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163화 (163/430)

 163화

[?회차] 준비가 끝났다

부학생회장은 또 누구야?

이번에도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실례합니다. 중등교육장 학생이 현장조사 중에 실종됐는데요. 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눈만 마주쳐도 오금이 저리는 험악한 사내랑 싸우던 도중에 실종됐다고 합니다.”

굉장히 지적인 미모의 여성이었다.

외눈 안경을 끼고, 단정한 갈색 정장을 입었다. 살짝만 어긋나도 촌스럽게 보일 분위기를 굴곡진 몸매와 차분한 표정으로 상쇄했다.

“그러면 사람을 잘못 찾아왔네.”

눈이 마주친 자들은 나를 호구로 알았다.

토끼처럼 순하게 생긴 내 외모 탓에 1회차 때부터 겪은 온갖 불합리와 부조리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던가?

“...망룡왕 뇌비우스랑 관계가 어떻게 되나요?”

“하! 순진하게 생겼다고 나를 만만하게 보는 모양인데! 아줌마! 당신이 묻는다고 내가 순순히 대답할 것 같아?”

“아, 아줌마…?!”

학생회장의 이마에 주름이 그어졌다.

“잘 들어. 나는 대단히 바쁜 사람이야. 실종된 중학생을 초등학교 기숙사에서 찾는 이상한 아줌마를 상대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알아들었으면 얼른 나가셔.”

“실종된 학생의 이름은 카일입니다. 그래도 모르나요?”

“끈질기네. 내가 대답해줄 의무는 없어. 연약한 초등학생 좀 그만 괴롭히는 게 어때? 대단히 추해.”

“...제가 목격자의 진술로 알아낸 것은 용의자의 용모파기만이 아닙니다. 이 숙소의 마구간에 매인 파란색 비룡. 그리고 당신이 며칠 동안 함께 행동했던 두 친구도 일치합니다.”

굉장히 끈질긴 여자였다.

슬슬 불쾌해지기 시작한 나는 견적을 내봤다.

▷종족: 미라클 휴먼

▷레벨: 999+

▷직업: 여왕(매력→지배↑)

▷스킬: 마법ZZ 마력ZZ 오감Z 매력Z 통솔Z…

▷상태: 성배, 신수

학생회장이라서 그런 걸까? 매력이 높을수록 지배력이 올라가는 직업 ‘여왕’을 가졌다.

하지만 이 여자의 전투력만 따졌을 때, 썩 좋은 직업은 아니었다.

차라리 美女(미녀)일수록 마력이 상승하는 ‘魔女(마녀)’ 쪽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만만한 건 아니었지만.

실수로는 무리, 기습으로 한 방에 끝낼 수 있을까?

해보고 안 돼도 상관없다. 숙소에 무단침입한 중학생을 공격했다고 점수가 떨어지면 1위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역으로 당할 가능성.

1회차부터 마법과 마술은 내 전문분야가 아니었다. 습득할 기회는 꽤 있었지만, 순수한 판타지 능력이었기에 기피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대항하기 위한 이론은 어느 정도 알지만, 초월영역의 마법사를 상대해보긴 처음이었다.

변수가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협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실종된 학생은 중등교육장 학생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관련자를 추궁해서 불이익을 주려는 게 아닙니다. 실종된 부회장을 대신할 인재를 찾으려는 거죠. 당신이 그를 쓰러트렸다면, 자연스럽게 그의 자리를 이어받게 됩니다.”

나는 사고가 뚝 멈췄다.

기습은 당연히 보류. 아니, 무조건 안 된다.

부학생회장을 쓰러트리면 부학생회장이 된다.

그렇다면, 눈앞의 학생회장을 기습으로 죽이면 학생회장이 된다는 거잖아?

성적에 상관없이 중등교육과정을 밟는 지뢰!

그녀의 설명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중등교육장 학생회로 끌려갔을 것이다.

간담이 서늘했다.

“아줌마. 두 번 말하지 않을 테니, 잘 들어. 나는 페스티벌 중에 중학생을 죽인 적이 없어. 내 능력치를 봐. 이런 내가 중학생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봐야 알죠.”

학생회장이 외눈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마법 도구로 내 전투력을 측정해도 소용없어. 애초에 그건 능력치를 볼 수 없는 원주민을 위해 제작된 거잖아? 어째서 그런 무의미한 짓을….”

“이건 특별한 도구니까요.”

“특별?”

“네. 이건 스킬과 레벨이 아닌, 대상자가 살아오면서 쌓은 업적을 기반으로 전투력을 측정합니다. 필기시험을 잘 본 학생이 꼭 똑똑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개발된 도구입니다.”

