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화
[?회차] 집에는 언제 가냐?
인어 아가씨가 소환한 어여쁜 골렘의 능력치를 본 팩토리아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스킬이 Z등급?! 그것도 둘이나?!”
교직원에 대해 잘 모르는 지구지만, 능력치 같은 중요한 정보는 범국가적으로 공유하면서 제법 상세히 알려진 것 같았다.
내가 확신하는 이유?
그만큼 팩토리아의 표정이 심각했다.
유언장을 쓸 시간은 달라고 부탁하는 얼굴이다.
“팩토리아. 진정해.”
“강한수 씨!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초월영역이에요, 초월영역! 아! Z등급이 뭔지 모르실 수도 있겠군요. 잘 들으세요. 저건 SSS등급 다음 단계에요. 환상의 영역이라고요. 지구의 용사 중에 단 1명만이 달성한 궁극의 경지! 저 같은 수준의 강자가 100명이 덤벼도 못 이겨요.”
“틀렸어.”
“네?”
“100만 명이겠지.”
팩토리아 100인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너무해! 아니,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저기, 강한수 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그 골렘이랑 대화 중이잖아.”
“그러니까, 제 말은…. 어휴! 됐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멍청했네요. 여긴 갈 곳 없는 태평양 한복판인데, 어디로 도망치겠어요.”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팩토리아가 자포자기했다.
나는 그녀를 무시하고 골렘을 쳐다봤다.
다시 봐도 그가 틀림없었다.
완벽하게 처리한 줄 알았던 늙은 왕자.
그런데 자기 하렘의 아가씨가 다루는 골렘 안으로 피신해 있었다.
이것이 왕자가 예전부터 준비한 생명보험인지, 인어 아가씨의 순간적인 재치인지는 모른다.
지금 중요한 건, 늙은 왕자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육체를 잃은 영혼뿐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초월영역 스킬 둘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만약, 늙은 왕자가 골렘이 아닌 인간의 육체에 빙의해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살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보자마자 처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골렘이었다.
“가정용 골렘이란 말이지♪”
“......”
골렘은 도구다.
영혼 같은 내용물은 중요하지 않았다.
특별한 도구에 속하는 골렘은 물물교환이 되고, 성검처럼 영구적인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있다.
단 하나만 허용되긴 하지만.
“인어 아가씨. 이 가정부 안드로이드가 마음에 드는데, 내 최신형 골렘이랑 바꾸지 않을래? 무려 현자가 제작한 골렘이라구? 안에는 고대의 고결한 용사 영혼이 들어있지!”
“잠깐만요!”
“또 왜?”
나는 인어 아가씨에게 물었는데, 엉뚱한 여자가 먼저 흥미를 보였다.
“현자의 탑의 그 현자님이 골렘을 제작하셨다고요?”
팩토리아가 재차 확인을 요구했다.
나는 인내심을 꾹꾹 담은 후, 차분히 대답해줬다.
“그래.”
“노, 놀랍네요. 현자님은 골렘을 한심한 마법사들의 꼼수라고 혐오하셨던 거로 아는데….”
팩토리아의 혼잣말처럼, 현자가 골렘을 혐오하는 건 맞다.
하지만 음양(陰陽)의 조화와 이치는 우주의 섭리 같은 거라서, 알량한 인간의 철학보다 위에 있다.
나는 골렘D를 소환했다.
뿅.
“주인님! 너무하세요! 저를 정체불명의 사악한 외계인에게 넘기겠다니…!”
골렘D가 소환되자마자 하소연했다.
하지만 나로선 아쉬울 게 전혀 없었다. 이 골렘은 설계도가 있는 공산품인 까닭이다. 재료와 인력만 충분하다면 양산도 가능하다.
안에 깃든 용사의 영혼이 조금 아깝긴 하지만, 초월영역 스킬을 2가지나 가진 늙은 왕자에게 비빌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골렘D의 항의를 무시하고 팩토리아를 돌아봤다.
굳이 대답을 요구할 필요도 없었다.
“와아! 이게 현자님이 개발했다는 골렘이로군요! 능력치부터 정말 굉장하네요! 헉! 머리카락을 구성하는 이 재료는 설마…? 정말로 기가 막히네요! 조형미를 위해서 환상의 금속을 아낌없이 쏟아붓다니…. 내부는 또 얼마나 굉장할지 벌써 기대되네요.”
“저 가정용 발키리보다는 별로인데?”
둘이 싸우면 1초 만에 결판이 날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우리는 에디슨이 발명한 백열전구를 보며 감탄하긴 해도, 태양의 빛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잖아요. 이것도 마찬가지예요. 자폭하기 직전에 얼려서 포획한 발키리를 해부해봤지만, 그 구조를 전혀 해석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 골렘은 마술과 과학이 결합 된 진짜배기에요. 인류 과학의 혁명이라고요!”
