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회차] 아기 vs 어른
“...점수가 너무 잘 오르는 것 같은데.”
내 기분 탓일까.
수사하는 과정에서 페스티벌 점수가 빠르게 향상됐다.
실종된 요정 남성들을 찾고자 동원한 정령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 때마다 내 실적으로 기록됐다.
딱히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다.
강풍으로 창문을 깨고 잠입한다든가?
멀쩡한 지하실에 땅굴을 판다든가?
도움보다는 민폐를 많이 끼쳤지만, 정령들은 장난꾸러기처럼 순진한 척하면서 영악하게 빠져나왔다.
피해자들이 눈살을 찌푸리긴커녕 역으로 입가에 미소를 그리니, 점수가 내려가지 않고 역으로 오르는 기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곳이 정령들에게 호의적인 요정들이 사는 도시란 점도 크게 한몫했다.
▷점수: 11354
▷순위: 79
아침에는 분명 86위였는데, 수사로 지친 피로를 풀고자 맛집에서 점심을 먹는 사이에 79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렇다고 하던 일을 멈출 순 없었다.
나는 100만 정령이 발견한 납치범의 아지트로 향했다.
절대로 이곳을 못 찾아낼 거라고 여긴 걸까? 조잡한 함정 외에는 아무런 조치도 해놓지 않았다.
더구나 나는 스킬 ‘행운’이 S등급이다.
엔간한 함정은 내게 아무런 위협이 안 됐다. 애써 피하지 않아도 함정이 먼저 피하기에.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나를 여왕님이라고 부르세요. 아셨죠?”
한 여성의 도도한 목소리 뒤로, 남성들의 가지각색 음정이 뒤따랐다.
“내게는 미래를 약속한 누나가 있어요.”
“이러지 마시오. 집에 아내가 있소.”
“어째서 이런 미개한 짓을 하는 겁니까?”
더 들어볼 것도 없었다.
쾅!
나는 단단한 철문을 걷어차면서 현장을 급습했다.
손발 묶인 꽃미남들이 바지와 속옷을 내린 채 피아노 건반처럼 일렬로 바닥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한 여인이 있었다.
사악한 여성은 굉장한 미녀이거나 추한 노파라는 편견은 안 가지는 편이 좋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인간 여성이었다.
몸매와 얼굴은 지극히 평범. 활짝 웃으면 귀엽다는 칭찬을 간혹 들을 수준이었다.
“누, 누구- 헛?! 진짜 용사님?!”
나를 본 여인이 화들짝 놀랐다.
“흠. 용사라고 바로 알아본 점만은 훌륭하네.”
“그야 이름표가….”
“아! 그랬지.”
기숙사에서 받은 이름표가 있다는 걸 깜빡했다.
내가 소개하기 전에 상대가 먼저 용사임을 알아본 적이 드물어서 내심 기분이 좋았는데, 단숨에 원상태로 돌아갔다.
납치범이 재차 말했다.
“S급이라니….”
그녀는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이름표의 의미를 바로 알아봤다.
페스티벌 대륙에서 유일한 S급 용사님이 바로 나!
이번에는 알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내 53년 경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뜻하니까.
아주 조금 뿌듯했다.
“맞아! 대륙에 단 한 명뿐인 S급 용사님이지! 이렇게 독대하는 걸 영광으로 알라고.”
“네. 영광으로 알고 항복할게요. 흑흑!”
“...음?”
지금부터 제압하기 위해 허리디스크를 준비하던 나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여인 때문에 멈칫했다.
“내가 뭘 했다고 우냐?”
“무려 S급 용사님이시잖아요. 저는 진짜 용사님이랑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해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흑흑!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방금까지 요정 남성들 앞에서 여왕을 자칭하던 도도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인만 있을 뿐.
정상적인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외모가 부족하면 남을 헐뜯고, 돈이 부족하면 도둑질을 하고, 힘이 부족하면 폭력을 행사하고, 여자가 부족하면 방앗간에 가고, 남자가 부족하면….
대체로 이런 식이다.
“...그래?”
우득.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으니, 불만은 없을 것이다.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가 예쁘게 돌아간 여인이 실 끊긴 인형처럼 쓰러졌다.
▷점수: 11504
▷순위: 78
현상금으로 250점을 받았다.
하지만 이대로 떠나기에는 석연치 않았다.
“감사합니다! 용사님!”
“살았다! 살았어!”
