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10회차] 7가지 힘을 하나로 합치면...
▶긴장: 저들은 강한수 생도님의 성검이 주문으로 소환되며 발생하는 파장을 추적해온 것 같아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당장 선배님에게 도움을 요청할게요!
교생 아가씨. 서두르라고.
내 졸업을 방해하는 이 훼방꾼의 처리가 늦어지면 판타지아 중앙대륙을 부수고 11회차로 넘어갈 것 같으니까.
그때는 나도 진짜 열 받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영입을 진심으로 바라고 계세요.”
바텐더에게 새 술잔을 주문한 천사가 내 술을 멋대로 홀짝이며 운을 띄웠다.
“그분이라면 최초의 용사?”
“한때는 그렇게 불리셨던 분이죠. 하지만 현재는 하나의 은하계를 지배하시는 왕(王)이십니다. 후후! 은하계라고 하니, 감이 안 오시죠? 그분은 당신이 상상할 수 없는 규모를 지배하고 계십니다.”
확실히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 숫자만큼 많은 행성을 지배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하하! 맞아. 자기 가정도 통제하지 못하신 분께서 은하계를 지배한다고 하니, 확실히 감이 안 오네.”
“당신…!”
“암탉 아가씨. 질문 하나만 할게. 그렇게 대단한 왕께서 나를 영입할 필요가 있나? 잘난 수하가 모래알처럼 넘쳐날 텐데.”
나는 조금 진지하게 질문했다.
눈앞의 상대를 무작정 ‘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 부모님을 죽인 철천지원수만 아니라면, 이익에 따라서 얼마든지 타협할 의향이 있다,
그리고 함정일 가능성도.
천사는 살짝 노여움이 담긴 어조로 답했다.
“반대로 생각해보세요. 지배하는 국토는 넓은데, 인재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저희 왕국은 늘 인재난에 시달려왔습니다. 당신이 살해한 왕자님과 용사님도 그 인재에 해당하죠. 고작 둘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분들이 맡은 영토와 역할은 절대 가볍지 않아요.”
해명 자체는 그럴싸했다.
나는 혹시라도 교직원 일동이 난입해서 훼방을 놓기 전에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기로 했다.
“판타지 신은 누구지?”
“그 정체는 아무도 몰라요. 저희는 편의상 총장(總長)이라고 부릅니다만. 용사를 육성하는 이 기관을 설립한 창조신(創造神)이죠. 총장의 목적은 자신에게 저항하는 존재를 처리할 사냥개를 키우는 거예요. 과거의 그분이나 지금의 당신 같은.”
“사냥개라….”
내가 듣고 불쾌하게 여기도록 할 의도의 발언이었던 모양이지만, 나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자본주의사회가 팽배한 현대 지구는 돈에 지배되니까.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학습하고 남을 위해 일한다.
판타지 신도 다르지 않다.
돈 대신 능력치로 사람을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판타지아 대륙에서 100살 넘은 인간을 숱하게 보았다. 당장 지구에서 ‘수명 500년’을 준다고 하면, 전 재산을 들고 와서 복종할 인간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판타지 능력치로부터 독립하려는 이유는?
위험한 전쟁에 강제로 동원될 것 같았던 탓이다.
마치, 용사의 모험처럼.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모험의 실체는, 신(神)이 다스리는 판타지 세계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들의 척살이다.
“저기, 이게 무슨 이야기야? 아는 사이?”
우리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요정공주 실비아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참견했다.
나는 짤막하게 대답해줬다.
거짓은 없다.
“알아서 좋을 것 없는 이야기.”
자기가 수많은 실비아 중 하나이며, 지크라는 한심한 인간이랑 부부였던 적도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정체성부터 흔들릴 것이다.
어디 지크뿐일까?
지구의 용사 남정네 중 무수히 많은 인원이 실비아랑 살을 맞대며 잠자리를 함께했을 것이다.
물론, 각각의 실비아는 독립된 존재다.
하지만 자신이 하지 않았더라도, 쌍둥이처럼 자신이랑 똑같이 생긴 인간이 인터넷에서 나체쇼를 벌인다고 상상해보라.
어떻게든 말리고 싶을 것이다.
“슬슬 대답을 들려주시겠어요?”
“무슨 대답?”
나와 암탉 아가씨는 실비아를 무시한 채 대화를 이어갔다.
“성검 뉴클리온을 반납하고, 저희 쪽으로 귀순하세요. 그분께서 최고의 대우를 보장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이전의 원한은 일절 따지지 않겠다는 것도 덧붙이셨고요. 당신을 마왕으로 오인하고 공격한 실책이 있으니까요.”
“흐음~”
자폭을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그것 때문에 나는 지구에서 다시 판타지아 차원에 처박혔다.
심지어 다시 아기에서부터 시작하는 진귀한 경험도 했다. 이젠 유전적으로 순수한 지구인이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어디 그뿐이랴?
놀랍게도 나는 법적으로 아직 미성년자였다!
“대단히 파격적인 조건이에요. 그분의 아드님과 며느리들을 학살하고도 용서받는다는 뜻이니까요.”
