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103화 (103/430)

 103화

[8회차] ???: 내 노예가 되렴

그것은 딜레마였다.

최초의 정령이랑 계약해서 소유하면 초월영역 스킬이 둘이나 또 늘어나 버린다.

그러면 최초의 정령을 골렘처럼 블랙박스의 힘으로 흡수하면 된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주위에 보는 정령이 많았다.

최초의 정령이 죽으면 모든 정령이 분노로 날뛸 터.

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래서,

▷종류: 스킬

▷명칭: 날조

▷등급: MAX(0%)

▶Z: 신의 호소를 이긴다.

▷SSS: 가족으로 둔갑한다.

▷SS: 애인으로 둔갑한다.

▷S: 친구로 둔갑한다.

▷A: 증인으로 둔갑한다.

▷B: 가족의 호소를 이긴다.

▷C: 애인의 호소를 이긴다.

▷D: 친구의 호소를 이긴다.

▷E: 증인의 호소를 이긴다.

▷F: 거짓이 그럴싸해진다.

스킬 숙련도 올리기가 지옥불 난이도인 ‘날조’를 활용했다.

A등급까지는 쉬웠다. 그래서 만만하게 봤었는데, S등급부터는 정말 만만치 않았다.

스킬 숙련도를 빠르게 올리는 요령은, 높은 등급 효과를 자주 활용하는 것이었던 탓이다.

그런데 친구로 되라니?

지구의 문화시민인 내 수준에 걸맞은 친구를 판타지아 대륙에서 찾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 위에 등급 효과인 가족과 애인도 답이 없긴 마찬가지.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좋은 스킬 다 놔두고 ‘날조’를 제물로 바치지 않고 남겨둔 이유가 바로 SSS등급 효과 때문이다.

가족으로 둔갑한다.

A등급과 S등급 효과를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SS등급과 SSS등급 효과도 예상됐다.

그리고 적중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어느 나라의 왕족도 될 수 있다는 의미. 왕이나 황제가 숨겨둔 사생아 같은 식으로 접근해서 합법적으로 나라를 꿀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 목적은 처음부터 그쪽이 아니었다.

“낯설었단 말이지….”

10년 넘게 타지에 있었다.

요정 페스티벌 당시, 동창이 나를 먼저 알아볼 정도로 나는 판타지아 대륙에 물들었다.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지만, 부모님이 달라진 내 모습을 못 알아보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다.

내 여린 마음에 상처가 될 테니까.

▶진지: 강한수 생도님은 섬세한 분이셨군요. 그 섬세함을 여성에게도 배려하면 더 좋을 텐데요. 상냥한 말 한마디는 봄날과 같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교생 아가씨.

나는 충분히 배려했다구?

▷종족: 퍼스트 스피릿

▷레벨: 1

▷직업: 여왕(매력→지배↑)

▷스킬: 불사Z 불굴Z 매력Z 사랑E

▷상태: 탈진, 욕정, 타락

최초의 정령은 내 머리 위에 퍼질러 누워있었다. 등의 날개를 까딱거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고결함이나 우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를 ‘애인’으로 인식해서 무방비하게 노출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관계.

그러나 스킬 ‘날조’가 해냈다!

“아우으으…. 용사님은 비겁해요.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몸으로 만들다니….”

최초의 정령이 새침한 어조로 작게 속삭였다.

“싫으면 떠나시던가.”

“나쁜 남자. 정령의 예민한 몸에 그런 짓을 해놓고선 책임질 마음은 없는 건가요? 저도 자존심이 있습니다. 당신이 저만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게 만들겠어요. 반드시!”

우리는 계약하지 않았다.

능력치로 관계가 묶여있지 않았다.

하지만 최초의 정령은 나를 따르고 있었다. 이러면 조련사나 소환사가 아니더라도 졸개를 활용할 수 있고, 초월영역 스킬 숫자를 걱정할 필요 없다.

덤으로,

정령F→정령E→정령D→정령C

사랑C→사랑B

나는 손가락이랑 성검을 몇 번 휘두른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두 스킬이 미친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걸 증명하듯, 아까부터 정령들이 날벌레처럼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거슬리게 했다.

정신 사나우니 좀 꺼져주라.

하지만 정령들은 까르르 웃으며 내 말을 무시했다. 농담이나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이런 부작용이 있을 줄이야.

“저길 봐! 세상에! 정령들이….”

“정령의 사랑을 이토록 받는 인간이라니….”

“요정도 아닌데 정령의 사랑을…?”

한창 도시복구사업 중이던 요정들이 나를 보며 경악했다. 아무리 주위에 무관심한 자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건설장비나 다름없는 정령들이 몽땅 내게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묵묵히 작업에 집중할 수 없으니, 그 원인을 자연스럽게 추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당연했다.

모든 정령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최초의 정령이 나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다른 정령들도 나를 사랑한다.

