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175화 (175/430)

 175화

[11회차] 서대륙으로

대륙마다 특징이 있다.

중앙에 자리한 중앙대륙이 가장 보편적이고 무난하다면, 북대륙은 설산M을 중심으로 몬스터가 많고 마법이 발달했다.

남대륙은 1년 내내 더운 사막, 화산폭발과 생존게임을 해야 하고, 비린내 나는 민물인어가 가장 많이 사는 동대륙은 홍수와 해일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서대륙은?

“여긴 최악이에요.”

여성 용사의 표현처럼 최악은 아니다.

서대륙에는 ‘루시퍼’라고 불리는 벌레가 사는데, 생김새는 파리랑 비슷하고 몸집은 사람 손바닥보다 약간 크다.

▶의문: 그게 약간이라고요?

약간 맞아. 교생 아가씨.

해충 박멸에 실패한 서대륙은 루시퍼가 무지막지하게 번식했다.

혐오스러운 해충처럼 생기긴 했지만, 이슬만 먹는다고 거짓말하는 공주님보다 입맛이 훨씬 까다롭고 고상하다.

햇빛만 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대륙은 항상 어둡고 춥다.

루시퍼가 다른 대륙으로 진출해서 온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일 수 있을 것 같지만, 북대륙은 너무 춥고, 남대륙은 너무 덥다.

그리고 중앙대륙은 요정산맥에 사는 몬스터가 견제한다. 빛이 없는 삶은 놈들도 싫으니까.

음지식물만 살기에 생태계도 매우 특이하게 진화한 서대륙은, 판타지 세계의 낭만과 풍류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관광지다.

그런데 최악이라니...

루시퍼 혐오를 멈춰줬으면 좋겠다.

잠잘 때 귀찮게 하는 모기보다 훨씬 착한 벌레라구?

“저는 범죄기록이 없고 능력도 출중한 1급 용사만 취직할 수 있는 팩토리아 팩토리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했어요. 그러다가 외계인의 기습에 당해서 죽고 판타지아 대륙에서 환생했죠.”

“그래서?”

“심심풀이로 읽은 공략집 덕분에 수월하게 모험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동료를 착실히 모으고 성검도 구했죠. 하지만 비겁하게 숫자로 밀어붙인 마왕 때문에 벌써 5년째 회귀를 반복했어요. 그러다가 이번엔 중앙대륙이 아닌 서대륙에서 시작했어요.”

“그랬구나!”

사족이 참 길구나!

아름다운 고향별에서 온 아가씨가 아니었으면 벌써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를 움켜쥐었을 것이다.

“서대륙은 정보가 부족했어요.”

“뭐, 그렇겠지.”

용사 루크의 설명에 따르면, 용사의 시작지점인 중앙대륙과 성검이 잠든 북대륙 외에는 공략집이 시원찮다고 한다.

그나마 동대륙 공략집이 공짜로 읽을 만한 수준이지만, 서대륙과 남대륙은 요정왕국과 마왕의 영토가 가로막고 있어서 공략한 용사가 매우 드물었다.

그리고 굳이 넘어갈 필요성을 못 느낀다.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중앙대륙과 북대륙만 싹 돌아도 동료가 10명은 가볍게 넘으니까.

시간상으로도 이때쯤이면 용사력 3년.

슬슬 마왕에게 도전하고 싶어질 시기다. 나처럼 5개 대륙을 전부 돌면서 10년 동안 헛고생한 용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훌쩍: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네요.

나는 이제 괜찮아! 교생 아가씨!

1회차의 추억은 세월이란 이름의 찜통에 푹 삶았다.

“어딜 가나 그 추악한 벌레가 있고, 밭에서는 시체가 농사를 짓고 있어요. 어둡고 추운 환경이 원주민들의 마음을 부정적으로 비틀어놓은 것 같고... 시체들을 가족이라고 소개하며 웃는 영주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아아, 누군지 알 것 같네. 참 소심한 친구지.”

죽은 부모와 아내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어리광부리던 미남자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 투영됐다.

동료로 영입하고 싶었는데, 무능한 주제에 욕심만 많은 1회차 동료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래서?

“그 미친 영주가 소심하다니... 아무튼, 저는 그 영주의 성에서 소환됐어요. 저쪽에 망가진 남자친구도...”

“남자친구였구나.”

응. 아주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사귀기 시작한 지 하루도 안 됐지만요. 그가 먼저 제안했는데, 익숙한 중앙대륙으로 넘어갈 방법을 안다고 해서 수락했어요. 성 밖으로 못 나가게 하는 영주를 설득하고 약간의 노잣돈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무척 믿음직스러웠는데...”

“으어어엉! 엄마, 보고 싶어. 엄마아아~!”

“...저렇게 됐네요.”

여성 용사가 남자친구를 힐끔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용사들은?”

