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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122화 (122/430)

 122화

[9회차] 죽어도 싫은 것

“무척 그리운 힘이 느껴지기에 와봤더니, 완전히 다른 인간.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이용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종속된다는 건 그리 행복한 삶이 아니니.”

안 좋은 경험이 떠올랐는지 뇌비우스가 눈가를 찡그리며 말했다. 안 그래도 깊었던 이마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나는 잽싸게 대화를 이어받았다.

“천사에게 붙잡혔던 거?”

“...잘 아는군. 그쪽의 인간이었나?”

“그쪽?”

“흠. 우연히 내 젊은 시절을 본 인간인가…. 하지만 놀랍군. 그건 아주 먼 과거에 있었던 일이거늘. 뭐, 좋다. 나 또한 궁금한 점은 많으나 시간이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뇌비우스가 땅을 박차며 도약했다.

그리고 날아차기!

“미친…!”

그 발차기를 피하지 않고 맞선 내 입에서 욕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뇌비우스의 대화법.

그것은 순수한 폭력이었다.

애초부터 이 용은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다짜고짜 숨결부터 날리는 용에게 평화적인 대화란 조금 전의 대화가 끝.

돌이켜보면 그것도 노림수였다.

변화한 인간형 몸에 익숙해질 준비시간.

마왕이 페널티에 적응할 시간을 벌고자 말을 걸듯이….

뇌비우스의 공격은 묵직했다.

몸은 작아지면서 체급은 줄어들었지만, 용의 몸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움직임이 가능해졌다.

무술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니까.

얼마나 효과적으로 상대를 배제할 수 있느냐에 따라 좋은 기술과 나쁜 기술로 구분된다.

“좋은 움직임이로구나!”

“뇌비우스! 죽기 직전에 싸워야겠냐!”

“죽기 직전이기에 싸우는 것이다!”

“오! 고건 몰랐네!”

공방을 주고받으며 나는 아차 싶었다.

2회차에서도 이 용은 죽을 때까지 싸웠다. 도중에 멈추고 휴식을 취했으면 몇 년은 더 살았을 텐데도, 쉬지 않고 척추에 무리가 와서 추락할 때까지 비행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퍽! 퍽! 퍽!

조그마한 인간형 육체가 됐다고 무시할 순 없었다.

뇌비우스의 초월영역 스킬 태권.

주먹을 쓰긴 했지만, 주로 발차기를 활용했다.

돌려차기, 찍기, 뒤차기, 앞차기, 옆차기, 내려찍기, 회전차기, 후려차기, 걷어차기, 뒤후리기, 날아차기….

종류도 다양했다.

“최초를 닮은 용사여. 제법 싸울 줄 아는군.”

뇌비우스가 씩 웃었다.

“당연하지.”

나는 스킬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그 편리함은 부정할 수 없지만, 내 1회차는 스킬만으로 극복할 수 없을 만큼 험난했다.

그 경험은 고스란히 나에게 힘이 되어줬다.

“그대의 움직임은 살아있다. 태어날 때부터 능력치를 보고 자란 판타지아 원주민들이랑 달리, 그대는 의존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보인다. 아니면 힘을 숨기는 건가?”

“둘 다.”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내 앞에서 힘을 감추다니. 하지만 그것도 이해한다. 신비주의를 고수하며 멋 부리기 좋아하는 용사란 연놈들은 늘 그래왔으니까. 나는 싸울 수만 있으면 된다.”

“죽기 전에 실컷 싸워서 좋겠구먼!”

“하하! 지극히 옳다!”

막기 급급한 나하고는 달리, 뇌비우스에게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넋두리처럼 자기 이야기를 풀었다.

“옛날에 용사에게 당했었다. 모든 능력에서 압도적인 우위였던 나는 벼룩처럼 달라붙은 용사를 떼어내지 못해서 패배했다. 그때,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서 조그마한 몸을 연구했다.”

“그게 그 몸이군…?”

나는 적당히 맞장구쳐줬다. 비밀이 많은 악당도 이러면 술술 계획을 발설하곤 했으니까.

뇌비우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은 몸은 터무니없이 약했다. 그냥 내려앉기만 해도 무너지던 산맥을 어찌할 수 없게 돼버렸다. 그래서 인간들을 연구했지. 어째서 저들은 작은 몸치고 저리 강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내놓은 결론이 동족을 죽이는 기술이었다. 인간은 인간을 죽이면서 강해졌다.”

“몬스터가 아니라?”

“그렇다. 몬스터를 사냥할 때, 이런 섬세한 기술은 필요 없다. 두꺼운 가죽에 막힐 테니까. 몬스터를 죽이는데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닌 날카로운 무기다.”

검술, 권술, 체술, 창술, 궁술, 봉술, 투술….

이것들은 확실히 인간이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 고안됐다.

지구인에게 “호랑이를 어떻게 사냥할래?”라고 질문했을 때, 태권도나 유도 같은 건강체조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총이나 덫 같은 강력한 무기를 생각하지 않을까?

