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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134화 (134/430)

 134화

[10회차] 이 도둑놈아!

스킬은 굉장히 유용하다.

칼질 한 번으로 바다를 가르고 100만 대군을 몰살시킬 수 있다. 이건 노력과 근성만으로 불가능하다.

판타지 스킬만이 가능한 기적.

하지만 그것도 스킬 등급이 높을 때의 이야기다.

지구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내 기준에서 루크의 스킬 수준은 정말 고만고만했다. 내 1회차 동료들의 평균 경지를 B급이라고 가정할 때, 루크는 끽해야 C급.

낮은 등급으로 높은 효율을 발휘하는 스킬도 분명 있지만, 그 정도는 내 예상범주 안이다.

용사만의 필승 공략법!

우리는 서로의 능력치를 열람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루크의 스킬들을 보고 어떤 식으로 싸우고, 무슨 공격을 주의해야 하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다.

반면에 루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바보가 아닌 루크도 내 종족 효과가 특별하다는 걸 바로 눈치챘겠지만, 스킬이 허전해서 정보다운 정보는 얻기 힘들다.

“스킬 폭주, 비슷한 효과인가.”

흥분한 와중에도 혼잣말처럼 자신의 분석을 중얼거리는 루크.

그도 간단히 졸업생이 된 건 아니었다.

내가 레벨을 소모해서 힘을 얻는다는 걸 파악했다.

그 효율이 스킬 폭주랑 격이 다르다는 건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지크랑 확연히 다른 기량을 증명한 셈.

그러나,

“물러.”

스킬에 의존해온 티가 확 났다.

나는 루크의 마검을 오른손 손등으로 쳐냈다. 경험치가 응축된 녹색 기운은 무리 없이 날카로운 금속의 칼날을 막았다.

“무, 무슨···!”

루크가 당황했다.

목검이 아닌 마검으로 상대하면 내가 피할 줄 알았던 모양.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옳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예상대로만 흘러가던가? 변수가 있기에 재미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허둥대지 않는 것이 기량이다.

895레벨→893레벨

추가로 경험치를 소모한 나는 발에 집중했다.

그리고 힘껏 발차기!

“아앜-?!”

정강이를 걷어차인 루크가 비명을 질렀다. 슬라임 갑옷 덕분에 그리 아프지 않을 텐데도 엄살이 심했다.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는 루크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고통으로 찡그린 표정은 귀공자 같은 첫인상하고 멀었다.

좋은 얼굴이 됐네. 이건 기념샷!

빠각-!

아까부터 심심한 왼손을 말아쥔 후에 그 얼굴을 후려쳤다.

여기가 지구였다면 경찰서로 끌려가도 할 말 없는 폭력범죄지만, 야만적인 판타지 세계에서는 허용범위 안이다.

살인도 무죄 판결 나는 세상에서 안면 강타쯤이야.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갔다.

슬라임 갑옷으로 보호받지 못한 얼굴.

고작 한 방으로 루크는 쓰러지지 않았지만, 이미 그의 두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두 발로 지탱하고 서 있는 건, 정신력이 아닌 스킬의 효과 덕분이다.

어느 정도냐?

이 상태에서도 가벼운 공격은 자동반사처럼 회피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공격은 가볍지 않다.

퍽! 퍽! 퍽! 퍽!

오른손에 응축된 힘의 절반을 왼손으로 옮긴 후, 양손으로 루크의 몸을 힘껏 두드려 팼다.

반격은 일절 허용하지 않았다.

허공에 뜬 루크의 몸이 떨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두드렸다. 그리고 100콤보를 달성한 후에 멈추며 외쳤다.

“항복!”

나는 훈련장의 지저분한 흙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일방적으로 때리다시피 했지만, 몰골은 내가 더 엉망이었다. 처음에 당한 어깨의 상처가 벌어지면서 피가 사방으로 튄 탓이다.

“크윽···. 그렇군! 후유증인가!”

실컷 얻어맞은 루크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아는 척했다.

그는 겉보기엔 멀쩡했다.

잘생긴 얼굴이 너구리처럼 변하긴 했지만, 슬라임 갑옷으로 보호받은 덕분에 내 주먹을 수월하게 버틴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골병이 들었지만.

“하여간 항복. 레벨이 더 내려가는 건 원치 않거든.”

나는 부정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갔다.

스킬 ‘폭주’는 레벨을 소모해서 강한 힘을 얻는 대신, 그 효과가 끝나면 무기력증에 빠지면서 급격히 약해진다.

내 종족 ‘네츄럴 휴먼’의 효과도 폭주랑 비슷하다. 후유증이 없긴 하지만, 이 무의미한 싸움을 끝내기엔 딱 좋은 핑곗거리였다.

