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90화 (90/430)

 090화

[8회차] 히프리아가 대체 누구야?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는 마기를 보리스에게 욱여넣었다.

요정 용사의 전투용 골렘에게 패배해서 고철 신세가 된 가정용 골렘은 저항하지 못했다.

보리스가 식겁하며 외쳤다.

“너, 무슨 짓을- 꺄아아아악?!”

무슨 짓?

지금부터 예쁜 짓을 하려고 한다.

강제로 마기를 주입받고 비명을 지르는 중인 보리스도 일단은 성검을 보유할 수 있는 용사.

그렇기에 나는 성검2의 소유권을 보리스에게 넘겼다. 보리스가 내 소유의 골렘이기에 문제없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하청업자 같은 관계로 엮은 셈.

여기서부터가 중요했다.

▷종류: 스킬

▷명칭: ■■

▷등급: A

▷S: □□□□.

▷A: 대상을 혼동시킨다.

▷B: 대상을 파멸시킨다.

▷C: 대상을 망각시킨다.

▷D: 혼동하지 않는다.

▷E: 파괴되지 않는다.

▷F: 망각하지 않는다.

나는 블랙박스를 활성화했다. 그리하여 마기에 찌든 골렘 보리스와 신성한 무기 성검2를 한데 섞었다.

애초부터 용사와 성검은 짝꿍.

문제없이 잘 섞였다.

“꺄아아아~?!”

보리스의 영혼이 단말마를 내지르며 갈려 나가는 것 같았지만, 사소한 문제는 그냥 넘어가자!

휘이잉~

나는 그렇게 뒤섞인 회색빛 반죽으로 지팡이를 빚었다.

그럴싸한 무늬 하나 없는 밋밋한 형태였다.

검이나 창 같은 실용적인 무기로 만들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내게는 그런 손재주가 없기에 깔끔히 단념했다.

“흠…. 그래도 이건 너무 멋이 없나…? 아!”

무의식적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려던 나는, 여전히 왼손에 쥐어져 있는 요정 용사의 골렘 머리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디어를 바로 실행에 옮겼다.

푹!

골렘의 목 절단면에 지팡이를 꽂았다.

접합부와 그 주위가 어색하지 않게 마감처리도 예쁘게 했다. 이 정도는 나도 할 줄 안다.

부스스….

원주인이 죽으면서 핵의 동력이 끊겼었던 골렘이 눈을 떴다.

일그러졌던 예쁜 얼굴도 빠르게 원상복구 됐다.

에메랄드색 눈알을 대굴대굴 굴리며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골렘 머리통이 경악하며 외쳤다.

“내, 내 몸이 어떻게 된 거야…?!”

의도하지 않았던 음성지원서비스까지!

강력한 에고완드(Ego-wand)가 완성됐다.

▷종족: 카오스 골렘

▷레벨: 999+

▷직업: 하녀(주인→잡역↑)

▷스킬: 기력Z 침투Z 쌍검MAX 항마MAX 신성MAX 마기SS 혼돈S 매력S 안마S 체력S 빨래S 퇴마S 검술S 금강S 정화S 검술S 축복S 질주S 색적S 강화S 불굴A 내성A 면역A 불굴A 통역A 생존A 복수A 잡역A 요리A 청소A 맷집A 통솔A 경영A 가무A 무용A…

▷상태: 성녀

하지만 지팡이에 불필요한 스킬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싹 정리하기로 했다.

항마MAX→항마Z

내가 주인이므로 한계돌파 결정권도 내 마음대로다. 팔다리가 필요한 스킬들은 아낌없이 제물로 던졌다.

그랬더니 깔끔하게 정리됐다.

▷종족: 세인트 골렘

▷레벨: 999+

▷직업: 퇴마사(악마→피해↑)

▷스킬: 기력Z 침투Z 항마Z 통역A

▷상태: 성녀

딱히 의도한 건 아니었다.

