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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146화 (146/430)

 146화

[?회차] 귀환인가? 정말 귀환이야?

“저 용사는 괴물인가…!”

“동료들도 전부 괴물이야!”

“저번 용사랑 달- 컥?!”

바글바글한 악마 군단이 나와 정령들의 앞길을 가로막았지만, 희망찬 꿈과 정의로운 마음으로 가차 없이 밟고 지나가 줬다.

싸움이 길어지면 지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레벨이 오르면서 강해진 탓에 우리는 피로보다 성장 속도가 더 빨랐다.

그리고 내 정령들은 긴 세월을 살아온 강자들이다.

어쭙잖은 동료 따위가 아니다.

우리는 요정왕국부터 마왕의 성까지 일직선으로 가로질렀다.

하늘을 이용했다면 조용히 지나올 수 있었겠지만, 업적과 명성을 쌓기 위해 가시밭길을 선택했다.

“용사를 이 앞으로 보내지 마라!”

“나는 마왕님의 오른팔- 켁?!”

“막아라! 저 악마보다 더한 용사를- 꾸엑?!”

악착같이 달려드는 악마들을 싹 정리했다.

항복하거나 도망칠 법도 한데, 마기로 묶인 악마들의 충성심 하나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알아줘야 했다.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쾅-!

악마들의 시체로 가득한 복도를 지난 나는, 눈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문을 힘껏 걷어차며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예전이랑 좀 달랐다.

“혼자가 아니네.”

요정왕 마누라랑 오붓하게 단둘이 있을 줄 알았는데, 마왕은 다수의 부하랑 함께 있었다.

전부 내가 아는 얼굴들이었다.

왕자1, 공주1, 공작A, 공작B, 군단장B.

1회차만이 아니라, 마왕의 영토 토벌 당시에 마주쳐서 쓸어버린 전적이 몇 번 있었다.

왕자1은 왕좌에서 꼼짝 않는 마왕 대신 대소사를 관리하는 실질적인 이인자고, 미인계로 외교를 맡은 장녀인 공주1은 그 옆의 공작A랑 혼약이 되어있다,

공작B와 군단장B는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다.

직급만 높고 전투력은 떨어지니깐.

“그리운 얼굴들이 꽤 보이는군.”

회차마다 자기소개하며 요란한 퍼포먼스를 하던 마왕 페도나르.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내 정령들은 최초의 용사랑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초의 용사는 마왕을 쓰러트린 인물. 마왕으로선 지구의 코흘리개 용사들을 상대할 때랑 마음가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정령들도 아는 척했다.

하지만 숙적치고는 적대적이지 않았다.

동물원에 갇힌 사자를 담담히 구경하는 느낌이랄까?

“마왕님이랑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내 인성 점수에 악영향을 줄 것 같아서 이만 퇴장해주셔야겠습니다.”

“...그렇군. 용사에게 패배한 짐은 절대적인 악이지. 하지만 용사여. 명심하라. 그대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짐의 사위로서.”

“끔찍한 소릴…!”

“하하! 오라! 용사여!”

호기롭게 외친 마왕은 허무하게 패배했다.

성검과 우정의 힘은 필요 없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레벨을 올리지 않은 덕분에 마왕 또한 레벨이 턱없이 낮았고, 마왕의 부하들은 내 정령들의 손가락 하나 감당하지 못하고 먼지처럼 쓸려버렸다.

“정의는 승리한다!”

“짐의 사위로서 훌륭한 실력이었다.”

“마지막까지 사위 타령을…!”

털썩.

마왕이 저주를 날리며 쓰러졌다.

최초의 정령이 말했다.

“이전 회차에서 네 영혼에 무슨 표식을 남겨둔 것 같은데? 굳이 명명하자면 마왕의 가호랄까. 기억을 스스로 봉인한 최초의 악마가 너에게 호의(好意)적인 걸 보면.”

“악의(惡意)겠지! 사위라니…!”

“하여간 너는 참 재미있어. 나도 다시 만나길 빌게.”

“끔찍한 소리 하지 마라.”

▷용사님. 모험은 즐거우셨나요?

그만 듣고 싶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정한 용사의 길은 실로 험난합니다. 하지만 꿈과 희망을 잃지 않은 당신을 응원해준 수많은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우정과 사랑을 배우며 함께 성장한 당신은 마침내 사악한 마왕을 처치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금부터 성적을 알아볼까요?

나는 긴장으로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달래며 성적표를 열람했다.

제발…!

▷이름: 강한수

▷전투력: SSS

▷업적: S

▷평판: B

▷인성: A

▷비고: 하하! 교육의 성과가 있었군!

채점관인 판타지 신이 우쭐댔다.

그게 대단히 아니꼬웠지만, 다시는 안 볼 사이기에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다.

