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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165화 (165/430)

 165화

[?회차] 남자친구…?

중등교육장 학생회장의 질문은, 오른손잡이에게 왜 오른손만으로 펜을 쥐느냐고 묻는 거나 다름없다.

양손에 펜을 쥐고 남들보다 2배 빠르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편리하지 않다.

내 신기술도 마찬가지. 폭이 0.1mm도 안 되는 글씨를 쓰듯, 정밀한 기술 제어가 오른손과 오른발로만 가능하다.

하지만 전혀 아쉽지 않다.

꼭 양손에 펜을 쥘 필요는 없잖은가?

공책을 붙잡거나 휴대전화를 깔짝거릴 손도 있어야 한다. 양손잡이라고 해서 공부를 더 잘하는 건 아니다.

“불필요한 대화는 됐고….”

나는 벽을 박차며 학생회장에게 도약했다.

그녀에게 뚜렷한 원한은 없지만, 중등교육장 학생대표를 처치하면 벌점을 크게 받을 테니까.

중학생 최강자의 실력도 겸사겸사 확인하고.

내 공격을 예상했던 걸까? 아니면 반응속도가 뛰어난 걸까?

학생회장은 내 공격이 닿기 직전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가 있었던 자리에 불기둥이 치솟았다.

콰아아앙-!

내 가랑이 사이에 빌붙어 사는 불의 정령이 애써보지만, 학생회장의 마법으로 형성된 불기둥은 특별했다.

역시 초월영역이란 건가?

5대 원소를 다루는 마법사들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정령들이 그다지 도움이 안 됐다.

“쯧. 허상이었나.”

불기둥에 휩쓸린 내 몸이 활활 타올랐다.

재능만 뛰어난 마법사들은 우직하게 힘 대결을 한다. 강력한 마법을 빠르게 연사하는 효율적인 전투법을.

하지만 진짜 정통마법사는 다르다.

그들은 준비하는 자들이니까.

누가 오든 내 독자적인 마법으로 박살을 내주겠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상대의 심리를 분석하고 거기에 맞는 효과적인 마법 함정을 설치한다.

실용적인 마법은 둘째.

맞춤형 마법을 구사하는 마법사야말로 진짜 성가신 존재다.

“지독한 불이네.”

악마들을 가둬둔 지옥의 불이 절대 꺼지지 않는다고 하던데.

학생회장이 소환한 불기둥도 똑같았다.

내 몸에 들러붙은 화염은 내 옷부터 살까지 전부 태워버릴 기세로 쉴 새 없이 날뛰었다.

하지만 나도 대처법쯤은 있다.

나는 마법사가 아니니까.

미리 준비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해결한다.

그 과정에서 다소의 손해가 있더라도 과감하게 밀어붙인다. 안 그러면 상대의 노림수대로 끌려다닐 테니까.

준비된 마법사를 상대로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

그렇기에 무작정 달렸다.

“무슨…?”

나랑 살짝 떨어진 거리에 재등장한 학생회장이 당혹스러운 어조로 묻는다.

싸우다 말고 어딜 가느냐고?

그딴 거 없다.

화르륵~!

내 몸을 태우려고 발버둥 치던 불이 기숙사로 옮겨붙었다.

학생회장이 마법으로 무언가 수작을 부렸다면 그건 이 일대에 몰려 있을 것이다.

겸사겸사 기숙사도 부수고.

나는 점수와 순위를 내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다.

“헛?! 불이 꺼지질 않아!”

“닿지 않게 조심해!”

“위에 도움을 요청할게!”

졸업생 못지않게 능력치가 우수한 하녀들도 어쩌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녀들은 혹시라도 불꽃이 몸에 튀면 과감하게 머리카락을 자르고 옷을 벗었다. 이건 하녀의 능력을 벗어난 사태였으니까.

그건 졸업생들도 다르지 않았다.

“아악! 나 좀 도와줘!”

“이, 이 괴상한 불은 대체 뭐야?!”

“친구야! 이 불 좀 꺼줘~!”

“히익! 저리 가! 가까이 오지 마!”

하녀들만큼 냉철한 판단과 결단을 내리지 못한 그들은 우왕좌왕하다가 하나둘 고통 속에서 잿더미가 됐다.

일반인들은 화재를 두려워한다.

반면, 용사들은 불로 뒤덮인 장소도 과감하게 들어갈 수 있다. 자신의 화염 내성과 레벨, 스킬을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그 용사들도 평범한 인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용사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듯, 이 불도 평범하지 않으니까.

꺼지지 않고 계속 퍼져나갔다.

