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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86화 (86/430)

 086화

[?회차] A급 용사님 직업이 왜...?

외계인의 부부싸움에 직격타로 휘말린 해상도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만약, 팩토리아가 인어 아가씨를 데리고 있지 않았다면 인양선과 구조선을 더욱 늦게 보냈을 것이다. 그만큼 이곳은 복구작업으로 정신없었다.

팩토리아도 정신을 놔버렸다.

“아아, 내 공장들이….”

그녀는 해일에 휩쓸린 군수공장과 창고, 컨테이너 등을 보면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파도에 떠내려가서 영영 소실된 물자도 적지 않았다.

복구는 둘째 치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사업 자체를 중단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인어 아가씨를 이끌고 호텔로 이동했다.

원래는 구조선에서 내리자마자 신원증명 같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현재는 그런 걸 따질 수 없을 만큼 도시가 혼란스러운 상태라서 싹 생략됐다.

이후, 나는 곧바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새 전화번호가 바뀌었거나 내 기억이 잘못됐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뚜뚜뚜뚜….

부모님이 전화를 아예 받지도 않고 끊어버리셨다. 외국 번호임을 보시고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으로 착각하신 게 틀림없었다.

“미치겠네….”

그래서 다른 수단을 썼다.

먼저 문자로 ‘집 나간 아들입니다. 제발 전화를 받아주세요!’라고 보낸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성공적이었다.

다만,

-가출해서 연락 한번 없다가 갑자기 무슨 일이니? 얼씨구. 엄마, 엄마 거리던 애가 어머니? 말투도 딱딱해졌네. 왜? 돈이 다 떨어지니 오만 정(情) 다 떨어진 부모 얼굴이 막 떠오르던? 독립했으면 끝장을 봐야지. 뭐? 호호! 이 아들놈이 집 나가서 농담만 늘었네. 그 고등학교 친구를 통해서 생존신고 한 건 빼야지. 그리고 말 한번 잘했다! 그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쁜 아가씨들을 노예처럼 끌고 다니면서 시시덕거린다더라? 네가 지금 제정신이니? 내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남의 집 망나니 아들 이야기인 줄 알았다. 뉴스에서 그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혀를 차면서 흉을 봤었는데, 우리 아들도 한패였다니…. 너무 놀라서 20년 동안 손도 안 댔던 심장약도 먹었다는 건 아니? 하아…. 아무리 요즘 용사란 잡것들이 야단법석을 떠는 이상한 세상이 됐다고 해도 지킬 건 지켜야지. 강한수. 이 어미는 널 그렇게 키운 적 없다. 남의 집 귀한 딸내미들에게 장난치는 거 아니야. 그녀들 부모가 안다면 얼마나 속상해하겠니? 뭐? 부모에게 허락을 맡아? 다 커서 독립한 처자라고? 후후! 네 아버지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이는 말이다. 대학교에서 한창 인기 많던 내 사랑을 얻으려고 눈밭에서 꽃다발을 들고 촌스러운 자작곡도 불렀어. 음? 엄마가 시켰다고? 호호! 무슨 말이니? 네 아비가 그렇게 말하든? 여보- 음? 방금까지 옆에 있었는데…. 아무튼, 깔끔히 정리하고 참한 아가씨랑 손자 데리고 오기 전에는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 하렘 같은 나사 빠진 망상을 계속하면 눈앞에서 엄마 자살하는 꼴을 볼 줄 알아. 그리고 기다려. 네 아빠를 불러올…. 이 사람은 대체 어디 간 거야? 일단 끊어. 나중에 또 이야기하자. 여보~ 옛날이야기로 잠깐 할 말이….

뚝.

어머니의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근처에 보이는 소파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지, 지쳤어….”

집에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부모님이 단단히 화가 나신 건 둘째 치고, 동창A가 이상한 말을 해놔서 크게 오해하고 계셨다.

하렘이라니?

