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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83화 (83/430)

 083화

[?회차] 잠깐!

비행기사고로 망망대해에 떨어진 나와 빅토리아가 구조된 배는 해상도시에서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고급유람선이었다.

하지만 유람선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외계인의 침공이 가시화되면서 안보의 중요성이 대두된 현재, 세계적인 투자가 이루어진 해상도시의 유람선은 군함에 필적하는 방공능력을 자랑했다.

그런데도 상태가 썩 좋지 못했다.

“강한수 씨.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에요.”

“또 뭐가 있는데?”

“태평양 연안의 항구도시들은 현재 미증유의 자연재해로 비상사태예요. 다행히 도시에 상주하는 용사들이 마법으로 해일과 지진, 화산재 등을 막아서 큰 피해는 없었지만요.”

“그래?”

지구도 제법 능력 있잖아?

“하지만 해상도시가 큰 타격을 입었어요. 재난대비를 해둔 덕분에 인명피해는 적었지만, 생산공장이 침수되고 기기도 파도에 휩쓸리거나 방전돼서 그 피해 규모가 상상을 초월해요.”

“사람이 안 다쳐서 다행이네!”

사람 목숨이 우선이다. 나머지는 사소한 문제다.

“전혀 없지는 않았어요.”

“없어서 다행이야.”

“아니, 그러니까···. 에휴! 됐어요.”

바다는 조금씩 잠잠해지고 있었다. 해저에서 솟구친 화산이 아직 날뛰고 있지만, 그것도 언젠가 지나가리라.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1년 반 만에 돌아온 지구는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털썩.

나는 난파선 갑판 위에 엉덩이 깔고 앉았다. 지금부터 이 날개를 어떻게든 처리하기 위해.

생김새는 천사와 악마의 날개하고 전혀 달랐다. 마왕의 딸이 보여줬던 공상과학 느낌의 에테르 날개도 아니었다.

좀 더 원초적인 미학을 담고 있었다.

“강한수 씨.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등에 돋아난 그 징그러운 날개는 뭔가요?”

빅토리아가 옆에 쭈그려 앉으며 물었다.

저걸 질문이라고 하는 걸까?

“본인 입으로 날개라고 해놓고 뭘 물어?”

“그, 그건 그렇지만···. 에이씨!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요? 물어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입술을 빼죽 내밀며 불만을 표시한다.

옆에서 귀찮게 하는 그녀의 촉촉하게 젖은 목을 실수로 부러트리고 싶었지만, 이 난파선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기에 참았다.

그렇다면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 텐데···.

나는 10초 고민한 후에 말했다.

“전투력 SS급 용사만 받을 수 있는 전용 날개야.”

컴퓨터게임에서 착안했다.

업적 시스템.

힘든 업적을 세우면 특별한 보상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플레이어들에게 동기와 의욕을 부여하는 상술.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변명치고 그럴싸했다.

내 말을 들은 빅토리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전투력이 SS급이라고요?!”

“그래. 궁금증이 풀렸으면 좀 떨어져. 날개에 찔려서 잘못된 후에 책임지라고 하지 말고.”

“괜찮아요. 제 몸은 겉보기랑 달리 튼튼···. 어?”

날개 곳곳에 돋아난 뿔을 손가락으로 톡톡 찌르며 미소 짓던 빅토리아의 표정이 굳었다.

톡톡 찌른 손가락에 구멍이 생겼다.

곧바로 쏟아지는 붉은 피.

창백하게 질린 빅토리아는 바로 후다닥 물러나서는 허리춤에 매달린 붉은색 약병을 열고 손가락에 약물을 뿌렸다.

스르륵···.

빠르게 지혈되며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그러나 금세 다시 벌어졌다. 아무래도 회복을 방해하는 저주 비슷한 효과가 뿔에 있는 모양이다.

“이, 이건 대체···.”

빅토리아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약물을 추가로 사용했다. 구멍 난 손가락에 뿌리고 바르고, 일부는 마시기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어찌어찌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나는 날개에 집중했다.

마스터 몰랑의 가르침으로 내 신체 내부를 관조할 수 있기에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갈비뼈에서 파생된 건가? 흠···.”

마찬가지로 등에 날개가 달린 종족인 천사와 악마는 아예 ‘날개’라는 새로운 기관이 추가된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내 날개는 달랐다.

덧니처럼 돋아난 갈비뼈가 등에서 튀어나와 변형된 것이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보면 ‘원시적인 날개’라고 할 수 있었다.

몇몇 동물을 예로 들자면,

새처럼 날 수 있는 유일한 포유류인 박쥐의 날개는, 물갈퀴처럼 생긴 손가락이 길어진 것이다.

바다에 사는 날치도 비슷하다. 한 번에 최장 40초, 400m를 비행할 수 있는 이 물고기도 가슴지느러미가 날개처럼 커진 것이다.

내 등의 날개도 비슷했다.

촤라락.

3쌍의 골격을 모아서 우산처럼 접을 수 있었다. 이건 전투 중에 몇 번 움직여보면서 깨우쳤다.

