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133화 (133/430)

 133화

[10회차] 이럴 때는 이렇게!

“칭찬하면 돼.”

“칭찬…?”

루크의 대답을 들은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알렉스를 칭찬하라니?

잘 상상이 가질 않았다.

“쯧쯧. 내가 시범을 보여줄게. 아는지 모르겠지만, 알렉스는 귀족 태생이 아니야. 하지만 그 출중한 실력으로 왕궁기사단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지.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태생이 서민인 탓에 이 왕궁에는 그를 시기하는 인물로 가득해.”

그래서 아무도 알렉스를 칭찬하질 않는다.

무언가를 잘했어도 “기사단장이면 그 정도는 당연하지.”라는 식으로 넘어가며 깎아내린다.

...라는 모양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알렉스는 ‘용사 지크’를 꽤 아꼈던 것 같다. 지크 대신 목숨을 버린 적도 있다.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새끼가 아부에 약하다고?”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지. 하지만 이것도 대충 하면 안 돼. 몸집이 크다, 정말 강하다, 남자답다, 같은 칭찬은 먹히는데, 잘 생겼다거나 똑똑하다, 같은 빈말은 역으로 알렉스를 불쾌하게 만들거든.”

“흐음….”

“잘 믿기지 않는 모양이네. 동생. 따라와.”

그렇게 몇 시간 뒤.

루크는 정말로 알렉스의 환심을 따냈다.

롤플레잉게임 공략집처럼 약간의 빈틈도 없이 완벽하게.

그는 알렉스가 좋아할 칭찬만 하고, 능력 있는 서민들도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알렉스의 꿈을 지지해줬다.

닷새 뒤에 예정된 오리엔테이션은 술잔치로 바뀌었다.

그날,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한 루크와 알렉스는 친근하게 어깨동무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나는 그 과정을 옆에서 전부 지켜보았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공략집이라니….”

이러면 게임이랑 다를 게 없잖아?

▷웃음: 감미로운 노래와 같은 칭찬은 정신을 북돋우고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강한수 학생. 이번 파트너는 마음에 드시나요? 저번에 추천한 학생은 잘못됐음을 인정합니다. 그런 자를 참고하라고 권했으니, 초등교육과정 역대 기록을 갈아엎은 학생인 당신이 혼란스러워한 것도 이해합니다. 미안합니다.

저번에 추천한 학생이라면 지크?

아무튼, 교생이 아닌 도덕 선생께서 내게 무슨 용무지?

▷설명: 이번에 불법 스킬이 발각돼서 재시험을 보신다는 건 아실 겁니다. 그동안 저는 약속대로 눈감아줬습니다만, 위에서 내려온 지령에 따라 앞으로는 당신이 불법 스킬을 사용하는지 감시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바쁜 관계로 평상시에는 후배가 그 역할을 맡습니다. 질문 있나요?

아니. 없어.

▷웃음: 그렇다면 마저 설명하겠습니다. 마음은 올곧으나 힘이 부족한 졸업생들을 강화하기 위한 재입학 시스템이 도입됐습니다. 그렇게 재입학한 졸업생 중에서도 당신의 파트너는 매우 훌륭한 성적을 낸 전적이 있습니다. 충분히 믿고 따라 하셔도 될 겁니다.

그것은 매우 솔깃한 이야기였다.

남에게 얹혀간다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판타지아 대륙에 25년 동안 갇혀 지내면서 나도 정신적으로 꽤 지쳤다. 슬라임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던 차에 등장한 루크.

알렉스를 다루는 솜씨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독학해온 나랑 달리, 체계적인 공략집을 읽고 온 루크는 최적의 졸업 코스를 안다.

전부 맡겨두고 따라가기만 해도 졸업 확정!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만족: 이해하신 듯하니 매우 기쁘군요. 교직원 일동은 강한수 학생의 졸업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당신의 전투력은 역대 그 어떤 학생보다도 우수하니까요. 그런 훌륭한 학생이 졸업해서 활약하는 모습을 저희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도덕 선생은 그 말을 마치고 떠났다.

“...나를 바보로 아는 건가? 감미로운 노래와 같은 칭찬은 정신을 북돋우고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조언한 직후에 저딴 소리를 하다니.”

마음을 사로잡긴커녕 대단히 불쾌해졌다.