나랑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이걸 어찌하면 좋을까?

“훌륭한 어머님을 두셨군. 자식이 판타지 세계에서 엇나가는 바람에 상심이 크시겠어.”

“닥쳐.”

“눈을 감는다고 진실이 바뀌-”

비아냥거리는 보리스의 소환을 해제했다.

“뭐, 괜찮아. 오해는 풀면 그만이지.”

앞으로 시간은 많다.

최종적인 목적은 평범한 문화시민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장 성가신 능력치를 감출 방법도 보리스의 짧은 강의로 익혔다.

블랙박스.

그 스킬 이름도 들었는데 기억나질 않았다.

보리스는 그 원인을 “능력이 너무 떨어져서 이름을 들을 자격이 안 됐다.”라고 했다.

그 능력 안 되는 인간에게 패배한 놈이 우쭐대긴. 아! 이젠 년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유력한 정치인들이 이 해상도시로 모여드는 중이다.

그들의 목적은 인어 아가씨의 신병확보.

이 문제를 깔끔히 처리한 후,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진 않았다.

우르르르.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온 까닭이다.

발소리뿐만 아니라, 전투 직전의 긴장감에서 오는 심장 박동과 호흡도 같이 섞여왔다.

“이런 상황은 또 오랜만이네.”

판타지아 생활 2회차부터는 늘 내가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어날 미래를 알기에 미리 대처하고 먼저 움직여온 것이다.

여기에 익숙해져 버린 걸까?

상대가 먼저 공격 올 거란 생각을 하질 못했다. 아니면 신사적인 지구라고 무심코 방심했던가.

뭐든 간에 웃음밖에 안 나왔다.

“A급 용사님. 밖에 사람이 많이 몰려왔어요.”

물을 좋아하는 종족답게 질리지도 않고 샤워하던 인어 아가씨가, 번들거리는 알몸으로 나와서 내게 알려줬다.

살짝 구겨졌던 내 표정이 풀렸다. 늙은 왕자의 애인이었던 인어의 환상적인 콜라병 몸매 때문이 아니다.

인어의 종족특성 탓이다.

A급 용사님!

인어는 수컷이 좋아할 법한 호칭을 본능적으로 잡아낸다. 멍청한 물고기가 멸종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삶의 지혜다.

“알아서 할 테니, 들어가.”

동창A의 음해공작으로 어머니에게 오해를 산 참이다.

그런데 알몸의 여자랑 호텔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변명도 통하지 않으리라.

가장 무서운 전개는, 책임지고 이 멍청한 물고기랑 결혼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군.

“포로의 신병을 인도하십시오.”

객실 문밖에서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상 최후통첩인 셈.

이 객실의 상하좌우에 자리한 모든 객실이 점령된 상태였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만 빼면 완벽하게 포위됐다고 할 수 있었다.

“신성한 용사에게 협박이라…?”

야만적인 판타지아 원주민들처럼 호의적이지 않았다. 신앙심이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나는 차분히 눈을 감고 생각했다.

지구에는 부모님이 계신다.

내게 원한을 품은 자가 부모님을 해코지할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했다.

살리는 것보다 지키기가 어렵다.

막말로, 권총으로 쏘거나 식칼로 푹 찌르면 그냥 죽는다.

여기가 판타지아 대륙이었다면 벌써 몰살시켰다.

싹 다 붙잡아서 자기들이 누구에게 덤볐는지 가르쳐주고, 명령을 내린 배후와 친인척까지 말끔히 정리해서 후환을 없앴을 것이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포로의 신병을 인도하십시오.”

나는 재촉하는 목소리에 감았던 눈을 떴다.

결정이 끝났다.

“처자식이 눈앞에서 죽는 꼴 보기 싫으면 꺼져.”

“......”

“생각할 시간을 3초 줄게. 셋, 둘….”

쾅! 쨍그랑!

객실 문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하고, 와이어를 타고 타잔처럼 내려온 자들이 창문을 깨고 난입했다.