3대 요정왕이랑 그 원리는 비슷했다.

친구에서 애인으로 바뀌었을 뿐.

그때였다.

“용서 못 해! 악마와 인간을 세상에서 다 지워버리겠어!”

“실비아! 진정해! 나야! 지크라고!”

“하! 지크! 이 쓸모없는 자식. 역시 인간을 믿는 게 아니었어. 지켜준다는 말로 현혹해서 8년 동안 그 더러운 물건으로 내 몸을 희롱하더니, 정작 필요할 때는 패배하고 자빠졌지. 너 때문에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돌아가셨어. 지크. 양심이 있으면 자결해!”

“실비아…!”

부부싸움이 벌어졌다.

지크와 실비아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훤한 대낮에 벌거벗고 뭐 하는 짓들인지 모르겠다. 분노에 삼켜져서 현실감각을 상실한 걸까.

제삼자인 내 눈에는 둘 다 병신이었다.

악마의 침공은 갑작스러운 기습공격 같은 게 아니다. 신탁으로 마왕 페도나르가 부활했다고 경고했었다.

그리고 용사 지크에게는 9년이란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정력SSS를 비롯해서 마왕과의 결전(決戰)에 하등 쓸모없는 스킬들의 숙련도나 올리면서 허송세월하였다.

이런 변변찮은 용사를 유혹해서 팔자 펴보려 했던 실비아도 다를 게 없었다.

쿠데타에 실패한 나서스 왕자가 죽으면서 그녀는 유일한 왕위계승권자가 됐다. 더는 공주가 아니다.

그런데 실비아는 나라의 안위 따위 알 바 아니란 식으로 철딱서니 없게 살아왔다. 그 증거로 인간이랑 살을 섞었다.

그렇게 태어난 인간 혼혈을 다음 왕으로 앉힐 셈인가? 그건 둘째 치고 요정 왕가 ‘아크 엘프’의 혈맥이 끊긴다.

제정신이라면 이럴 수 없다.

“불의 정령들아. 지크를 태워버려!”

“자, 잠깐! 실비아! 이러지 마! 으아아악~?!”

정령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지크는 바닥을 구르면서 마누라의 분노를 피하기 급급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는데,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마왕을 쓰러트리기도 전에 내부분열이라니….

내 1회차가 떠오르는군.

“...엘브하임의 후손들은 정말 무능해졌네요. 그 친구의 첫째 딸이 다음 요정왕만 됐어도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 하필이면 나쁜 것만 물려받은 둘째 아들이 돼서…. 안타깝네요.”

실비아를 본 최초의 정령이 혀를 찼다.

그리고 말했다.

“돌아오렴, 아이들아. 멍청한 요정 옆에 있으면 전염된단다.”

그녀의 한마디에 상황이 종료됐다.

신나게 날뛰던 정령들이 실비아에게서 떠났다. 그래도 꽤 오랫동안 함께한 옛정이 있을 텐데, 작별인사조차 없이 썰물처럼 정말 순식간에 싹 빠졌다.

능력치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종족: 아크 엘프

▷레벨: 515

▷직업: 주술사(축복=정령↑)

▷스킬: 정령SS 축복S 매력S 궁술A 기품A…

▷상태: 수치, 분노, 회한

이랬던 실비아가,

▷종족: 아크 엘프

▷레벨: 515

▷직업: 궁수(궁술=관통↑)

▷스킬: 매력S 궁술A 기품A 사교A 민첩B…

▷상태: 공황, 혼란

이렇게 바뀌었다!

정령이 그녀의 곁을 떠나면서 정령이 내린 ‘축복’도 사라졌고, 핵심인 두 스킬이 사라지니 자연스럽게 직업도 달라졌다.

고급전력인 주술사에서 흔한 궁수로.

보통은 공주가 돼야 했지만, 나라가 망하면서 취미로 배운 궁술이 주특기로 당첨됐다.

요정 종족이 정령에게 얼마나 큰 혜택을 받아왔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변화였다.

“정령 친구들아! 돌아와~!”

실비아가 애타게 불러도 정령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요정왕국 엘브하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갔던 강자가 흔하디 흔한 병졸 수준으로 한순간에 떨어졌다.

최초의 정령이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아이를 데려오고 싶지만, 제가 사랑하는 용사님께서 원치 않으시니 왕족만으로 한정할게요. 하지만 요정들은 앞으로 우리를 사사로운 싸움에 동원하진 못할 겁니다. 용사님. 이 정도면 만족하시나요?”

“그래.”

“하지만 전혀 만족하신 얼굴이 아닌데요.”

“...그런 게 있어.”

눈앞에서 실제로 본 탓이다.

초월적인 존재가 자신의 힘을 회수하는 광경을.

