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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87화 (87/430)

 087화

[?회차] 이건 말도 안 돼!

“거대한 음모에 휘말린 게 틀림없어.”

마왕 페도나르가 가장 위협적인 용사 강한수를 제거하기 위해 음해공작을 펼친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명문대 진학보다 어렵다는 A급 용사인 내 직업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바뀔 리 없었다.

그렇긴 한데….

이 ‘마왕’이란 직업 자체로는 성능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자세히 알아보기’ 기능을 활성화했다.

마왕: 모든 악마 위에 군림하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왕족 이하의 악마를 대상으로 강제적인 지배력을 행사합니다. 자원계열 스킬 마기의 이해도가 극(極)에 도달합니다. 자원계열 스킬 신성에 굉장히 취약해집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약한 용사를 상대할 때는 레벨이 동등하게 하락하니 주의하십시오.

“흐음~ 문제는 신성과 용사로군?”

일단, 신성은 딱히 문제 될 게 없었다.

나는 항상 신성을 온몸에 두르고 다녔기 때문이다.

마왕 페도나르의 음해공작에 걸렸다고 해도, 내 천성이 정의로운 A급 용사란 사실은 하늘과 땅이 알고 있다.

...용사는?

일단 부딪혀봐야 견적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전에,

“왕이 돼서 신하가 하나뿐인 건 말이 안 되지!”

방패막이로 쓸 머릿수를 불려보기로 했다.

*

현대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시카메라.

프라이버시(privacy)가 중요한 객실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았지만, 일부 특공대의 전투복에 내장되어 있었다.

덕분에 외부에서도 포로 납치에 실패했음을 눈치챘을 터.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나는 방어할 생각이 없었다.

판타지아 대륙에서부터 내 전투법은, 17년 전통의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이었다.

회피 따위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공격하고 또 공격해서 후환이 사라질 때까지 쳐부순다.

그것이 내가 판타지아 대륙에서 17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타락하길 원하는 고객은 많지.”

판타지아 대륙에서도 그렇지만, 모든 나라에서 악마추종자를 경계하는 이유는 그 확산속도에 있다.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악마의 힘.

악마 같은 육체가 되면, 전성기의 젊음과 건강, 강인한 육체, 긴 수명, 향상된 미모, 높은 기억력 등이 종합세트로 딸려온다.

미녀, 재벌, 운동선수, 과학자, 노인, 정치인….

꼭 특정 분야가 아니더라도, 악마의 힘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질 못한다.

지구라고 다를 게 없었다. 아니, 악마의 힘이 없었던 지구였기에 더욱 극심하리라.

수요가 폭발적일 거라고 짐작된다.

“마기를 뿌려라.”

“네. 폐하.”

지휘관이었던 S급 악마를 시작으로, 나는 호텔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특공대원만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한계까지 특훈으로 육체와 정신을 단련해온 엘리트들답게, 특공대는 따로 건드릴 게 없었다.

부족한 건 레벨.

이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문제였다.

“아! 꼭 그렇지도 않나?”

곧장 실험해보기로 했다.

이 주위에는 특공대만 있는 게 아니었다. 국가나 비밀단체 같은 곳에 소속된 용사도 많았다.

죽어도 딱히 불만 없겠지?

“이놈! 우리가 어느 소속인 줄…. 쿠엑?!”

“지, 직업이 마왕이라고? 커억-?!”

“저는 치료사예요. 쓸모가 많은- 꺅?!”

나는 용사들을 줄줄이 초주검을 내놨다.

소신껏 저항하는 그들을 압도적인 힘으로 짓밟아줬는데, 그때까지도 레벨 하락의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마왕의 페널티는 발동하지 않았다.

“흐음~ 은퇴한 용사는 용사가 아니란 건가?”

직업이 ‘용사’가 아니면 페널티가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이 추측이 정말이라면?

히쭉.

“마왕이 나쁠 게 전혀 없네!”

지구에는 ‘용사’가 없다.