내가 처맞고 끝낼 순 없잖은가?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스킬 하나 없는 동생이 그렇게 강하다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후유증이란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면 충분히 이해가 돼.”

얼굴이 퉁퉁 부은 루크가 고개를 주억이며 수긍했다.

계속 싸우자고 하면 난감할 뻔했는데, 얻어맞기만 한 그는 정신승리로 만족하는 듯했다.

“시합 끝! 루크 승리!”

알렉스가 판결을 내렸다.

“하하! 감사합니다. 하지만 정말 간발의 차이였습니다. 제가 마지막까지 버티지 못했다면 승자는 강한수가 됐을 겁니다. 그렇기에 더욱 값진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루크가 승리의 소감을 말했다.

그리고는 여전히 흙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내게 다가왔다.

“좋은 싸움이었다.”

“나두.”

덕분에 9회차 실패로 받은 스트레스가 풀렸다.

“강한수. 내 손을 잡- 크어어어억~?!”

너구리 같은 얼굴로 근사한 미소를 지은 루크가 허리를 숙이면서 내게 손을 내밀다가 비명을 질렀다.

그는 허리를 부여잡으며 고꾸라졌다.

철퍼덕!

허리디스크가 제대로 들어간 모양이다.

옷에 묻은 흙먼지를 대충 털며 일어선 나는, 꼼짝달싹 못 하는 루크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의감 넘치는 미소는 기본이다.

“루크. 내 손을 잡아.”

“자, 잠깐! 건드리지 마. 진짜 아프- 으어엌~?!””

두 용사의 우정이 돋보인 친선대련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예정되어있던 ‘알렉스의 훈련’ 에피소드는 생략됐다.

우리가 알렉스보다 강한 탓이다.

하지만 꿈과 희망이 넘치는 모험을 바로 떠나진 않았다.

나는 홀가분하게 출발하고 싶었지만, 미래의 검왕 알렉스를 동료로 꼭 영입해야 한다고 루크가 주장한 까닭이다.

그래서 우리는 왕궁기사단장을 맡은 알렉스가 업무의 인수인계를 마칠 때까지 왕궁에 머물렀다.

“루크. 정말 그뿐이냐?”

“다, 당연하지!”

루크는 친선대련 이후부터 공주랑 연애를 시작했다.

허리가 아파서 진도를 못 나가고 있지만, 종족 ‘유니크 휴먼’의 종족특성 ‘평판이 잘 오른다.’ 효과 덕분에 그럭저럭 잘 돼가는 듯했다.

그동안 나도 놀고만 있지 않았다.

893레벨→1215레벨

부지런히 영업을 뛰면서 경험치 협찬을 받았다.

강자도 좋고, 약자도 좋다. 나는 레벨로 차별하지 않고 그 모두를 수용하여 내 품에 안았다.

“거참! 나도 동생을 보면서 반성해야겠는걸.”

내 성장을 실시간으로 확인한 루크가 혀를 찼다.

하지만 나의 정확한 레벨은 모르기에 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999레벨까지밖에 파악이 안 되니까.

“루크. 다음은 누구지?”

알렉스를 순한 양으로 만드는 루크를 본 이후부터, 나는 그가 제공하는 공략집을 신뢰하게 됐다.

루크의 말대로 모험을 진행한다면, 분명히 졸업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진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루크에게 져준 거였다.

사이가 틀어지면 고문해서 정보를 뽑아낼 수밖에 없잖은가?

그건 번거롭다.

루크가 시원하게 대답했다.

“검왕 알렉스 다음부터는 선택해서 진행하면 돼. 요정왕 실비아는 암시장의 노예 경매로 얻을 수 있는데, 시간상 너무 일러. 그렇다면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중앙대륙의 성녀와 인어공주 아쿠아. 혹은, 신성제국의 황녀야.”

판타지아 중앙대륙에서 얻을 수 있는 남성 동료도 존재한다. 하지만 어째서 언급하지 않는지는 굳이 따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부터 갈 건대?”

“실비아부터.”

“음?”

나중에 노예 경매로 얻어야 한다면서?

“흐흐. 아주 희귀한 공략집에서 구한 정보를 특별히 알려줄게. 요정왕 실비아는 인간을 혐오하는 탓에 획득하기 힘든 동료 중 하나로 악명이 높아. 하지만 이 방법을 쓰면, 실비아를 어렵지 않게 동료로 영입할 수 있어.”

“...놀랍네.”

인간 혐오에 찌든 그 난폭한 요정을 쉽게 동료로 끌어들이는 비책이 존재한다니?

잘 상상이 가질 않았다.

“따라와. 보여줄게.”

슬라임 갑옷 대신 편안한 평상복과 허리보호대를 착용한 루크가 앞장섰다.

“용사님들! 어디 가세요? 라누벨도 따라가도 돼요?”

