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141화 (141/430)

 141화

[10회차] I'm not your father

나의 잡것들은 그럴싸한 무장 하나 없는 알몸이긴 했지만, 몸에 밴 분위기 하나로 좌중을 압도했다.

당사자들은 구경거리가 되는 게 무척 못마땅하다는 듯이 나를 노려봤다. 정령C 빼고.

나중에 정령C는 특별대우를 해주기로···.

“대, 대체 뭐야?! 이 괴물들은···?”

내 잡것들의 능력치를 본 루크가 영혼에서부터 피를 토하는 심정의 얼굴로 경악성을 터트렸다.

“나도 7년 동안 놀고만 있진 않았다구?”

판타지 경력 33년의 남전여전(男戰女戰) 다 겪은 트리플 S급 용사님이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어째선지 눈물샘이 시큰거리는군.

누추한 알몸뚱이로 소환돼서 불만 가득했던 잡것들이 내게 따지길 포기하고 루크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정령A부터 정령D까지 한마디씩 했다.

“이게 일반적인 용사겠지.”

“요즘 세대는 약하군.”

“그만큼 주인님이 대단하다는 뜻?”

“후후! 그분 앞에선 먼지죠.”

용사 외의 직업은 타인의 능력치를 볼 수 없어야 정상이지만, 이들은 예외였다.

종족이 ‘올드’이기 때문이다.

▷종류: 종족

▷명칭: 올드 스피릿

▷등급: 고대

▷고대1: 직업을 한 번 습득한다. (0/1)

▷고대2: 소멸을 한 번 회피한다. (0/1)

▷고대3: 봉인을 한 번 회피한다. (1/1)

▷고대4: 죽음을 한 번 회피한다. (0/1)

▷고대5: 종족을 한 번 교체한다. (1/1)

▷특성1: 함정을 쉽게 감지한다.

▷특성2: 배신을 쉽게 감지한다.

▷특성3: 능력을 쉽게 감지한다.

▷종족1: 친화력이 우수하다.

▷종족2: 하나의 속성에 특화한다.

굉장히 특수한 종족특성이다.

지속성이 아닌 소모성.

애초에 죽거나 당하지 않을 만큼 좋은 효과를 보유하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지만,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법이다.

아무리 강해도 죽으면 끝이다. 실수였든 착오였든 죽어버리면 모든 걸 잃는다.

그런데 무려 3번이나 막아준다.

심지어 다 사용하면 종족을 바꿀 기회까지!

능력치를 볼 수 있는 이유는 ‘특성3’의 효과로 보인다.

“용사다! 용사가 왔다!”

“어서! 악마님들을 불러!”

“지원군을 요청해!”

우리의 대화를 방해하는 자들이 등장했다.

“정령C. 정리해.”

“네. 주인님.”

생전에는 요정 용사의 동료이자 아내였으며, 죽어서는 용사의 골렘으로 활약했던 여장부는 정령으로 다시 환생했다.

정령C는 가슴을 가리고 있던 오른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주인님께 받은 새로운 삶을 찬양하리~♪ 뜨거운 피가 흐르는 육체를 얻은 것에 기뻐하리~♬”

정령C를 중심으로 생성된 순백의 기운이 동심원을 그리며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으아아아?!”

“커어억?!”

“꺄아아앜?!”

E등급 이하의 약한 마기는 자연스럽게 정화됐지만, 그 위부터는 마기가 강할수록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다.

그리고 약한 악마는 영문도 모른 채 고통 속에 소멸했다.

대단히 광범위로 이루어진 정화.

악마의 출산율이 오르든 말든 상관없다.

퇴마사, 항마ZZ, 정화ZZ, 신성Z.

악마라면 벌벌 떨 수밖에 없는 직업과 스킬들을 보유한 정령C가 노래를 부르면 몰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루크가 북대륙에서 고용한 성녀C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1회차 때도 느꼈지만, 성녀C는 수컷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인어보다도 요염한 관능미가 넘쳐나는 여인이었다.

꿀물을 바른 것처럼 고운 머리카락, 옷이 힘겨워하는 그녀의 가슴은 대신 들어주고 싶을 만큼 탐스러웠다.

고양이 같은 눈은 음탕하기 그지없고, 잘록한 개미허리 아래로 과시하는 골반과 엉덩이는 도덕과 양심을 배신했다.

허리를 비틀며 살짝 비스듬히 선 도도한 자세 또한 자연스럽다. 귀여운 척하는 누군가랑 다르게.

성(聖)스러운 성녀가 성(性)스럽기까지 하다니?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성녀다.

“...아! 나도 성녀를 깜빡했군.”

잡것들은 충분히 대조해봤다. 그러니 이번에는 용사의 짝꿍이라고 불리는 성녀로 마침표를 찍을 차례.

