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159화 (159/430)

 159화

[?회차] 순위는 거짓말하지 않는

...어떻게 배웠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려면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다.

노래에 맞춰서 춤추기나 발가락 하나로 슬라임 돌리기 같은 괴상한 일만 시키길 3일.

나는 마왕의 신기술을 익히는 데 성공했다.

“이걸 이렇게 배우네!”

이런 엽기적인 교육법이 통할 줄이야!

“...놀랍군. 인간의 가능성은 늘 놀라워. 정령인데도 인간의 종족특성까지 고스란히 갖고 있다는 점도. 무한한 수명과 무한한 가능성. 일반적인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대가로 가능성을 잃기 마련이거늘.”

마왕님이 기가 찬다는 얼굴로 내 작품을 돌아봤다.

뻥 뚫린 숙소 바닥.

그럭저럭 멀쩡했던 훈련장은 내가 수련하는 과정에서 벌집이 됐다.

그동안 하인들은 파괴된 수영장 옆에 인어들이 머무를 간이수영장을 만들고, 물바다가 된 4층을 청소했다.

내가 MAX급 숙소를 임대하는 날은 총 5일이었다.

하지만 찬밥 신세가 된 마왕 페도나르랑 놀아줄 인력이 필요해서 퇴실 날짜가 무한정 연기됐다.

원래는 교직원 일동이 해야 할 일.

아니, 용사들에게 토벌되어 죽으면 시체나 치우러 올 예정이었던 그들은, 팔팔한 마왕을 만나길 꺼리는 듯했다.

그리하여 엄한 나에게 떠넘겼다.

“요령만 알면.”

나는 감탄하는 마왕님께 겸손을 담아서 대답했다.

빈말도 아니다.

애초에 나는 경험치를 희생해서 힘을 증폭할 줄 알았다. 그 경험치가 영혼(수명)으로 바뀐 것뿐.

그런데 여기서 또 재미난 결과가 나왔다.

▷종류: 종족

▶명칭: 네츄럴 스피릿

▶등급: 고유

▶고유1: 경험치를 제어한다.

▶고유2: 정령으로 임명한다.

▶고유3: ?로 응징한다.

▷특성1: 우주의 편애를 받는다.

▷특성2: 자연의 가호를 받는다.

▷특성3: 우주의 기운을 받는다.

▷종족1: 친화력이 우수하다.

▷종족2: 하나의 속성에 특화한다.

내 성장이 종족에 반영됐다.

모자이크가 아닌 물음표로 뜬 이유는, 능력치를 제작한 판타지 신과 쏘시아도 이것을 뭐라고 정의하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이걸 이렇게 부른다.

암흑물질(Dark matter)

평범한 물질처럼 전파와 적외선, 자외선, 방사선으로는 관측이 안 되고, 오직 중력으로만 ‘있다!’라고 확신하는 물질.

하지만 우주의 27%를 차지할 만큼 방대한 자원이기에 결코 무시하면 안 된다.

마왕도 암흑물질 속에서 태어났다.

그렇기에 친숙하고 활용할 생각을 한 거겠지만.

마왕님이 강조하듯 말했다.

벌써 저 말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용사여. 암흑물질은 행성 규모의 무거운 질량에서 발생하는 중력이 공간을 굴절시킬 때만 영향을 받을 만큼 쉽지 않은 힘이다. 짐은 중력 대신 무한한 생명의 무게로 암흑물질을 살짝 민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주 살짝. 다룰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무한하다는 의미는, 소모되는 양보다 회복되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이 세상에 진정으로 영원한 건 없다.”

“그만 좀 이야기하십쇼.”

“드디어 시집갈 마음이 생긴 딸아이에게 원망 듣고 싶지 않아서 짐도 나름 필사적인 것이다.”

“거참….”

그 비겁한 가슴을 가진 악마가 내게 청혼한 적은 없다.

우리가 알몸으로 뒤엉켜서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본 마왕이 멋대로 오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멋대로 착각해준 덕분에 귀중한 정보와 기술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생명의 무게라….”

암흑물질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빛마저 투과하기에 우리가 보지 못할 뿐.

내 손에서 미끄러진 성검이 거슬리는 요정을 찌르는 행운만큼이나 그 존재가 불분명하다.

하지만 엄연히 우리 주위에 늘 존재한다.

우주의 3할을 차지할 만큼 방대한 물질이 은하계 구석에 몰려 있을 리 없잖은가?

우리는 매일 호흡하면서도 질소와 산소를 볼 수 없다. 과학적으로 존재와 구성성분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계속 ‘바람’이었다.

5대 원소로 불리는 정령들의 명칭.

이것도 잘못된 표현이다.

땅의 정령 = 고체의 정령

불의 정령 = 전자기파의 정령

바람의 정령= 기체의 정령

물의 정령 = 액체의 정령

마음의 정령 = 기록의 정령

엄밀히 따지면 이렇다. 무식한 판타지 야만인들이 정령들을 대단히 단순하게 구분해놓은 것뿐.

정령은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다.

5대 원소도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시절에나 통용되는 표현법이다.