졸업생들은 지구로 귀환하면서 새로운 직업을 얻는 까닭.

판타지아 대륙에서는 그들 개개인이 ‘주인공’이란 포지션이었다. 세계가 그 하나를 위해 굴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차원 하나하나가 용사 1명을 육성하기 위해 복제된 세계였던 까닭이다.

하지만 지구는 다르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학생들이 ‘판타지’를 나와서 본격적으로 사회의 쓴맛을 배우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인맥, 혈연, 금수저, 외모, 정치질, 상대평가….

이런 것의 무서움을 배우고, 내가 최고인 줄 알았던 세상에 더한 천재들이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것이 현실이다.

“컥?!”

“꺄악?!”

사랑과 우정의 힘이란 그럴싸한 탈을 쓴 비열한 협공 따위, 진짜 A급 용사 앞에서는 먼지나 다름없다.

나보다 먼저 졸업해서 문화생활을 만끽한 가짜 용사들에게 사회의 무서움을 가르쳐주자.

17년 경력과 울분을 담은 주먹으로!

털썩, 푹, 철퍼덕.

비열한 협공을 펼친 용사들이 줄줄이 내 앞에 쓰러졌다.

“실험을 시작해볼까. 죽여.”

“네, 폐하.”

지휘관 악마가 품에서 군용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S급 마기를 칼끝에 담은 후, 용사의 목젖을 망설임 없이 힘껏 찔렀다.

“커억?!”

내게 처맞고 뻗은 용사는 저항하지 못하고 목숨을 내놨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경험치는?

▷종족: 아크 데몬

▷레벨: 71

▷직업: 귀족(족보=기품↑)

▷스킬: 마기S 살인F

▷상태: 성장

내 예상대로 지휘관 악마의 레벨이 올랐다. 하지만 직업이 용사가 아니라서 경험치 효율은 형편없었다.

그래도 일단은 만족했다.

중요한 건, 레벨이 올랐다는 것이다.

“교섭재료로 딱 좋네.”

나는 여기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움직였으면 끝을 봐야 한다. 도중에 어중간하게 멈추면 보복이든 후환이든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얻은 교훈은?

오늘 죽여두면 내일이 안전해진다!

슈우우우-

솨아아아-

나는 S급 악마들을 추가로 늘렸다. 마기를 좀 더 불어넣는다면 SS급까지도 가능하겠지만, 노동법을 무시한 작업능률향상과 치열한 경쟁을 부추기기 위해 성과제를 도입했다.

“들어라, 타락한 잡것들아. SS급에 오르고 싶으면 쓸모있는 추종자를 더욱 늘려라!”

내 명령을 받은 악마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의 생각은 비슷비슷했다.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려왔던 옛 상관부터 타락시키고자 발 빠르게 움직였다.

“흐흐흐. 부장님.”

“팀장. 이제 다를 겁니다.”

“그녀를 내가…. 흐흐.”

이게 마기의 또 다른 매력일 것이다.

상대가 대통령이든 금수저든 어르신이든 상관없다. 마기의 등급만 상대적으로 더 높으면 누구든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까닭이다.

누구나 꿈꿔봤을 것이다.

내 윗사람을 지배하는 자신을!

판타지아 대륙에서는 이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드러냈다가 일찌감치 토벌된 멍청이들이 많았다.

고귀한 공주를 노예로 부리려다가 악마추종자란 사실이 들통나는 비루한 서민이라든가?

분명히 지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게 나올 터.

하지만 나로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마기만 빨리 퍼질 수 있으면 됐지.”

마왕이 되면서 새로운 능력도 개방됐다.

내 휘하의 악마들이 어디서 뭘 하는지 바로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직접 보고 듣는 건 아니었지만, 근처에 숨겨둔 몰래카메라로 감시한다는 감각이다.

그렇다. 이건 마치,

‘교직원 일동이 하는 짓이랑 비슷하네.’

악마들은 태평양 제3 해상도시의 모든 항구와 공항을 점령했다.