지팡이의 내구성을 올릴 수 있는 스킬 한두 개쯤은 남기고 싶었는데, 내 예상보다 한계돌파에 필요한 제물의 양이 많았다. 까딱 잘못했으면 한계돌파 못 하고 스킬만 날릴 뻔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군.

이제부터 성녀H와 지팡이는 한 세트였다. 계약구조를 그렇게 짜놨기에 분리해서 따로따로 소환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초월영역 스킬이 셋에다가 음성지원서비스까지 되는 이 굉장한 지팡이를 성녀H에게 완전히 맡기기로.

“소중히 쓰겠습니다, 주인님.”

“누구 마음대로…. 꺅?!”

찰싹!

성녀H가 지팡이를 때렸다!

골렘 머리통이 고분고분해질 때까지 싸대기를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금방 친해지겠는걸.”

두 여자의 아름다운 우정의 현장에서 고개를 돌린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성검을 주웠다.

싸우면서 외워버린 이름을 찬찬히 읊었다.

“성검 뉴클리온….”

스킬 증폭 효과가 매력적이었던 성검2를 과감히 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성검 때문이다.

뚜렷한 성능은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성검2보다는 무조건 좋다는 확신이 있었다.

성검2는 판타지아 차원에서 생산된 공산품인 까닭.

최초의 용사가 다뤘던 성검이기에 원래는 강력한 무기였겠지만, 이것도 세계의 숫자만큼 분할되는 바람에 현재는 그 힘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수수깡이 돼버렸다.

나는 그 수수깡 중 하나를 소유했던 것이고.

반면, 성검 뉴클리온은 현실 세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칼날에 흠집 하나 없었다.

진정한 의미의 성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보리스랑 결합하며 사라진 성검2의 빈자리에 성검 뉴클리온이 자연스럽게 꿰차고 들어갔다.

나는 요정 용사를 힐끔 내려다 봤다.

“진짜 이상하네. 성검 뉴클리온이 나랑 계약되는 걸 보면 확실히 죽었는데…?”

어째서 여전히 나는 100레벨인 걸까?

마왕의 페널티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요정 용사의 시체에서 멀리 떨어져 보기로 했다.

그때,

“강한수 씨!”

“A급 용사님!”

흙먼지를 뒤집어쓴 팩토리아와 인어 아가씨가 이쪽으로 뛰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날벌레를 쫓아내듯 손을 휘휘 저었다.

“야야, 저리 가. 우리는 앞으로 모르는 사이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밀린 만화와 소설을 봐야 한다고. 너희가 근처에 있으면 내가 연애를 할 수- 아! 맞다. 진짜 돌겠네! 연애 한 번 안 해본 순진한 내가 어디서 참한 아가씨를 구하지…?”

어머니. 허들이 너무 높은 거 아닙니까?

“참한 아가씨는 왜 구하는데요?”

“그런 게 있어.”

나는 예쁜 얼굴로 친한 척하는 팩토리아에게 인상을 팍 찌푸리며 불편함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 여자는 골반을 좌우로 흔들며 태연자약하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가증스럽게 애교를 섞어가며 말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중인지 가르쳐주세요. 제가 피땀 흘려가며 키운 도시가 회생불능의 피해를 받았다고요. 당장 주저앉아서 펑펑 울고 싶지만, 그러면 정말 끝장나버리겠죠. 그러니 원인이라도 알려주세요. 어떻게든 수습하고 싶어요.”

“걱정하지 마.”

“제 도시인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뒷수습은 확실하게 해줄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나는 곧바로 마왕 고유의 힘을 활성화했다. 그리하여 지구 곳곳으로 퍼져가는 휘하의 악마들에게 거리의 제약을 무시하고 명령했다.

팩토리아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라고.

그들만이 아니다.

내가 요정 용사랑 싸우면서 대량으로 뿌린 마기는 사라지지 않고 태평양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운이 좋은 누군가가 마기를 손에 넣을 터. 그리고 충실한 악마추종자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팩토리아는 여전히 포기하질 않았다.

