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152화 (152/430)

 152화

[?회차] 정말 오랜만이야!

“Gooooool~!”

아기에게 졌어도 나이를 헛먹은 게 아니었다.

불리하다고 판단한 황금색 용은 싸우길 포기하고 도망쳤다. 속성이 빛답게 굉장히 빨랐다.

물론, 이것도 상대적이지만.

“Greee~”

녹색 용이 고개를 위로 쳐들며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임마. 쫓아가서 목을 물어뜯어야지, 잘 가라고 인사는 왜 하냐?”

“G, Greeee…?”

“에휴! 위엄 있는 마룡이 되려면 멀었네.”

나는 성검 뉴클리온을 잽싸게 소환했다. 등에는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를 생성했다.

제법 날쌔지만, 지금이라도 추적해서 내가 마무리를-

▷점수: 15304

▷순위: 68

...하려다가 멈췄다.

요정 먹는 마룡을 쫓아낸 것만으로도 점수가 올랐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어떻게든 추적해서 경험치로 바꿨겠지만, 지금은 페스티벌 점수를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잘 올라서 문제였다.

보건 선생이 준 점수를 빼고 보더라도.

페스티벌이 끝나려면 한참 멀었는데, 이러다가 압도적인 1위로 중등교육과정에 끌려가게 생겼다.

“숨만 쉬어도 점수가 오르는 수준인걸….”

그래서 굉장히 곤란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꽤 여유롭게 생각했다. 점수가 높아지면 불법을 저질러서 다시 내리면 된다고.

이게 정상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나는 회귀하면서 ‘생략(skip)’을 경험해봤다.

잠시 필름이 끊긴 사이에 시간이 훌쩍 지나간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여기서도 그러지 말란 법이 없었다.

그러니 미리미리 조심하자!

“저….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휴! C급으로 떨어지는 줄 알았네!”

“맙소사! S급?! 실화냐?!”

가장 성실하게 싸운 방패 용사는 용의 뱃속으로 들어갔지만, 나머지 넷은 그의 희생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내게 감사의 말을 늘어놓다가 무지개색 이름표를 보고는 입을 쫙 벌렸다.

그럴 수밖에.

이 파티의 용사들 이름표는 B급을 의미하는 은색.

상위권 30명 정도가 A급으로 이름표가 황금색이라고 했으니, 이들의 페스티벌 점수 순위는 나랑 엇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고?

나는 지구로 돌아가는 방법 외에는 관심 없다.

“B급 친구들. 수고해.”

나는 파리를 쫓아내듯 손을 휘휘 저었다.

하지만 이 파리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그러면서 내 능력치를 열심히 구경했다.

“종족이 고유에다가 정령…?”

“동행하는 성녀와 용의 스킬을 한 번 봐.”

“헉! Z등급 스킬이 엄청 많잖아!”

“진짜 대박! A급 위에 진짜 천상계네!”

그들의 찬양은 내게 전혀 위로가 안 됐다.

내가 판타지 세계에서 53년을 구르는 동안, 아름다운 고향별 지구에서 문화시민의 삶을 영위하던 자들이니까.

아주 간단한 문제다.

대충 1,000년쯤 전으로 가서 아침마다 황금 요강 위에 쭈그려 앉는 왕이 될래?

세라믹(Ceramics)으로 된 수세식 좌변기와 비데를 쓰는 현대의 문화시민이 될래?

어디 변기뿐일까?

에어컨, 보일러, 냉장고, 컴퓨터, 휴대전화….

위인전이나 역사책에 나오는 그 어떤 위대한 사람보다도 문화시민이 훨씬 안락한 삶을 산다고 확신할 수 있다.

즉, 저들의 찬양은 내게 비아냥처럼 들릴 뿐.

“왜 자꾸 쫓아오는데?”

쑥떡의 등에 타거나 직접 날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면 내가 도망치는 것 같아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B급 파티의 대장으로 보이는 청년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보고 좀 배우려고 합니다. 아! 먼저 소개하는 걸 깜빡했군요! 저희가 제법 유명인사라서 소개를 생략하는 버릇이…. 흠흠. 저는 페스티벌 13위 파티 실버스타(Silver Star)의 리더를 맡은….”

“그렇군. B급 별친구. 3위 파티가 되면 다시 만나자.”

“제 이름은….”

“그것도 포함해서.”

이들이랑 길게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53년 동안 판타지아 세계에 처박혀 있었다는 사실이 들통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잠깐만.

“이봐. B급.”

“제가 B급이 맞긴 한대…. 그 말을 S급 천상계인 1번 씨에게 들으니 대단히 언짢네요….”

“팩토리아라고 알아?”

“팩토리아?”

“태평양에 사는 인간 여자 마술사야. 돈 많다고 은근히 자랑하면서 똑똑한 척은 또 엄청나게 해. 외모는 20대 초반인데, 그게 실제 나이인지는 모르겠네.”

