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115화 (115/430)

 115화

[9회차] 밝은 미래로!

1861레벨→1683레벨→2740레벨

나서스 왕자를 죽이면서 레벨이 또 상승했다.

999레벨 이상의 실력자인 그를 큰 소란 없이 빠르게 쓰러트리기 위해 경험치를 사용하긴 했지만, 그 이상의 경험치를 회수했다.

종족 자연인(自然人).

그야말로 사기 그 자체였다.

게임이든 판타지든 경험치 흡수에는 효율이란 게 있다.

예를 들어,

내 캐릭터나 몸이 100레벨짜리 몬스터를 처치하고 경험치를 흡수했다고 해서, 바로 100레벨 이상이 되는 건 아니다.

판타지아 대륙의 경험치 효율로 계산하면, 100레벨짜리 몬스터 십여 마리를 잡아야 99레벨에서 100레벨로 넘어갈 수 있다.

경험치 효율은 상황에 따라 변수가 많긴 하지만, 대략 평균적으로 2% 미만이라고 보면 된다.

용사의 경험치 5배 특전도 크게 다르지 않다. 2% 미만의 5배면 10% 미만이다. 그래도 엄청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나의 자연인 종족특성이랑 비교하면 태양 앞에 반딧불이다.

경험치 전환율이 99%니까!

▶전율: 너무 사기 같아요….

교생 아가씨.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거야.

▶설명: 경험치 효율은 철저한 고증 아래에 설계된 거예요. 한 번에 너무 많은 경험치가 주어지면 육체와 영혼이 견디질 못해요. 학도들의 직업 용사는 빠른 육성을 위한 안전보조장치라고 보시면 돼요. 육체와 영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까지 속도를 끌어올린 셈이죠. 그런데….

내게는 그 상식이 안 통하지. 히쭉.

늙은 왕자가 말한 기억이 난다.

편리한 판타지 능력치는 허상(fantasy)이지만, 종족과 직업만은 매우 중요하다고.

그의 말대로다.

나는 그 어떤 스킬로도 대처할 수 없는 최강의 종족특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종족 ‘네이처 휴먼’은 기존의 판타지 규칙과 균형을 완전히 깼다.

그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쓸모없어진 직업 ‘용사’가 거추장스러워졌다. 어떻게든 ‘용사’를 버리고 유익한 직업을 얻고 싶다.

▶난감: 직업 용사를 쓸모없다고 생각하시는 건, 강한수 생도님이 유일할 거예요. 머릿속에 교미밖에 없는 지크 생도는 경험치 5배 효율이 없었으면, 싸울 때마다 레벨이 역주행했을 거예요.

아! 나도 3회차에서 본 기억이 난다.

판타지 세계의 사기적인 치료를 너무 많이 받아서, 사냥으로 레벨이 오르긴커녕 역으로 하락해버리던 용사 지크의 전투를.

연금술을 뛰어넘는 육성법이었다.

그나저나….

“......”

죽는다는 운명을 듣고부터 겁에 질린 실비아는 입을 꾹 다무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를 내게 전달했다.

반항기인가?

오라비에게 살해당할 뻔한 이 요정 아가씨는 S급 용사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싫은 모양이다.

내가 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래? 유감이군.”

구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면 편안히 보내줄 생각이었는데, 이제 후회해도 늦었다.

나는 블랙박스를 활성화했다.

10초의 마법!

용사→마왕(용사→레벨↓)

내 직업이 일시적으로 마왕이 됐고, 봉인해둔 스킬들이 일제히 풀려났다.

여기에 2740레벨.

스킬 효율이 무지막지하게 상승했다.

일반영역 최대치에 도달한 날조 스킬이 발동하고, 초월영역 마기가 실비아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블랙박스의 ‘망각’ 효과까지 곁들였다.

▷종족: 아크 엘프

▷레벨: 1

▷직업: 주술사(축복=정령↑)

▷스킬: 매력A 기품A 정령B 궁술B 축복C…

▷상태: 굴욕, 공포, 원한, 속박

숲에서 내게 패배한 실비아의 능력치는 참으로 암울했다. 노예처럼 부려먹는 정령 빼면 시체였던 아가씨라서 어쩔 수 없다.

그러니 개선해주기로 했다.

“이, 이건…?!”

시커먼 마기가 자신의 호흡기와 배설구 등으로 흡수되는 광경을 본 실비아가 온몸을 비틀며 저항했다.

하지만 부질없는 발버둥이였다.

