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회차] 천사의 도시
망룡왕 뇌비우스는 돌연변이 혹은 우량종에 속했다.
산맥이랑 맞먹던 황혼기의 덩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젊은 시절의 뇌비우스도 일반적인 용보다는 압도적으로 컸다.
“Greee~”
“Chaoooo…!”
“G, Gre….”
원래의 용 형태로 돌아간 쑥떡이 뇌비우스에게 친한 척하다가 바로 찌그러졌다.
뇌비우스 옆에 서니 드디어 헤츨링처럼 보였다.
“가자, 친구. 후반전을 시작하러.”
“Chaooo!”
내가 천사를 표적으로 삼은 이유. 단순히 복리로 계산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전에 교생 아가씨에게 들은 정보에 따르면, 중등교육과정은 천사를 상대하는 것이다.
그들이 진정으로 올바른지 의구심을 품고, 필요하다면 ’선’이라고 믿었던 천사를 상대하고, 더 나아가 살해까지 한다.
그것이 중등교육과정 내용이다.
여기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학교에서도 성적 좋은 모범생들은 선행학습을 했다. 남들이 초등학교 문제를 풀 때, 그들은 중학교 교과서를 봤다.
그 방식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선행학습도 폭넓게 보면 예습이다.
그래서,
<요약>
선행학습 = 좋은 성적
중등교육과정 = 천사
<결론>
좋은 성적 = 천사
아주 간단한 공식이 나왔다!
성적순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외모순으로 뽑은 두 짐꾼은 안 그래도 점수와 순위가 낮았다. 이걸 단시간에 끌어올리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물론, 천천히 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내가 2년 내내 이들만 붙잡고 있을 순 없잖은가? 내게도 사생활이 있고, 지구로 가기 전에 준비할 것들이 있다.
“친구. 장소는 기억하지?”
“Chaooo!”
친애하는 동료 뇌비우스가 믿음직스럽게 답했다.
나는 천사들이 사는 곳의 위치를 모른다. 예전에 가본 적이 있긴 하지만, 이정표도 없는 허공에 뜬 도시를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그리고 하늘은 면적이 훨씬 넓다.
구의 겉넓이 공식은,
A=4πr^2
4π(3.14) 곱하기 반지름의 제곱이다.
페스티벌 행성의 반지름을 R이라고 가정했을 때, 허공에 뜬 천사들의 도시를 찾는 수색 범위는 ‘4π(R+α)*(R+α)’가 된다.
하물며 하늘은 2차원이 아닌 3차원.
더욱 난해해진다.
내가 못 찾는 이유는 또 있다.
천사의 도시들은 인공위성이랑 다른 탓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인공위성은 지구를 빙글빙글 돌긴 하지만, 추진제를 이용해서 의도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언제나 같은 위치에 있다.
대한민국 서울 위에 띄웠으면 항상 대한민국 서울 위, 미국 워싱턴 위면 미국 워싱턴, 러시아 모스크바면 러시아 모스크바….
이런 식이다.
하지만 천사들의 도시는 멋대로 이동한다.
내가 A지점에서 발견한 후, 지상에 ‘이 위에 천사의 도시가 있음!’이라고 써뒀다고 치자.
다음에 지상의 그 표식을 찾은 후, 수직으로 대기권, 성층권을 돌파해서 열권에 도달하더라도 천사의 도시는 찾을 수 없다.
이미 어디론가 이동했으니까.
이걸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고 하던가?
“...음? 너도 안다고?”
그때, 내 겨드랑이를 독점하고 있던 왕관 쓴 바람의 정령이 우쭐대며 속삭였다.
바람은 어디에서나 불기 때문이다.
천사들의 도시가 아무리 꼭꼭 숨겨져 있더라도 바람은 피할 순 없다.
정 피하고 싶으면?
바람이 안 부는 우주로 가야 한다.
“짜샤! 그런 건 눈치껏 일찍 말해줬어야지! 허구한 날마다 킁킁거리는 내 겨드랑이에서 쫓겨나고 싶어?”
방 빼고 싶냐는 말에, 바람의 정령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좌우로 격렬하게 도라지 쳤다.
편의점에서 미성년자임을 속이고 어렵게 구한 담배를 잃어버린 동창의 표정이 딱 저랬었다.
...내가 마약 덩어리인 셈인가?
내 겨드랑이털을 동아줄처럼 붙잡은 바람의 정령에게 ‘앞으로 열심히 할게!’라는 뉘앙스의 굳건한 표정을 받아낸 나는, 나머지 정령들도 군기를 잡았다.
