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93화 (93/430)

 093화

[8회차] 두 명의 마왕

아니라고 부정하던 나는 유모가 눈앞에 내미는 젖꼭지를 보자마자 냉큼 빨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이건 불가항력이다.

아기는 생후 6개월 동안은 무언가를 빠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뒤에도 애정결핍이나 심심함, 호기심 등의 이유로 습관이 되어 손가락 등을 빨기도 한다.

이때 안 고치면 이빨과 얼굴이 안 예쁘게 성장한다. 그렇기에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필수.

아무튼, 내 절제력의 문제가 아니다.

“공주님. 본국으로 피신하시지요. 소신이 모시겠습니다.”

“그건….”

유모는 결정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녀가 성녀H에게 받은 지시사항은 여기서 나를 키우라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갈팡질팡하는 유모를 보면서 고민하던 나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내 현재 직업은 마왕.

악마와 악마추종자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텔레파시(telepathy) 같은 방식으로.

“쪽쪽- 응애.”

B급. 나 대신 말해라.

“칼을 함부로 휘두르는 빌어먹을 검희는 잘 듣도록.”

“...영주님? 제가 이 방에 무단침입한 건 사실이지만, 조금 전 발언은 품위 있는 귀족으로서 지나치신 게….”

“닥쳐라.”

“......”

“우리는 악랄한 네년의 계획대로 무고한 백성을 버리고 후퇴하는 만행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의- 귀여운 아기님의 전략으로 신흥제국을 쳐부술 것이다. 문제가 터지면 뭐든 검기로 썰어서 해결하려는 무식한 여기사는 가만히 지켜봐라.”

“무, 무식한….”

얼굴이 새빨개진 검희가 발끈했다.

하지만 나는, 영주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하하! 그것 봐라. 또 칼자루로 손이 가지 않았느냐. 검희. 나를 벨 테면 베어봐라. 그것이 네 무식함과 조급함을 증명할 테니.”

“으으….”

유모가 중재하면서 우리의 정다운 대화는 끝났다.

그 뒤, 우리는 중립국에 전쟁을 선포한 신흥제국을 상대로 이 영지에서 맞서 싸우기로 했다.

검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국의 야욕은 북대륙을 통일할 때까지 끝나지 않겠지요. 두 분의 말씀처럼 도망친들 조금 시간을 버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현재로선 승산이 없는 것도 사실. 영주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본국에 연락해서 군대의 파견을 요청하겠습니다. 하다못해 저희 영지의 사병이라도….”

“그렇게 하시오.”

“감사합니다.”

세세한 내용은 영주의 기량에 맡기고, 배가 통통하게 부른 나는 서서히 수면에 빠졌다.

*

다음날, 영주의 예언처럼 신흥제국에서 선전포고를 해왔다.

단시간에 연속으로 큰 전쟁을 수행하면 국내가 피폐해지기 마련이지만, 이 나라는 승리에 취해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중요한 전쟁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해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황금골렘의 힘.

반드시 이기거나 점령해야 하는 전장에 꼭 출전해서 ‘최소의 피해’로 완벽한 승리를 무조건 따내는 승리의 화신.

괜히 ‘군신’이라고 불린 게 아니다.

그 덕분에 전리품이란 탈을 쓴 약탈로 끊임없이 부족한 식량과 자금 등을 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에 도달했다.

왜?

“응애.”

민심과 치안은 약탈로 해결 안 되지.

아버지와 오빠. 남편, 남자친구, 이웃 등을 죽인 군대가 도시와 마을에 주둔해 있다.

여자를 건드리는 간부와 병사는 지위를 막론하고 처형하고, 식량은 돈 주고 제대로 구매하면서 적대적인 민심을 달래보지만….

애초에 착한 전쟁 따위는 없다.

빼앗은 돈으로 식량을 사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가족을 죽이고 용서를 구해봐야 설득력 없다.

이런 위선적인 행동마저 아예 안 하는 침략자들보다는 낫지만, 신흥제국의 영토확장은 욕심이 지나쳤다.

단 한 번.

신흥제국은 단 한 번의 패배로 무너질 것이다.

하지만 그 한 번의 승리를 따내지 못해서 신흥제국에 멸망한 왕국과 군대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렇기에 나도 약간의 준비가 필요했다.

“아기님. 이쪽인가요?”

“응애.”

농성할 생각은 없었다.

일방적으로 방어하는 전투 스타일은 내 취향이 아닐뿐더러, 이런 연약한 몸으로 한 방씩 주고받는 건 위험했다.

결론은?

공격! 공격! 또 공격!

침략당하기 전에 먼저 침공할 계획이다.

나는 마기의 화살표로 유모에게 목적지를 지시했다.

젊고 팔팔한 내가 직접 출전해서 몰살시키며 싸우는 편이 가장 좋지만, 6회차 때처럼 레벨이 너무 높아져서 ‘Z급 마왕’에게 패배하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동료’가 필요했다.

“저…. 공주님? 여기로 쭉 가면 출입금지구역이 나옵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시는 편이….”

“응애!”

너는 꺼져!