번데기처럼 밧줄에 꽁꽁 묶여있을 뿐만 아니라, 이곳은 지하의 암시장이기 때문이다.

만두왕국에서 가장 은밀한 장소 중 하나.

그녀를 구하러 올 자는 어디에도 없다.

“실비아. 잘 들어봐. S급 용사님이 너를 구하러 왔는데, 네 오라비가 나를 죽이려고 덤비지 뭐냐. 그래서 정의로운 용사님의 이름으로 쓰러트렸지! 어때? 내 말이 틀렸어?”

“...아닙니다.”

복잡한 번뇌가 사라지며 머릿속이 깨끗하게 비워진 실비아가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

“실비아. 나는 너의 은인이다. 맞지?”

“...그렇습니다. 인간 따위에게 도움받아서 대단히 마음에 안 들지만, 당신이 쓸모있는 인간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실비아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기억이 지워졌어도 타고난 성품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이 마지막이다.

왜냐하면,

슈우우우-!

그녀의 몸으로 마기가 스며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혐오에 찌든 암사자를 야생에 풀어놓는 건 너무 위험하다. 그래서 목줄을 채웠다.

두 눈을 부릅뜬 미래의 요정왕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신발에 밟힌 지렁이처럼 온몸을 비틀며 꿈틀거렸다.

그러나 곧 잠잠해졌다.

능력치의 변화 또한 극단적이었다.

▷종족: 아크 엘프

▷레벨: 1

▷직업: 악령사(마기=악령↑)

▷스킬: 악령SS 마기S 기품A 마성A 궁술B…

▷상태: 타락, 속박, 충성

실비아 곁에 의리로 남아있던 멍청한 정령들은 마기에 물들며 악령(惡靈)으로 바뀌었다.

악령이 SS등급이라고?

이건 내 상정 밖의 결과였다.

직업 ‘악령사’가 실비아랑 상성이 매우 좋은 모양이다.

“실비아. 너는 누구지?”

“저를 구해주신 위대한 용사님의 충실한 노예입니다. 이 미천한 몸뚱이와 열렬한 마음은 지금부터 당신만의 것입니다. 저의 무한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당신만을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초월영역 마기에 찌든 실비아는 고분고분해졌다.

완전히 새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훌륭해.”

나는 실비아의 몸을 속박 중인 밧줄을 풀었다.

하지만 1레벨은 너무 약했다.

이래서야 도움은커녕 먼지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래서 한 가지 실험을 추가로 진행했다.

강한수: 2740레벨→2739레벨

실비아: 1레벨→316레벨

내 경험치를 실비아에게 넘겨줬다.

고작 1레벨이지만, 여기에 축적된 경험치의 양은 무시무시했다. 실비아 같은 먼지를 급성장시킬 만큼.

하지만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꺄읔-?!”

레벨이 오른 실비아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그녀의 눈코입귀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래쪽도 붉게 물들었다.

바닥에 쓰러진 실비아는 간질환자처럼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설명: 강한수 생도님.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레벨이 너무 급격히 오르면 육체와 영혼이 견디질 못한다고. 그릇이 확장될 시간이 필요해요. 넘쳐버리면 이 요정 아가씨처럼 그릇이 깨져버려요.

교생 아가씨. 해결책은?

▶해답: 치유의 힘으로 망가진 육체와 영혼을 고치고, 넘쳐버린 경험치를 치유의 대가로 흡수하면서 분담시키는 거예요. 이러면 부담이 치유사 쪽으로 넘어오긴 하지만, 성녀 아가씨는 레벨이 높아서 괜찮을 거예요.

나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히프리아.”

“네.”

내 부름에 즉각 소환된 히프리아의 양손이 새하얀 광휘로 물들었다. 그리고 죽기 일보 직전인 실비아의 몸을 감쌌다.

316레벨→284레벨

실비아의 레벨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숲에서 나랑 처음 마주쳤을 때로 되돌아갔다.

한 번 넓어진 그릇은 유지된다는 걸까?

하지만 그 이상으로 ‘공짜 경험치’가 넘치면 견디지 못하고 과부하가 오는 듯했다.

“도적E. 혼돈의 유물은?”

“챙겼다. 그런데….”

“닥쳐.”

나는 질문이 많아 보이는 도적E가 말을 꺼내기 전에 선수 쳐서 조용히 시켰다.

히프리아는 소환을 바로 해제했다.

딱 필요한 일만 시키고 돌려보내는 것 같아서 살짝 미안하긴 했지만, 불청객들이 몰려오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나와 도적E도 퇴장했다.

우리는 이곳에 온 적이 없는 것이다.