한순간을 못 참아서 대의를 망칠 순 없잖은가?

참으면 빛을 보게 되어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바로 지금처럼!

▷상장: 위 학생은 평소 모험을 성실히 하고 바른 선행을 실천하였습니다. 또한, 항상 동료들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모습으로 판타지아 원주민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이에 위 학생을 S급 용사로 임명합니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졸업식을 시작합니다.

전에는 A급 용사로 졸업했는데, 이번에는 S급 용사로 임명됐다.

총평가에는 SSS학점인 전투력의 영향이 크긴 했지만, 업적의 S학점도 무시할 순 없었다.

평판이 낮게 책정된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도 늘 발목을 잡았던 인성이 A학점 나온 점이 대단히 고무적이다.

전부 예상대로다.

▶섭섭: 정말 축하드려요. 데이트는 할 수 없게 됐지만, 강한수 생도님의 앞날에 좋은 일만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할게요.

교생 아가씨도 잘 보내!

넓은 남자의 가슴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오라구. 문전박대 안 하고 팔 벌려 환영할 테니.

▶버럭: 됐거든요!

하하! 부끄러워하긴.

▷교직원 일동이 당신의 졸업을 경축합니다.

▷직업 ‘용사’가 회수됩니다.

▷무기 ‘성검’이 회수됩니다.

▷상태 ‘학생’이 회수됩니다.

▷교장 선생님 훈시.

오! 맙소사!

예전에 들었던 교장 선생님의 훈시가 또 들려왔다.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게 짜증 났지만, 괜히 빈정거렸다가 졸업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면 안 되기에 잠자코 끝나길 기다렸다.

▷졸업식을 마칩니다.

따스한 빛이 내 몸을 휘감았다.

“정말로 돌아간다.”

지금부터는 성적 따위 잊고 어머니의 테니스라켓에 안 맞을 방법을 고민해보자. 정말 행복한 고민이다.

*

나는 부드러운 안락의자에 앉아있었다.

주위에는 고풍스러운 책상과 책꽂이, 벽난로가 있었으며, 창문 밖에서 시장바닥을 연상시키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것만이 아니다.

내 옆에는 흑백의 대비가 매력적인 메이드 복장의 미녀 하나가 마네킹처럼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종족: 그랜드 휴먼

▷레벨: 999+

▷직업: 하녀(주인→잡역↑)

▷스킬: 청소S 사무S 요리S 체력S 검술A…

▷상태: 양호

그녀는 내가 33년 동안 판타지아 대륙에서 본 어떤 하녀보다도 능력치가 우수했다.

얼굴과 몸매도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넘어섰다. 일국의 공주와 황녀가 하녀라고 우기는 것 같았다.

아무튼,

이곳은 어느 판타지아 귀족의 침실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정상적인 졸업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확인차 하녀에게 질문해보기로 했다.

“여기는 어디지?”

“강한수 졸업생님의 전용 침실입니다.”

침묵하고 있던 하녀가 종달새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강한수 졸업생.

내 추측대로 평범한 졸업은 아니었다.

예전처럼 멀쩡히 졸업해서 지구로 귀환했다면,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이름과 신분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졸업생 페스티벌인가?”

이전에 딱딱한 돌의자에서 시작한 용사 페스티벌이 떠올랐다. 대우는 그때보다 훨씬 좋았지만, 형태는 비슷했다.

“조금 다릅니다.”

“다르다?”

“네. 이전까지의 페스티벌은 졸업생들에게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부터는 강제성이 있고, 능력과 성과에 따른 노골적인 차별대우가 존재합니다.”

“차별이라…. 이 방처럼?”

“그렇습니다. 아! 천천히 식사하시면서 설명을 들어보시겠어요? 요리엔 꽤 자신 있습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판타지아 세계에서 왕궁 주방장의 실력이 A등급이니까. 스킬 요리가 S등급이면 전설의 요리사로 불린다.

물론, 이것도 개인차가 있다.

스킬 등급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을 붕어빵만 만들어왔다면 A등급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붕어빵만 잘 만들어서는 왕궁 주방장이 될 수 없다.

그런 이치다.

“그러지.”

“후후!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요리는 순식간에 나왔다.

냉동요리를 전자레인지로 데우듯 마법으로 뚝딱!

하녀가 말하길,

미리 조리해둔 요리의 시간을 동결해뒀다가 먹을 때 풀어놓는 방식이라고 한다. 여기에 과학적인 상식 따위는 없었다.

식사는 대단히 풍족하고 다채로웠다.

육류부터 해산물까지.

넓은 책상에 혼자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진열됐다. 과시욕 넘치는 귀족도 좀처럼 하지 않을 양이었다.

그래도 나는 묵묵히 먹으며 하녀의 설명을 들었다.