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 가지 기운이 성격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어떤 성격이나 성향이든 결과는 같았다.
한 녀석이 반항하면 나머지 넷이 “저 건방진 녀석을 추방하고 넷이서 나누자!’라고 외치며 우르르 공격한 탓이다.
너무나도 눈물겨운 우정과 조화다.
“Chaoooo.”
“오! 벌써 다 왔나!”
내가 왕관 쓴 정령들의 정신머리를 바짝 조여놓는 사이, 친애하는 동료 뇌비우스가 사악한 적의 본거지를 찾아냈다.
창공의 도시라고 할까.
마치, 흑미(黑米)로 만든 초밥 같았다.
둥글둥글한 바위 위에, 지표면을 얇게 회 떠서 올렸다. 정중앙의 도시는 와사비쯤 될까?
딩딩딩!
예전에 방문했을 때는 경비를 선 천사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허둥댔었는데, 차분한 종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비둘기 무리처럼 출현한 다수의 천사.
무기는 기본이고, 날개가 솟아난 등을 제외한 속살을 철저하게 가린 무장을 하고 있었다. 방독면 같은 투구를 쓰고 있는 바람에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됐다.
스킬 신성의 일반속성 면역과 반사만 믿고, 헐벗고 다니던 이전이랑 완전히 달랐다.
그 얘기는,
“친구. 40년 동안 부지런히 복수했구나?”
“Chaooo.”
천사가 사는 도시와 마을은 전부 들쑤시고 다녔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눈앞의 도시는 뇌비우스 혼자선 좀 버거워서 미뤄둔 디저트가 아닐까?
“Chao?”
“아아, 친우 뇌비우스여. 나는 바로 싸우지 않아. 이번에는 저 둘의 성장을 돕는 게 목적….”
“Chaoooo…!”
“멋지군! 맹독 저항력도 올릴 수 있겠어!”
뇌비우스의 맹독 숨결이 천사들의 도시를 향해 쏘아졌다.
대치하고 있던 천사들이 방패와 마법 등으로 막아섰지만, 대규모 학살에 특화된 뇌비우스의 숨결을 완벽하게 차단하진 못했다.
우선 독가스.
호흡기관이 다친 일부 천사들이 스프레이 맞은 모기처럼 빌빌거리며 도시로 추락했다.
그리고 부식성의 살상력!
맹독에 닿으면 전설의 갑옷도 금방 깡통으로 변질한다.
메뉴판의 초밥 그림처럼 먹음직스럽게 생긴 천사들의 도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순식간에 간장에 빠진 무언가로 변했다.
아무튼,
펄럭!
나는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를 생성했다.
지구의 태평양 한복판에서 늙은 왕자랑 싸운 뒤로 정말 오랜만에 치르는 공중전이다.
상대는 위선으로 가득한 닭대가리들.
나의 정의로운 열혈(熱血)이 오랜만에 불타올랐다.
하지만 그전에,
“B급 친구들. 멋지게 활약할 시간이야!”
뇌비우스의 꼬리만 보며 힘겹게 뒤따라온 비룡으로 날아간 나는 짐꾼들부터 챙겼다.
오늘의 목표는, 두 B급을 A급으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위선으로 가득한 천사들의 새하얀 날개를 100장쯤 찢으면 자연스럽게 승급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자, 잠시만! 우선은 천사님들이랑 대화를- 으아아아아~?!”
“어이쿠! 발이 미끄러졌네.”
내가 헛디딘 발에 걸린 짐꾼A가 자빠졌다.
비명을 지르며 비룡의 등에서 떼굴떼굴 구른 그는 천사들의 도시 한복판으로 추락했다.
공중에서 천사들의 집중공격을 받은 듯하지만, 용사라면 그 정도는 어련히 막고 반격까지 했을 것이다.
그러니 신경 쓸 거 없다.
다음은,
“헛?! 나는 왜~~~?! ”
입 다물고 있던 짐꾼B도 내 발에 걸려서 추락했다.
실수에 ‘왜?’가 어디 있어?
한눈 판 사이에 벌어진 일이기에 실수인 것이다.
유급만 10번 한 초등학생이긴 하지만, 나도 존엄성을 가진 S급 용사님으로서 체면을 꽤 중시한다.
발을 헛디디고 싶을 리 없잖아?
그러니 실수다.
“용사님! 저는 어떻게 할까요?!”
“Blu?!”
창백하게 질린 요정 조련사가 비룡의 고삐를 쥔 채 내게 질문했다.
푸른색 비룡도 주인이랑 똑같은 심정인 듯했다.