하지만 이 뒤부터가 문제였다.

이런 상태로는 평범한 상의를 입을 수 없었다.

“으아···. 그것만은···.”

천사와 악마의 복장을 떠올린 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여성은 그나마 낫다.

등이 확 트인 드레스나 앞치마는 매력적인 등의 라인을 강조해주는 하나의 패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은?

아예 상의를 안 입는다면 모를까, 앞만 가리고 등판은 내놓는 복장은 변태로 몰리기 딱 좋다.

그래서 천사와 악마 남성들은 상의를 입지 않는다. 아니면 등의 날개를 상정하여 특수제작된 옷만 입는다.

“강한수 씨. 뭐하고 계세요?”

“말 걸지 마. 심각하다.”

천사와 악마의 날개는 ‘소환’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소환을 해제하면 날개가 등에서 사라지고, 인간처럼 등을 바닥에 바짝 붙이고 누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갈비뼈를 소환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은가?

“혹시···. 날개 때문이세요?”

“아니.”

“솔직하지 못하시네요.”

“아가씨. 말이 많아서 짜증 난다는 소리를 자주 듣지 않아?”

“말 걸어주면 좋아하던데요.”

빅토리아가 우쭐대듯 대꾸했다.

“헹! 좋아하는 척하는 거지. 솔직하게 말했다가 무슨 불이익을 당하려고? 승진이 멀어지고 심하면 회사에서 잘리거나 한직으로 쫓겨날 짓을 누가 하겠어.”

“너무해! 저는 절대 그러지 않아요!”

“봐봐. 내가 몇 마디 했다고 바로 욱하잖아. 직원이었으면 벌써 해고라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을걸.”

“그거야 당신이···. 아우! 됐어요!”

대화를 나누면서도 나는 날개를 감출 방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뚝.

날개를 뽑으면 된다는 것이다.

뭔가 좀 무식한 해결책 같았지만, 내 신체구조를 차근차근 조사해본 바로는 전혀 문제없었다.

피도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애초부터 쉽게 뽑히도록 설계된 날개였던 까닭이다.

그리고 내 몸에서 떨어진 날개는 빠른 속도로 파괴됐다.

후두두둑···.

연골 비슷한 거로 연결됐던 골격의 마디마디가 끊어지며 해체되고, 해체된 뼛조각들은 분필처럼 쉽게 바스러졌다.

날개의 피막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만적인 외계인들의 칼질과 마법에도 끄떡없었는데, 몸에서 분리되자마자 휴지처럼 쉽게 찢어졌다.

“진리는 가까이에 있었군?”

등에서 날개를 감추지 않고 아예 뽑아버린다!

이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강한수 씨. 버려도 괜찮으시겠어요? 무려 SS학점을 받아서 얻은 특별한 날개잖아요.”

“...지금, 내 걱정을 해준 거야?”

나는 빅토리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 그러면 안 되나요? 동물원에서 코끼리의 짝짓기를 목격하고 충격받은 조카랑 비슷한 표정으로 절 보시는 이유가 뭐죠? 제가 그렇게 충격적으로 생겼나요?”

“어.”

솔직히 충격적이다.

“이럴 때는 빈말이라도 부정해주세요!”

“하지만 너무 충격적이잖아? 혼자서는 마왕의 애완동물조차 못 이기는 아가씨가 나를 걱정해준다는 게.”

“하면 안 되나요?”

“그럴 시간에 자기계발이나 해.”

나는 그렇게 성장해왔다. 지금도 그렇고.

정신을 집중했다.

쭈욱!

그러자 등에서 죽순처럼 새로운 날개가 돋아났다.

3쌍의 골격이 길어지고 피막이 생기며 완전한 형태를 이루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0초. 소환하듯 눈 깜짝할 사이에 뺄 순 없었다.

준비가 좀 필요한 날개였다.

“흐음···.”

날개를 생성한 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강한수 씨. 또 표정이 심각해졌는데, 새 날개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셨나요?”

“...인산칼슘이 부족해.”

날개의 골격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네?”

“당장 멸치라도 씹지 않으면 골다공증(骨多孔症)에 걸릴 것 같아. 배 안에 먹을 것 좀 있어?”

이 날개는 등가교환(等價交換)의 법칙을 준수했다.

*

호화유람선답게 레스토랑에는 먹을 게 풍성했다.

언젠가 지구로 귀환하면,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맛없는 된장찌개부터 맛보겠다던 다짐은 그냥 단념했다.

당시에는 참 멋진 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기분 탓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레스토랑에서 날개 형성에 소모된 영양분을 보충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테스트도 해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날개를 3번 재생성하면 뼈가 수수깡처럼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건 앞으로도 주의가 필요해 보였다.

“완전히 어린애 입맛이시네요.”

“시끄러워.”

“후후♪”

나도 판타지아 대륙에서 지구의 요리를 재현해내려고 몇 차례나 시도해봤었다.