“과학을 배운 지구 출신이라서 이해가 빠르군. 암흑물질을 설명하는 단계에서부터 늘 막혀서 곤란했거늘.”

“음? 예전에도 누군가에게 가르쳐주려고 했었습니까?”

“물론이다. 안 그랬다면 아무리 사위라고 해도 이리 쉽게 가르쳐줬을 리 없잖은가? 조금 잔혹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나는 이 기교를 배운 충성스러운 부하들을 희생해서 역전할 생각도 했었다. 암흑물질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좌절했지만.”

“그렇군.”

대단한 비밀 같은 게 아니었다.

제대로 이해하거나 활용한 자가 없었을 뿐.

그렇게 한탄 섞인 넋두리를 늘어놓던 마왕님께서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셨다.

“뭡니까?”

“어째서 그대는 아직 살아있나?”

“꼭 죽으라는 말투로군요! 불쾌합니다! 당장 사과하세요!”

“험험! 누가 죽으라고 했나? 의미 그대로의 순수한 질문이야. 위력이 약해지긴 했지만, 이 기술을 연발로 쏘고도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 거지? 그건 짐조차 불가능해.”

“훌륭한 스승을 둔 덕분이지요.”

“스승…! 도대체 어떤 자이기에 짐조차 아직 다 해명하지 못한 암흑물질에 이리 정통(精通)하단 말인가.”

“아주 위대한 분이시죠!”

마스터 몰랑.

알면 알수록 무섭고 위대한 분!

암흑물질은 중력에만 영향을 받는다.

나는 이 사실을 SF소설과 과학잡지를 통해서 배웠고,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마왕님은 우연히 관측한 경험으로 학습했다.

하지만 틀렸다.

마스터 몰랑의 율동도 암흑물질에 간섭한다.

물론, 평상시의 마스터 몰랑은 아니다. 항상 몰랑거리시는데, 그럴 때마다 암흑물질이 날뛰면 판타지아 대륙은 진즉 두 쪽이 났을 테니까.

나는 그 미세한 변화를 예전에 관측했다.

귀여운 척하는 라누벨이 마스터 몰랑을 귀찮게 할 때, 인내심의 한계에 봉착한 스승께서 울컥하신 적이 있었다.

라누벨을 힘껏 깨무셨다.

몰랑몰랑한 슬라임의 몸으로 어떻게 깨무셨는지 쭉 수수께끼였는데, 마왕의 설명을 듣다가 번뜩 떠올랐다.

그리고 그 시도는 대단히 성공적.

“거참! 짐은 이 기교의 완벽한 이론을 세운 날부터 익히는 데만 700년이 걸렸거늘. 그대는 7일 만에 끝내는군.”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누구든 가능합니다.”

나는 겸허하게 대답했다.

아니, 이건 사실이다. 강한수가 지구에 사는 평범한 시민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아니까.

지크 같은 지구의 사회부적응자였다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판타지 세계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도 아니다.

내 1회차를 돌아보면 알 수 있다.

넘어져도 아프다고 요란 떨고, 알렉스의 위협에 겁먹어서 온갖 추태를 다 부렸다.

물론,

내가 성공했다는 것 또한 안다.

옛말에, 산에 호랑이가 없으면 여우가 왕 행세한다고 하잖는가?

50점 평균인 내가 20점 미만의 사회부적응자보다 판타지 세계에서 승승장구하는 건 당연한 거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했다.

지구의 사회부적응자가 판타지 세계로 넘어와서 힘을 좀 얻었다고 본질이 달라질까?

물론, 처음에는 그럭저럭 통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서 신분세탁 하고 남들에게 없는 특별한 힘도 생겼으니, 새롭게 시작한다는 꿈과 희망으로 넘쳐나겠지.

하지만 한때일 뿐이다.

“상당히 신랄한 평가시네요. 나름대로 재능이 있다고 판단돼서 뽑아온 인재들인데.”

내 생각을 또 읽은 엘리스가 툴툴거렸다.

자기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온 뒤, 그녀는 꽤 솔직하게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교생 후보생.

교사는커녕 아직 교생조차 아니다.

자격을 따내려고 꽃다운 나이에 하녀가 돼서….

“아! 오해하진 마세요. 강한수 생도님이랑 잔 거는 사심이에요. 아는 언니에게 자랑하려고.”

“그만 좀 읽어.”

“그 점은 조금 죄송하지만, 남이 말하면 싫어도 들리는 거랑 비슷합니다. 못 들은 척할 순 있지만요.”

“그건 더 악질이네!”

하여간 오늘로 괴상한 수련도 끝났다.

나는 마왕님 같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서 그대로 따라 할 순 없어서 하이브리드(hybrid)로 갔다.

마왕 페도나르는 중력 대신 생명의 무게로.

나는 중력 대신 몰랑 파동으로!

위력을 포기하는 대신, 영혼의 부담감과 후유증을 줄이고 빠른 연사력과 지속성을 확보했다.

꽤 마음에 드는 성과다.

“사위. 어딜 가는가?”

숙소 현관문으로 향하는 내게 마왕님이 질문했다.

이분은 페스티벌이 끝날 때까지 여기서 빈대처럼 쭉 생활할 작정인 듯했다.

