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11회차] 용사 차별!
▶허둥: 강한수 생도님! 어쩌죠?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가 정신병에 걸려서 먼지만도 못한 존재가 될지도 몰라요!
교생 아가씨. 너무 걱정하지 마.
정신병에 걸리기 전에 전부 회귀시킬 테니까.
판타지 소설에 흔히 쓰이는 소재다. 인생을 말아먹은 사회부적응자가 회귀해서 잘난 인간 행세하는 이야기.
저들에게 그 그린피스의 가호를 내려주겠다.
▶만류: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라 하지 않았는데도 오는 것, 그것이 운명이라고 하던걸요. 저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게 뻔해요. 그러니 일단은 저 끔찍한 고문을 중지시키고, 원인을 알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교생 아가씨의 제안은 지극히 옳다.
하지만 내가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야만적인 원주민보다 아름다운 고향별 출신을 더 위하는 건 사실이지만, 죄인을 옹호할 만큼 뻔뻔하진 않다.
저들은 영주를 살해하려 했다.
척박한 서대륙에서 시체의 노동력은 절대적이고, 그 시체를 움직이는 존재가 요술사인 영주다.
용사들이 주민의 생존을 위협한 셈!
고문받아도 할 말 없다.
▶설득: 강한수 생도님은 입학시험 중이시잖아요. 목표만 달성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시험결과에 따라서 학급이 결정돼요. 그리고 높은 학급일수록 졸업이 쉽답니다.
교생 아가씨! 그런 건 빨리 이야기해줬어야지!
나는 용사들의 고문이 한창 진행되는 광장을 떠나서 영주의 자택으로 향했다.
일에는 다 절차라는 게 있으니까.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 무력으로 깽판 부리는 건 무식한 양아치나 하는 짓이다.
나는 정의로운 용사로서 그런 짓을 할 수 없다.
절대로 내 평판을 위해서가 아니다.
영주의 자택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서대륙 영주의 권세면 피라미드도 쌓을 수 있지만, 이곳 영주는 굉장히 검소한 편이다.
뚝딱! 뚝딱!
시체들이 용사들의 습격으로 파괴된 담장과 벽을 보수하고 있었다.
나는 그 참혹한 복구현장을 구경하며 안쪽으로 향했다.
“여기는 출입금···. 오! 아무튼, 성스러운 분이시여! 환영합니다!”
초월영역 스킬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신성Z의 효과는 미약하게 먹혀들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도 우주의 기운이 도와서 통한 게 아닐까?
나는 자택의 집사에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지나가던 용사A입니다. 영주님을 뵙고 싶습니다.”
“용사···!”
“안 되겠습니까?”
나는 그의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에 손을 얹으며 재차 부탁했다.
밖에서 고문받는 용사들이랑 같은 취급해서 굉장히 불쾌했다. 그래서 괘씸죄로 목을 흔들어주고 싶었지만, 판타지 신의 편파판정이 내 성적표에 또 장난을 칠 게 우려되어 참았다.
애써 빌미를 제공할 순 없잖은가?
“켁켁?! 아, 아닙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감사합니다.”
무능하고 비열한 70명의 용사에게 협공당한 영주는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이 자기 집무실에서 아내랑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도 하늘이 참 어두컴컴하구려.”
“......”
잡티 하나 없는 완벽한 미모를 자랑하는 영주의 아내는 다소곳이 의자에 앉은 채 남편의 이야기를 담담히 듣고 있었다.
방해하기 미안할 정도로 훈훈한 광경.
나는 품위 있는 귀족적인 자세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가족이랑 보내는 단란한 시간을 빼앗게 돼서 대단히 송구합니다, 영주님. 저는 중앙대륙에서 온 용사입니다. 이 아름다운 영지를 지나가던 중 광장에서 정의구현 되는 광경을 보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따지려던 게 아니오?”
아름다운 아내에 못지않은 훈남의 영주가 미심쩍은 시선으로 나를 훑어보며 물었다.
이에 나는 난색을 표현했다.
“저들은 고향별에서도 적응 못 한 사회부적응자들입니다. 이런 구제 불능의 패배자들을 70명 넘게 소환해서 이틀이나 돌본 영주님의 인내심과 자비심에 저는 찬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흠흠! 뭐, 그쯤이야···.”
내게 칭찬받은 영주의 입꼬리가 부드러운 호를 그렸다.
언제나 듣기만 하고 말하지 않는 아내 때문에 평범한 대화에도 쉽게 기뻐하는 그다운 반응이었다.
이 영주의 소심함은 1회차랑 변함없었다.
아무리 강해졌어도.
