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77화 (77/430)

 077화

[7회차] 용사가 둘!

▶조언: 하루의 실수를 반복하면 잘못이 된다고 해요. 6회차에선 공주님에게 폭력을 행사하긴 했어도 버려두진 않으셨잖아요? 그리고 마법왕국에 주문해놓은 골렘은 어쩌시게요?

교생 아가씨의 지적 하나하나가 무척 예리하게 다가왔다.

반박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끙…. 그래. 오차가 있으면 안 되지.”

6회차의 트리플A를 답습하려면 과정이 틀려선 안 됐다. 하지만 이대로 마왕을 만나면 다른 성적표가 나올 수도 있을 터.

그것만은 피해야 했다.

“백구야, 돌려.”

“Quuu-!”

신나게 중앙대륙으로 날아가던 나는 경로를 선회했다.

다시 돌아온 설산M 꼭대기.

여자의 비밀을 함부로 폭로하다가 꽁꽁 얼어붙은 동창A가 보였다. 그의 옆에는 죽음으로 계약이 해지된 성검3가 떨어져 있었다.

우선, 그것부터 챙겼다.

(처음 뵙겠습니다, 용사님! 검에서 들린 목소리니 놀라지 마세요. 저는 성검에 깃든 고결한 정령입니다. 고대에는 마왕에 맞서 싸운 정의로운 용사였습니다.)

마왕 페도나르의 면상도 못 보고 패배한 용사 주제에 자기소개가 무척 거창했다.

그런데 어째선지 말하는 게 거슬렸다.

그 이유를 몇 초 동안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성검3의 말투가 6회차 때보다 도도해졌다.

(전 계약자가 여성의 비밀을 발설하는 저질스러운 만행을 저질러서 무척 실망스러운데요. 당신은 그러지 마실….)

야생 성검에 마기Z를 주입했다.

(꺄아아앜~?!)

효과는 굉장했다!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용사님. 아니, 주인님. 얌전히 있을 테니 방금처럼 아프게만 하지 말아주세요. 흑흑!)

바로 비굴해진 성검3였다.

그래도 전직 용사인데 근성이 너무 없는 거 아니야?

▶예시: 합성세제와 배설물이 뒤섞인 드럼세탁기에 사람을 넣고 10분 동안 돌린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거라면 어쩔 수 없지!

내가 같은 처지였어도 미쳐버렸을 것이다.

▶충고: 강한수 생도님! 미쳤다는 자기비하는 좋지 않아요. 이미 7년째 신성과 마기가 뒤섞인 몸으로 살고 계시잖아요?

...생각해보니 그렇네?

혼동되지 않는다는 블랙박스 효과 덕분이었지만, 일단은 내가 잘나서 그런 거로 해두자.

이후, 나는 고분고분해진 성검3를 챙겼다.

전생의 애인(愛人)을 도발했다가 얼어 죽은 동창A도 부활시킬지 잠시 고민됐지만, 6회차에서는 다른 용사가 등장하지 않았으므로 변수는 과감히 빼버리기로 했다.

다음은?

“백구야. 공주를 찾아.”

“Quu!”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눈 덮인 새하얀 대지 위에 여자 하나.

나의 도움으로 폭주를 해결한 얼음공주가 처량한 발걸음으로 흐느적흐느적 하산(下山)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예상대로 가장 가까운 마을이었다.

▶궁금: 강한수 생도님. 어떻게 이 방향으로 공주님이 내려갈 줄 아셨어요?

교생 아가씨, 궁금해?

▶긍정: 네! 솔직히 궁금해요!

매우 간단하다.

내 1회차 때,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폭주하는 얼음공주를 처치한 마을이 바로 이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을 기점으로, 폭주 같은 불완전성을 가진 동료들이랑 관계가 극단적으로 틀어졌다.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살인마를 처치하고 마을을 구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당연한 정의로운 행동으로 비난을 받아야 했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아무튼,

쿵!