팩토리아의 극찬이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거기서 참지 못하고 골렘D에게 다가가더니 여기저기 주무르고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묻는다.
“용사 골렘님. 제 손길이 느껴지시나요?”
“아우으…. 네. 그러니 거긴 만지지…. 꺄으읏?!”
“진짜 굉장해!”
...여자끼리라도 저건 성희롱이 아닐까?
로봇이니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인어 아가씨. 내 골렘이랑 바꾸자.”
“네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던가? 내 친절한 얼굴을 본 인어 아가씨가 잽싸게 승낙했다.
그런데,
“잠깐-!”
구석에서 듣고 있던 늙은 골렘이 방해하듯 끼어들었다.
“주인들끼리 이야기 중이잖아. 골렘은 빠져.”
“그녀의 안전을 보장해라. 그러면 순순히 따르겠다. 설마, 정말로 가정용 골렘이 필요한 건 아니겠지? 아니, 그녀에게 손을 댄다면 네놈은 가정용조차 얻지 못할 것이다.”
“흐음….”
협박 아닌 협박을 들은 나는 생각하는 척했다.
나로선 전혀 손해 볼 게 없었으니까. 애초에 골렘D는 마법왕국에 설계만 툭 던져주고 만든 것이다.
재료비는커녕 인건비와 수수료조차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바로 승낙해버리면, 왕자가 “내가 너무 성급했나?”라고 의심할 수 있기에 시간을 끄는 것이다.
예쁜 가정부 로봇이 된 왕자의 표정이 점차 초조해졌다.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낼 만큼.
“어떻게 할 텐가?”
때가 무르익었다는 뜻이다.
“...좋아. 인어 아가씨는 안 건드린다고 약속하지.”
“말장난하지 말고 그녀의 안전을 보장해라. 실수나 남이 건드렸다는 뻔뻔한 변명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킁! 속고만 살았나.”
“약속해라. 나는 네놈을 믿지 않는다.”
회한 깃든 눈빛으로 늙은 골렘이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아름다운 안드로이드의 몸이라서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위협은커녕 “오늘 밤에는 피곤하니 얌전히 주무세요.”라고 앙탈 부리는 하녀 같았다.
한껏 비웃어줄까?
그러나 이번만큼은 꾹 참았다.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했다. 여기서 물고기 한 마리를 잡는 건 쉽지만, 그러면 꽤 유용한 골렘을 얻지 못한다.
“좋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안전을 보장하지!”
먼 미래를 위해 큰 그림을 그리자.
“하아…. 내 신세가 어쩌다가….”
해달라는 요구를 다 들어줘도 불만인 늙은 골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걱정하지 마. 노예복지는 확실하다구?
*
예전에 현자에게 슈퍼로봇 ‘캡틴 판타지’의 소유권을 넘겨받을 때도 그랬지만, 골렘을 교환하는 절차는 매우 간단했다.
띠링!
띠링!
노예 문서를 주고받듯이, 골렘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핵에다가 손을 얹고 약속된 주문과 암호를 공유하면 된다.
이 시점에 주문과 암호만 먹고 튀는 양아치 짓도 가능하지만, 골렘은 복수계약을 못 하니 무의미한 헛짓이다.
아무튼, 계약은 금방 끝났다.
그보다는 쓸데없는 감성팔이 작별인사가 더 오래 걸렸다.
“왕자님.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너는 최선을 다했다. 그걸로 됐다.”
인어 아가씨와 가정용 골렘이 씁쓸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나도 덕담해줘야 하나?
“깡통. 계약 내용을 똑똑히 들었겠지? 저 인어를 잘 지켜라. 못 지키면 마기에 푹 담가서 장식해둘 줄 알아.”
“히익?!”
모가지가 부러질 기세로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골렘D. 똑바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나는 늙은 골렘을 양도받자마자 암호를 바꿨다.
그걸로 계약과 거래가 끝난다.
골렘D는?
“안녕하세요, 아름다운 새 주인님! 예전에 제 말동무가 되어줬던 인어가 떠올라서 무척 기쁘네요. 지금은 비록 골렘의 몸이지만, 저는 고결한 용사였습니다. 이 몸이 고장 나서 작동을 멈추는 그 날까지 당신을 지켜드릴 것을 이 자리에서 맹세합니다.”
부서지기 직전인 성검3를 소환한 골렘D가 기사처럼 인어 아가씨 앞에 무릎 꿇었다.
인어 아가씨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용사가 골렘에…?”
“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렇군요. 피치 못할 사연이 있으시겠죠.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고결한 용사님.”
“흑흑!”
갑자기 골렘D가 우는 시늉을 했다.
“왜, 왜 그러시죠?! 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드디어…. 드디어 제 이름을 불러줄 주인을 만나서요. 누구는 아무리 가르쳐줘도 맨날 깡통이라고…. 흑흑! 감사합니다, 새 주인님.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네요.”