사바나의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매일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라누벨이 눈을 반짝이며 참견해왔다.

귀여운 척하지 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꾹 참았다.

9회차의 비극을 반복할 순 없기 때문이다.

“하하! 귀여운 라누벨 양. 따라오셔도 상관없습니다. 가벼운 산책이거든요.”

루크가 그녀의 동행을 승낙했다.

그때,

“흠흠! 루크. 나를 빼놓고 가면 섭섭하지.”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의 목소리가 컸던 걸까? 인수인계로 바쁜 알렉스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돌아보더니, 은근슬쩍 참가를 희망했다.

1회차 때부터 자주 있던 흐름이다.

용사가 파티 동료를 선택할 수 있을 법도 한데, 매번 똑같은 인물이 동료로 들어온다.

그들의 능력치가 범인(凡人)을 압도하기도 하지만, 꿈과 희망이 가득한 모험을 좋아하는 이런 적극성이 훨씬 크게 작용했다.

아니면, 황녀처럼 야망이 크던가.

나와 루크는 잡것들을 이끌고 만두왕국의 수도 북쪽으로 이동했다.

“여기는 왜···?”

내 질문을 받은 루크가 느긋한 어조로 대답했다.

“공략집에 나온 날짜가 틀리지 않다면, 오늘 여기로 실비아가 올 거야. 1레벨 용사로는 어림도 없지만, 알렉스를 설득해서 기사들과 동행하면 의외로 쉽게 그녀의 탈출을 도울 수 있지. 우리는 강해서 남의 손을 빌릴 필요가 없지만.”

“허···.”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공략법이었다.

알렉스와 라누벨은 우리의 대화를 들으면서 살짝 놀란 표정을 지을 뿐, 시시콜콜하게 따지진 않았다.

루크가 첫날에 “미래에서 왔다.”라고 밝힌 탓이리라.

하지만 공략집에도 한계가 있었다.

실비아를 어디서 만났는지 작성자가 대충 표시해두긴 했지만, 상세한 시간과 장소는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탓이다.

그래서 우리는 황금빛 밀밭이 펼쳐진 평원 한복판에 오도카니 서서 대기했다.

정령E→정령D

도시 밖으로 나온 덕분일까?

밀밭에서 뛰놀던 정령들이 자석처럼 내게 달라붙었다.

“이놈의 인기란···. 음? 정말로 왔네?”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나는, 멋대로 용사님을 성희롱하는 정령들의 보고를 들었다.

사냥감(?)이 출현했다고.

“잡아!”

“놓치지 마!”

“저쪽이다!”

시커먼 두건을 착용한 사내들에게 추격당하는 두 요정이 보였다.

하지만 요정들이 도망치는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수갑과 족쇄를 착용한 탓에 걸음이 불안정한 탓이었다.

나는 두 요정의 정체를 바로 눈치챘다.

실비아

궁수E

내가 나설 것도 없었다.

루크와 잡것들이 쏜살같이 날아가서 시커먼 두건의 수상한 사내들을 몽땅 처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두 요정 노예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획득할 마음이 없는 듯했다.

그 광경을 본 나는 이 말밖에 안 나왔다.

“맙소사···. 천벌 받을 연놈들.”

풍성한 황금빛 밀밭이 순식간에 엉망이 됐다.

그까짓 요정 2마리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농부들이 피땀 흘려 키운 농작물을 짓밟으며 신나게 싸운단 말인가?

아무튼,

헝겊으로 중요한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음란한 복장의 두 요정은 무사히 구출됐다.

제대로 씻지 못한 꾀죄죄한 몰골.

그냥 가까이에만 있어도 병균이 옮을 것 같았다.

루크가 내게 우쭐대듯 설명했다.

“실비아 옆의 요정은 그녀의 궁술 스승이야. 첫째이자 아들인 나서스 왕자만 챙기는 엘브하임 왕비 대신에 그녀를 키우다시피 한 인물이기도 해. 그런데 함께 탈출하던 도중에 그녀가 죽어. 그 뒤부터 실비아는 인간을 향한 적의가 심해지는데, 이처럼 스승도 구하면 쉽게 친해질 수 있어.”

“거참···.”

공략집의 위대함을 실감했다.

정령D→정령S

이 와중에도 내 정령 스킬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풍수지리적으로 이 땅은 자연의 기운이 풍부한 모양이다.

“요정님들. 아픈 곳이 있으면 라누벨에게 말해주세요!”

우우웅-

우웅-

조금 전까지 사람을 죽여놓고 태연하게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

소름 돋는 그녀의 치유 마법으로 자잘한 상처를 치유한 두 요정 중 대표로, 실비아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이 도둑놈! 내 정령을 돌려줘!”

친해지긴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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