문제의 얼음공주 곁에 백구를 착지시켰다.

“용사님?!”

화들짝 놀라면서도 무언가를 간절히 기대하는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얼음공주.

탁탁.

나는 백구의 머리를 두드려서 고개를 숙이도록 지시하며 말했다.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타라.”

“네!”

얼음공주가 고마워서 미치려고 한다.

최신형 스포츠카를 몰고 온 오빠에게 뿅 간 아가씨처럼 내게 은근슬쩍 엉기려는 낌새마저 보였다.

내 팔을 가슴골 사이에 끼우려고 한다.

“야. 내 옷에 냄새 배니까, 떨어져.”

“죄송해요….”

먼저 애태운 후에 들어주는 것.

이것이 동창A가 말했던 조련법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쩨쩨한 방식을 굳이 의도적으로 하고 싶진 않았다. 교직원 일동이 졸업장을 빌미로 내게 하는 짓이랑 비슷했으니까.

우리는 설산M에서 마법왕국으로 향했다.

*

마법왕국 왕궁 상공에 백룡이 떡하니 출현하면서 잠시 공황에 빠지기도 했지만, 무난하게 넘길 수 있었다.

국왕이 몸소 인사하러 나왔다.

“용사님은 매번 절 놀라게 하시는군요. 용을 길들이시다니….”

“별거 아닙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모가지 잡고 기억을 삭제하면 끝.

“허허! 겸손하시기까지. 때마침 잘 와주셨습니다, 용사님. 주문하신 골렘이 최근에 완성…. 아닛?! 너는- 설마…!”

내 옆의 얼음공주를 본 국왕이 경악한다.

그녀도 아는 척했다.

“아바마마…. 정정하셔서 다행이옵니다.”

“오오! 나의 딸아…!”

갑작스러운 부녀상봉으로 이어졌다.

어느 나라의 귀한 공주님이겠거니 했는데, 그 나라가 마법왕국이었던 모양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기도 딱 맞아 떨어졌다.

현 국왕이 투병 끝에 붕어하고 동생이 왕위에 오르면서, 설산M에 사는 조카에게 보내던 보급을 끊어버렸다.

굶어 죽을 순 없었던 얼음공주는 산에서 내려왔을 터.

그리고 마을에서 폭주.

1회차에선 내게 토벌됐다.

그래도 보급이 완전히 끊긴 상태에서 용케 1년 넘게 버텼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이네.”

인정해줄 건 인정하자.

제법 괜찮은 근성의 공주님이라고.

“성스러운 용사님! 제 불치병을 치료해주신 거로 모자라서, 반쯤 포기했던 제 딸의 인생까지 구해주시다니….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아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얼음공주랑 감동의 재회를 마친 국왕이 퉁퉁 부은 눈으로 내게 굽실거렸다.

나는 대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괘념치 마십시오, 폐하.”

내게 어떤 보상을 제시하더라도 지구의 현대문물이랑 비교하면 전부 골동품에 지나지 않는다.

거저 준다는 공주도 사양이다.

나는 고향별의 세련된 아가씨랑 연애할 테니까!

거지꼴의 얼음공주는 왕족의 품위 유지를 위해 시녀들에게 끌려가다시피 퇴장하고, 나는 국왕이랑 함께 마법사들의 공방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위대한 용사님!”

“성스러운 용사님을 뵙습니다!”

내 신성이나 마기에 감화된 궁정마법사들이 인사해왔다.

개개인의 실력은 현자의 발가락 수준이지만, 발가락이 뭉쳐서 기적을 일으킬 수도 있다.

바로 지금처럼.

▷종족: 아크 골렘

▷레벨: 930

▷직업: 무녀(미녀→근력↑)

▷스킬: 근력A 금강A 몰살B 마성B 복원B···

▷상태: 소켓, 대기

6회차에서 현자와 잡것이 만들었을 때보다 성능이 우수했다.

이제, 여기에 내가 신성을 불어넣으면 ‘일반공격 면역’이란 치트키가 추가되면서 무쌍을 찍게 되는 것이다.