“암탉 아가씨. 말로는 우주도 줄 수 있지! 나도 조건을 말할게. 성검 뉴클리온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나를 여기서 꺼내줘. 참나! 너희가 먼저 시비 걸었다가 죽어놓고 뭔 용서야?”
판타지 신의 편파판정으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나는 지구의 상식인으로서 늘 떳떳하게 행동해왔다.
그것은 정당방위였다.
가해자가 죽었다고 피해자로 둔갑하는 건 어느 나라의 법도(法度)란 말인가?
암탉 아가씨가 고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은 시비라고 여기실지 모르지만, 저희의 관점에서 당신은 총장이 키우는 사냥개예요. 적을 발견하자마자 선제공격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 점을 헤아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적이었으니 이해해달라고?
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내가 전리품으로 획득한 성검을 내놓으라는 너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헤아려줬으면 좋겠네.”
“유감이로군요.”
“아아, 나도 마찬가지야.”
뿅!
휙!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내가 기습적으로 소환한 성검 뉴클리온이 천사의 마검에 막혔다. 그리고 충돌의 여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성왕국의 수도가 한순간에 쓸려버렸다.
*
“...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주위를 둘러본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첫 충돌은 확실히 엄청났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천사 아가씨의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를 단숨에 베어버릴 의도로 힘을 한껏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그 직후, 도시쯤은 그냥 초토화할 후폭풍이 몰아쳤다.
하지만 폐허는커녕 슬라임 1마리 안 보일 만큼 깔끔히 처리할 위력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지 않고 쌀쌀한 편이었지만, 선인장은커녕 생명체 하나 보이질 않았다.
그때,
“안녕하세요, 강한수 생도님.”
내 등 뒤에서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던 걸까? 말하기 전까지 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잽싸게 몸을 돌린 나는 살짝 넋을 놓으며 중얼거렸다.
“교생 아가씨가 아니라 정말로 아저씨였나…?”
검은색 곱슬머리가 잘 어울리는 미남자였다.
어여쁜 처자인 척하는 거 아니냐고 가끔 놀리긴 했지만, 정말로 시커먼 사내일 줄은 몰랐다.
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하하! 아닙니다. 저는 교생이 아닌 학생회 일원입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강한수 생도님의 가까운 선배라고 할 수 있겠군요. 중등교육과정을 이수하고 학생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생회라…. 여긴 어디지?”
“아직은 서로 반말할 만큼 긴밀한 관계가 아닌 듯한데요. 상호존중(相互尊重)을….”
“어디야?”
“흠흠! 중등교육장의 체육관입니다.”
“체육관…?”
이 사막이 체육관이라고?
“초등교육장에서 초월영역의 강자들이 맞붙으면 대륙이 버티질 못하니까요. 그래서 선생님께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임받은 제가 학생회의 권한으로 당신과 불청객을 이곳으로 초대했습니다. 즉, 여기는 Z등급 이상의 스킬을 다수 보유한 중등교육생들이 대련하는 장소입니다.”
나는 학생회에서 파견된 선배란 남자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종족: 유니크 휴먼
▷레벨: 999+
▷직업: 검신(검술=신성↑)
▷스킬: 검술Z 관통Z 검기Z 봉인Z 내성MAX…
▷상태: 성검, 축복, 강화, 신수, 증폭
능력치가 하나같이 터무니없었다.
종족은 루크랑 같은 전설 등급의 ‘유니크 휴먼’이었고, 직업은 아예 처음 보는 것이었다.
스킬도 초월영역이 4개나 됐다. 아니. 그의 직업 ‘검신’의 효과가 사실이라면, 스킬에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신성도 Z등급에 도달했다고 봐야 했다.
즉, 초월영역 스킬이 5개.
상태도 화려했다.
용사만의 전매특허인 성검을 당연하다는 듯이 보유했고, 극소수 수호자만 가진 ‘신성한 짐승’을 길들였다.
여기에 판타지 3대 도핑인 축복, 강화, 증폭까지!
단단히 준비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도덕 선생과 교생 아가씨는?”
“조금 전에 말씀드렸을 텐데요. 위임받았다고. 자! 준비하십시오. 불청객들이 곧 이곳으로 달려올 겁니다. 저를 쓰러트리기 전까지는 빠져나갈 수 없음을 눈치챌 때가 됐거든요.”
갑자기 어두컴컴해지는 하늘.
개기일식이 아니었다.
내 머리 위쪽에서 거대한 ‘마룡’이 느닷없이 출현했다. 놈은 태양을 등진 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용의 머리 위에,
“어떻게 벌써 눈치챘지?”
순백의 날개를 활짝 펴고 완전무장한 천사 아가씨가 학생회 청년을 노려보며 질문했다.
자칭 선배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저 후배가 초등교육과정 종합성적 역대 1위거든. 처음에 나는 중등교육생이 신분을 속이고 초등교육장에 내려가서 재시험을 본 줄 알았다니깐? 그래서 이래저래 관심받는 용사지. 너희도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온 거 아닌가? 배신자의 후손이여.”