“강한수 씨. 조금만이라도 이야기해주세요. 우리를 습격한 이 요정은 뭐예요?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음란하게 생긴 저 천사는…. 어? 잠깐! 당신은 용사 페스티벌을 안내하는 성녀님이시잖아요?! 성녀님이 왜 지구에 있는 거죠?!”

“신경 쓸 거 없어.”

나는 여전히 지팡이를 때리는 중인 성녀H의 소환을 해제했다.

“앗! 어떻게 한 거예요?!”

“몰라도 돼.”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나쁜 남자가 요즘 대세인 건 맞지만, 당신은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친한 척하지 마.”

상대해주기 귀찮아진 나는 그녀를 무시하고 날개를 활짝 펼쳤다. 이대로 대한민국까지 날아갈 계획이다.

그렇게 막 떠오르려는 순간,

덥석!

죽은 줄 알았던 요정 왕자가 기습적으로 내 다리를 양팔로 끌어안았다. 100레벨이란 게 믿기지 않는 재빠른 속도였다.

그리고는 높낮이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마왕 페도나르 격퇴 프로그램 가동.”

“뭐…?”

요정 왕자가 의미불명의 기계적인 대사를 중얼거렸다.

판타지 17년 경력을 통해서,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나는 망설임 없이 반대편 발로 힘껏 걷어찼다.

퍽! 퍽! 퍽!

하지만 요정 왕자는 떨어지지 않았다.

힘줄이 가닥가닥 끊기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양팔의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구친 걸까?

나는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미친…! 폭주냐…!”

요정 왕자는 그딴 스킬은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100레벨→80레벨→60레벨→40레벨….

스킬 폭주.

레벨과 경험치를 잃는 대가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일시적으로 발휘하게 해주는 스킬이다.

폭주한 요정 용사는 자신의 모든 레벨을 미증유의 힘으로 치환하여 쏟아붓고 있었다.

마왕의 페널티를 받는 나도 덩달아 레벨이 하락했다. 하지만 나는 폭주하지 않았기에 힘이 계속 줄어들었다.

힘의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벌어졌다.

“강한수 씨! 도와드릴게요!”

팩토리아가 허리춤에 매달린 유리병을 요정 용사에게 던졌다. 하나로 그치지 않고 연속적으로 빠르게.

쨍그랑! 쨍그랑!

유리병이 깨지면서 강력한 마법이 발현됐다.

마법사였다면 발동까지 한참 걸렸을 강력한 위력의 마법이 거짓말처럼 쉽게 팡팡 터졌다.

이것이 준비된 마술사의 장점이자 강력함!

물론, 그만큼 돈도 팡팡 깨지지만….

팩토리아가 준비한 회심의 일격들은 강력했다. 전성기의 나조차 완전히 무시하지 못하고 새끼손가락으로 막아야 할 만큼.

그러나 그만한 마법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젠장! 이 힘은…!”

블랙박스 B등급 효과였다.

상대를 파멸시킨다.

요정 용사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힘이 팩토리아의 ‘거짓된 힘’을 말끔히 분쇄해서 무효화 해버렸다.

이래선 판타지 힘으로 피해를 줄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성검 뉴클리온을 소환해서 요정 왕자의 팔을 벴다. 그러나 이번에도 블랙박스의 힘에 가로막았다.

이번에는 E등급 효과였다.

파괴되지 않는다.

“허! 미친!”

이런 사기적인 운용은 처음 보았다.

어째서 처음부터 사용하지 않았던 거지?

