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155화 (155/430)

 155화

[?회차] 운수 좋은 날

온라인게임에서도 그렇다.

불법 프로그램을 쓰면 ‘너 님’의 계정을 가만 안 두겠다고, 게임 운영자가 공지사항으로 소비자를 협박한다.

판매자의 정당한 요구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불법으로 지정한 그 프로그램이 게임에 영향을 줄 수 없도록 운영자가 알아서 조치했어야 했다.

그걸 못하니 차선으로 협박을….

블랙박스를 불법으로 지정한 이유가 있었다.

이 교육시스템을 구축한 판타지 신은 블랙박스를 잡아낼 능력이 없었다. 그것도 굉장히 심각한 수준으로.

내 직업이 마왕으로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페도나르로 오인할 정도니 말 다 했다.

나는 서둘러 블랙박스를 비활성화했다.

하지만 내 머리 위에서 삿대질하는 화살표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이벤트를 끝내기 위해 죽어줄 순 없잖은가?

블랙박스를 비활성화해도 나는 강하다.

가장 최근에 초월영역에 접어든 스킬 ‘정령’은 능력치에 표시되지 않지만, 종족 ‘네츄럴 스피릿’이랑 통합됐다.

여기서 재미난 사실.

이 스킬은 이제 한계돌파를 할 수 없게 됐지만, 정령들이 내 몸을 성희롱할 때마다 숙련도가 쌓인다.

다른 스킬은?

땅, 불, 바람, 물, 마음, 빛(신성), 어둠(마기).

7가지 기운을 뭉쳐서 만든 모래 인형인 ‘초대형 강한수’의 경험이 고스란히 내 영혼에 녹아있다.

그것은 내 정체성을 결정해줬다.

너는 ‘인간’이라고.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한 고등생물.

“페도나르가 아닌데?”

“헉! 저 녀석은 유일한 S급이라던….”

“하지만 화살표가 가리키잖아.”

“역시! S급은 이벤트를 위해 고안된 가짜였던 거야!”

누가 그 말을 했을까.

시기와 질투로 눈이 먼 용사들은 상상력을 기반으로 자기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S급.

이번 이벤트의 주역인 마왕 페도나르를 자연스럽게 기숙사 근처에 배치하기 위한 설정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기가 막혀서 웃음밖에 안 나왔다.

마왕 페도나르와 나는 외모에서부터 분위기까지 모든 게 다르다. 블랙박스를 비활성화한 현재는 종족과 직업도….

그런데 동일인물이라고 우긴다.

시스템 오류를 의심하는 것보다, ‘S급은 실존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질투가 불러온 참극.

“...다양성이 늘 긍정적인 건 아니지.”

평균이란,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공존하는 법.

그리고 판타지 신이 용사를 뽑는 기준은, 아름다운 녹색별 지구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부적응자들이다.

이용하기 쉬우니까.

시스템 착오로 판타지 세계에 납치된 나 빼고, 전부 평균 미만의 마이너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저런 판단을 내린 거겠지.

쿠구구구-

마약중독자처럼 부지런히 내 몸을 만지작거리며 행복을 만끽 중이던 정령들이 방해받은 불쾌감을 표시했다.

“정신 차려! 나야! 자연의 친구인- 꾸엑?!”

“다들 조심해! 정령들이 미쳐 날뛴다!”

“왜 나를 공격하는 거야! 우리의 우정은- 꺄흑?!”

“내 정령 친화력이 떨어지고 있어?!”

선량한 용사님을 마왕으로 오해한 멍청이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특히, 5대 원소를 기반으로 삼았던 주술사와 마법사들은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정령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5대 원소는 나를 해치지 않았다. 역으로 보호하면서 주위의 방해꾼들을 배제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최초의 정령이 마음만 먹으면, 한순간에 마법사와 주술사는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뜻이니까.

지금이 바로 그랬다.

정령들에게 성희롱당하며 사랑받는 나를 공격했다는 이유만으로 졸업생의 20%가 무력화됐다.

나머지는?

촤악-!

앞을 막아서는 정령들을 가차 없이 베며, 내게 일직선으로 돌격해오는 자들이 보였다.

누가 유행을 선도했는지 모르지만, 전설의 용사가 다루는 대표적인 무기는 ‘검’이었다.

바로 저들처럼.

그래도 나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주문을 읊었다.