검희가 병사들을 이끌고 멋대로 호위한답시고 쫓아왔다.

무조건 떼어놓고 싶었는데, 유모가 그녀의 동행을 은근히 원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아기님은 검희를 무척 따르네요. 부러워요.”

“그, 그건…. 흠흠. 왕손 저하의 과분한 호의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설산M으로 향했다.

이 험난한 산에는 다양한 흉악범이 숨어 사는데, 그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인간은 역시나 악마숭배자였다.

마기가 골수까지 침투해서 미치지 않았다면,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이렇게 도망친 악마숭배자들이 설산M으로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마굴(魔窟)이 형성됐다.

머나먼 과거부터 이 땅의 터줏대감이었던 악마의 지배를 받으며, 최소한의 규율과 이성을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

통칭, 마굴C.

이런 현상금 사냥터가 대륙마다 한두 개씩 존재한다.

“HuHu…!”

“BuBu!”

마굴C까지 가는 길에 다양한 몬스터랑 마주쳤는데, 이럴 때마다 검희가 나서서 빠르게 처리했다.

검희.

그 위명(偉名)처럼 춤추듯 우아하게 싸울 것 같지만, 겉보기에 아름다운 여성이라서 ‘검의 공주’라고 부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검희에게 우아함 따위는 없다.

푸화아악!

그녀가 소환한 마검에 푸른색 검기가 봉화(烽火)처럼 솟구쳤다.

마검은 분명히 허공을 베었지만, 솟구친 검기가 칼날을 연장해주면서 먼 거리에 떨어진 오크 무리까지 일격에 몰살시켰다.

이것이 검희의 전투방식.

사기적인 재능이 낳은 ‘검술 없는 검술’이었다.

“공주님. 저기가 마지막 마을입니다.”

오크를 처리한 검희가 말했다.

그녀 말대로, 앞에 보이는 마을 너머는 출입금지구역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인 한정의 이야기일 뿐, 마굴C를 토벌해서 명성을 쌓으려는 도전자들이 매년 저 마을에서 마지막 정비를 한 후에 도전한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마을이 마굴C의 공격을 받지 않는 이유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둘은 공생관계다.

마굴C의 악당들은 마을을 공격하지 않는 대가로 정보와 생필품을 받는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은 마굴C에 도전하고자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가격을 후려쳐서 장사한다.

당연히 그들만의 비밀이다.

“응애.”

1회차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는걸.

머저리 같은 동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마을로 뛰어갔다.

자기들의 정보가 마굴로 보내지는 줄도 모른 채 주둥이로 계속 중요한 정보를 나불거렸다.

특기, 약점, 습관, 스킬, 장점, 전략….

주민들이 넌지시 물어보면 자랑하듯 떠벌렸다.

그래서 내가 주민들이 수상하다는 경고했지만, 동료들은 “이렇게 친절한 주민들을 의심하다니! 네가 그러고도 용사냐!”라는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 결과는?

쉬웠을 마굴 토벌이 굉장히 힘들어졌다.

간신히 이긴 후에 “정말 힘든 싸움이었어.”라고 지껄이는 동료들을 싹 죽이고 싶었다.

진심으로 온 힘을 다해서.

“공주님. 척후병을 마을로 먼저 보내서 조사해봤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검희는 꽤 조심성 있는 편이다. 수틀리면 검기로 싹 베어버린다는 결함이 있지만.

검희가 이어서 말했다.

“저 마을은 여관의 유황온천이 매우 유명하다고 합니다. 심신(心身)을 안정시켜주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기에, 공주님의 산후조리에도 도움이 되리라 짐작됩니다. 물론, 성장기의 왕손 저하에게도.”

“기대되네요!”

“바로 모시겠습니다.”

...조심성은 있지만, 성과가 없다.

저 마을의 유황온천이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건 맞지만, 어떻게 안정시키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들어가면 저절로 알 수 있다.

첨벙.

유모가 나를 안고 여관의 노천탕에 몸을 담갔다.

“하아! 노곤하네요. 아기님. 물 온도는 괜찮으신가요?”

“응애애….”

이걸 노곤하다고 할 수 있을까?

▷종족: 카오스 휴먼

▷레벨: 265

▷직업: 마왕(용사→레벨↓)

▷스킬: 마기Z 신성Z 축복Z 불사MAX 생존MAX…

▷상태: 성검, 마검, 골렘, 약화

이 온천수에는 은밀하게 약물이 살포되어 있다.

전문조사단이 파견되지 않는 외진 마을이기도 하고, 약물이 미네랄 풍부한 유황에 섞여 있어서 여태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오묘한 방해 효과.

유모의 감상처럼 노곤해지는 기분이랑 구별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잘난 현자까지 깜빡 속아 넘어갔었다.

아! 그 자식은 이때 코피를 쏟아서 기절했었나?

아무튼, 이 약화를 무시하면 안 된다.

협동 시에 동료들에게 “이건 내게 맡겨줘!”라고 호언장담했다가 실패해서 파티 전체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담이다.

당연히 나는 피해자였다.

“실례하겠습니다, 공주님, 왕손 저하. 소신은 두 분의 호위기사로서 사양하려고 했는데, 여관 주인아주머니가 떠미시는 바람에….”