팩토리아의 외모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백인계 미녀였다는 정도?

능력치 보정을 받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는 판타지 세계의 인간 여성은 전반적으로 미모가 출중한 편이니까.

팩토리아 수준의 미녀는 너무 많이 봐서 인상이 흐릿했다.

물론, 또렷하게 기억하는 부류도 있다.

라누벨, 실비아, 아쿠아.

1회차 초창기에 만난 이 3인방은, 세 종족(인간, 요정, 인어)을 대표하는 미녀의 표본으로서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래서 이름도 저절로 외워졌고.

하지만 그 외에는?

“혹시…. 빅토리아 회장을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건 또 누구야?”

“질문은 1번 씨가 하셨습니다만…. 마술사이고 부자에다가 여성. 마술은 애초에 돈이 많고 똑똑한 사람만 할 수 있기에 말씀하신 신상정보는 도움이 안 되지만, 태평양에 사는 유명인은 몇 명 안 되죠. 그 팩토리아란 이름이랑 비슷하기도 하고.”

“맞는 것 같아.”

팩토리아.

그녀의 입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내가 지구에서 무심코 저지른 실수가 있다면, 팩토리아에게 보호를 위탁한 인어에게 내 골렘을 줬다는 것이다.

당시엔 꽤 좋은 거래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크의 양산형 골렘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용사의 영혼이 깃든 그 골렘은, 내가 판타지 세계에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정보는 팩토리아에게도 전해졌을 터.

그리고 그녀가 가진 정보력이라면, 내 가족관계는 기본이고, 내가 지구에서 떠돈 게 아니라 5년 동안 실종됐었다는 사실도 눈치챘을 것이다.

“1번 씨. 어떻게 그리 강한 겁니까?”

B급 잡것들은 끈질기게 쫓아왔다. 이 만남을 살려서 작은 기연이라도 얻겠다는 심상인 듯했다.

“내 질문부터.”

“아! 네. 팩토리아란 분은 전혀 모르겠지만, 빅토리아 회장이라면 A급 용사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며, 유력한 1위 후보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여자 기숙사에서 벌어진 파벌 싸움에서 지고 칩거 중이란 소문이 파다합니다.”

“사족이 기네.”

요점은, 팩토리아도 페스티벌에 참가했다는 거잖아?

“이번에는 제 질문에 답해주세요.”

“질문? 뭐라고 했었지?”

“...어떻게 그리 강하냐고 물었습니다.”

“내 능력치를 봐. 약하게 생겼나.”

강한 게 당연하다.

▶종족: 네츄럴 스피릿

▷레벨: 999+

▷직업: 군주(신하→만능↑)

▷스킬: 몰살MAX 사랑MAX 우정MAX 희망MAX 비행MAX…

▷상태: 성검, 성녀

블랙박스를 활성화하면 봉인해둔 초월영역 스킬까지 더해지면서 능력치가 더욱 화려해지지만, 일반영역 최대치로 스킬을 도배한 현재만으로도 충분했다.

보건 선생이랑 비교하면 턱없이 약하지만.

“어떻게 하면 능력치가….”

“간단해.”

“헉! 그 비법도 가르쳐주시는 겁니까?!”

“간단하거든.”

나는 남들이 3년이면 졸업하는 판타지아 세계에서 53년 동안 머물렀다. 그래서 강한 것이다.

하지만 고작 그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구에서 살던 시절, 딱히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것도 아닌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판타지아 대륙에서 필사적으로 살아왔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바쁜 몸이야. 두 번 말하지 않을 테니, 잘 들어.”

“네!”

B급 잡것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동료들이 웃고 떠들 때, 나는 훈련하고 사냥했다. 남들이 비겁하게 협공할 때, 나는 정정당당하게 홀로 싸웠다. 너희들의 하루를 돌아봐. 하루 중 실질적인 활동 시간은 얼마 안 될걸? 그러다가 힘들면 바로 포기하지. 착각하지 마. 동료의 힘을 빌리는 것도 포기한 거야. 용사에게 사랑과 우정은 필요 없어. 약해지게 만드는 독일 뿐이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1번 씨는 둘 다 MAX인데요…?”

사랑과 우정?

나도 올리고 싶어서 올린 게 아니다.

판타지아 대륙에 있을 때, 정령들에게 온종일 성희롱당했더니 저절로 MAX등급이 됐다.

“이건 내 종족특성 탓.”

“아, 네.”

하지만 B급 잡것들은 내 말을 안 믿는 눈치였다.

내가 경쟁자를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잘못된 정보를 가르쳐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참으로 기가 막혔다.

“믿기 싫으면 됐어.”

그래도 이런 오해가 마냥 나쁜 건 아니었다.