하지만 나는 음식점에서 돈 주고 먹을 줄은 알아도, 직접 요리하는 방법은 전혀 몰랐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케첩과 마가린, 간장, 된장, 데리야키 만드는 방법 같은 걸 가르쳐주지 않고, 시험에도 출제하지 않는다.

안 배운 걸 어떻게 알아?

요리법은 지구로 돌아가면 반드시 배워두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막상 돌아오니 그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다시 판타지아 차원으로 갈 것도 아니잖아?

예전처럼 다시 사 먹거나 집에서 해주는 밥을 먹으면 된다. 굳이 내가 요리를 배울 필요는 없었다.

“...기분 나쁘게 왜 자꾸 웃어?”

팩토리아는 아까부터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당신 옆에 있으니, 어째선지 판타지아 대륙으로 다시 돌아온 기분이 들어서요.”

“끔찍한 소리를 쉽게 하네!”

나는 그 때문에 잠도 못 자는 중이다.

괜히 잠들었다가 또 납치되어 “오빠! 얼른 일어나! 얼른~”이러면서 여동생 버전 라누벨이 나를 흔들어 깨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무서웠다.

“강한수 씨는 그립지 않나요?”

“전혀.”

현지민보다 더 빠삭하게 안다는 모욕도 들었었다. 다시는 그 지긋지긋한 세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저는 이따금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라요. 귀여운 라누벨, 친절한 알렉스, 아름다운 실비아, 순수한 아쿠아, 근엄한 현자님···.”

“그래···?”

내가 아는 차원이랑 이름만 같은 곳을 다녀온 모양이다.

“마왕을 쓰러트리면 지구로 돌아올 수 있다고 어렴풋이 느끼긴 했어요. 하지만 선택은커녕 작별인사조차 못 할 줄은···. 이럴 줄 알았다면 토벌을 서두르지 않았을 거예요.”

“...나도 마찬가지야.”

정말로 이름만 같은 차원인가?

나는 서둘렀음에도 10년이나 걸렸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리우시죠?”

“미쳤냐?”

“후후♪”

나는 추억에 빠진 팩토리아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줬다. 그러면서 그녀가 아는 정보를 종합해봤다.

졸업생들은 교직원 일동의 존재를 자세히 몰랐다.

판타지 신이 보낸 ‘천사’쯤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용사 페스티벌에서 경험해본 진짜 천사는 닭대가리 같은 양아치 종족이지만, 초등교육과정에선 제대로 등장하지 않기에 나머지 졸업생들은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다지 건질 내용이 없었다.

“빅토리아 이사장님! 여기 계셨군요!”

“인양선이 막 출항했다고 합니다.”

“사장님. 선장님이 급히 찾으세요.”

“이번 사태로 주식이 출렁거립니다!”

난파선에는 우리 외에도 수백의 승객과 승무원이 타고 있었다.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을 무시하고 갑판 선수(船首)에서 타이타닉 흉내를 낸 커플이 실종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지만, 기분 탓일 것이다.

팩토리아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그녀 밑에서 일하는 관계자도 있지만, 태평양의 제3 해상도시 총괄이사장인 그녀를 만나러 유람선을 탔다가 엉뚱하게 마주친 사업가와 정치인도 적지 않았다.

나는 그 혼란을 틈타서 슬쩍 빠져 나왔다.

“강한수 씨. 어딜 가시려고요?”

용케 눈치챈 팩토리아가 허겁지겁 달려와서 묻는다.

나는 솔직하게 답해줬다.

“집에.”

전혀 상정하지 못했던 날개 문제만 아니었다면, 난파선은 무시하고 곧장 대한민국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

내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

“그전에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하지 마.”

“충분히 보상해드릴게요.”

“필요 없어.”

내게 거래를 제안하는 팩토리아가 우스웠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밀린 만화와 소설을 읽는 작업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나를 만족시킬 보상 따위는 없다.

팩토리아의 세련된 몸에는 조금 흥미가 있었지만, 잘 찾아보면 그녀보다 괜찮을 아가씨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귀찮은 부탁을 들어줄 정도는 아니다.

“어쩔 수 없네요.”

팩토리아가 고개를 저으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포기가 빠르네?”

“저도 학습할 줄 알거든요? 당신의 성격은 대충 파악했어요. 제가 아무리 부탁해도 안 들어줄 걸 아는데, 굳이 심력 낭비하고 싶진 않아요.”

“잘 맞췄어.”

나는 난파선의 갑판 위에 섰다. 그리고 날개를 생성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때, 선원과 팩토리아의 대화가 들려왔다.

“빅토리아 이사장님. 바다에서 건진 외계인 여자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선장실로 가시지요.”

“네. 가요.”

...외계인 여자라고?

“잠깐! 팩토리아!”

“빅토리아예요!”

“그딴 이름은 아무래도 좋아.”

“제가 안 좋아요!”

빅토리아의 항의를 무시한 나는 가슴을 탕탕 치며 호기롭게 외쳤다.

“지구의 평화는 이 용사님에게 맡겨달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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