“용사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것을 가져와라.”

“예, 폐하.”

그러면서 시종이 가져온 주먹 크기의 보석함.

한눈에 진귀한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웬만한 보물에는 눈썹 하나 까딱 안 하던 나조차도 이번만큼은 표정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내게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 탓이었다.

“제 목숨을 구해주신 보답으로 골렘을 제작했습니다. 용의 심장부터 요정왕의 눈물까지…. 정말 기상천외한 재료가 많이 필요했지만, 왕국의 재량으로 전부 가능했던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소중한 딸을 구하는 건 왕국의 힘으로 어려웠습니다. 이것은 그 감사의 뜻입니다.”

제국 시절부터 내려온 국보(國寶)라고 한다.

“이런 미친…. 감사합니다.”

딸을 위해 천고의 보물마저 넘기는 왕의 배포에 찬사를!

국왕이 보석함을 열며 말했다.

“전설에 나오는 최초의 용사를 도왔던 미모의 대마법사는 제 선조이셨습니다. 하지만 하렘의 구성원이 되기 싫었던 선조께선 결혼을 포기하고 작별선물로 이것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호오…?”

그것은 자줏빛의 옥(玉)이었다.

보석으로선 외관적인 아름다움이 다소 부족했다. 하지만 나는 이 돌멩이의 진짜 가치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념이 들려왔다.

(저 음탕한 성녀와 공주를 죽이고 싶어!)

(나만 봐! 주위의 멍청한 여자들은 무시해!)

(어째서 내 진심을 몰라주는 건데?)

(사랑은 마법 같은 거야. 안녕.)

마법왕국 국왕이 언급했던 선조의 목소리일까? 그것은 뜨거운 사랑이 차가운 증오로 바뀌는 변천사였다.

그야말로 변덕스러운 마법처럼.

■■C→■■B

나는 스킬 등급만 오르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종류: 스킬

▷명칭: ■■

▷등급: B

▷A: □□□ □□□□□.

▷B: 대상을 파멸시킨다.

▷C: 대상을 망각시킨다.

▷D: 혼동하지 않는다.

▷E: 파괴되지 않는다.

▷F: 망각하지 않는다.

판타지아 세계에서 가장 마법이 발전하고, 북대륙을 통일한 전적도 있었던 나라가 현재처럼 초라해진 이유.

바로 이 국보가 원흉이었다.

왕족들이 국보의 영향으로 ‘파멸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국왕의 불치병, 얼음공주의 폭주, 아둔한 왕자….

선조가 민폐를 끼친 셈이다.

“기가 막히는군….”

쏙! 쏙!

나는 아직 영혼 없는 골렘의 입술을 벌려서 국보를 먹이고, 삽입하기 좋게 벌어진 소켓에 성검3를 꽂았다.

이것으로 마무리 단계까지 완료.

용사의 영혼이 깃든 골렘이 눈을 떴다.

▷종족: 카오스 골렘

▷레벨: 930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신성SS 파괴SS 혼돈SS 근력S 금강S···

▷상태: 성검, 종속, 양호

슈퍼로봇보다 한참 약하게 생긴 주제에, 능력치만은 대천사의 뺨따귀도 날릴 만큼 높았다.

소프트웨어 탓인지 직업도 ‘용사’로 바뀌고….

나는 종속계약을 바로 실행했다.

“내 눈을 바라봐. 내가 누구지?”

“저의 주인님이세요!”

육체가 생겼다고 감동하던 성검3가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골렘 주제에 표정도 다채로웠다.

“그럼 어디….”

나는 성검3의 소환을 해제했다.

용사는 성검을 2자루 이상 소유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성검을 보유한 골렘을 소유하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바로 나왔다.

▷종족: 카오스 휴먼

▷레벨: 999+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신성Z 축복Z 마기Z 날조SSS 조련SS···

▷상태: 성검, 성녀, 골렘

상태에 ‘골렘’이 추가됐다.

