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106화 (106/430)

 106화

[8회차] 정령왕의 역습

정령들은 싸움을 싫어한다.

그 싫은 이유가 정말 많기에 일일이 꼽을 순 없지만, 대규모 싸움은 필연적으로 천연자연을 파괴하기에 극도로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단, 예외는 있었다.

정령들은 최초의 정령을 감금한 요정들을 위해 오랫동안 싸웠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중에 태어난 어린 정령들은 선배들을 보면서 ‘싫어도 싸워야 한다.’라는 식으로 아무것도 모른 채 참아왔다.

이때부터 정령사와 주술사가 전장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도 오늘부로 끝났다.

최초의 정령이 요정의 마수로부터 해방됨에 따라, 정령들은 싫어하는 전투에서 완전히 해방됐다.

누군가 아픈 싸움보다 더 싫은, 자연을 파괴하려는 환경파괴범이 아니면 굳이 맞서 싸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지크는 미친 게 틀림없어요!”

내 머리를 황후마마 전용 마차로 착각 중인 최초의 정령이 분개했다.

현재, 지크는 마구잡이로 밀림을 파괴하고 있었다. 지구의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가 알았다면 그의 대갈통을 쪼개버렸을 것이다.

그만큼 지크의 행동은 ‘악의’로 똘똘 뭉쳐있었다.

지구의 블랙 기업은 순수한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한다.

기업 대표의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함이긴 하지만, 직원 월급이 쥐꼬리만큼 늘어나거나 일자리가 더 창출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크의 행동은 이러한 직업정신조차 결여되어 있었다.

단순히, 옛 마누라를 향한 복수.

여기까지만 했으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옛날에 독일에서는 부부가 이혼하면 생사 대결도 벌였으니까. 남편은 하반신을 땅에 묻은 페널티를 안고 아내랑 싸운다.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야만적인 판타지에서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누라로 모자라서 종족 전체를 씨몰살하거나 노예로 만들겠다는 지크의 사고방식은 도저히 찬동해줄 수 없겠다.

역모에 걸리면 사돈의 팔촌까지 죽이는 지구의 여러 나라에서도 이렇게까지는 안 했다.

“흠. 지크의 행동방식이 이해가 안 되네. 여기는 이제 정령의 나라나 다름없는데.”

미쳐버린 지크가 급기야 요정이랑 정령을 착각하기 시작한 걸까?

전쟁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요정들이 활로 공격하고, 정령들이 5대 속성을 활용해서 인간의 군세를 저지하고 있었다.

인간들은 정령의 압도적인 화력에 주춤하는 듯했지만, 지크의 지시로 숲을 태우고 강을 오염시키는 강경책을 펼치며 열세를 뒤집었다.

파괴보다 지키기가 더 어려운 법.

정령들은 자연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둘로 나눠야만 했다.

원흉인 인간부터 처리하면 된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그러는 사이에 발생하는 피해를 정령들은 무시할 수 없었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는 전술을 쓰지 못한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죽어가는 데, 범인을 추적하게 생겼는가?

물론, 정령의 분노는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걱정하지 말라구! 해결사가 왔으니.”

이 A급 용사님이 공명정대하게 문제를 해결해주겠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폭력에는 폭력으로!

나는 경험치를 사용했다.

647레벨→646레벨→645레벨→644레벨

레벨이 실시간으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 대신, 미증유의 힘이 내 몸 안에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예전에 지구에서 요정 용사가 자폭하기 직전에 쓴 스킬 ‘폭주’랑 원리는 비슷했다. 하지만 효율은 이쪽이 압도적으로 좋았다. 레벨이 높기도 했지만, 스킬하고는 격이 달랐다.

“호옹···.”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레벨은 계속 하락하는 중이었기에 쓰지 않으면 낭비이기 때문이다.

뿅!

성검 뉴클리온을 소환했다.

한계돌파의 제물로 다 바치면서 스킬이 빈곤해지긴 했지만, 이 성검의 공격력은 늘 최대치다.

분할된 판타지 세계에서 베지 못할 건 없었다.

이거라면 그 비겁한 년도 가슴으로 튕겨내지 못하리라!

“저희도 도울게요, 용사님. 아이들아!”

최초의 정령이 내 머리 위에서 외쳤다. 전쟁한다기보다는 “같이 놀 아이들은 모여라!”라고 부르듯 가벼운 말투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달랐다.

쿵! 화륵! 휘잉! 첨벙! 몰랑!