“혼돈으로 파괴된 망각의 별에서 탄생한 마지막 검이여. 공허한 사랑과 우정을 베어버릴 꿈과 희망이여. 그 거룩하고도 거룩한 이름을 기억하는 계승자가 이렇게 찬미하노니, 태초부터 내려온 맹약에 따라 그 전설을 입증하라. 성검 뉴클리온.”

폭력적인 스승이었던 알렉스에게 잘못 배운 탓에 내 주력은 1회차부터 쭉 ‘검’보다 ‘손’에 가까웠다.

이 손은, 온종일 책상에 앉아서 밤새 컴퓨터 게임- 크흠! 공부하느라 허리와 목이 자주 뻐근했던 내 의학지식과 알렉스의 그릇된 가르침이 합쳐져서 탄생했다.

하지만 내가 마왕이 아닌 용사란 사실을 증명하는데 이것보다 확실한 건 없었다.

성검(聖劍).

그리고 ‘성검 없는 용사’는 용사가 아니다.

성녀A의 신랄한 표현을 빌리자면, 약한 자는 용사로 불릴 자격이 없다.

뿅-!

나는 소환된 성검을 오른손에 쥐었다.

성검 뉴클리온은 누가 보더라도 ‘성스러운 검’이었다. 내가 용사라는 확실한 증거.

평범한 칼을 쥔 졸업생들이랑 격이 다르다.

“마왕이 어째서 성검을-?!”

“저건 가짜다! 마왕이 성검이라니? 이상하잖아!”

“맞아! 저건 가짜야! 속지 마.”

하지만 선동과 날조가 만연한 세상에서 진실은 외면받았다.

선량한 용사님의 섬세한 마음에 상처가….

토닥토닥.

“...망할 마음의 정령아. 내 민감한 거길 두드리면서 위로하는 척하지 말아 줄래? 모르겠다는 시늉도 하지 마. 숨만 쉬면 귀여운 척하는 어떤 계집애가 자꾸 떠오르니까!”

내가 바지 속에서 꼼지락대는 마음의 정령을 내려다보며 꾸짖는 사이, 검을 쥔 졸업생들이 지척에 도달했다.

참 오래 걸리는군.

기다리다가 잠드는 줄 알았다.

촤아악-

쫘악-

성검 뉴클리온으로 예쁘게 베어줬다. 목디스크가 잘 걸리는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를 정확하게.

그렇게 3명쯤 베었을까?

목 없는 시체들이 너무 개성 없는 것 같아서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로 절단 부위를 바꿨다.

“오! 이제 좀 누가 누군지 구별이 되네!”

상체에는 “이건 말도 안 돼!”라는 표정의 얼굴들이 달려 있고, 하체의 절단면에는 내장과 오늘 먹은 것들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 하나.

“경험치가 묘한걸…?”

나는 경험치 흡수율 100%를 자랑한다.

피자 한 조각처럼 분할된 판타지아 원주민들의 영혼은 아무리 수집해도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졸업생들은 다르다.

엄연한 피자 한 판!

그런데도 영혼이 수집되지 않았다.

“사, 살려줘?!”

“미안해! 잘못했어! 용서를- 컥?!”

“죽기 싫어! C급으로 떨어질 순…. 꾸르륵.”

“오지 마! 저리 가! 꺅~!”

상대가 전혀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줄행랑치는 졸업생들의 뒤를 친절하게 밟으면서 좀 더 실험해봤다.

경험치 일부로 함께 흡수되어야 할 그들의 영혼이 어디로 빠져나가는지를.

“흐음~ 이상한데?”

영혼이 빠져나가는 낌새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영혼을 내 가슴속에 간직할 수 없었다. 추녀B가 999레벨로 부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이런 현상을 전에도 봤었다.

라누벨.

둘의 공통점이 뭘까?

연구를 위해 좀 더 베어보기로 했다. 한두 명만 더….

*

“강한수 졸업생님.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무엇부터 들어보실래요?”

결국에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온 나는, S급 하녀 엘리스가 끓여주는 홍차를 마시며 여유를 만끽했다.

뜨거운 목욕 후의 홍차 한 잔.

낭만으로 가슴이 충만해지는 기분이다.

“나쁜 소식부터.”

어릴 적, 어머니의 테니스라켓이 무서웠던 나는 편식은 꿈도 못 꿨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싫은 것부터 미리 먹는 식습관이었다.

이건 내 삶에 전반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야만적인 판타지 세계에서 53년 동안 자유분방하게 생활하며 해이해진 감이 있긴 하지만, 이처럼 선택해야 할 때는 망설이지 않고 ‘나쁜 것’부터 고른다.