“50명쯤 됐던 것 같아요. 그 거대한 파리로 만든 요리들을 보고는 함께 구토했었죠. 아무렇지 않게 먹던 자들도 있었지만... 내일부터 영지 곳곳에 떠도는 그 파리를 잡으면서 레벨을 올린다고 했어요. 호위 겸 감시자로 시체가 하나씩 따라붙고.”

“대충 예상이 가네.”

루시퍼는 서대륙의 주 식재료다.

강력한 몬스터가 많아서 수렵은 자살행위고, 사료가 부족해서 가축도 키우기 힘든 땅에서 충분한 단백질을 보충하려면 이 파리를 먹는 수밖에 없다.

나도 비위가 약해서 생(生)으로는 못 먹고, 튀기거나 구워서 주로 먹었었다.

그리고 극한의 생존환경만큼 생명 하나하나가 소중하다.

이 때문에 시체는 모두 재활용된다.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약한 여성은 잡일과 농사를 맡고, 남성은 경비를 담당한다. 늙지도 지치지도 않는 시체들은 산 자들을 위해 밤낮없이 봉사한다.

즉, 주민들은 조상의 가호로 살아가는 셈이다.

“그 외에 특이사항은?”

“저는 서대륙을 처음 와봐서 모르겠어요. 몬스터가 무척 강해졌다는 것 외에는...”

“그런데도 중앙대륙으로 넘어가려고 했던 거야?”

“중앙대륙은 이렇지 않을 테니까요.”

“똑같아.”

“...그래도 파리를 먹진 않잖아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고블린이랑 이종교배하는 것보다는 영주의 비호 아래에서 파리를 먹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고, 고블린을 낳는다고요?! 제가?!”

“말이 그렇다는 거지. 물론, 낮은 확률로 태어나긴 해. 빅 고블린이나 하프 고블린이.”

“히익?!”

내 설명을 들은 여성 용사는 광란에 빠졌다.

나는, 자신의 소중한 그곳을 자해하려는 그녀의 목덜미를 손등으로 후려쳐서 기절시켰다.

“손이 많이 가는 동향이네.”

정말로 임신했으면 능력치 상태에 ‘잉태’라고 표시된다.

이런 초보적인 것도 모를 줄이야.

▶변호: 저는 이 용사 아가씨의 심정이 이해돼요. 원치 않는 아이가 생긴다면 저도 제정신이 아닐 거예요.

어? 교생 아가씨. 출산경험이 있어?

▶버럭: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보다 교생 아가씨. 이 용사들은 회귀하면 상태가 좀 나아져? 여자 쪽이 그나마 낫긴 한데, 평범한 생활은 무리일 것 같아.

▶침울: 어려울 거예요. 회귀해도 기억은 그대로 남으니까요. 기억을 지우면 된다고 여기실지 모르지만, 기억은 영혼이랑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기억상실이랑 달라요. 그건 육체 손상에서 오는 일시적인 망각현상이니까요. 기억을 삭제하면 영혼에도 심대한 타격을 받아요. 그것이 아무리 안 좋은 기억일지라도.

그렇군.

나는 두 용사의 목을 예쁘게 꺾어줬다.

▶당혹: 강한수 생도님. 제 이야기를 들으신 거 맞죠?

교생 아가씨. 똑똑히 들었어.

회귀해도 정신병은 치료되지 않는다고 했잖아?

“안전한 장소에서 회귀하면 밖에 싸돌아다니지 말고 얌전히 보호받길. 몰랑.”

나는 이 커플이 무사히 회귀하기를, 위대한 마스터 몰랑의 이름으로 기원해줬다.

“솔직하게 말해라, 마약 용사. 챙기기 귀찮아서 죽인 거지?”

최초의 정령이 내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물었다.

“그러는 너도 말투가 처음이랑 많이 바뀐 것 같은데.”

내가 최초의 정령을 처음 만났을 때, 총배설강을 가진 고귀한 여신인 줄 알았다.

“언젠가 이 불쌍한 정령을 구해줄 멋진 용사님을 꿈꾸며 열심히 연습했었다. 그 용사님이 총배설강인지 확인한다면서 손가락으로 내 고귀한 이미지를 망쳐놓지만 않았어도 여전히... 아무튼! 초면부터 반말하는 마약 용사가 이상한 거다!”

“친근함의 표시야.”

“나도 너의 마약이 좋다. 히히!”

고블린들로부터 변변찮은 커플을 구한 MAX급 용사 일행은 사소한 대화를 나누며 요정산맥을 넘었다!

*

서대륙에 발을 들이자마자 세상이 어두워졌다.

하늘에 태양이 떠 있긴 했지만, 마치 보름달처럼 혼자만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원흉은,

“LuLuLu~~”

“LuuLuu~~”

“LuLuLu~~”

서대륙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토종생물 루시퍼 때문이다.

주위의 빛을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긴 하지만, 대륙의 하늘을 암막처럼 덮을 정도니 얼마나 많겠는가?