그리고 뇌비우스가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기술.

인간에게 효과적이었다.

“큭!”

날카로운 발톱으로 무장한 뇌비우스의 돌려차기가 내 옆구리에 가차 없이 꽂혔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계기.

오른발과 왼발을 바꿔가면서 공격한다. 때로는 변칙적으로 같은 발로 이어서 공격하기도….

뇌비우스가 발의 뒤꿈치를 든 채 좌우로 건들건들 리듬을 타는 행동은, 취했거나 겉멋이 든 게 아니다.

저러면 ‘발을 든다.’라는 첫 과정이 생략되면서 다음 동작까지 한 박자 빨라진다. 상대는 대처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근육의 긴장을 적당히 이완해주는 효과도….

“Chaooo-!”

갑자기 용의 울음을 토하는 인간형 뇌비우스!

작은 숨결이 일직선으로, 근거리에서 내게 쏘아졌다.

뇌비우스의 두 발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나로선 제대로 한 방 맞은 셈이었다.

콰아앙!

폭발하면서 내 몸을 휩쓸었다.

하지만 나는 무사했다.

숨결의 물리력은 줄어든 체급만큼 약해졌고, 맹독은 이미 완벽한 면역체계를 갖췄기 때문이다.

내게는 기회였다.

용이 숨결을 토해낸 직후에 생기는 잠깐의 빈틈. 나는 그것을 비집고 들어가서 뇌비우스의 몸을 후려쳤다.

뿌득-

갈비뼈가 부러지는 감촉.

하지만 제대로 먹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수많은 척추를 부러트리며 깨우친 내 본능이 말해줬다. 살짝 금이 간 수준일 뿐이라고.

“혹시 했었는데. 내 맹독이 통하지 않는 몸이었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반격하는 뇌비우스. 왼발을 수직으로 들더니, 그대로 내 머리 위로 내리찍었다.

빠각-

내 정신이 한순간 오락가락해졌다. 세상이 정말 파랗게 보이는 것은 거의 20년 만이었다.

퍽!

그리고 이어서 내 복부에 박히는 뇌비우스의 오른발.

피하거나 막지 못하고 정통으로 얻어맞은 내 허리가 꺾이면서, 몸이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하지만 순순히 넘어질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뇌비우스의 연계기가 시작됐다.

퍽퍽퍽!

한순간 정신을 놔버린 무방비상태의 내 몸을 앞차기로 띄웠다. 그리고는 중력에 이끌려 땅에 떨어질 틈을 안 주고 계속 쳐댔다.

어떤 오락실게임이 떠오른 건, 내가 너무 맞아서 미쳐버린 탓일까?

이대로는 답이 없었다.

“친구야! 미안하지만….”

나는 패배를 인정하고 승리를 위한 조커를 꺼냈다.

실험은 실험일 뿐.

판타지 능력치의 보조가 없으면 내가 매우 약하다는 걸 절절히 느낀 것으로 충분했다. 이 정도의 아픔은 단순히 쓴 교훈.

정말로 스킬을 전부 잃은 건 아니었다.

아직은 말이다.

블랙박스 활성화.

9초 무쌍!

신성이 뇌비우스의 일반공격을 반사했다. 그 덕분에 무사히 착지한 나는 피떡이 된 몸을 신속하게 회복했다.

여기까지 1초.

스킬들이 몸에 적용되기까지 2초.

마기의 효과로 악마 같은 육체적인 힘을 손에 넣은 나는 반격을 시작했다.

“숨겨둔 힘이 그거였나?”

“대충 그렇지.”

“천둥벌거숭이처럼 겁 없이 날뛰던 그때가 참으로 그립군. 쯧! 죽을 때가 되면서 감성적으로 변한 건가.”

반사로 발톱이 부러진 뇌비우스는 회피하지 않았다.

내 신성을 느꼈을 텐데도 재차 공격했다.

뇌비우스의 능력치에는 신성과 마기 스킬이 없었다.

상식적으로는, 평범한 물리 속성에 속하는 그의 발차기 공격은 무시해도 됐지만, 내 직감이 그러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나는 직감을 신뢰했다.

퍽! 퍽!

서로 한 방씩 주고받았다.

매우 신뢰하긴 하지만, 나의 전투 스타일은 예전부터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이었다.

뼈를 주고 뼈를 깎는다.

그리고 깎인 뼈를 빠르게 회복한다.

“어떻게 신성을 뚫은 거지?”

하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이 아픔은 진짜였다.

분명히 신성의 반사가 발동했는데, 내 몸에 직접적인 타격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종류: 스킬

▷명칭: 신성

▷등급: Z

▶ZZ: 신성한 응징을 행사한다. (0%)

▶Z: 아무튼 신성하다.

▷SSS: 경배받는다.

▷SS: 신성한 반사를 행사한다.

▷S: 일반속성 공격을 무시한다.

