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120화 (120/430)

 120화

[9회차] 오오... 나의 전우여...!

“조련사E. 안내해. 뭘 두리번거려? 여기에 조련사는 아가씨밖에 없잖아. 아! 이름 때문에 그래? 오늘부터 너는 조련사E야.”

“그런…. 네.”

“가면서 심심하지 않도록 용을 키우는 방법을 설명해봐. 설마, 알은 구했으나 조련법은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조금은 압니다.”

판타지 세계를 대표하는 환상의 생명체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용(dragon)’일 것이다.

공룡의 두개골을 보고 착각한 동서양에서 고대부터 언급됐으며, 소설과 영화, 만화 등에 단골로 등장한다.

간혹 ‘요정(elf)’이 대표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비실비실한 요정은 용사나 영웅이 보호해주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멸종위기종 중 하나일 뿐이다.

전설의 용사랑 맞장 뜨는 용이랑 비교할 수 없다.

“조금? 이건 그냥 모르는 수준인데.”

용의 알이 떨어진 장소로 이동하면서 설명하는 조련사E는 용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대단히 마음에 안 들지만, 1회차에서 라누벨에게 들은 용의 정보가 훨씬 방대했다.

조련사라고 하면 동물에 관해서 뭐든 아는 줄 알았는데, 이 요정은 용에 대해선 일반인보다 조금 더 아는 수준이었다.

그 조금도 참 변변찮고.

“상대는 용이니까요.”

내 핀잔에도 불구하고 조련사E는 당당했다.

모르는 게 자랑은 아닐 텐데?

“비룡, 수룡, 해룡, 화룡, 토룡…. 용에도 종류가 많지만, 공통으로 육식을 합니다. 육식을 금기시하는 요정이 키우기는 무리예요. 성체가 되면 음식물을 섭취 안 하고 자연의 기운을 먹는데…. 그때까지 먹일 고기가 문제죠. 성체를 잡으면 길들이는 게 불가능하고.”

요정이니 안 된다!

조련사E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희는 그게 문제야.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내가 18년 전에 난폭한 요정이랑 동행해봤는데, 고기도 잘 먹더라. 출산율이 저조해서 고령화 사회가 심각한 것도 너희가 교미를 안 해서 생긴 문제잖아? 생식기능이 퇴화한 건 아니야.”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내 지적을 들은 요정은 쓴웃음만 지었다.

“반박하고 싶은 얼굴이네. 하지만 잘 들어. 숫자는 곧 힘이야. 인간은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지.”

현대의 지구도 다르지 않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세금을 돌려준다.

사회복지란 고상한 용어로 표현하긴 했지만, 돈 주고 출산을 부추긴 거나 다름없다.

젊은 남녀가 가정을 꾸려서 아이를 가져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든 게 아니라, 돈 주고 출산을 강요하는 비윤리적인 구조로 해놨다.

이마저도 없으면 진짜 끔찍하겠지만.

판타지아 대륙은 더욱 심각하다.

지구는 사회복지제도란 허울로 덮기라도 했지만, 왕족과 귀족 미만의 인간은 가축 취급하는 봉건주의 판타지 세계에선 돈조차 주지 않고 출산을 강요한다.

특히, 전쟁 직후가 극심하다.

젊고 유능한 남자가 전쟁터에서 싹 죽는다.

당장 올해 농사와 허점투성이의 치안도 문제지만, 가장 치명적인 사안은 10년 뒤의 군사력에 차질이 생긴다.

미래에 대비하려면?

죽은 만큼 다시 낳는 수밖에 없다.

내가 이 판타지 세계를 야만적이라고 비하하는 이유다. 전쟁 전후의 이들은 짐승이랑 하등 다를 게 없으니까.

“용사님. 이 계곡 아래에 떨어졌습니다.”

내가 과거를 곱씹는 사이, 목적지 인근에 도착했다.

“이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네. 하지만 안 깨졌을 겁니다. 용의 알껍데기는 오우거가 주먹으로 후려쳐도 안 깨질 만큼 매우 단단하니까요.”

“아이고….”

이런 무식한 조련사를 보았나!

비슷한 예로,

교통사고가 나면 단단한 범퍼를 잔뜩 단 자동차는 멀쩡하지만, 충격이 내부의 탑승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더욱 심하게 다친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펀지처럼 자동차가 찌그러지는 편이 운동에너지가 완화되어 탑승자가 더 안전하다.

알의 안에 든 새끼가 충격으로 뇌진탕 혹은 뇌출혈로 사망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어쩌면 노른자가 터졌을지도?

▶조언: 강한수 생도님.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하지만, 여기는 판타지 세계에요. 용의 알을 타조 알처럼 생각하시면 곤란해요. 보편적이고 불편한 물리법칙은 싹 무시한답니다!

그렇구나! 역시 판타지!

교생 아가씨. 그런 건 일찍 말해달라구!

“내가 저 눅눅한 계곡 아래로 내려가긴 싫고…. 야. 정령들. 용의 알을 찾아서 보고해.”

“용사님. 정령들에게 그리 강압적으로 말씀하시면…. 어라?”