“별 해괴한 도구가 다 있군.”

살아오면서 쌓은 업적을 기반으로 전투력을 측정한다고?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마왕 페도나르를 손가락 하나로 쓰러트릴 수 있는 존재가 평화주의자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업적을 쌓지 않았기에 전투력도 약하게 평가될 것이다.

순 엉터리다.

“...전투력이 이상한데요?”

“당연히 이상하겠지. 그렇게 객관성 떨어지는 방식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선량한 용사님의 전투력을 측정할-”

“너무 높아요.”

“...뭐?”

“이건 초등교육생이 나올 수 없는 전투력인데요? 중등교육과정 상급반을 들어가더라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초등교육장에서 쌓을 수 있는 업적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신의 전투력은 중등교육생마저 넘어섰다는…. 아! 이건 좀 비약이 심했네요. 아무리 우수해도 초등교육생인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명품 가방을 고르는 아줌마처럼 예리한 시선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뭘 봐? 주위에 잘생긴 남자가 없었던 모양이지?”

“썩어날 정도로 많죠. 어흠! 그게 아니라, 당신 정도의 인재가 초등교육장에서 썩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700년 넘게 봉인되어있었던 기숙사 5층의 사용자인 이유가 다 있네요.”

분위기가 안 좋게 흘러간다.

나는 이 여자랑 계속 대화하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업적으로 전투력을 측정한다는 방식이 이상한 거야. 트롤 1마리를 잡은 중학생이랑 100마리 잡은 부지런한 초등학생을 비교하면 안 되지. 나는 성실한 용사일 뿐.”

“이 도구는 그렇게 허술하지….”

“거참, 시끄럽네! 아줌마. 나쁜 말로 할 때 당장 꺼져!”

거슬린다고 마음대로 죽일 수도 없는 학생회장을 현관문 밖으로 밀어내듯 쫓아냈다.

그녀는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이었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찰칵!

그리고 확실하게 문을 잠갔다.

호텔 객실처럼 닫으면 자동으로 잠기긴 하지만, 나는 잠금장치를 이중으로 해서 확실하게 했다.

“강한수 졸업생님. 잠가도 의미가 없습니다. 기숙사 옥상의 공중정원으로 침투할 수 있으니까요.”

엘리스가 난감하다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쪽으로는 못 들어온다며?”

“일반적인 학생이라면 투명한 방어벽에 막힐 겁니다. 하지만 상대는 5층까지 계단을 이용해서 정당하게 들어온 학생회장이에요. 다른 길로 들어오는 것쯤은 시스템이 융통성을 발휘해서 허용할 겁니다.”

“참으로 편리한 융통성이네!”

내 성적표에는 늘 깐깐하고 고지식했는데!

나는 이왕 말 나온 김에 하나만 더 엘리스에게 묻기로 했다.

“부학생회장이 남자친구였다며?”

“저는 강한수 졸업생님께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번거로운 실기시험을 도와주면 누구든 남자친구죠. 학생회장이 저리 서두르는 것도, 자기 일을 대신 해주던 부학생회장이 사라진 탓입니다.”

“어, 그래.”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듣고 말았다.

“저는 이름표를 통해서 전부 지켜봤기에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부학생회장을 살해한 존재는 강한수 졸업생님이 아닌 망룡왕 뇌비우스였죠. 물론, 이 정보를 학생회장에게 넘기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교칙에 어긋나니까요.”

“내 생각을 읽는 건 괜찮고?”

“그건 올바른 교육이 목적이기에 합법입니다.”

MAX급 숙소가 넓어서 마왕님이 들키지 않은 게 다행이다.

더부살이 중인 마왕 페도나르의 유감스러운 모습을 본다면, 내가 그를 부하로 부리는 것으로 오해하기 딱 좋으니까.

이걸 빌미로, 중등교육장 학생회에 스카우트될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서 피해야 한다.

“당분간은 외부활동을 피해야겠는걸.”

두 짐꾼의 성장을 돕지 못하게 됐지만, 한 번 흐름을 탄 둘은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도 될 만큼 강해졌다.

가속도가 붙었다고 할까!

이대로만 흘러간다면 1년 뒤에 지구로 귀환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쉽게 생각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

“이건 초월적인 존재의 학정농단(學政隴斷)이 틀림없어.”

그렇지 않다면 이 상황이 설명되질 않는다.

온종일 숙소에 틀어박혀서 숨만 쉬는 내 점수와 순위가 이럴 리 없다.

▷점수: 36485

▷순위: 1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점수가 계속 올랐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

하지만 포기하고 금방 돌아갈 줄 알았던 중등교육장 학생회장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숙소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는 탓에 그것도 어려웠다.