현대무기로 무장한 군대들도, 악마들에게 마기를 주입 받으며 악마추종자로 전향했다.

둘이 넷으로, 넷이 여덟으로, 여덟이 열여섯으로….

전염병처럼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그런데도 이 모든 작업이 매우 조용히 이루어졌다.

그동안 용사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예전에 지크랑 비슷했다.

능력치를 보고 악마추종자임을 눈치챘지만, 날개와 뿔을 넣고 일반인 행세하면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아니, 증명하면 또 어쩔 건가?

지구에서는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을 함부로 죽이거나 핍박하지 못한다. 악마는 인간이 아니라고 어떻게 단정할 텐가? 그것도 방금까지 알고 지내던 이웃과 가족을.

그 틈에 악마들은 동족을 늘렸다.

이건 그 결과였다.

“안으로 드십시오, 마(魔)의 주인이시여.”

“폐하를 적대한 벌레들은 이 방에 모여있습니다.”

“이 시청은 이제 폐하의 것입니다.”

나는 인어 아가씨를 이끌고 해상도시 시청으로 향했다. 여기에 사악한 정치인들이 몰려있는 까닭이다.

정치인들의 목적은 외계인 포로 확보.

총괄이사장이자 시장인 빅토리아는 어떻게든 그들의 야욕을 저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가 방음벽 너머의 내 귀까지 들려왔다.

“여러분께 벌써 몇 번째 말씀드리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포로에게 안전을 보장한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처럼 평화적인 생포는 불가능했을 거예요. 애초에 이건 월권행위입니다! 요구하실 거면 정식절차를 거쳐주세요.”

“외계인의 안전은 우리가 대신 보장하겠소.”

“허! 월권이라니! 우리도 엄연한 투자자요!”

“이사장. 경영권만 그대에게 맡겼을 뿐이오.”

영양가 없는 무의미한 대화로 대단히 시끄러웠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결론을 내리든 미래가 조금도 바뀌지 않으리란 사실을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아마도 모를 거다.

알았다면 벌써 도망쳤겠지.

나는 회의실의 문 앞에서 한번 멈춰섰다.

그래도 지구의 여러 대표를 만나는 자리였기에 몸단장을 바르게 했다. 옷깃을 여미고 손바닥이 미끄러운지 확인했다.

오른손에는 마검, 왼손에는 성검.

장비 또한 완벽했다.

내 등 뒤에서는 인어 아가씨가 왕을 모시는 시녀처럼 다소곳이 대기했는데, 특유의 인어 비린내 빼고는 나무랄 게 없었다.

이걸로 입장준비 완료.

마기에 찌든 충성스러운 경호원들이 공손히 회의실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넌 누구냐!”

“회의 중에 감히…!”

“빨리 내보내!”

시청 회의실에 모여있는 자들이 악다구니를 썼다.

그래서 조용히 시키기로 했다.

촤아아아-

내 몸을 중심으로 Z급 마기가 퍼져나갔다.

여기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정치인들의 표정이 차츰 풀어졌다.

그들은 앉아있던 의자에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고개를 조아리며 다시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귀인을 몰라뵈었습니다.”

“나의 왕을 뵙습니다.”

이 정치인들은 악마로서 지식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모래사장에서 알을 깨고 막 태어난 바다거북이 본능적으로 바다로 기어가듯이, 그들은 눈앞의 내가 자신들의 지배자임을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이, 이게 대체…!”

“마왕이라니!”

“당신은 누구죠!”

상황파악 못 하고 여전히 의자에 앉아있는 인간들이 있었다. 원래부터 판타지 능력치를 보유한 ‘전직 용사’들.

시청에서 근무했던 어느 악마에게 들은 사전정보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길드의 대표 혹은 부대표라고 한다.

레벨과 스킬이 상당한 건 당연지사.

그들에게는 내가 발산한 Z급 마기가 통하지 않았다.

“과연….”

