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89화 (89/430)

 089화

[?회차] 정의는 늘 승리한다!

“이, 이것은 그분의 힘인데…!”

“어떻게 마왕 따위가…!”

요정 용사와 골렘은 눈치챈 듯했다.

하지만 절반만 맞았다.

나는 ‘최초의 용사’의 힘으로 모두의 능력치를 봉인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왕’이란 직업의 특수성.

판타지 능력치의 발상지인 판타지아 차원은 ‘용사 vs 마왕’이란 거대한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학생이 없는 학교가 유지될 수 없듯이, 주연배우라고 할 수 있는 용사와 마왕, 둘 중 하나만 빠져도 세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

판타지 세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능력치도 존재하지 못한다.

용사가 마왕을 쓰러트리면 동료들이랑 작별인사할 틈도 없이 졸업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둘 중 하나만 빠져도 판타지는 붕괴한다.

그리고 현재 내 직업은 ‘마왕’이었다.

“현실 패치가 예쁘게 됐네♪”

물론, 나는 죽지 않았다.

6회차의 마왕 페도나르가 시범을 보여주면서 그 비법을 내게 전수해준 덕분이었다.

마왕이 죽었다고 판타지 세계가 착각하는 기술을!

하지만 여기에도 조건이 있다.

▷종류: 스킬

▷명칭: 마기

▷등급: MAX

▶ZZ: 천사를 타락시킨다.

▶Z: 악마의 왕족이 된다. (0%)

▷SSS: 신성에 저항한다.

▷SS: 거짓된 마력을 행사한다.

▷S: 악마의 귀족이 된다.

▷A: 사악한 방어를 행사한다.

▷B: 대상을 저주한다.

▷C: 사악한 공격을 행사한다.

▷D: 대상을 타락시킨다.

▷E: 거짓된 생명을 행사한다.

▷F: 악마의 노예가 된다.

마기가 최소 Z등급에 도달해야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

내 레벨이 극도로 높았던 6회차를 뺀 보편적인 마왕 페도나르는 마기가 SSS등급으로 고정되어 있다.

초월영역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마왕 페도나르는 ‘왕(王)’이 될 수 없었다. 직업은 분명 ‘마왕(魔王)’이지만, 스킬로 인정받지 못했다.

6회차를 제외하고는….

하지만 나는 이 조건을 충족했다.

직업이 마왕이고, 스킬 마기도 Z등급.

판타지의 종말을 고했다.

“일단은 너부터.”

펄럭!

날개를 활짝 펼친 나는 골렘을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져 날아갔다.

능력치의 봉인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이건 판타지 시스템이 얼마나 오랫동안 착각해주느냐가 관건.

그렇기에 봉인이 풀렸을 때 가장 위협적인 대상부터 최우선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그 골렘의 현재 능력치는?

▷종족: 올드 골렘

▷레벨: 1

▷직업: ■■E

▷스킬: -

▷상태: 망각

예쁘게 잘 만든 안드로이드일 뿐이었다.

초월영역에 든 스킬이 없어서 스킬이 전부 봉인된 탓이다.

종족 본연의 단단한 몸체는 그대로 남아있지만, 이번에는 레벨이 발목을 잡았다.

의미 그대로 발목을 잡았다.

“이, 이런….”

골렘은 피하긴커녕 자기 몸조차 가누지 못했다.

순수한 과학의 산물이었다면 달랐겠지만, 판타지 기술이 접목된 골렘의 출력은 레벨에 비례한다.

1레벨이면?

가녀린 여인에게 100kg짜리 갑옷을 입힌 거나 다름없다.

이 골렘의 상황이 딱 그러했다.

“안 돼~!”

요정 용사가 비명을 지르면서 골렘을 구하고자 달려왔다. 하지만 나의 날갯짓이랑 비교하면 그의 발걸음은 한없이 느렸다.

검술ZZ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요정 용사는 최후의 발악처럼 성검 뉴클리온을 내가 있는 허공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원래라면 검기라도 쏘아져 날아갔을 터.

하지만 현재는 산들바람 수준의 섬광이 반짝이고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푹! 푸욱! 콰직!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가 사악한 골렘의 몸뚱이에 파고들었다.

직후, 나는 망설임 없이 뽑았다.

투, 뚜둑, 뚜드득….

골렘을 구성하는 전선이 줄줄이 뜯겨 나왔다.

전투용답게 원래는 이리 쉽게 파괴될 골렘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간단히 파괴됐다.

“이건 기념품으로 챙겨야지♪”

골렘의 머리채를 왼손에 모아쥐었다.

예쁜 머리통의 목 아래로는 당연히 챙기지 않았다.

“이노오옴-!”

두 눈이 붉게 충혈된 요정 용사가 핏대를 세워가며 달려왔다. 1레벨로 떨어졌어도 움직임이 상당했다.