그의 옆에는 훈련장에서 풀려난 악마 근위병도 있었다.

복장은 알몸 위에 프릴 달린 하얀색 하녀용 앞치마 하나.

엘리스의 악의가 느껴졌다.

정작 당사자는 “마왕님을 지키지 못한 몸, 굴욕을 받는 게 당연하다.”라면서 전혀 굴욕적으로 느끼지 않는 모양이지만….

그녀는 마왕님의 개인 하녀로 전직했다.

“슬슬 움직여야지요. 나를 마왕으로 오인하고 삿대질하던 화살표가 사라졌고 약속한 기간도 끝났으니, 원한을 갚으러 갑니다.”

“원한? 그대에게?”

“저는 원한 사면 안 됩니까?”

“아니, 마왕보다 더 마왕 같은 그대에게 적대하고도 아직 살아있는 게 신기해서 말이야.”

S급 용사님에게 마왕에 어울린다니!

대단히 실례되는 발언이다.

아무튼,

“그럴 리가요. 죽였는데 살아났습니다.”

“...살아났기 때문에 또 죽이겠다는 거군. 모든 마(魔)의 정점인 짐이 할 말은 아니지만, 그 정도면 원한을 풀고 잊는 게 어떤가?”

“그때는 정당방위였고요.”

나는 현관문을 열고 출입구를 나서자마자 발을 굴렀다.

쾅-!

시스템으로 보호받는 단단한 바닥이 파괴됐다.

“아…. 강한수 졸업생님. 뒷수습해야 하는 저희도 조금만 신경 써주세요…. 일이 줄긴커녕 점점 늘어난다….”

한숨 섞인 엘리스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지만, 기분 탓일 것이다.

“배웠으면 바로 써먹어야지.”

이론보다 실전이다.

책으로 배운 지식은 공허하다.

동굴에 처박혀서 수련만 한 주제에 가본 적도 없는 우주를 논하면서 깨달음을 운운하는 야만인만큼이나.

손바닥으로 가려지는 태양이 실제로는 얼마나 큰지, 밤하늘의 별빛이 얼마나 먼 거리와 시간을 여행해서 지구로 도달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아.”

특출나지 않은 평균적인 재능을 가졌기에 노력해야 한다. 노력이 귀찮다면 실습이라도 꼬박꼬박해야 한다.

바로 지금처럼.

콰앙-!

나는 그 기세로 4층 바닥도 뚫고 3층까지 수직으로 내려갔다.

“뭐, 뭐얏?!”

“갑자기 무슨 일이래!”

“허걱?!”

“천장이 무너졌다!”

나를 발견한 A급 용사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자동반사처럼 “마왕이다!”라고 외치는 입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내가 더 빨랐다.

풍! 풍! 풍! 풍!

굉장히 특이한 충돌음이 들렸다.

마스터 몰랑에게 배운 몰랑몰랑한 파동이 깃든 손을 가볍게 휘저으면서 몰랑몰랑한 느낌을 준 것이다.

더욱 쉽게 표현하면?

암흑물질을 툭 건드렸다.

하지만 결과까지 가벼운 건 아니었다.

우주의 27%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은 고르게 분포되어있지 않다. 그러나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걸 움직이면?

볼링핀을 쓰러트리기 위해 볼링공을 굴린다.

이때 사람들은 멋진 자세로 스핀(spin)을 주는 등의 기교로 스트라이크를 노린다.

그러나 나는 볼링장을 흔들었다.

볼링장이 있는 건물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지만, 볼링핀을 쓰러트릴 정도는 된다.

“앜……!”

나를 발견한 행운아는 총 넷이었는데. 셋은 입도 뻥긋 못 하고 상체가 소멸. 한 명은 단말마를 지르는 데 성공했다.

복도를 청소 중인 하녀는 무시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S급 용사님.”

“흠! 좋은 아침이야. 예쁜 A급 하녀 아가씨!”

...분명히 그러려고 했는데, 살갑게 굴어서 어쩔 수 없이 나도 인사했다.

그렇지! 이게 정상이지!

S급 용사님에게 마왕이라니. 무례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내가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니다.

▷점수: 114760

▷순위: 1

점수와 순위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숙소에 틀어박혀서 숨만 쉬는데도 점수가 쌓인다는 건, 내가 무심결에 용사다운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

이런 S급 용사님을 마왕이라고 외치는 졸업생들은 시기와 질투에 눈이 먼 사회부적응자들이다.

애정결핍이 낳은 비틀린 종자들.

7일 전, 나는 저들에게 마왕으로 몰려서 방어하기 급급했다.

그래서 척추도 이상한 부위를 부러트리는 등의 자잘한 실수를 많이 했고, 여린 내 마음에도 큰 상처가 됐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끝.

쌓인 원한을 갚을 복수의 때가 됐다. 그들의 비열한 협공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우리라!

“오! 점수가 내려갔네.”

그런데 점수가 굉장히 짰다. 2위가 되려면 부지런히 복수해야 할 것 같다.

해가 지기 전에 여자 기숙사까지 순회하려면 쉴 틈이 없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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