내게서 ‘잘못된 정보’ 외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리라고 판단한 B급 잡것들이 미련 없이 떠났기 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다음 현상금 임무를 수행했다.

내 앞에서 당당히 “작은 게 진리!”라고 외치는 변태를 단호하게 처단했다.

아주 철저하게.

아동성범죄자로 발전할 가능성이 다분한 놈이기 때문이다.

그 변태는 요정 여성들의 시신을 조종했다.

굉장히 굴욕적인 옷을 입힌 채.

놈이 자랑하듯 말하길,

전설의 용사처럼 아리따운 여인들로 구성된 하렘 파티를 꾸리는 게 꿈이라고 한다.

미녀라면 시체라도 상관없다는 걸까?

그 용사의 노후가 어떻게 됐는지 안다면 저런 허황된 꿈을 꾸지 않았을 텐데….

“재능 낭비네.”

비실비실한 요정 대신 강력한 몬스터나 영웅의 시신을 조종했다면 좋은 대결이 됐을 것이다.

내게 핀잔을 들은 변태가 크게 웃으며 받아쳤다.

“하하! 여자를 잘 모르는구나!”

“...내가?”

나는 호주머니에서 여자들을 줄줄이 소환했다.

성녀H, 정령C, 정령D.

“이, 이럴 수가…!”

그녀들을 본 변태는 할 말을 잃고 주저앉았다.

그는, 움직일 때마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두 천사 사이에 선 퇴마사요정의 가파른 절벽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변태에게 주목받은 정령C가 말했다.

“저기, 주인님? 제가 처리해도 될까요?”

“마음대로.”

그 변태는 악마가 아니었지만, 심기가 불편해진 이 요정은 이단심문관처럼 철저하게 응징했다.

취향은 존중?

대세가 늘 승리하는 법이다.

*

요정 도시에서 받은 임무를 전부 끝낸 나는 기숙사로 귀환했다.

도시나 마을의 여관에서 자도 될 줄 알았는데, 관리자 권한을 가진 시장의 관사가 정말 특별한 경우였다.

모든 용사는 기숙사에서 자게 되어있었다.

기숙사에 미리 “이런 이유로 오늘은 밖에서 잔다.”라고 허가받지 않으면 벌점은 기본, 급수에도 불이익이 적용된다.

S급에서 A급 용사로 떨어지기 싫었던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S급과 A급의 숙소 질은 그만큼 차이가 컸으니까.

“참 누추한 곳이네.”

나는 A급 숙소를 쓱 둘러보며 감상을 피력했다.

“한밤중에 숙녀의 방에 무단침입해서 가장 먼저 한다는 말이…. 참으로 당신에게 어울리네요, 강한수 씨.”

곤히 잠든 줄 알았던 방 주인이 게슴츠레 눈을 뜨며 답했다.

“오랜만이야, 팩토리아.”

“빅토리아예요. 역시, 그 대폭발 속에서도 살아계셨군요….”

속옷까지 벗고 자는 취향인가?

덮고 있던 이불로 가슴께를 가린 미녀의 어깨와 목에는 아무것도 걸쳐져 있지 않았다.

“오랜만이야, 마술사A.”

“당신 마음대로 불러도 좋으니, 그 먼지 같은 호칭만은 제발 참아주세요! 영문도 모른 채 세상에서 조퇴할 것 같으니까….”

“그거야 내가 알 바 아니고.”

“오랜만에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하아! 그런데 강한수 씨. 여긴 어떻게 들어오신 거죠?”

이 여자가 아직 잠에서 덜 깬 건가?

대단히 하찮은 질문을 했다.

“무단으로 들어왔지. 바보니?”

“그쯤은 저도 알아요! 아니, 바보임을 안다는 뜻이 아니라! 그러니 그 측은한 눈빛은 거둬주세요! 제 말은, 어떻게 허가도 받지 않은 신사가 걸리지 않고 여자 기숙사에 들어올 수 있었느냐는 거죠.”

“안 걸리려고 이름표를 떼고 왔잖아?”

팩토리아는 아까부터 당연한 질문만 반복했다.

이 여자가 똑똑하다고 믿는 용사들은 대체 얼마나 멍청하다는 걸까?

상상이 가질 않았다.

“기숙사의 수많은 함정과 감시망은요?”

“그런 게 있었나?”

너무 조잡해서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이걸 노린 함정이라면 대단히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됐어요. 그래서 무슨 일이죠? 설마, 저랑 아기라도 만들고 싶어서?”

“끔찍한 소리는 작작 해라.”

나는 정색하며 답했다.

“그러면 이 시간에 몰래 무슨 일로…?”

“지구의 정보가 필요해. 그리고 너에게 줄 선물이 있어.”

나는 블랙박스 S등급 효과로 만든 신검에 이은 두 번째 시제품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판타지아 세계와 지구를 이어줄 매개체.

보험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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