조련사E가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왜? 열심히 일하는 정령 처음 봐?”

“그건 아니지만….”

“요정의 얄팍한 머리로 상식을 재단하려 하지 마. 정령이 요정에게 무조건 친화적인 이유조차 모른다면 더욱.”

이 세상에 그냥 되는 건 없다.

누구랑 누가 친하다면 이유가 있다.

관심사가 같거나, 목적이 같거나, 고향이 같거나….

요정과 정령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매한 사람들은, 고결한 요정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기 때문에 정령이랑 친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개소리다.

대체 고결하다는 기준이 뭔데?

요정도 인간처럼 수컷과 암컷이 짝짓기해서 태어나는 건 똑같고, 먹으면 싸는 것도 똑같다.

인간 중에도 채식주의자가 있으며, 자연을 사랑한다는 요정도 풀과 벌레를 가차 없이 밟는다.

거짓된 환상에서 탈출하자.

최초의 정령이 요정들에게 붙잡혀있어서 강제로 따르는 것이다. 요정은 인간의 상위호환 같은 게 아니다.

▶궁금: 강한수 생도님. 또 가보실 건가요?

또? 아아, 최초의 정령?

요정왕국으로 만나러 가긴 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아니다. 지금은 2회차 스토리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게 목적이니까.

정령들이 나를 따르는 이유도 있다.

나는 잘 모르지만, 내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난단다.

육체를 뿌리부터 재구성하는 과정이 범상치 않았으니 이쯤은 당연한 게 아닐까?

최초의 정령을 포함해서 판타지아 대륙에 사는 거의 모든 정령에게 둘러싸인 채 다시 태어났으니까.

그러고도 평범하다면 그게 더 기적일 것이다.

“오! 찾은 모양이네.”

왕관을 쓴 녹색 소녀가 내게 보고했다.

이 바람의 정령은 내 오른쪽 겨드랑이에 산다. 겉보기엔 착한 소녀지만, 다른 정령이 내 겨드랑이로 슬금슬금 다가오면 표정이 악귀처럼 변한다.

악덕 사장처럼 내 오른쪽 겨드랑이를 독점 중.

왼쪽 겨드랑이를 차지한 물의 정령이랑 제법 친하고, 내 사타구니에 사는 두 정령이랑 사이가 나쁘다.

“용사님? 그 정령은 설마…?”

“설마, 뭐?”

“아닙니다, 아무것도. 제가 잘못 본 게 분명합니다. 정령왕이 저렇게 순종적이고 귀여울 리 없죠….”

“시답잖긴.”

펄럭!

나는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를 생성했다.

“그 무시무시한 날개는 뭔가요?!”

“이걸 보고 무시무시하다고 생각하는 무식한 너는, 이 용사님의 비싼 시간을 할애해가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줘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냥 그러려니 해.”

“아, 네.”

“능력껏 따라와.”

나와 조련사E는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당연히 계곡물 위로 날아서 이동했다.

반면,

촤아아아-

조련사E는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그녀는 계곡에 사는 초대형 물고기 위에 올라탔다.

옛날부터 키우던 물고기는 아닐 터. 스킬 조련과 교감을 활용해서 지능이 떨어지는 동물을 지배하는 것 같았다.

꽤 흥미로웠다.

“전쟁에 써먹을 수 있겠는걸…?”

판타지아 북대륙의 황제가 된 8회차 때는 이게 참 아쉬웠다.

전쟁을 벌이면 꼭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아무리 유리한 전투라도 그건 변함없었다.

새벽에 졸다가 똥통에 빠져 죽는 놈도 있었다.

이건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지구의 어느 유명한 패왕이 애용한 ‘코끼리 부대’처럼 동물을 지배해서 전쟁에 이용한다면 이러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동물은 약하니 몬스터로….

아! 이건 남대륙에서 이미 쓰이는 전투방식인가?

“용사님! 저기 있습니다!”

“나도 봤다.”

조련사E의 호언장담처럼 용의 알은 급경사인 계곡 위에서 떨어지고도 무사했다.

멀리서 무심코 본다면 그냥 둥글둥글한 검은색 바위. 하지만 저 안에 판타지 세계관 최강의 종족이 들어있다.

이미 알의 크기부터 범상치 않았다.

팔다리를 웅크린 라누벨도 감금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교통수단으로 활용하는 비룡이랑 급이 달랐다.

이건 최소한 희대의 악룡(惡龍)이다!

▶당혹: 강한수 생도님. 선량한 용일 수도 있잖아요?

교생 아가씨. 잘 들어.

착한 용은 죽은 용뿐이야.

반짝이는 것에 묘한 집착을 보이는 용의 보물이랑, 고급 재료로 유용한 뼈와 비늘, 가죽, 심장만이 가치가 있다.

“흐음~ 내 창고에 넣어도 괜찮으려나?”

용사 페스티벌 보상으로 받은 3차원 공간창고.

생명체는 넣지 말라는 제약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실험해본 결과, 사람이든 동물이든 공황장애에 빠져버리는 바람에 ‘살아있는 생물’로서 가치가 떨어졌다.