▷A: 찬양한다.

▷B: 마기를 정화한다.

▷C: 신성한 방어를 행사한다.

▷D: 축복한다.

▷E: 마기를 견뎌낸다.

▷F: 신성한 공격을 행사한다.

S등급 효과가 일반속성은 무시하고, SS등급 효과는 무시한 공격을 상대에게 되돌려준다.

하지만 뇌비우스의 공격은 뚫고 들어왔다.

반사됐던 처음이랑 뭐가 달라진 거지?

뇌비우스가 입가를 올리며 짧게 대답했다.

“끊어치기.”

“끊어서 친다고…?”

“증오스러운 천사들을 때려죽이기 위해 익힌 기술이다.”

그 기원은 관심 없다. 나는 원리만 궁금할 뿐.

의문도 아직 더 남았다.

“속성 무시는?”

“최초의 용사가 남긴 힘을 쓰면서도 여전히 눈치채지 못한 건가? 그 힘이 일반속성으로 보이나?”

“...그렇군.”

SS등급 효과인 신성한 반사는 ‘마기’와 ‘신성’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속성을 반사한다.

하지만 S등급의 일반속성 무시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친숙한 5가지 정령들을 구성하는 땅, 불, 바람, 물, 마음. 그리고 순수한 물리력이 일반속성에 해당한다.

이 6가지를 제외한 힘은 희귀속성에 해당한다.

그 대표 격이 신성과 마기일 뿐,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놀랍다.

천사들을 때려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뇌비우스는 스킬 효과를 연구했고, 그 맹점을 제대로 파고든 것이다.

종족이 ‘카오스 엘프’였던 부녀K는 하지 못했던 위업이다. 그 둘은 천사의 반사에 막혀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었으니까.

“용사여. 이 세상이 즐거운가?”

“아니.”

나는 딱 잘라서 대답해줬다.

내 명답에 살짝 당황한 뇌비우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즐겁다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이번 용사는 최초 녀석의 말년처럼 생각을 좀 하는 것 같군….”

털썩.

거기까지 말한 뇌비우스가 쓰러졌다.

친애하는 전우가 강한 건 틀림없지만, 봉인해둔 판타지 스킬을 몽땅 동원한 나를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겼다는 기쁨은 전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뇌비우스. 어째서 너는 스킬을 쓰지 않은 거지?”

망룡왕 뇌비우스는 태권Z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도 제대로 활용하질 않았다.

“죽어도 싫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면 이해하는가?”

“아주 잘.”

진실을 알기에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그런가. 콜록콜록! 더 싸우고 싶다만…. 마침내 때가 됐다.”

“어이. 그냥 죽을 건 아니겠지?”

2회차처럼 뭐라도 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내 능력치를 똑똑히 봐두도록.”

“능력치를 또 왜…. 음?!”

▷종족: 카오스 드래고니안

▷레벨: 999+

▷직업: 패왕(정벌→패기↑)

▷스킬: 몰살ZZ 패기ZZ 태권Z 변신Z 맹독Z 조련MAX 비행MAX 조교MAX 지배MAX 정령MAX 불사MAX 검술MAX 혼돈MAX 파괴MAX 망각MAX 신성MAX 마기MAX 광기MAX 내성SSS 근력SSS 맷집SSS 어둠SSS 사령SSS 민첩SSS 투기SSS 혈기SSS 오감SSS 색적SSS 위엄SSS 모략SSS 통치SSS 귀기SSS 권투SSS 검기SSS 학살SSS 소환SSS 금강SSS 예측SSS 심판SSS 긍지SSS 강화SSS 격투SSS 체술SSS 감정SSS 교화SSS 불굴SSS 돌파SSS 체력SSS 협상SSS 폭식SSS 탐색SSS 숨결SS 회복SS 저주SS 회피SS 면역SS 마법SS 번개SS 광휘SS 감지SS 가호SS 만능SS 견고SS 질주SS 은폐SS 근성SS 인내SS 속박SS 불변SS 통감SS 집중SS 각성SS 봉인SS 가속SS 무효SS 마술SS 천명SS 강골SS 기력SS 대검SS 관통SS 마력SS 마성SS 위압SS 명령SS 여행SS 휴식SS 절단SS 기품SS 활력SS 절망SS 선술SS 천력SS 저항SS 궁술SS 축복SS 재생SS 대형SS 섬멸SS 역병SS 시력SS 냉정SS 철벽SS 중력SS 명중SS 잠복SS 투창SS 포효SS 태만SS 도발SS 수영SS 협박SS 방어SS 매력SS 정복SS 영재SS 추적SS 지력SS 살인SS 품위SS 방화SS 자비SS 강탈SS 정력SS 날조SS 회유SS 무한S…

▷상태: 평온, 변신, 황혼, 영면

내가 친애하는 망룡왕 뇌비우스는 마지막까지 이기고 떠났다.

“이 무심한 친구야! 가더라도 심장은 주고 갔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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