“용사님께서 와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이대로 죽는 줄 알았어요!”
여전히 팔다리 묶인 채 바닥에 누워있는 요정 사내들이 내게 감사의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나도 보답해줬다.
“아앜?!”
“컥-!”
“으갸갸?!”
“꾸엑!”
일일이 허리디스크를 선물해줬다.
등허리의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를 직접 자극하지 않고, 척추에서 꽤 떨어진 옆구리를 걷어차서 선사해줬다.
난해한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정 경지를 넘어선 달인만 할 수 있는 고난도 기술이다.
영광으로 알도록!
나는 끙끙 앓는 그들을 차례대로 쓱 보며 근엄하게 말했다.
“납치한 년이 문제지만, 유혹한 놈도 잘못은 있지. 앞으로 허리가 아플 때마다 이 용사님의 충고를 떠올리라구.”
그리고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귀찮고 번거로운 현장의 뒷수습은 시청에서 할 것이다.
▷점수: 11304
▷순위: 80
법적으로는 피해자일 뿐인 시민을 공격해서 점수가 내려갔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후에 저 요정들이 살아가면서 내 충고를 조금이라도 떠올린다면, 그만큼 주위에서 슬퍼할 일이 줄어들 테니까.
우득! 화륵! 휘잉! 찰싹! 몰랑!
땅, 불, 바람, 물, 마음. 5가지 정령들이 다른 납치범의 위치를 내게 속삭였다.
오늘은 느긋하게 쉴 틈이 없을 듯했다.
납치범들의 수준이 다 고만고만해서 수색에 걸린 시간이 엇비슷한 탓이다.
“다른 용사들은 뭘 하는지. 쯧쯧.”
순위를 놓고 경쟁하는 관계이긴 하지만, 경쟁 자체가 안 되는 현재 상황은 썩 내키지 않았다.
축제를 제대로 즐길 수 없잖은가?
좀 더 분발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소망을 내심 품으며, 나는 두 번째 납치범을 만나러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그다음, 또 그다음….
협박D→협박A
응징E→응징C
기만F→기만B
그렇게 요정들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스킬 숙련도가 쭉쭉 올랐다.
정말로 기대하지 않은 것들만 올라서 깜짝 놀랐다.
*
나는 요정 도시에서 암약하는 납치범과 사냥꾼들을 완벽하게 소탕한 후, 곧바로 외부의 현상금을 획득하러 이동했다.
도시 내부의 문제해결은 점수를 거의 얻지 못했다.
납치범에게는 목디스크, 납치된 요정들에게는 허리디스크를 선물하면서 점수를 꽤 잃은 탓이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순진한 척하는 정령들이 저지른 물질적 손해는 웃으며 넘기고, 정의로운 용사님의 충고에는 정색하는 판타지 야만인들.
나는 1회차 시절부터 무식한 그들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이런 결과는 시작할 때부터 예상한바.
“점수는 지금부터 모으면 그만.”
몬스터 토벌.
우매한 판타지 원주민들도 인정하는 업적이다.
보스K에게 받은 임무 중 도시 내부에서 하는 일들은 다 끝났고, 이제 외부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현상금 임무만 남았다.
내 전문이기도 했다.
“우선, 다이어트 중인 악룡부터 잡아볼까.”
과장 살짝 보태서 뼈와 가죽뿐이라 통째로 먹어도 칼로리가 적은 요정 종족은,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한 인간을 대체하는 다이어트 식품으로 식인종 몬스터들에게 인기가 많다.
비실비실한 요정만 먹는 몬스터.
이것만 보면, 약한 사냥감을 노리는 변변찮은 몬스터 같지만, 만만하게 생각하고 덤볐다가는 훌륭한 별식이 돼버리는 수가 있다.
우리가 다이어트 할 때를 생각해보라.
집에 먹을 게 없어서 굶는 건 아니잖은가?
몬스터도 똑같다.
주위에 천적이 없을 만큼 지나치게 강해서 폭식했고, 그래서 다이어트를 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니까.
그 말은 즉,
요정만 먹는 몬스터는 매우 강하다.
특히, 다이어트를 빡세게 진행 중일 때가 위험하다.
다이어트로 신경이 날카로운 사람 앞에 통닭을 내밀면 어떻게 되겠는가?
“Goooooool…!”
굉장히 열 받을 것이다.
그리고 눈앞의 먹음직스러운 통닭을 섭취하기 위해 평소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걸신(乞神)들렸다고 할까!