▶인사: 강한수 생도님! 선배님이랑 이야기는 잘하셨나요? 다시 인사드릴게요! 바쁜 선배님을 대신해서 강한수 생도님을 맡게 된 교생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어서 와. 교생 아가씨. 기분이 좋아 보이네?

▶빵긋: 그렇게 보였나요? 맞아요! 원래는 교생 실습으로 경력을 더 쌓아야 하는데, 이번에 2차 심사를 통과했어요! 통지받고 저도 얼떨떨했다니까요? 그쪽에서 일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선배님들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는 모양이에요. 이게 다 강한수 생도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선생 아가씨라고 불러야 하나?

▶수줍: 아직 멀었어요. 심사는 5차까지 있거든요. 하지만 가장 힘든 1차와 2차를 넘겨서 마음이 놓이네요. 그나저나…. 강한수 생도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나 말이야?

나는 앞으로 루크를 따라다닐 생각이다. 자칭 형님인 이 동향 친구가 ‘판타지의 정석’을 보여준다고 하니까.

하지만 이때 나는 중요한 하나를 간과했다.

그건 루크도 마찬가지.

지구에서 절찬리에 판매 중인 공략집은 ‘용사가 1명일 경우’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는 점이다.

*

알렉스는 3회차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그는 용사의 교육을 맡았다.

용사가 아니라서 능력치를 볼 수 없는 그는, 용사들의 현재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나랑 지크의 친선대련을 요구했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하하! 용사들. 왕궁훈련장에 잘 왔다! 지난 술자리에서 둘 다 실력 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소환 당시에 너희의 알몸을 본 기사들도 하나같이 훌륭한 몸이었다고 칭찬했고.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 세상을 구할 수 없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이틀 뒤.

왕궁훈련장으로 우리를 부른 알렉스는 그렇게 먼저 운을 뗐다.

“알렉스. 나는 훈련이 필요 없습니다.”

루크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도 기본적으로 공략집을 참고하긴 하지만,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훨씬 복잡하게 굴러간다.

가끔은 임기응변도 필요한 법.

이것도 기존 공략집이랑 다른 점이었다.

재입학한 루크는 1레벨이 아니다.

나처럼 칭찬에 인색한 용사들은 특별강습을 받지만, 공략집대로 하면 이 왕궁훈련장에서 기사들이랑 함께 똑같은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그 기간은 개인차가 있다.

이것만은 어떤 공략집에서도 건너뛸 수 없다고 단언했다.

진심의 알렉스랑 싸워서 10초 동안 버틸 것. 그러지 못하면 1년 동안 훈련받는 것이다.

그전에는 왕궁훈련장을 벗어날 수 없다.

나도 1회차 때 그랬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전자였다.

“루크. 그대의 이야기는 잘 들었다. 미래에서 왔다는 이야기도. 나에 대해 잘 아는 것만 봐도 그건 진실이겠지.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모르기에 좀 더 확실히 하길 원한다. 그렇기에 두 용사의 실력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루크의 아부에 넘어간 알렉스의 말투는 정중했다.

“당신이랑 싸워서 10초를 버티면 되겠습니까?”

“오! 역시, 루크. 그것까지 알고 있군. 하지만 이번에 폐하께서 다른 제안을 하셨네. 이건 비밀이니 어디 가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게.”

“비밀…?”

루크의 표정을 보니, 공략집에 없는 전개인 듯했다.

“영명하신 폐하께서는 두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 없네. 그렇다고 후사를 안 둘 수도 없지. 그래서 착하신 공주님과 전설의 용사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기대를 거신다네.”

“그 이야기는…?”

“공주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용사에게 그 기회를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왕국의 사정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지. 우리는 둘 중에 더 강한 용사에게 기회를 줄 걸세.”

야만적인 판타지 세계다운 결정이었다.

무조건 강한 수컷이 암컷을 차지한다는 법칙.

“그렇다면 굳이 대련해볼 것도 없습니다. 제가 강한수보다 훨씬 강하니까요.”

루크가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살짝 불쾌하긴 했지만,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스킬이 허허벌판인 내 능력치를 본 루크가 저런 자신감을 가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니까.

나는 문명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를 얻겠다고 싸울 생각은 없다.

알렉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미안하게도, 높으신 분들은 말보다 결과를 원하시거든. 이건 어디까지나 친선경기로, 앞으로의 일정에 차질 없는 선에서 대련해줘. 저쪽에 보이는 마법사가 구슬에 영상을 담아서 윗분들에게 증거자료로 넘길 거야.”