나는 20년 넘게 함께해온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찰떡.”

펄럭!

3쌍의 날개를 활짝 펼치며 성녀H가 소환됐다.

교직원 일당이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한 용사 페스티벌. 그곳의 얼굴마담답게 비주얼과 퍼포먼스에서 그녀를 따라올 존재는 판타지아 대륙에 없었다.

성녀C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녀가 더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녀노소(男女老少) 골고루 뒤섞인 100명에게 물어보면 70명쯤은 성녀C보다 성녀H가 더 낫다고 대답하리라.

성녀H는 규격화된 아름다움이다. 부족하거나 과하지 않은 평균을 지향한 미색.

그녀에게도 성장이 있었다.

▷종족: 드래고닉 엔젤

▷레벨: 999+

▷직업: 성녀(신앙→부활↑)

▷스킬: 신앙Z 신성Z 조련Z 무한Z 교감MAX···

▷상태: 신룡, 환희

...뭐지? 내가 알던 능력치랑 너무 다른데?

나는 성녀H를 악마 사냥에 특화되게 성장시켰었다. 그런데 바뀐 종족도 그렇고, 완전히 생뚱맞은 조련사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평범한 조련사는 아니었다.

상태에 표시된 ‘신룡’은 대체···?

“7년 만에 뵙습니다, 주인님.”

날개를 접으며 지상에 착지한 성녀H가 공손히 인사했다.

“흠. 그런데 신룡은 뭐야?”

“아! 주인님의 명령에 따라 부지런히 성장시켰습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나오렴.”

성녀H가 속삭이듯 불렀다.

그러자 하늘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녹색 생명체가 소환됐다. 덩치가 민간항공기 크기로 웬만한 판타지 날도마뱀보다 컸다.

놈이 아가리를 쫙 벌리며 포효를 터트렸다.

“Greeeeee···!”

주둥이가 뭉툭해서 온순한 분위기를 풍겼다. 머리에 난 뿔도 송곳처럼 뾰족하지 않고 두루뭉술했다.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용의 모습은 망룡왕 뇌비우스다. 그 칠흑빛 거구를 올려다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지 않은가!

그런데 이 녹색 덩어리는 대체···.

나는 그것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듯 질문했다.

“저 용이 설마···. 쑥떡?”

하지만 성녀H의 노력을 비하할 생각은 없다. 사육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태생적인 외모는 어찌할 수 없으니까.

성녀H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네. 쑥떡입니다.”

“거참···.”

알을 깨트려서 미숙아로 태어난 7년짜리 새끼용의 덩치가?

우량아도 울고 갈 만큼 거대했다.

능력치는 더욱 괴상했다.

▷종족: 세인트 드래곤

▷레벨: 999+

▷직업: 영웅(경험치 200%)

▷스킬: 만능Z 신성Z 영재Z 안마Z 교감MAX···

▷상태: 혈맹, 불안

재능을 농축액으로 집약해놓은 듯한 스킬 구성. 어째서 저 안에 ‘안마’ 같은 불필요한 기술이 초월영역까지 접어들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굉장하다는 건 틀림없었다.

“어떻게 키워낸 거지···?”

9회차가 끝나면서 소멸한 게 아니었단 말인가?

“예상하고 피의 계약을 미리 맺어뒀습니다. 저는 분할되지 않은 온전한 존재니까요. 쑥떡을 축제용 개인소유물로 등록해서 판타지아 세계의 존재란 틀을 벗어나도록 했어요.”

“스킬 축제···.”

쓸모없는 스킬인 줄 알았는데 이런 용도가 있었다.

그때였다.

털썩!

내가 잡것들을 소환한 이후부터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한 루크는, 찰떡과 쑥떡을 보고는 완전히 넋을 놔버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하, 하하···. 나는 7년 동안 대체 뭘 한 거지···?”

“너는 잘했어.”

이건 빈말이 아니다.

7년 동안 적당히 놀면서 부지런히 모험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평상시에는 실컷 놀다가 시험이 임박하면 모범생의 교과서를 베껴서 벼락치기 하듯이.

용사 루크는 잘못하지 않았다.

비교 대상이 잘못됐을 뿐이다.

루크의 판타지아 경력은 고작 11년이다.

영문도 모른 채 소환되어 마왕을 쓰러트리고 졸업하기까지 4년. 이번에 재시험으로 7년.

그 둘을 합쳐서 11년이다.

반면에 나는?

33년이다.

시간만 따져도 루크의 3배.

내가 루크보다 3배 이상 강한 건 너무나 당연하다.

▶정정: 강한수 생도님. 3만(萬)을 잘못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사소한 숫자는 넘어가자고, 교생 아가씨!