엘리스가 말하길,

“강한수 졸업생님의 점수는 그냥 오르는 게 아니에요. 원래는 교직원이 챙겼어야 할 마왕을 대신 돌봐줘서 가산점. 펫으로 자동등록된 망룡왕 뇌비우스가 활약할 때마다 조련사인 강한수 졸업생님도 점수 중 일부를 받아요. 그리고 요정들이 사는 마을에서도 수시로 임무 완료가 기록되면서 점수가 들어오는 중입니다.”

“보스K…!”

웃는 얼굴로 등에 칼을 꽂는다는 건, 이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요정 마을에 방문은커녕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각종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는 기록이 수시로 들어오고 있었다.

-요정 시장의 딸이 겪던 우울증을 치료함: 200점

-요정 시청에서 서류 작업을 적극적으로 도움: 10점

-요정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음: 40점

-하등한 요정 종족에 꿈과 희망을 전달함: 500점

-요정 도시의 치안율을 90%까지 올림: 30점

......

요정 마을에서 24시간 활약하는 ‘나’는 대체 누굴까?

친애하는 동료 뇌비우스도 만만치 않았다.

-천사 기사 ‘크리엘’을 짓밟아서 처치: 20점

-타락한 천사 ‘유라포엘’을 잔인하게 처치: 50점

-무능한 천사 시장 ‘보루엘’을 처형: 30점

-대천사 ‘샤브리엘’을 중태에 빠트림: 100점

......

나는 아무것도 안 했지만, 나랑 관련된 주위에서 점수를 간접적으로 퍼주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눈 뜨고 중등교육장에 끌려가게 생겼다.

벌점으로 점수를 내리기도 만만치 않았다.

숙소 내부에서 나는 王(왕).

하녀를 해코지하고 기물을 파손해도 내 점수는 깎이지 않았다. 역으로 오르는 기괴한 상황마저 벌어졌다.

예를 들어,

-깨트린 항아리에서 3점을 획득했다!

-하녀 ‘나르샤’의 몸에서 10점을 발견했다!

-마왕 ‘페도나르’을(를) 도발하는 데 성공: 2점

-옷장 서랍 안에서 2점을 발견했다!

...이런 식이었다.

남들은 1점에도 좋다고 아우성인데, 나는 수영장에서 일광욕하는 인어랑 눈만 마주쳐도 2점쯤 오른다.

유혹에 성공했다면서….

이대로는 확실히 위험했다.

숙소 밖으로 나가서 벌점을 싹쓸이하지 않으면 안 됐다.

“음? 사위 용사여. 드디어 나가는 건가?”

푹신한 소파에 드러누워서 독서 중이던 마왕님이 나를 힐끔 보고는 참견했다.

“상황이 좋지 않아서.”

이대로 가다간 압도적인 1위로 끝날 것 같았다.

“짐에게도 이곳은 감옥이기에 충분히 공감할 순 있지만, 뭐든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조금이라도 강해지는 편이 좋아. 그리고 능력치가 사라질 걱정 또한 헛수고야. 짐이 누이에게 협조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

“미래는 모르는 법.”

그리고 지금보다 강해져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남들 다 하는 효도조차 못 하는데.

“마왕님. 54년이면 오래 기다렸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천천히 새로운 힘을 끌어올렸다.

거의 1년 동안 갇혀 있던 숙소에서 놀고만 있던 건 아니었다.

질풍노도의 판타지 1회차 때부터 내가 동료들을 경멸한 이유 중 하나가 ‘태만’이니까.

온종일 머릿속에 놀 생각뿐이다.

약한 악당 앞에선 잔뜩 허세를 부린다.

강한 악당은 비겁하게 협공한다.

노력도 안 하고 용사를 질투한다.

세상을 파멸시키려는 무시무시한 마왕이 부활했다며? 세상에 흩어진 마왕의 부하들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며?

그런데도 동료들은 여유롭게 웃고 떠들었다.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는 성실함이 자연스럽게 몸에 뱄다.

54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강해지고 성장할 방법을 끊임없이 강구하고, 남에게 배울 점이 있다면 악마든 적이든 개의치 않는다.

신도 예외는 아니다.

“용사여! 정령이면 정령답게 특화된 속성을 활용해야지. 인간의 종족특성을 너무 남용하는 것 아닌가? 무슨 가능성이….”

마왕님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속성이 인간이라서.”

이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겠다. 1위에서 멀어질 때까지 망설이거나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준비가 끝났으니까.

“하! 중등교육장?”

망할 교장 선생아. 보낼 테면 보내봐라.

중학교를 부숴버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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