“헛! 나서스 님~?!”

“왕자님?!”

“어, 어찌 이런….”

나서스 왕자의 명령대로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가던 요정들이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좌우로 예쁘게 이등분된 왕자를 보며 망연자실했다. 여성 중 일부는 비탄에 잠기며 펑펑 울었다.

실비아가 타락하지 않은 척하며 차분히 말했다.

“나서스 오라버니는 저를 지켜주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앞으로 저는 오라버니의 유지를 이어받아서, 요정과 인간이 공존하는 엘브하임 왕국을 만들기 위해 이 한 몸을 바칠 겁니다. 그리고 위대한 용사님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거예요. 저를 방해한다면 아무리 사랑하는 아버지라도 배제해야 할 적입니다. 여러분. 도와주실 건가요?”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실비아 공주님께 제 충성을.”

“물론입니다, 실비아 공주님.”

나서스 왕자의 세력이 실비아에게 고스란히 흡수됐다.

왕자가 생뚱맞게 사랑 타령하는 바람에 계획이 살짝 어긋나긴 했지만, 정의로운 용사님의 활약으로 실비아 공주의 갱생에 성공.

엘브하임 왕국의 미래는 밝으리라!

▶감탄: 정말 완벽해요! 감동했어요!

후후! 교생 아가씨도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25년 경력의 용사님이다.

시험 출제자의 의도쯤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

판타지 신(神)은 나서스 왕자가 실권(失權)하고, 실비아가 다음 요정왕이 되는 청사진을 바랄 것이다.

또한, 요정만 행복한 판타지 세계를 원할 리 없다.

인간과 요정이 교미해서 장점만 물려받은 우량종이 많은 아름다운 판타지 세상을 꿈꾸리라.

용사력 3일 만에 나온 결과물치고는 썩 훌륭했다.

실비아 공주가 고질병인 인간혐오를 멈췄다.

엘브하임의 국모(國母)가 마왕이랑 바람나면서 홀아비가 된 무능한 요정왕에게 자식이라고는 이제 실비아가 유일했다.

나서스 왕자 vs 실비아 공주

둘로 나뉘어서 티격태격했던 파벌이 하나로 통일됐다. 이대로면 실비아가 다음 요정왕이 되는 건 확정된 사항.

이 S급 용사님이 완벽하게 해냈다!

▶한탄: 지크 생도랑 너무 비교되네요. 지크 생도에게 강한수 생도님 같은 능력이 있었다면, 요정 아가씨들로 하렘을 차려서 온종일 교미했을 거예요….

교생 아가씨. 불량학생 지크는 좀 잊어.

▶다짐: 강한수 생도님의 말씀은 고맙지만, 저는 그럴 수 없어요. 아직 교생 신분이긴 해도, 지크 생도는 제가 5년 동안 가르친 학도였는걸요. 교사가 가르치던 학생을 포기한다는 건, 교사가 되길 포기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어요!

...열심히 해봐. 파이팅.

정의로운 용사님과 잡것은 만두왕국 암시장에서 벌어진 문제를 완벽하게 처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나서스 왕자의 말이 옳다.

여기서 변을 당하면 아무도 모른다.

말똥말똥.

...정령들이 전부 지켜보고 있었지만, 녀석들은 내 편이다. 배신하면 근처에 얼씬도 못할 줄 알라고. 알겠어?

끄덕끄덕.

내가 이래서 정령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래는 예민하니 조그마한 손으로 조몰락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딱딱하고 뜨겁고 시원하고 물컹하고 몰랑한 가지각색의 감각으로 만지작거려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정령들은 순진무구하다고?

여기가 지구였으면 싹 다 성희롱으로 감방에 들어갔을 것이다.

“야만용사. 이것이 혼돈의 유물이다.”

도적E가 내게 낡은 골동품을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흠…. 봐도 잘 모르겠는데?”

그것은 아주 정밀하게 세공된 브로치였다. 하지만 예술품에 관심 없는 내 눈에는 매우 오래되어 손때가 묻은 장신구에 지나지 않았다.

혼돈의 힘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봉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봉인이라고?”

“이 봉인은 엘브하임의 혈통만 풀 수 있다. 이렇게.”

도적E가 자기 손끝을 단검으로 콕 찔렀다. 그러자 새하얀 손가락 끝에 붉은색 핏방울이 맺혔다.

그녀는 그것을 브로치에 묻혔다.

파직-!

겉보기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지만, 나는 도적E가 말한 유물의 봉인이 풀렸음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영상을 보게 됐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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