“기다린다고 오지랖 부리다가 휘말리지 말고 먼저 돌아가. 저 둘이 기숙사로 귀환할 때는 쑥떡이 챙길 거야.”
“Greee!”
전혀 지치지 않은 쑥떡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비룡은 원래 ‘비행’에만 특화된 소룡(小龍)이라서 뇌비우스를 쫓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녹색 용인 쑥떡은 아니다.
녀석의 속성은 생명.
회복과 재생에 특화되어 있다. 그래서 체력과 생명력 하나는 모든 용종(龍種) 중에서 가장 높다.
체력이 넘친다고 비행 속도가 빨라지는 건 아니지만.
“너는 뇌비우스가 싸우는 모습을 잘 봐둬.”
“Greee!”
비열한 천사들에게 포위된 뇌비우스는 어떤 식으로 공격받든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상대했다.
천사들의 유효한 공격으로 칠흑빛 비늘이 떨어지고 피가 흘러내렸지만, 이 용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야말로 후퇴를 모르는 패왕의 풍모!
아그작!
살이 통통하게 오른 탐스러운 천사를 갑옷과 무기째 껌처럼 씹어먹는 모습 또한 참으로 일품이다.
“훌륭한 용은 저렇게 싸우는 거야. 따라 할 수 있겠어?”
“G, Greee….”
“쯧쯧. 자신감이 이리 부족해서…. 새끼야! S급 용사님이 말씀하시는데, 어디서 천박한 닭대가리가 건방지게 끼어들어!”
망룡왕 2세가 될 새끼용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있던 나는, 등 뒤에서 매섭게 창을 찔러오는 훼방꾼에게 일침을 가했다.
닭 모가지를 비트는데 손도 필요 없었다.
암흑물질.
살짝 건드려주는 것만으로도 천사의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가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그리고 ‘아차!’ 싶었다.
▷점수: 100039
▷순위: 1
“간신히 점수를 다섯 자리로 내려놨거늘! 이 망할 천사가 한순간도 못 버티고 죽어버리네!”
하지만 아주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내 추측처럼 천사가 점수를 많이 준다는 게 확인됐으니까.
친애하는 망룡왕의 활약으로 두 짐꾼에게 할당될 점수가 대폭 낮아지겠지만,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
오늘만 날도 아니다.
“맹독 저항력만 키우면 성공하는 거지.”
두 짐꾼은 부지런히 도망 다니고 있었다. 천사를 쓰러트리긴커녕 도시에 쫙 깔린 맹독 탓에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중.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죽더라도 기숙사에서 부활할 테니까.
나는 그 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전황을 살폈다.
“Chaoooo-!”
“컥?!”
“놈을 막아- 꺅?!”
“으아아아~!?”
두 짐꾼이 도망 다니면서 천사 전력을 분산시켜준 덕분에 뇌비우스는 그럭저럭 선전하고 있었다.
영 어렵다 싶으면 점수가 쌓일 각오를 하고 나설 생각이었는데, 이 친구는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천사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며 끊임없이 흔든다.
잔인하게, 난폭하게, 무자비하게, 강하게!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공략했다.
그건 꽤 유효했는데, 평균 전투경험이 짧은 천사들의 빈약한 정신력으로 버티기 힘든 까닭이다.
그때,
번쩍-!
섬광이 뇌비우스의 몸을 파고들었다.
관통해서 반대편까지 튀어나오진 못했지만, 지금까지 비늘만 벗겨지는 게 고작이었던 망룡왕으로선 처음 받는 치명타였다.
그리고 한 발이 아니었다.
번쩍! 번쩍! 번쩍!
도시 방향에서 쏘아지는 빛의 연사속도가 상당했다.
그리고 빨랐다.
“Chaooo-!”
망룡왕 뇌비우스의 몸집이 워낙 커서 티가 안 났지만, 다른 평범한 용이었다면 조금 전의 공격으로 벌써 쓰러졌을 것이다.
빛을 쏜 원흉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사는 아니었다.
▷종족: 슈퍼 휴먼
▷레벨: 999+
▷직업: 성인(선동→신성↑)
▷스킬: 신성ZZ 고속Z 선동Z 명중Z 관통Z…
▷상태: 당혹, 의문
성인(聖人).
종족은 슈퍼맨이었고, 스킬 구성도 화려했다.
신성함이 물씬 풍기는 은은한 은색 빛이 나는 은발의 미청년이었는데, 복장은 성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학생용 교복이었다.
누구지?
“일단 죽여볼까?”
벌점이 선물세트로 한가득 들어올 것 같다.
정체는 나중에 천천히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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