“시스템이 안정화될 때까지 기숙사에서 나가실 수 없어요.”

“얼마나 걸리는데?”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마왕 페도나르를 토벌하는 이벤트는 5일이란 제한시간이 있으니, 늦어져도 5일 안에 풀릴 겁니다.”

지금도 내 머리 위에서 화살표가 삿대질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기숙사 4층.

S급 미만의 용사는 출입할 수 없다. 쓰러트려야 할 마왕이 있더라도 그건 마찬가지. 마왕 토벌보다 기숙사 규칙이 더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이벤트는 결국 오락이란 거겠지.

정말로 마왕이 침공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감금조치는 나를 위한 게 아니다.

불나방처럼 덤벼드는 졸업생들의 꿈과 희망을 짓밟지 않기 위해 내려진 임시방편이다.

정당방위였던 나로선 참으로 억울한 꼴을 당한 셈!

“5일이라….”

그래도 길지 않아서 다행이다.

앞으로 남은 파스티벌 기간은 약 20개월. 그중 5일 까먹는 건 정말 티도 안 나는 수준이다.

느긋하게 5위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점수: 11360

▷순위: 84

굉장히 순조롭다.

명백한 정당방위이긴 했지만, 정령들이 요란하게 날뛰면서 기숙사 시설과 도시의 피해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점수가 내려갔다. 1위를 찍을 만큼 높은 점수를 받아선 안 되는 나로선 만족스러운 결과였던 셈.

“이번에는 좋은 일입니다.”

“말해봐.”

“이미 대략은 알고 계신 듯하기에 숨김없이 말씀드릴게요. 이번 사태는 교육시스템이 강한수 졸업생님을 마왕으로 착각하며 발생한 버그입니다. 페스티벌 1주년 기념행사의 트리거는, 마왕이 기숙사 근처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발동하게 되어있거든요.”

“아주 자세히 아네?”

“S급 하녀니까요.”

뭐, 좋아. 일단은 그런 거로 해두자구!

“그래서, 좋은 일이 뭔데?”

“보상입니다. 뇌물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아무리 버그였다고 해도, 졸업생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학살당할 줄은 몰랐으니까요. 현재, 페스티벌 참가자 중에서 A급은 10명도 안 남았습니다. A급 숙소를 B급 2인실로 개조해야 할 만큼 B급이 붐비는 상황입니다. C급은 더 말할 것도 없죠.”

“수습될 때까지 얌전히 있어 달라는 거군.”

“정확합니다.”

“이제 사족은 됐고, 보상으로 뭘 줄 건지나 말해봐.”

좋은 거라면 타협할 의향이 있다.

“강한수 졸업생님이 5일 동안 편안하게 생활하실 수 있도록 5층 MAX급 숙소가 임시로 개방됩니다. 기숙사 5층을 혼자서 사용하기에 적어도 답답하진 않으실 거예요.”

“5층을 전부? 그건 좀 대박인걸?”

어느 황제의 방보다도 넓을 것 같다.

“이따가 직접 보시게 되겠지만, 간략하게 미리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인어가 사는 수영장과 어항, 요정이 관리하는 공중정원과 마구간, 난쟁이가 보조하는 대장간과 도서관, 정령이 노는 목욕탕과 사우나, 천사가 요리하는 식당과 마사지실, 악마랑 싸우는 수련실과 실험실로 구성되어 있어요.”

“너는?”

“그곳의 책임자입니다.”

“과연…. 그냥 넓기만 한 여기보다 구성이 알차네.”

“써보시면 5일이 짧게 느껴지실 겁니다.”

“기대할게.”

유모의 젖을 뗄 때쯤에 북대륙의 황제에 올라서 호의호식해온 나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궁금했다.

“아! 그리고 이거.”

“반지?”

아니었다. 굉장히 얇고 투명한 막이 링 중앙에 쳐져 있었다.

내 현대지식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것은….

“행운의 반지입니다. 제공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걸 끼고 있으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절대 안 온다고 합니다.”

“...그렇군.”

보건 선생님. 당신은 대체….

“강한수 졸업생님. 만족하시기엔 아직 일러요. 보상이 또 있거든요.”

“또? 뭔데?”

“점수를 확인해주세요.”

“...점수?”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한 나는 서둘러 내 점수를 보았다.

▷점수: 111360

▷순위: 1

점수와 순위, 둘 다 자릿수가 바뀌어 있었다. 너무 기분 좋아서 온몸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좋은 숙소, 좋은 반지, 좋은 점수.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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