▷종족: 데스 휴먼
▷레벨: 2183
▷직업: 요술사(축복=사령↑)
▷스킬: 사령ZZ 요력ZZ 통치ZZ 불로Z 축복Z···
▷상태: 만족, 민망
초월영역 스킬로 도배를 했다.
시체를 다루는 요술사에게 필수적인 스킬인 사령과 요력이 가장 높았는데, 저 스킬 등급은 1회차의 5대 재앙보다 높았다.
영주가 이 정도면 5대 재앙은 대체···?
판타지 57년 경력의 나로서도 쉽게 예측되질 않았다.
“영주님. 신탁이 계속 내려오고 있습니까?”
“네. 아내랑 차분히 대화할 시간이 없을 만큼 수시로 신탁이 내려오는 실정입니다. 그 탓에 잠도 제대로 못 자는 형편입니다. 이따가 추가로 30명을 소환할 걸 생각하니 벌써 앞날이 캄캄합니다.”
신탁을 무시하라는 말이 턱밑까지 올라왔다가 말았다.
판타지아 원주민에게 신탁은 절대적이니까.
불신론자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조차도 신탁만은 무조건 따른다. 무시하면 무시무시한 보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소환하는 목적이 뭐랍니까?”
“5대 재앙을 쓰러트릴 용사라고 합니다. 제 역할은 소환으로 끝. 하지만 아무리 신탁이었을지라도 제 영지로 불러들인 손님인 만큼 어느 정도 무력이 갖춰질 때까지 의식주를 해결해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주가 말을 잊지 못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소환 이틀 만에 그 용사들에게 습격받았기 때문이다. 호의를 베푼 영주로선 황당함을 넘어서서 분노할 상황이었다.
나는 정식 절차로 용사들을 구출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진한 예감을 받았다.
영주는 피해자, 용사들은 가해자.
그 관계와 죄목이 명확했던 탓이다.
“영주님. 그들을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 목숨을 노린 자들을 쉽게 용서할 자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영주가 아내를 돌아보며 답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녀는 매우 현명한 여인이니까요.”
“......”
“일단은 아내가 답을 내려줄 때까지 고문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서대륙은 죄인들을 공짜로 먹여 살릴 만큼 식량이 풍족하지 못하니까요. 죄인들이 루시퍼를 먹고 싼 배설물을 수거해서 거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대륙에서 유일하게 넘쳐나는 식량은 루시퍼다.
하지만 맛이 그다지 좋지 않고, 사람이 단백질만 섭취하며 살 수 없기에 무한정 먹을 수 없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가 있는 법.
그것이 ‘죄인’이다.
팔다리를 포박당해서 꼼짝달싹 못 하는 죄인들에게 루시퍼를 끊임없이 먹이는 고문이다.
여기에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이끼를 약간씩 섞는데, 끔찍한 설사에 시달리기에 일반적인 주민은 절대 먹지 않는 독초다.
그리고 죄인들이 싸지른 오물은 시체들이 수거해서 밭의 거름으로 사용한다.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
죄인이 금방 죽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고 하잖는가?
설사를 유도하는 이 독초가 생명을 연장해줘서 마음대로 죽지도 못한다.
“현명한 아내도 이번만큼은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
“빨리 답을 내리지 않으면 앞으로 이틀 이내에 그들의 괄약근은 영원히 그 기능을 상실할 겁니다. 아니, 어쩌면 아내는 그걸 바라는 걸지도 모르겠군요. 아아, 사랑하는 아내여! 이 남편은 이렇게 멀쩡합니다. 이만 용사들을 용서해주는 게 어떻겠소?”
“......”
“허허! 여전히 답을 줄 수 없는 모양이구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내 목숨을 노린 그자들을 당신이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조용히 기다리겠소.”
“......”
부부의 뜨거운 사랑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용사들이 풀려나려면 영주의 아내를 설득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조금 전의 대화로 인지했다.
하지만 이건 MAX급 용사님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영주의 아내는 시체였으니까.
*
판타지아 서대륙 원주민들은 하루에 6번 식사를 한다.
새벽, 아침, 점심, 간식, 저녁, 야식.
4시간마다 먹는 셈이다.
경비와 농사 같은 대형 업무를 시체들이 도맡아서 처리하면서 주민들이 할 일이 매우 줄어든 영향이다.
그래서 이 조그마한 영지에 대장간만 6개나 있다. 마찬가지로 옷가게와 목공소, 여관 등도 각각 6개씩 운영된다. 그리고 이 가게들은 로테이션을 정해서 하루에 4시간씩만 일한다.
나머지 시간은 쉬면서 먹고 싼다.
영주는 나를 그중 ‘4번째 종’ 만찬에 초대했다.