하지만 그렇다고 싸움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마왕 페널티로 내 레벨이 좀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모르겠지만, 현재는 그냥 압도적이란 표현도 부족했다.

종족, 레벨, 스킬, 직업, 상태.

무엇 하나 저들에게 밀리는 게 없었다.

다만, 저들에게는 내 능력치가 완벽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엉뚱한 생각을 품었다.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지구의 마왕이여! 내 이름은-”

댕강, 때구르르.

호기롭게 일어서던 용사B의 머리통이 바닥을 굴렀다.

“어머나! 마검이 폭주했네!”

이건 고의가 아닌 사고였다. 늙은 왕자에게서 빼앗은 광선검이 폭주해서 멋대로 용사B를 베어버린 것이다.

즉, 나는 모르는 일이다.

“공식서열 3위가….”

“최강의 길드 부대표가….”

“3위의 남자가….”

우정의 힘에 가세하려던 용사C가 움찔하더니, 살짝 들어올렸던 무거운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였다.

용사D와 용사E도 예쁘게 다시 착석.

억울한 누명을 써서 마왕이란 오해를 받는 용사A의 말씀을 경청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강한수 씨, 이게 대체…?”

아직 준비가 안 된 팩토리아가 한심한 어조로 질문해왔다.

전투력은 약해도 머리는 제법 돌아가는 여자인 줄 알았는데, 내가 그녀를 너무 과대평가했던 모양이다.

“멍청하긴. 사건을 청소하는 중이잖아.”

“청소요…?”

나는 타락한 정치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사랑하는 조국으로 돌아가서 동료들을 네 하수인으로 만들라고.

이러면 배후까지 깔끔히 복속될 것이다.

정치인들은 희희낙락하며 시청 회의실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다음은,

“물고기.”

“네. A급 용사님.”

이 인어 아가씨는 사회생활을 할 줄 알았다. 내 직업이 마왕으로 바뀌었어도 꼬박꼬박 용사님이라고 불렀다.

늙은 왕자가 예뻐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저 쓰레기를 재활용해봐.”

“분부대로.”

인어 아가씨가 연주자처럼 손을 움직였다.

그녀의 직업은 요술사.

시체와 망령을 전문적으로 다룰 줄 알았다. 내가 꼭 해보고 싶은 직업 중 하나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벌떡.

모가지가 잘린 용사B의 몸이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그것은 바닥에 떨어진 자기 머리를 줍더니, 거짓된 생명을 부여해준 주인 옆에 호위처럼 섰다.

“아우 워어어….”

잘린 머리통이 인체구조를 무시하며 으스스한 귀곡성을 토했다. 살아생전보다 목소리가 근사해졌다.

“그러면, 너희는 어떻게 할까?”

이 회의에 참석한 용사들을 그냥 보내줄 순 없었다. 블랙박스의 망각 효과가 안 통하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그래도 일단은 미소로 안심시켜줬다.

“히익?!”

“사, 살려주세요!”

“거참! 내가 잡아먹는 것도 아니- 음?

그때, 하늘에서 푸른색 섬광이 작두처럼 내리꽂혔다.

정확히 내 머리 위로.

콰아아앙-!

튼튼하게 지어진 시청 건물이 폭사했다.

그 푸른색 빛의 여파에 휩쓸린 악마와 인간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소멸했고, 용사들과 빅토리아는 건물 콘크리트 폐허에 깔렸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무사한 건, 골렘D를 방패처럼 소환해서 일반공격을 무효로 돌린 인어 아가씨뿐.

나는 뚝 부러진 성검2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돈 주고도 못 구하는데….”

순간적으로 힘이 풀리면서 칼날에 신성과 마기가 전혀 실리지 못한 탓이었다.

나는 그 원흉을 노려봤다.

그리고 직업과 스킬을 보고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종족: 올드 엘프

▷레벨: 100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검술ZZ 맷집Z 무공SS 검기S 내력S…

▷상태: 성검, 골렘, 파견, 강화,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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