검은색 복장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린 특공대였다.

그들은 특수한 연막탄을 객실 내부에 투하한 후, 망설임 없이 라이플의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

미리 장전해둔 총구에서 불을 뿜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수백 발의 총알이 나를 향해 쏘아졌다.

제법 먼 거리의 건너편 건물에서도 총알이 날아와서 내 미간을 정확히 노렸다.

그 모든 총알이 굉장히 빨랐다.

그렇기에,

다음 상황도 거의 동시에 벌어졌다.

번쩍!

“으악!”

“컥?!”

“으으읔!”

총알이 피부에 닿기 직전에 성스러운 순백의 빛이 연속적으로 터지면서 보호막처럼 내 몸을 감쌌다.

▷종류: 스킬

▷명칭: 신성

▷등급: Z

▶ZZ: 신성한 응징을 행사한다. (0%)

▶Z: 아무튼 신성하다.

▷SSS: 경배받는다.

▷SS: 신성한 반사를 행사한다.

▷S: 일반속성 공격을 무시한다.

▷A: 찬양한다.

▷B: 마기를 정화한다.

▷C: 신성한 방어를 행사한다.

▷D: 축복한다.

▷E: 마기를 견뎌낸다.

▷F: 신성한 공격을 행사한다.

스킬 신성Z의 효과들이 무자비하게 발동했다. 물리적인 공격도 일반속성에 포함된 탓이다.

그리고 모든 공격을 되돌려줬다.

내 스킬임에도 그 정확한 원리는 모른다.

쏘아진 총알의 운동에너지에 버금가는 화력이 ‘반사’되어 특공대를 덮쳤다는 사실만 알 뿐.

인간의 육체는 연약하다.

굳이 핵무기 같은 걸 쓰지 않아도 쉽게 죽는다.

저렇게 구경(口徑)이 크고 적외선 조준경까지 달린 요란한 소총은 필요 없다.

손바닥 크기의 권총과 10원짜리 총알 1발이면 충분하다.

그게 수백 발이라면?

퍼버버벅!

특공대가 착용한 방탄조끼와 방탄모 등은 무의미했다.

한두 발이면 운 좋게 살지도 모르겠지만, 방아쇠를 당기자마자 수십 발이 드르륵 긁듯이 쏘아졌다.

그 모든 운동에너지가 고스란히 반사되어 되돌아왔다.

어떻게 될까?

후두두, 후두두둑….

방금까지 인간이었던 파편들이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날아갔고, 일부는 깨진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

좋은 무기들을 쓰는구먼?

평범한 인간에게 쐈다면 저렇게 됐을 것이다.

포격음이 사라지자마자 복도에 주둔 중이던 특공대가 다음 작전을 실행했다.

“포로는 샤워실에 있다! 돌격…?”

“마취총인지 다시 한번 확인해…?”

“무조건 생포다! 조국을 위해서…?”

“항복하고 두 손을 머리 위로…?”

폭탄으로 파괴한 객실 출입구 쪽으로 우르르 돌입하던 특공대원들은 말끝을 흐리면서 멈춰섰다.

연막이 자욱하게 깔려 있지만, 그들의 방탄모에 탑재된 적외선센서에는 보였기 때문이리라.

“안녕, 여러분. 너희는 어느 나라에서 왔니? 처자식은? 부모는? 너희가 사람 죽이며 번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니?”

나는 멀쩡한 모습으로 인사했다.

“아무리 용사라도 어떻게?!”

“괴물…!”

“미, 미친! 쏴!”

신사적인 대화보다 야만적인 폭력을 원하는 특공대에서 또 사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신성Z를 뚫진 못했다.

쏘는 족족 사망.

공포에 찌들어서 정상적인 판단을 못 내리게 된 그들은 불나방처럼 방아쇠를 당기고, 먼저 떠난 친구들처럼 죽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한 명만 남았다.