요정 용사가 그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장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하하! 페도나르. 나의 오랜 호적수여. 잘 지냈는가? 이 메시지를 받았다는 건, 나의 안배를 깨부쉈다는 뜻일 터. 하지만 자네가 이 메시지를 듣는다는 건, 나의 두 번째 안배에 걸렸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 어찌어찌 현실 세계로 기어 나온 그대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여기엔 이미 그대가 설 자리가 없다네. 그러니 돌아가서 지금처럼 후학들의 양분이 되어주게. 인류의 평화를 위해. 메시지가 종료됐습니다.”

저 녹음은 ‘최초의 용사’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역시나, 나를 마왕 페도나르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 안배에 엄한 사람을 끌어들이다니…!”

“자폭합니다.”

“미친-!”

나는 최초의 용사가 선물한 생체폭탄을 떨쳐내는 걸 포기하고 하늘 높이 수직으로 도약했다.

엄한 사람들을 더 끌어들이지 않기 위해.

높이! 더 높이! 그리고-

번쩍!

*

...그 뒤에 어떻게 됐지?

대폭발에 휘말린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고(思考)한다는 것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 아닐까?

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시야는 한없이 어둡고, 정신은 몽롱했으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포근하면서도 따뜻한 물속에 잠겨있다는 사실만을 어찌어찌 인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신을 잃고 태평양 한복판에 빠진 걸까?

능력치를 확인해봤다.

▷종족: 카오스 휴먼

▷레벨: 1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통역A ■■A

▷상태: 성검, 마검, 골렘

망가졌던 게 원상태로 돌아왔다.

일단, 정신을 집중해서 골렘을 소환했다.

골렘이랑 한 세트인 성녀H는 폭발하기 전에 소환을 해제해서 무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도 대규모로 살려내는 그녀라면 나를 물속에서 건져서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늦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성녀H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소환된 그녀가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됐다.

소환은 제대로 이루어졌을 텐데?

원인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를 기다리게 한 성녀H의 엉덩이를 팡팡 때려주고 싶었지만,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살아있긴 한 걸까?

그렇게 지루한 나날이 흘러갔다.

“히프리아 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분에게 이 미천한 몸과 마음을 바친 종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시길.”

“그렇다고 해도 히프리아 님이 아니었다면 전 벌써….”

“쉿! 지금은 밤이니 푹 쉬세요.”

“히프리아 님….”

언제부턴가 두 여자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히프리아, 히프리아, 히프리아….

온종일 지겹도록 들려오는 이 이름. 그만 좀 부르라고 반대편 여자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목소리는 그들에게 닿지 않았다.

히프리아.

이 여자는 대체 누구야?

그런 의문 속에서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내 정신이 깨어있는 시간은 극히 짧았다. 하지만 점차 그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손발의 감각도 차츰 돌아왔다.

성녀H가 구하러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이 속도라면 얼마 안 가서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제법 힘이….

“꺄아악-?!”

“괘, 괜찮아요?!”

“흑흑! 죽는 줄 알았어요, 히프리아 님.”

“진정하세요. 건강하다는 증거에요.”

...어째선지 내가 움직일 때마다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그건 솔직히 상관없는데, 덩달아 내 영혼도 찢어질 듯이 고통스러웠기에 움직일 엄두가 안 났다.

이걸 어찌해야 좋을지….

시간이 또 흘렀다.

한 여자가 죽어가고 있었다.

“히프리아 님. 추워요….”

“정말, 정말로 미안합니다. 저에게는 당신을 구할 힘이 없어요.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이었다면….”

“아니요. 저는 히프리아 님이랑 함께해서 행복했어요. 감사합….”

나의 본능이 속삭였다.

조금 이르지만, 부활할 때가 되었노라고!

촤아아악-!

나는 어두컴컴한 태평양의 심연에서 빠져 나왔다.

휘황찬란한 세상이 나를 반겼다.

낯익은 미녀도 보였다.

“주인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걸 어쩌죠? 저는 젖이 안 나오는데….”

성녀H가 나를 내려다보며 이상한 소리를 했다.

갑자기 웬 젖 타령이야?

“응애?”

...응? 으응-?

“응애애애~~?!”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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