“강한수! 그 동료들은 대체 뭐야?! 공략집 어디에도 나오지 않아! 용사들이 꺼리는 서대륙? 미개척지대가 많은 남대륙? 신비로 가득한 동대륙? 설마! 완벽하게 꿰차고 있다고 여겼던 중앙대륙과 북대륙은 아니겠지?!”

루크가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1초쯤 고민한 나는 조금만 말해주기로 했다. 그의 공략집 덕분에 꽤 많은 정보를 얻었으니까.

이건 그 보답이다.

“너는 능력치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능력치가 왜?”

“어째서 우리에게 주어졌는지를.”

“그 동료들을 구할 방법은 안 가르쳐주고 별 시답잖은 소리를. 우리는 신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잖아. 너는 예쁜 여고생이 길거리에서 스카우트되어 슈퍼스타가 되는 게 이상해?”

“...그렇군.”

애초에 사고방식이 달랐다.

루크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특별했기에 판타지 신에게 선택받았다고 여긴다.

그래서 판타지 세계로 넘어온 것부터 보통의 지구인에게 없는 능력치가 생긴 것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걸 선민사상(選民思想)이라고 하던가?

아니면 단순한 중2병일지도···.

“흥! 가르쳐주기 싫으면 됐어! 네가 실종된 7년 동안 나는 마왕에게 도전했었다. 한 번 실패하고 다시 동료들을 모은 시간이 4년. 앞으로 3년 뒤에는 지금의 너보다 내가 더 대단해져 있을 거다!”

“그럴지도 모르겠네.”

나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유치하고 피곤할뿐더러, 루크가 앞으로 20년쯤 판타지아 대륙에서 구른다면 나보다 더 대단해질지도 모르니까.

▶감탄: 강한수 생도님은 겸손하시네요.

교생 아가씨. 나는 진심이야.

강한수는 특별할 것 없는 지구의 문화시민이었다.

부모님은 동네 테니스 동호회의 명예회장을 1년씩 역임하셨고, 조상님은 평범한 시골 농부였다고 들었다.

내 학교 성적은 평균.

운동신경도 평균.

얼굴은 아버지를 닮았다.

즉,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인간이다.

판타지 신이 사회부적응자를 소환하지 않고, 나처럼 선량한 인간을 납치했다면 훨씬 우수한 성적의 졸업생을 다수 배출했을 것이다.

나는 대단하지 않다.

만약, 어머니에게 판타지 능력치가 생기셨다면 테니스라켓으로 우주를 평정하셨을 것이다.

그 한심한 최초의 용사가 은하계를 지배한다지 않는가?

▶소름: 강한수 생도님의 어머니는 엄청난 분이시군요?!

아무렴! 아주 대단한 분이시지!

교생 아가씨에게는 나중에 꼭 소개해주고 싶네.

▶당황: 그, 그런···?! 아직 우리는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1000년쯤 좀 더 서로에 대해 알아보고···. 시, 싫다는 건 절대 아니고요! 저는 훌륭한 선생이 꿈이고, 강한수 생도님은 아직 학생이고···. 으으···.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루크는 자기 동료들을 이끌고 홀연히 떠났다.

마왕에게 다시 도전하려고 했던 그는 나의 잡것들과 성녀를 보고는 경쟁심을 불태웠다.

그나저나,

“쑥떡이 많이 컸네.”

멀리서 본다면 상록수로 뒤덮인 뒷산 같을 것이다.

친애하는 망룡왕 뇌비우스의 덩치랑 비교하면 발톱 수준이지만, 7년생 용치고는 매우 큰 편이다.

“주인님. 무언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쑥떡이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아서 좀 거슬리네.”

순하게 생긴 얼굴이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지만, 쑥떡을 키운다고 고생한 성녀H에게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할 순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떡였다.

“아! 죄송합니다. 쑥떡아?”

“Greee!”

번쩍!

빛에 휩싸인 녹색 날도마뱀이 작게 축소됐다. 점점···.

“허···!”

나는 탄식을 터트렸다.

쑥떡이 녹색 머리카락을 나부끼는 소년으로 변한 탓이다. 갸름한 턱선과 커다란 눈망울이 귀엽고 순한 인상을 심어줬다.

옷은 소매가 넉넉한 녹색 도복.

꼬옥.

자연스럽게 성녀H의 손을 붙잡은 쑥떡이 내게 쑥스러워하는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를 뵙습니다.”

아버지? 이게 뭔 참신한 개소리야?

“I’m not your father.”

나는 너 같은 아들을 둔 기억이 없다구?

내 아들을 자칭하려면 악마와 천사들마저 벌벌 떨게 할 마룡(魔龍)이나 악룡(惡龍)쯤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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