그렇다면 이 용의 알은 어떨까?

▷종족: 드래곤 에그

▷레벨: 358

▷직업: 마법사(나이→마력↑)

▷스킬: 마력B 은신D 생존F…

▷상태: 성장

갓 태어난 아이는 왕족과 귀족이 아닌 이상은 ‘무직’이 보통이다. 그건 몬스터와 동물도 예외가 아닌데, 판타지 금수저의 끝판왕인 용은 확실히 달랐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358레벨.

직업도 마법사였다.

용이 쓸 수 있는 최강의 공격수단은 숨결과 그 몸뚱이지만, 다른 능력이 없는 건 아니다.

정령을 부리거나 마법을 쓰는 녀석도 있다.

서대륙에 많이 사는 사룡(死龍)들은 시체를 수집하고 조종하는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

이 녀석은 마룡(魔龍)쯤 될까?

나이를 먹을수록 강해지는 후반형 용이다.

영웅 놀이에 심취한 인간들에게 사냥당하지 않고 3천 년만 버티면 크게 대성할 것이다.

“...잠깐.”

새끼 마룡이라고?

나는 과거에도 이런 감상을 어떤 용에게 품었었다.

기억을 더듬던 나는 금방 깨달았다.

“아! 그 녀석이 이 녀석이었구나!”

1회차 때, 용사의 성장을 시기한 동료들 때문에 경험치와 심장을 먹지 못했던 새끼 용이 1마리 있었다.

한이 맺혀서 2회차 때 둥지를 급습했는데, 새끼는커녕 황혼기를 맞이한 고룡 중의 고룡인 망룡왕 뇌비우스를 만나면서 중앙대륙 절반이 맹독에 오염됐었다.

망룡왕 뇌비우스가 자연사한 후, 빈 둥지를 이 새끼용이 운 좋게 차지하는 모양이다.

현재는 용사력 10일차.

친애하는 동료가 정확히 언제 죽는진 모르지만, 이 알이 아무리 늦어도 9년 안에 부화하는 건 틀림없다.

“용사님. 그 녀석이라니요?”

“너는 몰라도 돼.”

“아, 네. 그나저나…. 들고 가기엔 알이 큰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는 친구에게 부탁했었습니다. 용사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원하시는 장소까지 제가 옮겨드리겠습니다.”

“옮긴다고?? 왜?”

“예?”

“나는 바로 깰 건데.”

“예에-?!”

부화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줄 수 없다.

여전히 노른자와 흰자로 이루어져 있다면 곤란하지만, 미숙아로 태어나는 정도라면 상관없다.

내 목적은 단순한 흥미니까.

키우다가 질리면 바로 경험치로 환원할 일회용품이다. 그렇기에 몇 년씩 기다려줄 수 없다.

하지만 그전에,

“해제.”

푸화아아아-

블랙박스를 활성화했다.

나의 15년 경력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스킬들의 봉인이 풀리면서 일제히 효과를 발휘했다.

9.99초까지 필요 없다.

특별히 신경 써서 올리진 않았지만, 옷을 입은 사람을 베고 찌르길 반복하다 보면 스킬 ‘투시(透視)’의 숙련도가 오르게 된다.

현재 내 투시는 C등급.

1회차와 2회차 때는 그래도 옷에 가려진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를 뚫어보길 반복하면서 S등급까지 키웠었다.

하지만 3회차부터는 그럴 일이 별로 없었다. 번거롭다는 이유로 투시를 시도하지 않고 그냥 베어버린 탓이다.

“이건 반성해야겠는걸.”

스킬 투시가 있었다면 암시장에서 도적E의 뽕에 사기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매장에서 “저 가슴은 가짜요!”라고 진실을 공개하면 입찰 열기가 단번에 식었을 테니까.

끽해야 실비아 몸값쯤 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그때가 무척 아쉽다.

나는 스킬 투시로 알 내부를 살펴봤다.

통통하게 생긴 도마뱀 1마리가 눈을 감은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좋아. 깨도 문제없겠군.”

나는 블랙박스를 비활성화로 돌리면서 흡족하게 웃었다. 다소 미숙아이긴 해도 날계란은 아니었다.

“용사님. 천벌 받으실지도 몰라요….”

“하! 천벌(天伐)? 오라고 해. 내가 사악한 천사(天使)들의 닭 날개도 찢고 온 S급 용사님이야. 천벌 따위 무서워할…. 음?”

갑자기 사위가 어두컴컴해졌다.

태양이 저문 걸까?

나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숨을 들이켰다.

블랙박스를 활성화하면서 나의 초월영역 스킬 ‘신성’과 ‘마기’가 유감없이 개방됐다.

그 ‘카오스 속성’이 이 존재의 단잠을 깨운 게 틀림없다.

“오오…. 친애하는 나의 전우여….”

“Chaooooo-!”

하하! 이 친구는 2회차나 지금이나 수줍음이 참 많았다.

망룡왕 뇌비우스가 맹독 숨결로 회답했다.

콰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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