“배신은 너희겠지…!”
천사의 분노에 반응한 마룡이 움직였다.
상대도 가만히 당해주지 않았다.
“벗이여! 전장의 여신이여! 그대를 영접하리다!”
자칭 선배도 무언가를 소환했다. 판타지 능력치의 상태에 표시된 ‘신수’가 틀림없었다.
쾅! 쿠웅-!
두 거체(巨體)가 충돌하면서 모래폭풍이 사방으로 몰아쳤다.
마룡의 돌격을 막아선 신수는 털이 흰 고양이였다. 덩치는 북대륙의 설산M에 사는 수상한 고양이보다 훨씬 컸다.
백호(白虎)라고 불려야 마땅하지만,
“Yaooong~!”
울음소리가 호랑이가 아닌 고양이였다.
여기에 맞서는 붉은색 비늘의 마룡이 힘차게 포효를 터트렸다.
“Fraaaaaa-!”
태산처럼 거대한 두 괴수가 드넓은 사막에서 맞붙었다. 물고 할퀴고 아주 난장판이었다.
기수(騎手)인 두 사람도 다르지 않았다.
마룡과 신수에서 내려온 천사와 인간은,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치열하게 맞붙었다.
챙! 챙! 챙! 챙!
성검과 마검이 충돌할 때마다 사막의 모래가 뿔뿔이 흩어졌다.
여기가 평범한 도시나 숲이었다면 진즉 황무지로 변했을 것이다. 그만큼 파괴적인 접전이었다.
내가 태평양에서 늙은 왕자랑 맞붙었을 때처럼.
처음에는 막상막하였다.
하지만 여기에 변수가 끼어들었다.
“저도 있다는 걸 잊으신 모양이군요?”
직업이 ‘추적자’였던 미녀가 참전했다.
보유한 스킬들은 전투원보다 안내원에 가까웠지만, 그녀도 초월영역 스킬을 보유한 강자임은 틀림없었다.
암살자처럼 사냥감의 사각지대를 노렸다.
상처가 급격히 늘어난 학생회 남자가 쩔쩔매며 외쳤다.
“강한수 생도님! 함께 싸웁시다! 당신이 저 비열한 암살자를 맡으…. 강한수 생도님…?”
나는 오늘 처음 만난 수컷이 어떻게 되든 관심 없다.
비겁한 ‘우정의 힘’을 경멸하기도 하고.
내 관심사는?
“여기가 중등교육장이란 말이지?”
나는 초등교육생이다. 그러니 여기서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성적표에는 반영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면,
불법도 여기선 괜찮다는 거네?
촤아아아아-
봉인해둔 블랙박스를 활성화하자마자 스킬의 향연이 이어졌다. 은하수의 별처럼 아름답게 펼쳐졌다.
일일이 읽고 파악하는 건 포기했다.
그 정도로 많았다.
▷종족: 네츄럴 휴먼
▷레벨: 2837
▷직업: 마왕(용사→레벨↓)
▷스킬: 영재ZZ 신성Z 마기Z 정령MAX 패기MAX 축복MAX 몰살MAX 날조MAX 혼돈MAX 파괴MAX 내성MAX 근력MAX 맷집MAX 민첩MAX 투기MAX 오감MAX 검술MAX 광기MAX 비행MAX 불굴MAX 희롱MAX 권투SSS 검기SSS 학살SSS 심판SSS 불사SSS 격투SSS 체술SSS 불로SSS 영생SSS 근성SSS 탐색SSS 조화SSS 체력SSS 협상SSS 색적SSS 심판SSS 망각SSS 회복SSS 거래SSS 인내SSS 활력SSS 선동SSS 저항SSS 기력SSS 재생SSS 면역SSS 냉정SSS 철벽SSS 금강SSS 지력SSS 도발SSS 우정SSS 정력SSS 투시SSS 거래SSS 지진SSS 겁화SSS 태풍SSS 홍수SSS 평정SSS 채광SS 농사SS 요리SS 제련SS 채집SS 행운SS 낚시SS 수영SS 사육SS 교감SS···
▷상태: 성검, 성녀, 마검
급격한 도핑에 온몸이 뻐근했다.
“설렁설렁 가보실까!”
내 몸을 성희롱하던 정령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 가지 힘이 하나로 합쳐졌다. 여기에 나는 신성과 마기까지 곁들였다.
재료는 주위에 널린 사막의 모래.
정령들은 모래를 찰흙처럼 뭉쳐서 무언가를 만들었다.
그것은….
초대형 강한수였다.
크다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무지막지한 규모를 자랑하는 모래 인형이었다.
너희들. 나를 참 좋아하는구나?
“가자! 캡틴 강한수…!”
덥석! 덥석!
내 명령을 접수한 초대형 SSS급 용사님은, 아등바등 다투고 있던 도마뱀과 고양이의 목을 양손에 하나씩 움켜쥐었다.
그리고,
우득, 우득.
예쁘게 모가지가 부러진 마룡과 신수가 얌전해졌다.
“다음은…. 어라? 다들 어디 갔지?”
잡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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