▷종족: 올드 엘프

▷레벨: 1

▷직업: ■■D

▷스킬: 검술ZZ 맷집Z

▷상태: 망각

검술의 등급은 이 요정 용사의 순수한 실력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자격증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룬 경지만은 나도 무시할 수 없었다.

능력치로 보이는 검술이나 마술 같은 기술계열 스킬은 어디까지나 보조. 부지런히 기술을 연마했더니 숙련도가 저절로 올라서 스킬 등급이 상승한 것이기 때문이다.

덤으로 주어진 부산물이라고 보면 된다.

진짜 실력은 스킬로 표시되지 않는다.

성검 뉴클리온을 치켜든 요정 용사가 힘차게 내리긋는다.

“허!”

내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스킬을 쓰지 않았음에도 요정 용사의 칼날이 5개로 보인 탓이다. 뭔가 신통방통한 묘리가 담겨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느려서는 의미가 없었다.

푹, 휘이잉-

날개 끄트머리의 뾰족한 송곳으로 아스팔트 바닥에 찍고, 그것을 중심축으로 지지대 삼아서 몸을 공회전했다.

평범한 인체로는 구현할 수 없는 움직임.

성검 뉴클리온의 칼날이 허공만을 긁었다. 그러나 요정 용사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고 패기롭게 외쳤다.

“마왕을 상대한다고 했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마왕도 악마이기에 원래부터 날개가 있다.

그렇다면, 마왕만을 전문적으로 노리는 이 사냥꾼은 공중전 등을 상정하고 수련했을 것이다.

예상대로였다.

요정 용사의 갑옷 등판에 거추장스럽게 붙어있던 백금색 망토가 형상기억합금처럼 그 형태를 바꿨다.

스르륵.

좌우로 양분된 망토가 넓게 펼쳐졌다.

그리고 펄럭거린다.

이건, 날개가 틀림없었다.

“광선검도 그렇고, 과학기술이 미쳤네!”

이런 기술력이 있으면 그냥 슈퍼로봇을 파견하거나 우주에서 포격하면 되지 않을까?

번거롭게 인력을 투입한 이유를 모르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 이런…!”

“푸하하하! 그렇군. 그것도 판타지로군?”

요정 용사의 인공날개가 골렘처럼 빌빌거렸다.

지구에서 ‘전기’를 빼놓고 과학을 논하기 힘들 듯, 그들의 원천기술은 판타지랑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핵심연료도 판타지 자원.

그래서 고전적인 판타지 양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다.

이런 약점을 모를 리 없음에도 순수한 과학을 추구하지 않는 이유까진 모르겠지만.

“큭!”

미역처럼 힘없이 흐느적거리는 인공날개를 반쯤 포기한 요정 용사가 미련을 떨치듯 거칠게 돌격해왔다.

무모하게 보일 정도로.

하지만 나는 방심하지 않았다.

요정 용사가 골렘과 능력치를 잃고 허둥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도의 연기일 확률이 다분했던 탓이다.

그만큼 요정 용사의 눈빛이 차분했다.

희생을 각오한 자의 얼굴.

내가 판타지 2회차 때 거둔 ‘짐꾼’이랑 비슷했다.

나하고는 좀 다른 숭고한 부류의 인간이다.

“그 마음가짐은 존경한다만….”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아선 의미 없다.

똑같이 1레벨이라도, 나와 요정 용사의 육체 성능까지 비슷한 건 아니었다.

요정이란 종족의 성장 최대치까지 끌어올린 모양이지만, 아예 종족부터 인간의 탈을 벗어난 나하고는 비교할 수 없었다.

촤아악!

성검 뉴클리온에 오른쪽 피막이 찢어졌다. 내가 날아가지 못하도록 저지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하지만 헛수고다.

나는 처음부터 날아서 도망칠 생각이 없었으니까.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결판낼 것이다.

피막이 찢어진 오른쪽 날개의 두 골격을 촉수처럼 움직였다.

드드드득-!

날개 곳곳에 솟아난 뿔이 요정 용사의 갑옷을 긁었다. 단번에 꿰뚫을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마왕을 상대할 의도로 제작된 갑옷인 만큼 쉽게 파괴되진 않았다.

요정 용사가 득의양양하게 외쳤다.

“그딴 괴상한 날개로는 헛수고다!”

서걱.

급기야 오른쪽 날개가 성검 뉴클리온에 베였다.

“그래? 끝까지 해보자구.”

나는 잘려서 바닥에 떨어지려는 날개를 낚아챘다. 자잘한 뿔들이 내 손바닥을 찌르며 파고들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그걸 노렸다.