최초의 정령이 정령들을 싹 회수하자마자 요정공주 실비아는 ‘쥐뿔도 없는 요정’이 돼버렸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만약, 판타지 신이 능력치를 회수한다면 나도 실비아처럼 ‘쥐뿔도 없는 용사’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이면 다행이다.

“내 정령들을 돌려줘!”

깔끔히 포기할 수 있다면 말이다.

“말은 똑바로 하려무나, 엘브하임의 아이야. 빌려줬던 나의 아이들을 데려온 것뿐이란다. 그러니 내게서 다시 빌리고 싶다면 너의 그 건방진 태도부터 고치렴.”

최초의 정령이 태평하게 늘어진 자세로 실비아에게 말했다.

내 머리 위에서 뭣 짓이람.

“...정령들을 돌려주세요. 전설의 정령님.”

“빳빳하게 서서 말할 셈이니?”

털썩.

실비아의 무릎이 너무나 쉽게 굽혀졌다.

정강이를 두세 번 까야 무릎이 접히는 도도한 요정이었는데, 정령이란 담보가 걸리자마자 바로 비굴해졌다.

“부탁드립니다. 정령을 저에게 돌려주세요.”

“내 노예가 된다면 생각해볼게.”

“그런…!”

“불만 있니?”

“정령을 돌려주신다면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엘브하임의 멍청한 아이야. 그건 네가 하는 걸 봐서 천천히 결정할 거란다.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어쩔래?”

“...하겠습니다.”

요정공주 실비아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정령을 잃으면 남은 거라고는 고귀한 혈통밖에 없으니까. 자존심 강한 그녀에게 정령 없는 삶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건,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다.

끊을 수 없는 마약이랑 비슷하다.

실비아는 빠져나올 수 없는 올가미에 걸렸다. 그녀뿐만 아니라 요정 대다수가 그러했다.

“진심인지 확인해볼까? 딱딱한 표정 풀고 해맑게 웃어. 그리고 엉덩이와 허리를 흔들면서 춤추렴. 내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계속. 어머! 여태 알몸이었으면서 뭘 신경 쓰니? 얼른 시작하렴, 멍청한 노예야. 나는 벌써 명령했단다.”

지크와 실비아의 부부싸움은 그렇게 흐지부지 끝났다.

“후후후! 용사님. 재미있지 않나요?”

“전혀.”

최초의 정령에게 핀잔 준 나는, 울음 섞인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알몸으로 춤추는 실비아를 물끄러미 보았다.

예전 같으면 통쾌하게 비웃어줬을 텐데….

노예를 끔찍이 싫어하던 여자가 자진해서 노예가 됐다. 정령을 되돌려받기 위해 수치와 굴욕을 참으며 복종했다.

저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판타지 능력치에 얽매인 용사들의 미래 모습.

나도 예외가 아니다.

▶걱정: 강한수 생도님. 너무 비관적인 해석 아닐까요?

교생 아가씨. 전혀 그렇지 않아.

나는 이미 블랙박스로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판타지 신이 마음먹으면 언제든 능력치를 빼앗을 수 있다. 그리고 능력치를 빌미로 복종을 강요하리라.

정령C→정령SS

축복F→축복S

실비아의 정령들이 내게 몰려오면서 스킬 숙련도가 대폭 상승했다.

나로선 뜻하지 않은 횡재를 만난 셈이지만, 언젠가 나도 실비아처럼 당할 수 있다는 가정 탓에 섬뜩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멈출 생각은 없지만.

나는 두 스킬을 시원하게 갈아 넣었다.

정령SS→정령SS

이때, 재미있는 현상을 하나 발견했다.

정령 친화력을 의미하는 스킬 ‘정령SS’을 제물로 갈자마자 도로 SS등급의 정령 스킬이 재생성됐다는 점이다.

내 정령 친화력을 최초의 정령이 보정해주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요정들이 누리던 혜택이 내게 적용됐다는 방증.

아무튼,

영재Z(99%)→영재Z(100%)

영재Z→영재ZZ

나는 준비가 끝났다.

▷종류: 스킬

▷명칭: 영재

▷등급: ZZ

▶ZZZ: ???

▶ZZ: 뿌리부터 재구성한다.

▶Z: 한계돌파가 약간 쉬워진다.

▷SSS: 손재주가 꽤 증가한다.

▷S자: 성공률이 꽤 증가한다.

▷S: 숙련도가 꽤 증가한다.

▷A: 경험치가 꽤 증가한다.

▷B: 손재주가 약간 증가한다.

▷C: 성공률이 약간 증가한다.

▷D: 숙련도가 약간 증가한다.

▷E: 경험치가 약간 증가한다.

▷F: 떡잎부터 비범해진다.

그리고 선택지가 주어졌다.

▶영재ZZ: 태어날 때부터 특별했던 당신은 종족이란 울타리마저 벗어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신조차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뿌리부터 재구성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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