땅, 불, 바람, 물, 마음.

분노한 정령들이 성검 뉴클리온에 쏟아부은 5가지 힘이 하나로 모이면서 방대한 ‘경험치’가 응축됐다.

642레벨→644레벨→646레벨

레벨도 하락세를 멈추고 역으로 상승했다.

내 육체를 강화하며 줄어드는 경험치의 양보다 정령들에게서 흡수하는 양이 훨씬 많은 결과였다.

새로운 종족 ‘자연인’의 사용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앞으로는 환경보호에 앞장서도록 하자!

“강한수···!”

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지크가 저 멀리서 외쳤다. 그의 주위에는 친위대라고 불리는 미녀 응원단이 있었다.

늙은 왕자의 하렘이 떠올랐다.

그때, 어떻게 했더라?

“지크. 어서 와. 예쁘게 베어줄게.”

우리에게 대화는 불필요했다.

지크가 마누라에게 유감이 많든 어떻든 내가 알 바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이곳에 있는 줄 알면서도 공격했다는 것이다.

여기엔 어떠한 타협과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다만,

저 멀리까지 지크를 찾아가는 건 매우 번거로웠다. 바글바글한 인간들의 군세를 돌파하는 것도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다.

648레벨→48레벨

경험치를 과감히 사용해서 응축된 힘의 파괴력을 더욱 증폭했다.

촤아아아-!

자연을 상징하는 녹색의 광채가, 수직으로 세운 성검 뉴클리온의 칼끝에서 계속 뻗어 나가 하늘의 구름까지 관통했다.

나는 준비가 끝났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

“헉!”

“뭐야!”

그 압도적인 광경을 본 판타지 원주민들이 전율하며 혼비백산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뒷걸음쳤다.

하지만 깨달은 후에는 너무 늦었다.

나는 지크와 친위대가 몰려있는 방향을 향해 성검 뉴클리온을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검술이나 기교 같은 건 없었다.

순수하게 압도적인 힘의 폭력으로 찍어 누를 뿐!

쿠구구구--

바벨탑처럼 하늘 높이 치솟은 녹색 광채가 도미노처럼 인간의 군세 방향으로 쓰러졌다.

정확히 표현하면, 지크의 머리 위.

그의 앞과 뒤에 서 있던 병사와 기사, 귀족, 미녀들은 운이 나빴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곱게 당해주진 않았다.

“하아아압!”

지크가 짐승처럼 포효하며 성검1을 휘둘렀다.

“힘내세요! 지크 오라버니!”

“지크 님. 당신의 승리를 믿어요.”

“강화를 걸어드리겠습니다. 지크 님.”

“지크 오빠. 꼭 이기세요!”

유려한 몸매가 다 드러나도록 디자인돼서 방어력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보호구를 착용한 미녀들이 용사 지크를 응원했다.

지금이라도 공포에 질린 병사와 기사들처럼 좌우로 피신하지 않으면 먼지같이 쓸려나갈 텐데, 지크의 친위대는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검1에 힘을 보탰다.

“강한수!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힘이다!”

사랑과 우정에 반응해서 필살기가 강해지는 성검1의 추가기능. 뜨거운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분홍색 섬광이 내게 맞섰다.

사랑이라···?

나도 일단은 사랑이다.

“지크. 이혼한 네 마누라의 힘을 받아라.”

“뭣···?”

파지지직-!

녹색과 분홍색.

두 사랑의 힘이 충돌했다.

결판은 한순간에 났다.

이혼한 남편 지크의 보복에 대항하기 위해 600레벨 넘게 투자한 실비아의 ‘사랑의 힘’이 훨씬 강력했다.

희생과 손해 없이, 응원 같은 정신론만으로 어떻게든 될 거라고 태평하게 생각한 연놈들에게는 처음부터 승산이 없었다.

그 결과,

지크의 친위대는 몰살당했다.

내가 그녀들에게 유감이 있던 건 아니었다.

지크가 이길 거라고 확신하며 느긋하게 응원하다가 어이없게 휘말린 것이다.

이건 불가항력이므로 내 잘못이 아니다.

힘을 모으는 퍼포먼스를 보고도 도망치지 않는 개미가 안 다치도록 챙기면서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자업자득이다.

“그래도 조금 아쉽네.”

현재 연도는 용사력 15년이다.

판타지아 대륙의 모든 미녀를 안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그건 용사력 10년까지다.