신나게 먹은 직후에 후회하겠지만.
“너무 강해! 5명이 아니라 적어도 20명은 필요….”
“이, 이건 도저히 무리야! 후퇴!”
“다이어트 중이라는 용이 엄청 튼실하잖아!”
“저리 가! 나는 먹을 게 없- 꺄아아?!”
이곳은 요정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구릉.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황금색 용이랑 5명의 인간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승패는 이미 갈린 상태였다.
시비를 건 인간들의 깨끗한 복장으로 보아선,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다이어트 중인 황금색 용은 대단히 컸다.
친애하는 망룡왕 뇌비우스의 손바닥이랑 덩치가 비슷했다.
그 전투력은?
“Gooooo-!”
하늘 높이 비상한 놈의 쫙 벌어진 주둥이에서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광선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용의 숨결.
황금색 용의 속성은 ‘빛’이다.
모든 용 중에서 숨결의 범위가 가장 좁은 대신, 속도와 정확도 면에서 가장 뛰어나다.
“컥-?!”
미리 공격을 예측하고 민첩하게 방패를 들어서 용의 숨결을 막은 남자가 절규를 토했다.
방패를 뚫은 빛이 갑옷마저 관통한 탓.
바로 옆에서 뛰던 미모의 아가씨가 발걸음을 멈추며 절망에 찬 해설을 덧붙였다.
“특별히 주문한 거울 방패가…!”
요정만 먹는 악룡이 황금색 용이란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이 용사들은, 빛 속성의 숨결을 반사해서 막으려 했던 듯했다.
그들의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
능력치도 준수했다.
▷종족: 아크 휴먼
▷레벨: 999+
▷직업: 여신관(미모→치유↑)
▷스킬: 치유SSS 매력SS 체력S 신성S 요리A…
▷상태: 공황, 혼란, 강화, 축복
친절하게 해설해준 여신관 아가씨가 쓰러진 방패 친구를 잽싸게 치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이어트에 질린 악룡은 더욱 빨랐다.
통통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강하한 황금색 용은 사내를 넙죽 물며 낚아챘다.
그리고는,
아그적!
튼튼한 갑주를 입은 사내를 통째로 씹어서 삼켰다.
그동안 다이어트로 스트레스가 심했음을 대변해주는 광경이었다.
용의 위산으로도 녹지 않는 최고급 장비를 삼키면, 치질과 위통으로 한동안 고생하기 때문이다.
상식이 있는 용은 꼼꼼히 벗겨서 먹는다.
그리고 좀 더 고상한 용은 인간을 포함한 그 무엇도 아예 섭취하지 않는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니까.
용에게 식사행위는, 인간의 술과 담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성검 뉴클리온을 뽑으려다가 말았다.
정령들도 포함해서.
“이거,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군. 쑥떡.”
덩치든 나이든 쑥떡이 저 악룡에게 모든 면에서 불리했지만, 원래 애들은 맞으면서 크는 법이다.
내 부름을 받은 녹색 덩어리가 소환됐다.
쑥떡의 조련사인 성녀H는 덤.
“Greeeeee…!”
“Goool-?!”
녹색 용이 힘찬 포효를 터트렸다. 그리고 가로막힌 황금색 용은 분노 대신 당혹감에 휩싸였다.
그 이유는,
“저 녀석, 언제 또 저렇게 컸지…?”
여전히 종족이 ‘헤즐링(새끼용)’인 쑥떡의 덩치가, 엄연한 성체 ‘드래곤’인 악룡보다 머리 하나쯤 더 컸다.
성녀H가 답했다.
“주인님. 기억 안 나세요? 저번에 바베큐파티를 했잖아요.”
“하긴 했다만….”
먹은 고기를 100% 흡수해도 저 덩치는 안 나온다.
아이들의 성장은 정말 불가사의하군.
쾅! 쿵!
하늘에서 녹색과 황금색이 격돌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여전히 순하게 생긴 쑥떡이 일방적으로 얻어맞을 줄 알았는데….
“Gree!”
“Goooool~~?!”
쑥떡의 꼬리치기에 맞은 황금색 용의 대가리가 휙 돌아갔다. 그리고는 맥없이 추락했다.
콰앙-!
“...다이어트로 기력이 떨어진 건가?”
어른이 아기에게 졌다.
다이어트 중인 몬스터는 강하다는 내 생각을 철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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