내 육체에서 떨어진 날개는 엿가락처럼 약해지지만, 이렇게 다시 육체접촉으로 연결해주면 원상태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나는 이 상태에서 날개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여기까진 예상하지 못했던 요정 용사가 공격을 허용했다. 보리스의 첫 공격에 투구를 잃어버린 그의 머리에 직격으로.

찌이익-!

이번에는 피부에 직접 닿았다.

“크아아악-?!”

요정 용사의 멋진 얼굴이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되었다.

심각한 피해는 없었지만, 뾰족한 귓바퀴가 찢어지고 머리에 일직선의 땜빵이 생겼다.

그리고,

부우우웅-

왼손으로 머리채를 쥔 골렘의 머리통을 신나게 휘둘렀다.

사랑하는 여자랑 박치기!

빠각!

행복에 겨운 요정 용사의 눈이 뒤집혔다.

“흥, 흐응~♪”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연타했다.

그럴 때마다 골렘의 예쁜 얼굴도 깡통처럼 찌그러졌지만, 원래 깔끔한 청바지보다 찢어진 청바지가 멋진 법이다.

그게 패션이잖아?

멀쩡한 왼쪽 날개로 재차 용사의 갑옷을 긁었다.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 튼튼하게 제작됐지만, 결국은 100레벨을 상대로 쓸만한 수준일 뿐이다.

내 정의로운 날개를 무한정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마침내,

푹! 푹!

왼쪽 날개가 요정 용사의 몸에 파고들었다. 아직 희미하게 제 역할을 하는 중인 맷집Z 때문에 한 방에 깊숙이 찌르진 못했다.

그래도 거칠게 뽑으면 2차 피해가 발생할 터.

서걱.

하지만 요정 용사도 바보가 아니었다. 성검 뉴클리온으로 왼쪽 날개를 늦지 않게 절단했다.

뽑지 못하도록 저지당했다.

“끈질기네.”

나는 혀를 찼다.

양쪽 날개가 전부 잘렸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드르륵.

날개는 또 생성하면 그만이니까.

인산칼슘이 줄어들면서 뼈가 좀 허약해진 기분이 들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요정 용사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었다.

날개를 베어선 의미가 없다.

그렇게 착각해주면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용사다! 절대로 마왕에게 패배하지 않는- 콜록콜록!”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마왕이 아니다.

비열한 음해공작으로 능력치에 착오가 있었지만, 알맹이는 정의로운 A급 용사님이다.

그러니 이 결과 또한 당연하다.

정의(正義)는 늘 승리한다.

*

푹! 푸욱!

세 번째 생성한 내 날개가 요정 용사의 심장과 중뇌에 각각 박혔다.

갑옷은 진즉 파괴되어 해체됐고, 요정의 몸은 아직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우리의 능력치도 진즉 돌아왔다.

하지만 그때는 승기가 완벽히 기울은 후였다.

요정 용사에게 불행이라면, 맷집Z 때문에 편안히 빨리 죽지 못했다는 점일까?

양팔이 부러진 시점에 검술ZZ는 의미가 없어졌다. 아무리 고강한 검술이 있더라도 팔 없이는 구현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싸움은 끝났다.

“...이상한데.”

내 능력치를 확인한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종족: 카오스 휴먼

▷레벨: 100

▷직업: 마왕(용사→레벨↓)

▷스킬: 마기Z 신성Z 축복Z 날조SSS 점령SS…

▷상태: 성검, 성녀, 마검, 골렘

줄어든 레벨이 아직 복구되지 않은 까닭이다. 용사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졌어도 유예기간 비슷한 게 있는 걸까.

푹! 푹! 푹! 푹!

죽은 요정 용사의 시체를 찌르면서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러면 우선….”

나는 몽땅 소환했다.

성검2, 성녀H, 보리스.

이번 전투로 상태들이 좋지 않았던 탓이다.

성녀H는 멀쩡했지만, 파괴 직전의 성검2랑 연결되어 있다. 보리스도 몸과 마음이 전력으로서 하자가 많았다.

이것들은 당장 조정이 시급했다.

“주인님. 앞으로는 곁에서 밤낮으로 모시겠습니다.”

성녀H가 야무지게 포부를 밝혔다.

나도 웃으며 답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니? 내 머리통이 어머니 테니스라켓에 빠개지는 꼴을 보고 싶어? 아…. 테니스라켓이 먼저 부서지려나? 그러면 그것대로 또 혼나겠군.”

참한 며느리랑 손주가 준비되기 전에는 집에 돌아갈 수 없다.

“미흡하나 이 몸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성녀H가 자기 아랫배를 문지르며 요염하게 말끝을 흐렸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돼.”

사랑 타령은 둘째치고, 스킬 ‘무한’을 유지할 수 없다. 안 그래도 성검2가 부서지기 직전이라 불안한 상황인데.

이걸 어떻게 해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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