던 나는 동창A에게 슬쩍 제안하는 척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현자의 지팡이부터 구하는 게 어때?”

동창A의 공략대로 얼음공주에게는 그 몽둥이가 효과적이었다. 그러니 현자의 지팡이부터 먼저 구하는 게 어떨까.

무너진 성채 폐허를 두리번거리던 동창A가 오른손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답했다.

“쯧쯧. 모르는 소리. 지팡이를 바로 주면 효과가 떨어져. 우선은 폭주를 제어할 방법이 있다고 설명하면서 얼음공주에게 희망을 심어줄 거야. 그러면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애태우겠지.”

“호오…?”

그런 훌륭한 조련법이…?

동창A가 변변찮은 용사임은 틀림없지만, 그도 졸업자답게 배울 점이 약간은 있었다.

“너도 감 잡은 모양이네. 맞아. 그러니 일단은 얼음공주부터 찾아야 해. 하지만 원인을 모르겠어. 어째서 여기가 이렇게 변했지? 회귀 전에는 안 이랬는데…. 나비효과인가? 한수야. 넌 짐작 가는 거 있어?”

“아니.”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음?

“히익?!”

얼음공주 전용화장실에 숨어있는 인간을 발견했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숨는 바람에 얼굴을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눈보라에 섞여 들려온 간드러진 목소리가 낯익었다.

공주님의 그것으로 가득한 화장실.

전투가 벌어진 성채에서 멀리 떨어진 은밀한 장소였던 덕분에 거기까지 피해가 확대되진 않았던 듯했다.

“한수야, 갑자기 어디 가?”

“무언가를 발견해서.”

동창A의 질문을 어물쩍 넘긴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그곳은 갈라진 바위 틈새였다.

어린아이나 몸매 좋은 여성이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 만큼 폭이 좁았다. 물론, 몸매가 너무 좋으면 끼겠지만.

마왕의 딸 쏘시아처럼?

얼음공주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야. 용에게 아작아작 씹히기 싫으면 당장 화장실에서 나와.”

“히익?! 네!”

나는 바위 틈새에서 낑낑거리며 나온 여성을 찬찬히 살펴봤다.

완전히 거지꼴이었지만, 본판이 워낙 뛰어났던 탓에 누군지 몰라볼 정도는 아니었다.

백색 머리카락과 하늘색 눈동자.

실종됐던 얼음공주였다.

나는 그녀가 내게 아는 척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용사A. 이쪽은 용사B입니다. 그 유명한 얼음공주님이시죠? 앙칼진 흰색 고양이처럼 손톱 세우면, 전부 뽑힐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세뇌F→세뇌E

+공갈F

+협박F

나의 정확한 판단의 성과로 스킬 등급이 올랐다.

그것까진 좋은데, 어째서 내가 하지도 않은 행동의 숙련도까지 덩달아 오르면서 스킬이 생성됐는지는 의문이었다.

물론, 싫다는 건 아니었다.

“강한수! 뭘 발견했다는…. 얼음공주잖아?!”

한 박자 늦게 도착한 동창A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얼음공주가 다 찢어진 치맛자락 끝을 양손으로 우아하게 들어 올리며 공손히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용사님들. 제가 최근에 정체불명의 습격을 받아서 추태를 보였습니다만, 짐작하신 것처럼 얼음공주로 불리는 여자가 맞습니다….”

언월도를 쥔 내 손이 미끄러질 뻔했다.

하지만 그 직전, 얼음공주의 현명한 대답에 기분 좋아진 손이 다시 꺼칠꺼칠해졌다.

“정체불명의 습격이라니…. 짐작 가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동창A가 얼음공주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질문했다.

“전혀요.”

세뇌된 얼음공주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부정했다.

“그렇습니까. 아무튼, 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주님. 제가 공주님의 폭주를 제어할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만 이곳에서 참아주십시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이 용사를 믿어주십시오!”

“저, 정말이신가요?”

“물론입니다!”

얼음공주의 집이 파괴되는 변수가 끼긴 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우직하게 밀어붙인 동창A의 책략은 그럭저럭 먹히는 듯했다.

펄럭! 쿠웅-.

백구도 우리 근처로 날갯짓하며 도약했다.

“히익-?!”

멍청한 백룡을 본 얼음공주가 양팔로 자기 몸을 끌어안은 채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아무리 세뇌됐어도, 용의 주둥이로 세겨진 공포는 간단히 뿌리칠 수 없는 듯했다.