무척 난감해하는 검희의 목소리가 수증기 너머로 들려왔다.

“응애…?”

설마…?

정말이었다.

얄팍한 수건 한 장으로 알몸의 앞만 가린 검희가 노천탕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1회차 기억이 폭포수처럼 솟아났다.

얼른 도망쳐야 해!

바둥바둥.

“어머! 아가님이 검희를 보자마자 그쪽으로 가려고 하네요. 호호! 벌써 미녀를 밝히면 커서 어쩌려고 이럴까요?”

“미녀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결혼은 아직도?”

“네. 공작님께도 말씀드렸지만, 저를 이기는 남성을 만나기 전까지는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건 진심이 아니잖아요?”

“...어릴 적에 치기로 말씀드린 걸 아직도 기억하시는군요.”

“후후! 당연하죠. 우리는 소꿉친구잖아요? 자, 조심히 받으세요.”

유모가 검희에게 나를 떠넘겼다.

나를 죽일 셈인가?!

바둥바둥.

“저를 여자로 안 봤던 심술궂은 사내아이들에게 묘하게 끌렸었습니다…. 어른으로 성장한 이후에 다들 변심했지만.”

“어렵네요. 당신 같은 미녀를 여자로 보지 말라니….”

두 여자는 과거의 추억으로 과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리고 기진맥진해진 내가 잠든 사이에 생명의 위기를 느꼈던 목욕이 끝났다.

뒤늦게 내가 ‘아기’임을 깨달았다.

아니면 왕족이라서 그런 건가?

“공주님, 왕손 저하. 편히 쉬십시오.”

“당신도요.”

유황온천을 더 즐기라는 여관 주인의 권유를 사양하고 침실 입구까지 호위로 따라온 검희랑 헤어지고, 유모와 나는 침실로 들어왔다.

검희는 우리가 마굴C로 가는 이유를 모른다. 나를 안고 마굴C로 이동한 유모도 마찬가지.

우리는 내일 마굴C로 쳐들어갈 계획이지만, 그건 첩자 노릇을 하는 마을 주민들을 속이기 위함이다.

사실은 오늘 밤이다.

나는 성녀H를 소환했다.

“히프리아 님!”

“쉿!”

“어머! 죄송합니다.”

“주인님이랑 잠시 산책 좀 하고 올게요. 들키지 않도록 검희의 시선을 잠시만 끌어주시겠어요?”

“네. 맡겨주세요, 히프리아 님.”

유모가 침실 밖으로 나가는 걸 확인한 성녀H가 나를 안정적으로 품에 안은 후, 입술을 열었다.

“주인님. 질문이 있습니다.”

“응애?”

뭔데?

“유모는 악마입니다. 영주에게 했던 것처럼 마왕의 힘으로 조종하면 간단할 텐데, 어째서 안 하시는 건가요? 그 탓에 주인님이 검희를 좋아한다는 오해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응애.”

...글쎄.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머!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니 괘념치 마세요, 주인님.”

펄럭!

침실 창문을 조심스럽게 연 성녀H가 3쌍의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마굴C까지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나는 유황온천에 약물을 몰래 살포한 마굴C의 악마숭배자들처럼 소심하게 놀지 않는다.

촤아아아!

Z급 마기를 활짝 개방했다.

“응애, 응애!”

용사님에게 복종해라, 마왕의 하수인들아!

*

다음날.

나는 유모의 품에서 깨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밤새 팽팽하게 차오른 신선한 젖을 빨고, 아침 운동으로 걸음마 연습을 했다.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

이젠 스킬의 보조 없이 혼자서 몸을 뒤집을 수 있게 됐다.

덜컥.

침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검희가 뛰어 들어왔다.

“공주님! 큰일 났습니다! 밖에…!”

그녀가 다 설명하기도 전에 마을 밖에서 큰 외침이 들려왔다.

“위대한 분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집결했나이다! 이 생명과 마기가 다하는 날까지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비루한 마굴에서 목적 없이 연명하던 저희를 유용하게 써주십시오!”

“써주십시오!”

“써주십시오!”

설산M에 사는 거의 모든 흉악범이 마을 앞에 모였다.

살인과 강간 외에는 소질이 없는 A급 악마의 대갈통을 때려가면서 정신교육 한 보람이 있었다.

충성맹세 중에 말실수하지 않았다.

귀여운 나를 마왕으로 의심하는 우매한 야만인은 없으리라.

그 장엄한 광경에 말문을 잃은 검희와 마을 주민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모의 품에 안긴 채, 여관 2층 창문을 통해서 그들을 오연하게 내려다 봤다.

가칭, 정의로운 용사의 재활용 군단.

전투에 특화된 스킬과 높은 레벨이 돋보인다.

파괴와 살해를 일삼는 나쁜 연놈일수록 쉽게 강해지는 판타지 능력치 시스템이 잘 반영되어 있다.

유용하게 재활용해주겠다.

나는 전의를 돋우고자 힘차게 외쳤다.

“응애-!”

신흥제국이랑 한바탕 놀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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