그건, 4번째 식사시간이란 뜻이다.
서대륙은 항상 어두컴컴하기에 밤낮이 따로 없어서 하루란 개념이 무척 불분명하다. 그래서 영지 중앙에 자리한 시계탑이 약 4시간 간격으로 종을 울린다.
6번 울리면 하루가 지난 셈.
나는 ‘간식 식사’에 초대됐다고 볼 수 있다.
“정말 놀랐습니다. 중앙대륙에서 오신 용사님께서 서대륙 지식이 이토록 풍부하실 줄은···. 마치, 몇 년간 살아보신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닙니다. 진정한 용사라면 이 정도는 당연하죠.”
“과연···!”
식사라고 매끼 똑같지 않다.
루시퍼 찜, 루시퍼 구이, 루시퍼 튀김, 루시퍼···.
영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주식재료인 루시퍼가 질리지 않도록 매끼 다른 요리를 하도록 법으로 정해놨다.
귀찮다고 어기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치도곤을 당한다.
별거 아닌 일에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서대륙 원주민들의 우울증과 자살원인 1순위가 ‘입맛 상실’임을 떠올리면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무튼,
“루시퍼 튀김이군요. 여기에 귀한 꿀을 바르셨고, 대륙 중부에서만 자라는 희귀한 허브로 루시퍼 특유의 냄새를 지웠습니다. 이렇게 절 배려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나는 루시퍼만 1년 넘게 먹어서 익숙한 편이다.
당시에 요리사는 라누벨이었는데, 무척 분하게도 그녀의 요리실력은 나무랄 곳이 없었다.
“하하! 첫날이라서 특별히 신경 좀 썼습니다. 다른 용사님들은 이래도 못 드시는 분들이 태반이었거든요. 제 아내가 예의상 말하진 않았지만, 그 일로 무척 속상해 했습니다.”
“......”
“지금은 용사님이 잘 드셔주셔서 기쁜 모양입니다.”
“......”
대화하면서 나는 대략적인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거대한 파리를 먹고, 사랑한다는 아내는 시체.
태어난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한 사회부적응자(용사)들이 이처럼 독특한 문화와 환경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하물며 서대륙 경험과 정보도 부족.
영주를 악마로 몰면서 비겁하게 협공했을 것이다.
그 결과는 압도적인 무력 차이로 참패 후 고문.
나는 루시퍼 튀김을 먹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용사들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주의 호언장담처럼 그들의 괄약근은 이틀 이내에 사망한다.
이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한 번 죽은 괄약근은 성녀의 부활로도 치료되지 않으니까.
성녀의 부활이, 노인의 주름을 펴거나 늘어진 가슴에 탄력을 불어넣지 못하는 거랑 같은 이치다.
▶의문: 심각한 상황인 거 맞죠···?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 맞아, 교생 아가씨!
죽을 때까지 엉덩이에 코르크 마개를 박고 살아야 하니까. 루시퍼가 우는 소리만 들어도 토악질하는 트라우마는 덤.
▶소름: 서대륙이 이렇게 무서운 곳인 줄 몰랐어요.
...음? 교생 아가씨는 루시퍼를 안 먹었어?
▶추억: 네. 원주민들이 이 파리를 먹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와 동료들은 영주의 배려로 평범한 식사를 했어요. 아! 이 앞의 강에서 잡은 생선이라고 설명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강한수 생도님이나 다른 생도들에게 파리만 대접하는 게 이해가 안 돼요. 분명히 같은 영주인데···.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졌다.
나는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으며 영주에게 물었다.
“영주님. 이 영지 앞에는 산맥에서 내려온 물줄기가 모여들어서 형성된 강이 흐르고, 거기에는 적지 않은 물고기가 사는 거로 압니다. 그런데도 저에게 루시퍼 요리만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오! 거기까지 파악하셨습니까? 맞습니다. 이 영지의 특산물에는 민물고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강에는 강력한 몬스터가 배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선요리는 중요한 손님이 올 때만 대접합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영주.
나는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걸 느끼며 정중히 물었다.
“저는 중요한 손님이 아니란 겁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동료라고는 머리 위에 붙은 파리 여자가 전부고 실력도 미덥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
“용사님께서 지금보다 대접받고 싶으시다면 우수한 동료를 많이 모으시고 실력도 더 쌓···. 꾸엑?!”
나는 영주의 턱주가리를 후려치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왜 여태 간과했을까? 이 소심한 영주의 포지션이 만두 국왕이랑 똑같다는 것을.”
MAX급 용사님에게는 동료 따위 필요 없다는 것을, 이 영주의 허리디스크에 새겨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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