“졸업생은 SSS급부터 FFF급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급수에 따라 여기서 생활하시는 동안의 의식주(衣食住) 수준이 달라집니다. 이처럼 개인실이 주어지는 것은 A급부터. 그리고 식당을 가지 않고 강한수 졸업생님처럼 따로 식사하는 건 S급부터입니다.”

똑같이 개인실이 주어지더라도 A급과 S급은 다르다고 한다.

A급 졸업생의 방은 끽해야 8평 남짓이지만, S급인 나는 40평이 넘는 공간을 혼자 사용하고 있었다.

침실에 배치된 가구의 품질도 당연히 다르다.

설명처럼 노골적인 차별대우!

“이유가 뭐지?”

일전에 경험한 용사 페스티벌은 이렇지 않았다.

모두가 ‘시작의 도시’의 대신전에서 성녀H의 환영과 안내를 받으면서 평등하게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왜?

“기밀 사항이라서 전부 말씀드릴 순 없지만, S급 졸업생 신분으로 열람 가능한 정보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졸업생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지는 사태를 막고자 존엄성과 자율성 일부를 제한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빠른 성장을 유도한다는 취지입니다.”

“그렇군.”

루크 같은 사망자가 지나치게 많았던 모양이다.

지구에서 ‘최상위권 랭커(Ranker)’였다고 자랑하던 루크다. 하지만 전직 외계인 간부였던 내 정령들이랑 능력치를 비교해보면 먼지나 다름없는 수준.

그렇기에 ‘총장’도 위기의식을 느낀 게 아닐까?

“하녀 아가씨.”

“강한수 졸업생님이 편하신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저는 당신의 부름에만 응답하도록 계약된 하녀니까요.”

“그러면 하녀S.”

“...엘리스라고 불러주시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이곳의 하인과 친구들이 저를 부르는 명칭입니다.”

앞으로 하녀를 엘리스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는 하려던 질문을 했다.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되지? 지구로 돌아가나?”

판타지 신이 차별과 강제성을 첨가한 페스티벌을 연 취지는 잘 알겠다. 하지만 나는 지구로 돌아가는 게 목적이다.

엘리스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요. 급수와 레벨이 떨어지며 재시작하게 됩니다. 강한수 졸업생님은 현재 S급. 사망하시면 A급으로 하락합니다. 그러면 이 40평 방은 압류되고 8평짜리 방으로 재발급됩니다. 식사도 단체식으로 바뀌고, 시중드는 하녀도 S급에서 A급으로 내려갑니다.”

“계속 죽으면?”

“...FFF급에서 사망하시면 지구로 귀환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능력치를 잃고, 특혜를 받아온 기간만큼 강제노역을 받게 됩니다. 강한수 졸업생님은 그 기간이 5년쯤 될 겁니다.”

“잠깐! 3년이 아니라?”

내 판타지아 경력은 33년이다.

판타지아 시간은 지구보다 10배 빠르게 흐른다. 그렇게 계산하면 3년 남짓이 될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5년이란 말인가?

“페스티벌은 4년에 한 번씩 열립니다. 그리고 제가 살펴본 기록이 틀리지 않았다면, 강한수 졸업생님은 이번이 두 번째. 지구에서 2년 가까이 생활하셨습니다.”

“2년이나…? 아!”

지구의 태평양에서 죽었을 때, 나는 바로 판타지아 대륙에서 갓난아기로 환생한 줄 알았다.

그런데 2년의 공백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강제노역 5년은 안 될 말이다. 당장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는 내 소망이랑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자살만이 방법은 아닙니다.”

엘리스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운을 띄웠다.

“그래. 정상적인 방법이란 걸 말해봐. 교직원 일동이 기획한 페스티벌의 목적을 들어보자고.”

“...많이 아시네요.”

“사족은 됐고.”

“실례했습니다. 강한수 졸업생님이 지구로 귀환하는 정상적인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다른 졸업생들이랑 경쟁하면서 종합점수 5위 안에 드는 겁니다. 이 표를 봐주세요.”

그러자 내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1위: 중등교육과정 입학증, 학생회 임원 자격

▷2위: 프리미엄 성검, 중등교육과정 입학증

▷3위: 고향별 급행 차원이동증, 프리미엄 성검

▷4위: 만능일꾼 수호천사, 고향별 급행 차원이동증

▷5위: 요정왕의 눈물, 고향별 급행 차원이동증

▷점수: 0

▷순위: 3,895

...1위와 2위는 지옥행 열차표였다.

순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번거로움과 위험성이 걸렸던 나는 또 하나의 방법을 물어보기로 했다.

“다른 하나는?”

엘리스가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마왕 페토나르를 토벌한 전성기의 최초의 용사를 쓰러트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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