5대 재앙 섹스피어의 은신처는 서대륙에서도 서쪽 끝. 그리고 나는 이제 막 서대륙으로 넘어왔기에 동쪽 끝에 있었다.

놈을 토벌하려면 서대륙을 횡단할 수밖에 없다.

“마약 용사. 바로 갈 거냐?”

“아니. 오늘부터 새로운 스킬을 습득할 거야.”

“자연의 편애를 받는 너는 능력치가 불필요하다고 내가 말했던 것 같은데.”

“그건 네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지.”

주위에 ZZZ급 스킬을 다수 보유한 괴물들이 득실거리지만, 정작 나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 끝을 보고 싶은 스킬이 있었다.

▷종류: 스킬

▷명칭: 영재

▷등급: ZZ(35%)

▶ZZZ: ???

▶ZZ: 뿌리부터 재구성한다.

▶Z: 한계돌파가 약간 쉬워진다.

▷SSS: 손재주가 꽤 증가한다.

▷SS: 성공률이 꽤 증가한다.

▷S: 숙련도가 꽤 증가한다.

▷A: 경험치가 꽤 증가한다.

▷B: 손재주가 약간 증가한다.

▷C: 성공률이 약간 증가한다.

▷D: 숙련도가 약간 증가한다.

▷E: 경험치가 약간 증가한다.

▷F: 떡잎부터 비범해진다.

신성과 마기, 블랙박스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나를 극적으로 변화시킨 스킬이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달려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도 환경이 최적화되어 있었다.

모든 게 상향 평준화된 입학시험장은 레벨을 올리기에도 안성맞춤이지만, 스킬 숙련도를 올리기도 매우 쉬운 까닭이다.

생산과 보조 스킬.

뛰어난 전문가를 만나서 빠르게 올릴 계획이다.

그리고 여유가 되면 스킬 ‘날조’까지.

“인간은 참 바쁘게 사는 것 같다. 요정들은 오늘 할 일을 내년으로 미루길 밥 먹듯 하는데.”

“인어는 왜 빼?”

짝짓기 외에는 관심 없는 멍청한 물고기다.

“마약 용사. 인어를 얕보지 않는 게 좋아. 내일 할 짝짓기도 오늘로 당기는 부지런한 종족이거든.”

“......”

그건 몰랐네!

“그래서 어떤 스킬부터 배울 거냐?”

“사령.”

“정령이 영혼을 농락하는 스킬을 배우겠다니... 동족을 고문하며 즐기는 인간이었기에 가능한 발상인가?”

“잔말이 많네.”

“흥! 마약용사, 네가 무조건 이해해라. 기나긴 세월 동안 내 대화상대라고는 그 사악한 요정 암컷뿐이었다. 불우한 이웃 하나 돕는다고 생각해.”

용사 커플이 단 하루 만에 요정산맥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영주의 성과 요정산맥은 가까웠다.

이것도 서대륙의 특성 탓이다.

루시퍼가 많이 사는 중앙은 1년 중 단 1초도 햇빛이 안 든다. 그래서 냉동창고처럼 매우 춥다.

반면, 서대륙 외곽은 상대적으로 따뜻한 바다와 다른 대륙의 영향으로 온도가 높아서 그나마 살기 편하다.

그래서 모든 인간의 주거지는 해안과 산맥에 붙어있다.

용사들의 시작지점도.

“바로 만나러 가볼까.”

서대륙에는 나라가 없다.

시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요술사들이 각자의 영토와 백성을 거느리고 영주 행세를 할 뿐.

그 권한은 가히 절대적이다.

그래서 다스리는 영주의 성향에 따라서 영지는 지옥도 되고, 낙원도 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찾아가는 곳은 낙원에 가까웠다.

“......”

“......”

시체들이 지나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무시하지 않고 가볍게 손을 흔들어줬다.

“마약 용사. 왜 인사해?”

“여기 시체들은 존경받아야 마땅해. 후손들을 위해 무보수로 일하거든. 연골이 닳아서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계속.”

영주의 성에 진입할 때도 제지받지 않았다.

서대륙은 죄를 지어도 달아날 곳이 없으니까. 그리고 형벌이 매우 무거워서 미치지 않고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러니 저들은 미친 게 틀림없다.

“으아아아악~?!”

“꺄아아아앜~?!”

성벽에 ‘X’자로 줄줄이 매달린 알몸의 남녀가 쉬지 않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바닥에는 그들이 지린 오물로 가득했다.

나는 그 광경을 멀뚱멀뚱 구경하는 사람 중 돌멩이를 던지는 주민A의 경추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실례합니다. 지나가던 용사A인데, 말 좀 물읍시다.”

“케켁?!”

“저 용사들은 왜 고문받는 겁니까?”

“우, 우선은 이것부터 놓고-?!”

풀려난 주민A가 자기 목을 문지르며 답했다.

“저들이 영주님을 살해하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선택받은 전설의 용사가 70명이라니? 주민보다 약한 용사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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