이 기세대로라면 얼마 안 가서 여자 기숙사에도 닿으리라. 그리고 기숙사가 있는 도시까지도 금방.

“자, 잠시만요-! 멈춰요-!”

학생회장이 내 뒤를 허겁지겁 쫓아왔다.

원래는 내가 그녀를 추적해서 턱주가리를 힘껏 날려줘야 하지만, 형세가 완전히 역전됐다.

순간이동 마법을 쓰면 바로 내 앞에 출현해서 기습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녀는 내 몸에서 옮겨붙어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려는 불을 잡기 바빴다.

절대 꺼지지 않는 불?

이 세상에 ‘절대’란 없다.

정말로 그런 불이 실존한다면 진즉 우주까지 타버렸을 테니까. 인간에게 영원처럼 느껴지는 천문학적인 시간 동안 타오르는 항성(恒星)은 많지만.

아무튼,

이것저것 준비해뒀을 학생회장이 당황하고 있다. 그녀가 세워둔 계획이 어긋났다는 방증.

불기둥 외에도 여러 마법 함정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도권이 내게 넘어온 거나 다름없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쫘악-!

나는 입고 있던 옷을 찢어서 던졌다.

천사들의 보물창고에서 가져온 특상품이었던 덕분에 꺼지지 않는 불꽃에도 잘 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

그래서 버렸다. 장인이 봤다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나를 나무랐겠지만, 내 창고에 저런 옷이 한가득 쌓여있으니 괜찮다.

문제는 그다음.

“망할 닭대가리들.”

날개를 핑계로 헐벗은 패션 스타일을 고수하는 천사 종족의 옷은, 평상복이든 전투복이든 등판이 무조건 허전하다.

그래서 내 등판도 노릇노릇 잘 타고 있었다.

불의 정령이 확산을 저지하고, 물의 정령과 땅의 정령이 부지런히 소방사 놀이를 했다.

그리고 바람의 정령은 다른 방식으로 나를 도왔다.

키득거리면서 불을 기숙사에 옮겼다. 그리고 마음의 정령이 바로 옆에서 나쁜 친구처럼 불장난을 부채질했다.

“이것들이 오랜만에 집세를 내네.”

오랜만에 정령들을 칭찬한 나는, 오른손을 뒤로 돌려서 활활 타고 있는 등을 만졌다.

치이이익….

단숨에 불이 사그라들었다.

능력치 보정을 받아서 육체가 튼튼한 졸업생들의 내분비샘을 흔들어서 균형을 깼던 나다.

마법을 변질시키는 건 일도 아니다.

조금 전까지 ‘절대 꺼지지 않는 불꽃’이었던 것은 내 스킬로 변질하여 ‘족보를 알 수 없는 불꽃’이 돼버렸다.

기존의 특성은 당연히 사라졌다.

“당신! 불을 끌 수 있었으면서…!”

학생회장이 그런 나를 보고는 분개한 어조로 소리쳤다.

그래서 나도 대꾸해줬다.

주먹으로.

파앙-!

불을 진화하기 여념 없었던 학생회장은 내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손맛은 없었다.

파직, 깡, 쾅, 쨍그랑…!

학생회장의 몸을 감싼 투명한 보호막 탓이었다.

상대는 마법사이기에 그쯤은 예상했었던 나였지만, 그 보호막이 이렇게 두꺼울 줄은 몰랐다.

심지어 한두 겹이 아니었다.

급기야,

뿅!

보호막이 깨지는 조건으로 발동하는 순간이동까지!

물리적 타격을 기대했던 내 주먹은 학생회장의 턱주가리에 닿지 못하고 허공만을 갈랐다.

하지만 괜찮다.

“어흐으읔…!”

물리적 타격만 실패했을 뿐이니까.

살짝 떨어진 거리에 출현한 학생회장은 곧게 서지 못하고 벽에 등을 기댄 채 힘겨운 표정을 지었다.

내 오른손의 영향권 내에 들어갔으니 당연하다.

지금쯤 뇌세포가 500만 마리쯤 사망해서 지능이 1% 떨어지고. 수천만 개의 뉴런이 가닥가닥 끊겨서 신경전달도 0.03초쯤 늦어졌을 터.

여기에 보너스로 목디스크까지!

머리가 주먹처럼 작은 학생회장일지라도, 예전보다 머리가 무겁게 느껴지며 목과 어깨가 뻐근해졌을 것이다.

“아줌마. 유감은 없어.”

“과, 과연…. 초등교육과정 최고기록들을 23번이나 갈아치운 희대의 우등생, 전체 1위답네요. 설마 싶긴 했지만, 곧바로 중등교육장 1위 자리를 노릴 줄은 몰랐습니다.”