나는 그런 얼음공주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때,

“야! 강한수! 조심해! 아무리 우리 레벨이 높아도 얼음공주의 냉기는 차원이 달라! 스킬에 냉기 저항이 없으면 꽁꽁 얼어붙을…. 어?”

내게 충고하던 동창A가 또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몸이 차갑네.”

나는 언월도를 쥐지 않은 빈 왼손으로 얼음공주의 뺨부터 턱을 거쳐 목을 어루만지면서 짧은 감상평을 내렸다.

핫팩은 무리여도 얼음찜질 대용으로는 쓸만할지도?

물론, 건방지게 냉기를 뿜으면 바로 목을 부러트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폭주하지 않았다.

폭주는 본능.

공포도 본능!

둘 다 본능이었지만, 공포가 폭주를 찍어누르면서 얼음공주를 강제로 안정시켰다.

애초에 그녀를 폭주하도록 했던 고양이 거인을 내가 사냥했기에 누가 더 위인지 판단하는 건 어렵지 않다.

얼음공주는 얌전히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저, 저, 저…!”

뒤편에서 동창A가 삿대질하며 말을 더듬거렸다.

“나의 설득으로 폭주는 제어된 모양이네. 현자의 지팡이는 굳이 필요 없겠는데?”

“말도 안 돼….”

“말 돼. 봐. 얌전하잖아?”

나는 얼음공주를 램프의 요정처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하지만 그녀는 폭주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다리를 꼬면서 음란한 비음이 살짝 들리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넘길 수 있는 사소한 문제였다.

“말도 안 돼….”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넋을 놔버린 동창A. 급기야 이런 말까지 했다.

“강한수! 그 손을 떼! 그녀는 내 거야!”

성검3를 소환한 동창A가 칼끝으로 얼음공주를 가리키며 강한 소유욕을 드러냈다.

나는 그런 친구에게 피식 웃어 보이며 정정해줬다.

“진정해. 그녀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야. 이제 막 처음 만난 여자를 소유하고 말고가 어디 있어? 판타지 야만인처럼 굴지 마.”

“처음? 웃기지 마!”

발끈한 동창A가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얼음공주의 버릇, 성감대, 취향, 비밀….

동창A의 입에서, 긴밀한 관계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여자의 사생활과 부끄러운 비밀들이 줄줄이 폭로됐다.

“어, 어떻게 그걸…?!”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얼음공주의 안 그래도 하얀 피부가 더욱 창백하게 질렸다.

동창A가 씩씩거리며 선언했다.

“너는 내 여자니까!”

쩌적-!

그리고 온몸이 꽁꽁 얼어붙었다.

후천적인 폭주를 넘어선 원초적인 공포.

그 공포마저 뛰어넘은 수치심이 얼음공주를 움직인 결과였다.

“아…. 용사님을 그만….”

“괜찮아. 신경 쓸 거 없어. 자업자득이지.”

회귀란 그런 것이다.

능력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초기화된다.

동창A와 얼음공주가 1회차에서 친구였든 부부였든 회귀한 현재는 남남일 뿐.

지킬 건 지켜줘야 한다.

그런데 감수성 풍부한 여성을 배려하지 않고 저렇게 막 나가면, 심한 꼴을 당해도 할 말 없다.

여자는 매우 섬세한 동물이니까.

슬라임식 변기에 앉을 때처럼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황당: 강한수 생도님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교생 아가씨, 내가 뭘 어쨌는데?

어이없게 탈락한 동창A는 깔끔히 포기했다. 성녀H를 소환하면 손쉽게 부활시킬 수 있지만, 깨어나자마자 또 발광할 게 뻔하니까.

아예 안 건드리는 편이 낫다.

“공주님. 용사B는 신경 쓰지 마.”

“저기, 용사님? 마을에 내려가서 제대로 된 옷이라도…. 못해도 씻을 시간이라도….”

얼음공주가 내게 부탁했다.

“내가 언제 데려간다고 했어?”

“예?”

“발이 없어, 눈깔이 없어? 마을은 스스로 찾아가. 옷도 네가 벌어서 직접 사 입고.”

“그, 그럴 수가….”

우리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다. 동창A가 보채지 않았다면 이렇게 다시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백구야, 가자!”

“Quuuuu-!”

나는 백구를 타고 곧장 마왕의 성으로 진격했다.

졸업의 순간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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