...그리하여 두 수컷의 결투가 결정됐다.

나와 루크는 왕궁훈련장에 마주 보고 섰다.

블랙박스를 봉인한 내 능력치는?

▷종족: 네츄럴 휴먼

▷레벨: 906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S 통역A 정령E

▷상태: 양호

레벨이 야금야금 상승하고, 왕궁 정원에서 기웃거리던 정령들이 찰싹 달라붙으면서 정령 스킬이 E등급이 됐다.

반면에 루크는?

▷종족: 유니크 휴먼

▷레벨: 869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포술S 명중A 통역A 관통A 검술B…

▷상태: 마검

소환되고 7일 동안 변화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루크가 훨씬 유리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하하! 동생. 이왕 이렇게 됐으니 서로 최선을 다하자.”

“최선?”

“그래. 녹화까지 한다잖아? 대충 하면 티가 나잖아. 대신, 지더라도 서로에게 원망하지 말기. 거참! 용사가 둘이면 공주도 둘이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항의할 수 있다면 항의하고 싶네!”

▶긍정: 루크 생도의 항의를 참고해서 선배님께 제안서를 제출해볼게요! 용사끼리 이런 거로 싸우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교생 아가씨. 그러지 마.

2차 합격했다고 열성적인 건 좋지만!

만두 국왕이 원하는 건, 왕의 혈통으로서 나무랄 것 없는 용사의 피와 자신의 피(공주)를 이어받은 손자다. 그런데 공주가 둘이고 손자도 둘이면, 새로운 불화의 씨앗을 만들 뿐이다.

“원망하지 말기. 약속하지.”

이런 웃기지도 않은 광대놀이에 어울리고 싶지 않지만, 내 육체 나이는 아직 10살짜리 꼬마다.

약간의 실수는 애교로 넘어가자구?

906레벨→905레벨

우선은 가볍게 1레벨을 소모했다.

여기에 하나 더.

9회차의 마스터 몰랑께 새로운 가르침을 받으면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아드레날린이 활화산처럼 솟구쳤다.

그리고 도약했다.

“헛?!”

스킬이 없음에도 빠른 내 움직임에 경악하는 루크.

하지만 C등급 스킬 ‘회피’를 기반으로 거의 자동반사처럼 회피해낸 그는 맞공격해왔다.

친선대련용 목검이 내 어깨를 노린다.

저것도 B등급 스킬 ‘검술’의 보정을 받았을 터.

지금의 나는 스킬의 보조가 없다.

그래도 야만적인 판타지 세계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쌓은 25년 경력이 어디 가겠는가?

친애하는 망룡왕 뇌비우스에게는 일방적으로 얻어맞았지만, 그건 쌓아온 연륜이 압도적인 탓이다.

비슷한 나이라면 우습다.

퍽!

빠각!

하지만 나는 한 방씩 주고받는 쪽을 택했다.

내가 좋아하는 싸움 방식이기도 하고, 루크의 A등급 스킬 ‘명중’ 때문에 제대로 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크아앜~?!”

내 목검이 루크의 복부에 박혔다.

하지만 그가 무장한 슬라임 아머 탓에 타격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심지어 목검도 부러졌다.

반면에 나는, 칼날이 무딘 친선대련용 목검에 당했음에도 어깨에서 상당한 피가 배어 나왔다.

누가 보더라도 내 피해가 더 컸지만,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 떠는 루크가 훨씬 크게 다친 것처럼 보였다.

“이거 참….”

경험치를 너무 아낀 모양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싸울 수 없다.

내게 ‘최선’은, 900레벨 경험치를 전부 힘으로 치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 루크는 둘째 치고 왕궁이 남아나지 않는다.

적당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

“강한수! 피하지 않고 맞공격하다니! 네가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비틀거리던 몸을 추스른 루크가 마검을 소환했다.

칼날이 무딘 목검이랑 달랐다. 저것에 무방비상태로 베이면 아무리 잘난 25년 경력 용사님도 무사할 수 없다.

그렇다면,

905레벨→895레벨

나도 아주 조금은 진심으로 상대해주겠다.

부러진 목검을 버린 내 오른손에 녹색 기운이 넘실거렸다.

여기에 정령들마저 가세했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 가지 기운이 하나로 합치면서 몰랑스러운 힘이 됐다.

“이 악물어라, 루크. 내 우정은 조금 아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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