근처에서 듣고 있던 나로선 굉장히 불편했다.
슈퍼로봇도 아닌 비실비실한 골렘에 근사한 이름이 왜 필요한데? 분해하지 않고 써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한다.
그때, 옆에서 어여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투는 반대였지만.
“내 이름은 보리스다. 보리스. 이름으로 부르지 않으면 절대 협조하지 않겠다.”
“이 사기꾼 깡통아! 그건 계약에 없었잖아!”
나는 늙은 왕자에게 따졌다.
“기본적인 권리까지 네놈은 계약을 따질 셈이냐?!”
“그러는 너도 주인에게 네놈이라고 막 부르고 있잖아. 나는 호칭 같은 겉치레는 신경 안 써.”
“...앞으로 강한수라고 부르겠다.”
“그냥 네놈이라고 해도 돼.”
그런다고 주종계약이 해제되는 건 아니다.
“이름이란 중요한 것이다! 네놈- 큼! 강한수의 존재를 명확하게 하는 신성불가침의 힘이지. 거짓된 힘, 용사의 힘보다 상위 개념에 있다. 지금까지 너는 레벨과 스킬만 눈 빠지게 들여봤을 터. 하지만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다면 앞으로는 종족과 직업을 눈여겨 봐라.”
“종족이라….”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내가 ‘혼돈(chaos)’으로 분류된 것도 그 때문일까?
골렘을 교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계도가 있는 골렘D는 얼마든지 제작할 수 있지만, 내게 유용한 정보와 힘을 가진 보리스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리스….
남자 이름은 안 외운다는 주의인데.
“이봐. 보리스는 남자 이름이잖아?”
“내 영혼은 남자다.”
“지금은 누가 봐도 예쁜 안드로이드지. 현실을 받아들이고 여성스러운 이름으로 바꾸는 게 어때?”
“그럴 바에 소멸하겠다. 내 마지막 자존심이다.”
...그리하여 보리스는 보리스가 됐다.
하지만 이대로는 부족했다.
가정용 골렘에 강력한 영혼이 깃들면서 강화되긴 했지만, 그 유감스러운 태생이 바뀌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신성과 마기를 차례대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이쪽도 성검3처럼 태생이 용사인 탓일까? 악마와 악마숭배자들이 애용하는 마기하고는 영 친해지질 못했다.
그 대신,
▷종족: 올드 골렘
▷레벨: 999+
▷직업: 하녀(주인→잡역↑)
▷스킬: 기력Z 침투Z 신성SSS 매력SS 안마S…
▷상태: 초월, 체념, 당혹
신성의 친화력이 무시무시했다.
만약, 내가 스킬 ‘무한’으로 신성을 무한정 쏟아부을 수 있는 체질이 아니었다면, 싹 빨리고 말았을 것이다.
직업은 하녀(下女).
영어로는 메이드(maid).
하녀는 주인이 뛰어날수록 허드렛일을 잘하는 직업이다.
본인은 여전히 남자라고 우기지만, 이젠 뼛속까지 여자임을 초월적인 존재가 공인한 셈이다.
“보리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흥! 조국에 위해를 끼칠 정보는 기대하지 마라.”
“일단은 그 조국이란 곳부터 상세히 설명해봐. 어이, 표정 풀어. 이건 배신이 아니야. 관광하기 전의 사전답사 같은 거지.”
“너는 입만 열면 날조로군.”
“SSS급이지!”
“칭찬하는 거 아니다!”
우리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팩토리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겠지만, 둘이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나요?”
“아니.”
“모른다.”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났다.
똑똑.
난폭한 용사 탓에 찌그러진 선장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힐끔 시계를 보니, 슬슬 도착할 때가 되긴 했다.
문밖에서 선장이 말했다.
“빅토리아 이사장님. 인양선과 구조선이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외람되오나, 생포한 외계인의 신병을 인도하라는 요청이 쇄도 중입니다. 항공사고에 이은 조난으로 힘드신 건 알지만, 아무래도 급히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인어 아가씨의 신병을 인도하라고?
“강한수 씨.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당신의 마음은 잘 알지만, 이젠 당신도 마냥 외부인이 아니니 저랑 함께 가주실…. 히익?! 표정이 무서워요! 진짜 무섭다고요!”
“이 여자가 진짜 너무하네! 웃는 얼굴에 침 뱉는 건 어느 나라 법도냐? 너희 나라 도덕책이 그리 시키던?”
구조선으로 옮겨 탄 우리는, 팩토리아가 운영한다는 태평양 제3 해상도시로 이동했다.
본의 아니게 자꾸 손이 미끄러질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집에는 언제 가지?”
해상도시에 도착하면 집에 전화라도 해야겠다. 그러면 어머니의 테니스라켓이 덜 미끄러질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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