벽에 몸을 기댄 채 주저앉은 학생회장은 분노하거나 초조한 얼굴이 아니었다.

매정한 정글의 법칙처럼 내게 공격받을 줄 예상했었다는 말투.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학생회장의 역할이 대체 뭐길래?

뭐든 간에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감투다.

“죽이진 않을게.”

그녀가 죽으면 내가 중학교 학생회장이 될 수도 있으니까.

혹시라도 정말로 복학시키면 중등교육장을 부숴버릴 생각이지만, 굳이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가볍게 허리디스크만 선물해줄 생각이다.

학생회장이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톡 쏘듯 말했다.

“벌써 이겼다고 생각하면 곤란한데요? 조금 전에 당한 공격으로 당신의 보이지 않는 기술의 판독이 끝났습니다. 그것은 정령을 구성하는 입자인 정입자(精粒子)입니다.”

“정자?”

“정입자입니다! 전문용어를 모독하지 마세요!”

“줄여서 부를 수도 있지, 왜 신경질이야.”

“그…. 하여간 놀랐습니다. 최초의 정령 외에도 정입자를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정령은 자신의 속성에 맞는 정입자를 생성할 순 있어도 제어는 못 하거든요. 저희가 사랑이란 감정을 마음대로 못 다스리듯이.”

“사랑? 미약(媚藥) 먹으면 돼.”

흥분제와 진정제가 괜히 있는 줄 아나?

“당신은…. 사랑을 모르는군요.”

“하! 사람 얕보지 말라구. 사랑이 별거냐? 하루빨리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은 이 마음이야말로 아름다운 사랑이지.”

“...정말 모르네요.”

“닥치고 허리나 내밀어.”

허리디스크로 괴로울 때마다, 친절한 정형외과 선생님 같은 미소를 짓는 S급 용사님의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여자의 가슴이 아닌 허리를? 취향이 참 특이하네요.”

“닥치고 내밀기나 해.”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용사의 3대 덕목을 기억하시겠죠? 사랑과 우정. 그리고 오지랖입니다.”

콰앙!

쿵-!

하늘에서 인간이 유성처럼 뚝 떨어졌다.

그 충격파에 휩쓸린 꺼지지 않는 불꽃이 도시와 여자 기숙사로 단번에 번졌지만,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었다.

나는 요란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출현한 인간을 주시했다.

기숙사 천장을 부순 힘만 보더라도 강하다는 건 확실했지만, 능력치도 헛웃음이 나올 만큼 대단했다.

심지어 1명이 아니다.

거의 동시에 떨어진 세 인간의 공통점은 교복 차림의 남학생이란 것이었다.

“건방진 녀석. 좋게 말할 때, 그 손 떼라.”

“야. 좀 강하다고 중학생이 물로 보이나 보지?”

“후배. 귀여운 소꿉놀이는 여기까지다.”

그리고 초면부터 내게 굉장히 적대적이었다.

대충 짐작은 갔지만, 나는 예의상 물어보기로 했다.

“너희들은 뭔데 참견이지?”

리더가 없는 걸까?

출현한 타이밍처럼 이번에도 셋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녀의 남자친구다!”

“회장의 남자친구다!”

“남자친구다!”

“음?”

“뭐?”

“어?!”

예쁜 여학생 앞에서 강한 척하는 열혈로 들끓던 세 중학생 사이의 기류가 묘해지면서 우정의 행방이 묘해졌다.

나는 학생회장을 힐끔 돌아보며 물었다.

“이것도 아줌마가 준비한 예상범주 안이야?”

얼음조각상처럼 굳었던 학생회장이 갑자기 코맹맹이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어머! 자기야, 섭섭하게 왜 그래. 내 남자친구는 초등교육장 최강인 자기뿐이야.♥”

꺼져가던 열혈의 불씨가 다시 활활 타올랐다.

“아줌마가 내 여자친구라고?”

“아줌마라니…. 아무리 우리가 벽 없는 사이라도 그건 너무하잖아.”

“그러게. 진짜 너무하네.”

“호호! 자기야. 좋게 생각- 꺄아아앗?!”

나는 경계심을 완전히 놓은 학생회장의 가녀린 발목을 잡아채고는 몽둥이처럼 힘차게 휘둘렀다.

막 격분해서 따끈따끈한 세 수컷을 향해.

“헉?!”

“회장?!”

“미, 미친…!”

정의로운 용사의 진정한 여자친구라면, 용사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줘야 하는 법.

우선은 몸부터 사용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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