용사가 용사를 소유하는 버그 같은 상황이 발생했지만, 애초에 그걸 노린 실험이었기에 대만족이었다.

준비가 끝났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가볼까?”

“용사님! 잠시만요!”

시녀들의 도움으로 빠르게 씻고 꾸민 얼음공주가 이쪽으로 달려오며 애타게 외쳤다.

촉촉하게 젖은 피부와 머리카락, 얇은 원피스….

연출은 제법 괜찮았다.

“왜?”

“하룻밤만이라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이스팩을 하루 동안 이용해준 후, 백구를 타고 마왕의 성으로 돌격했다.

이번에는 교생 아가씨도 막지 않았다.

*

마왕의 성만 벌써 5번째 침투했다.

본의 아니게 성의 구조를 완벽하게 꿰차고 있던 나는 정문을 통하지 않고 상공에서 과감히 뛰어내렸다.

콰앙-!

“선택받은 용사여! 정중한 노크까진 기대하지 않지만, 들어오라고 만들어둔 문은 이용해주는 게 예의 아닌가!”

천장을 부수고 들어온 내게 마왕님이 핀잔 줬다.

“지금 그게 중요해?”

촤아아아-

나는 초월영역에 도달한 칠흑색 마기를 온몸으로 뿜어내면서 마왕의 퍼포먼스를 흉내 냈다.

내 의도를 눈치챈 마왕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모든 마(魔)의 정점인 짐에게 마(魔)로 도전하다니! 선택받은 용사여. 사랑과 우정의 힘을 포기하고 마기를 선택한 게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이지 똑똑히 가르쳐주겠다!”

“그런데 쏘시아는?”

마왕보다 그 비겁한 년이 더 신경 쓰였다.

“...어떻게 그 아이의 이름을 알지? 설마, 그렇고 그런 사이인가? 짐이 모르는 사이에 벌써…. 용사여! 짐의 여식이랑 무슨 관계인가? 헉! 벌써 아이가 생긴 건 아니겠지? 딸인가? 아들인가?”

속사포로 내게 질문을 던지는 마왕 페도나르.

쏘시아가 이곳에 없음을 확인해줬다. 있었다면 당사자를 불러서 직접 물어봤을 테니까.

이것으로 변수는 없었다.

“소환. 깡통.”

성검3를 보유한 골렘D를 소환했다.

▶원망: 이렇게 아름다운 안드로이드에게 깡통이라니요….

교생 아가씨. 사소한 이름은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용사가 둘이면 마왕의 페널티가 어떻게 적용돼?

▶당황: 그, 글쎄요? 저도 처음 겪는 일이라서….

곤혹스러워하는 교생 아가씨.

어째서 모르냐고 핀잔줄 것도 없었다.

이미 그 결과는, 레벨이 더 하락한 후유증으로 휘청거리는 마왕 페도나르를 보면 알 수 있었던 까닭이다.

“용사가 골렘이라고…?”

갑자기 둘이 된 용사에 경악하는 마왕님.

나는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6회차 같은 굴욕적인 실수를 반복하긴 싫었으니까.

“간다!”

“네, 주인님!”

이것은 우정과 사랑의 힘이 아니다.

적의 약점을 분석해서 정확하게 찌른 과학의 힘.

푹! 푹!

“커억-?!”

성검2와 성검3가 마왕 페도나르의 몸을 꿰뚫었다. 6회차처럼 페널티가 약해지지 못한 그는 나의 상대가 못 됐다.

▷용사님. 모험은 즐거우셨나요?

흠. 아주 조금…?

▷진정한 용사의 길은 실로 험난합니다. 하지만 꿈과 희망을 잃지 않은 당신을 응원해준 수많은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우정과 사랑을 배우며 함께 성장한 당신은 마침내 사악한 마왕을 처치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금부터 성적을 알아볼까요?

마침내, 지구로 돌아갈 때가 됐다.

7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