떡잎을 보자마자 “이 소녀는 5년 뒤에 굉장한 미녀가 되겠네.”라고 느낀 꼬맹이들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5년 뒤니까.

그런데 그 5년이 후딱 흘러버렸다.

내 추측대로 미녀가 됐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뼛조각조차 안 남기고 몰살당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잠깐뿐.

“남자 볼 줄 모르고 지크에게 아양 떠는 여자들이었으니까. 그 수준은 볼 것도 없겠지.”

실비아도 포함해서.

나는 먼지 한 줌 크기의 미련을 가볍게 털어버렸다.

게다가 이미 그녀들은 나랑 하나가 됐다.

48레벨→1052레벨

남자를 잘못 골라서 어여쁜 육체를 잃고 말았지만, 용사 지크의 친위대는 경험치가 되어 내 하렘에 전원 가입했다.

그녀들의 매력적인 몸을 감상하다가 도망칠 타이밍을 놓치고 휘말린 혈기왕성한 남정네 제군들도 환영하는 바이다.

모두 유용하게 사용해주겠다.

“허! 한 방에 999레벨을 돌파했네?”

용사의 경험치 5배 특전이 사기적인 건 틀림없지만, 전쟁 한 번으로 999레벨을 넘어설 정도는 아니다.

이처럼 레벨 올리기가 쉬웠다면 내 1회차가 10년씩이나 가지 않았을 테니까. 판타지아 대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신출내기 상태였더라도 1년을 안 넘겼을 것이다.

그만큼 파격적인 경험치 상승 폭이었다.

원인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나의 새로운 종족, 자연인.

처치한 대상의 경험치를 아주 효과적으로 흡수하는 듯했다.

덤으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999레벨 너머의 레벨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오지선다형의 대답으로 표현한 내 소망 일부가 반영되면서 판타지 능력치에 간섭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이리라.

바로 이렇게.

▶종족: 네츄럴 휴먼

▷레벨: 1052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영재ZZ 정령MAX 축복MAX 날조MAX 희망SSS···

▷상태: 성검, 성녀

내가 능력치의 변화를 확인하는 사이, 인간들로 구성된 침략군은 빠르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압도적인 내 힘에 벌벌 떨면서 진심으로 항복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분노한 정령들이 가만 놔두질 않았다.

정령에게 인간들의 정치는 통하지 않았다.

“도망쳐! 으악~!”

“후퇴! 후퇴! 아앜?!”

“헉! 퇴각하라!”

“히히히! 죽여! 죽여!”

불의 정령이 병사들을 태우고, 물의 정령과 땅의 정령은 도망치는 병사들 앞에 강과 구덩이를 파서 퇴로를 막았다.

바람의 정령은 불길과 파도를 더욱 거칠게 했고, 구덩이 함정을 피하려는 병사들을 강풍으로 밀어서 떨어트렸다.

그렇게 병력이 후퇴하고 남은 빈자리.

한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종족: 아크 휴먼

▷레벨: 999+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정력Z 광기SS 인내SS 맷집S 여난S···

▷상태: 중상, 출혈, 골절, 분노, 혼란···

여전히 남의 능력치는 999레벨 너머를 볼 수 없는 모양이다.

“콜록콜록! 내가 또 졌다고? 말도 안 돼···! 나는 5대 재앙을 3마리나 물리친 용사인데! 나도 너처럼 초월영역 스킬을···. 미친?! ZZ등급이라고?! 있을 수 없어! 이건 사기야! 콜록콜록!”

너덜너덜해진 지크가 피를 토하며 탄식했다.

“오! 지크. 살아있었네? 제법인걸.”

내가 잠든 5년 동안 지크도 허송세월한 건 아닌 듯했다. 최초의 정령이 대충 설명했고, 본인도 피를 토해가며 주장하듯이 3개 대륙을 모험했다.

그 증거이자 결실이 정령Z.

용사 지크도 초월영역 스킬을 만들었다.

“...음? 정령(精靈)이 아니잖아?”

그것은 정력(精力)이었다.

남성의 힘!

스킬 정력의 Z등급 효과가 뭔지는 감조차 잡히지 않았지만, 그 효과 덕분에 지크가 내 공격에 죽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었다.

나머지 스킬들이 변변찮았으니까.

그때, 두 눈이 붉게 충혈된 지크가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

“나는 정력왕 지크! 여자 앞에선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지···!”

“헤에~ 그런 효과인가.”

하지만 그 여자들은 이미···.

털썩.

정력왕 지크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도로 쓰러졌다.

10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