“허어! 자네는 어째서 안 쏘는가? 상관의 명령을 어길 셈인가?”

“내, 내가 지휘관이다….”

생존자의 반박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흠흠. 상관이셨구먼. 처자식까지 죽이겠다는 내 경고를 무시하고 덤빈 친구라면 좀 더 멍청하게 생겼을 줄 알았는데. 히야~ 이렇게 젊은 훈남이었을 줄이야! 아내와 딸이 좋아하겠어. 아! 혹시, 미혼이라서 내 경고를 무시한 건가?”

“미친….”

“나보고 미쳤다니. 너무하네. 난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정당방위는커녕 그냥 가만히 있었다구?”

겁먹은 지휘관이 뒷걸음친다.

물론, 나는 그를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촤아아아-

내 손에서 쏘아진 마기가 지휘관의 전신(全身)을 휘감았다.

지구인의 육체에 별 저항감 없이 침투한 마기는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타락시켰다.

“호오….”

지휘관에게서 정보를 빠르게 빼내기 위해 악마추종자로 만든 것뿐이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확이 있었다.

▷종족: 아크 휴먼

▷레벨: 1

▷직업: 기사(충절→불굴↑)

▷스킬: 마기F

▷상태: 혼돈, 타락, 복종

방금까지 지휘관에게 없었던 능력치가 생성됐다. 1레벨이고 스킬이 하나뿐이니 확실했다.

직업은 판타지에 맞춰서 재해석된 걸까?

뭐가 됐든 흥미로운 결과였다.

“그렇다면….”

슈우우우-

나는 마기를 좀 더 부여해봤다.

지휘관에게서 정보만 빼내고 버릴 생각이었는데, 내 호기심 충족을 위한 실험에 동참시키기로 했다.

결과는 금방 나왔다.

“크아아아아-!”

두둑, 뚝….

소름 끼치는 포효를 터트린 지휘관의 등에서 시커먼 날개 1쌍이 솟아났다.

귓바퀴 위쪽으로도 검은색 뿔이 돋아났다.

지휘관의 현대적인 전투복이 분위기를 깨긴 했지만, 누가 봐도 악마의 형상이었다.

“흐음~ 흥미로운 결과인걸.”

내가 2회차에서 양성해낸 암흑기사들의 종족이 ‘다크 휴먼’으로 바뀌었었지만, 그건 혼혈 같은 개념이었다.

아무리 마기를 부여해도 이 지휘관처럼 바뀌지는 않았다.

그가 지구인이기 때문일까?

▷종족: 아크 데몬

▷레벨: 1

▷직업: 귀족(족보=기품↑)

▷스킬: 마기S

▷상태: 환희, 충성

종족이 악마로 바뀌었다. 그것도 평범한 악마가 아닌, 태어날 때부터 상위종이라고 불리는 강력한 악마혈통이었다.

흥미로운 발견이었다.

“나의 왕이시여. 충성을 맹세합니다.”

상급악마로 다시 태어난 지휘관이 내 발아래의 지면에 머리를 박듯이 엎드리며 조아렸다.

목숨을 구걸하려는 연기가 아니다.

마기에 찌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이었다.

“왕은 무슨…. 아! 현재 직업이 패왕이니 왕은 왕이려나…. 음?”

겸손하게 대답하며 무심코 내 직업을 확인한 나는 당황했다.

이건 또 왜 이래?

종족이 외계인으로 바뀐 것도 그렇고, 아름다운 고향별 지구로 넘어오고부터 능력치가 자주 고장 났다.

▷종족: 카오스 에일리언

▷레벨: 999+

▷직업: 마왕(용사→레벨↓)

▷스킬: 신성Z 마기Z 축복Z 날조SSS 패기SS…

▷상태: 성검, 마검, 성녀, 골렘

이건 AS 신청을 어디서 하지?

빨리 안 고쳐주면 많이 곤란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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