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177화 (177/430)

 177화

[11회차] 낚시

현재 내 능력치는 대단하지 않다.

최초의 정령이 해준 조언도 있어서 몬스터 사냥을 하지 않았고, 스킬은 초월영역이 몇 개 있지만, 일개 영주보다 못한 수준이다.

종족을 빼고 보면 약하다.

그리고 원주민은 타인의 종족을 볼 수 없다.

“잘했다! 마약 용사! 우주에서 가장 고결하고 아름다운 최초의 정령인 나를 파리 취급하다니! 그리고 마약 용사에게 동료는, 나와 아이들이면 충분하지!”

최초의 정령이 내 머리 위에서 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칭찬했다.

“너희는 동료가 아니라 더부살이지.”

“건물주와 거주민은 공생관계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 건물을 많이 가진 건물주는 망하게 되어있어. 명심해.”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이 빈 건물로 산다만?”

정령들에게 성추행당하며 사는 내가 특이한 거다.

“너는 인간이 아닌 정령이다. 아무튼, 정령이라고. 정령은 혼자서 살 수 없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최초의 정령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니 의심하지 말지어다! 그것이 자연계의 정설이다!”

“......”

1회차 때, 내 파티의 동료 숫자는 무한정 늘지 않았다.

내 동의도 구하지 않고 새로운 동료가 멋대로 들어오지만, 평생 모험이란 걸 해본 적도 없는 자들이 잘 적응하겠는가?

민폐나 끼치다가 모험 중에 탈락한다. 운 좋게 적응해낸 녀석들도 던전 탐사나 전투로 사망한다.

그렇게 보면, 검왕 알렉스는 정말 대단하다.

찰거머리 라누벨조차 무너지는 던전에 깔려 퇴장했는데, 이놈은 초창기부터 죽지 않고 마왕의 성까지 따라왔으니까.

“영주님. 아직도 동료 타령할 거야?”

“으으….”

“아름다운 아내분의 허리가 예쁘게 돌아가는 걸 보기 싫으면, 이 용사님의 말을 들어주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남편이 맞든 말든 얌전히 앉아있는 영부인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마, 말하십시오! 그러니 제 아내만은…!”

턱주가리가 퉁퉁 부은 영주는 망설임 없이 백기를 들었다. 자기 고통보다 아내를 더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그 마음을 존중하는 의미로, 공정한 거래를 이어갔다.

“우선, 용사들을 풀어줘. 사람이 말이야. 맛없는 음식에 울컥해서 손이 미끄러질 수도 있는 거지. 세상을 구원할 귀중한 손님에게 이러는 거 아니야. 내 말이 틀렸어?”

“용사님의 말씀이 지극히 옳습니다! 아내만은 제발…!”

중앙대륙의 만두 국왕도 왕비에게 꼼짝 못 했었다. 그런데 이 영주도 아내를 끔찍이 아끼고 있었다.

나는 정의로운 용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주님. 당신의 올곧은 순애를 믿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런 저에게 실망을 안겨주시면 영부인을 고블린들에게 던져줄 겁니다.”

“그, 그런…!”

“이해하셨지요?”

“네! 절대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마쳤다.

*

소중한 괄약근을 영원히 잃어버릴 뻔한 F급 용사들은, 위대한 MAX급 용사님의 활약으로 고문에서 해방됐다!

하지만 살짝 늘어진 괄약근만큼, 완전히 넋을 놔버린 그들이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추가로 약 30명이 소환되며 합류했다.

이렇게 해서 총 101명.

“헤헤, 헤헤헤….”

“당신은…!”

원래는 2명이 이탈해서 99명이어야 정상이지만, 요정산맥에서 만난 커플이 재합류하면서 101명이 됐다.

굉장히 특수한 상황이었다.

“회귀를 안 하고 부활하네.”

마치 게임처럼.

캐릭터가 죽으면 특정 포인트에서 약간의 패널티를 받고 재시작하는 롤플레잉 게임이랑 비슷했다.

즉, 이들은 죽어도 여기서 탈출할 수 없다.

그러면 무한정 죽어도 괜찮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커플의 레벨과 스킬이 꽤 하락했다.

▶희망: 강한수 생도님. 이 먼지들을 도와주실 거죠?

그럴 예정이야, 교생 아가씨. 나는 오지랖 넓고 정의로운 MAX급 용사님이니까.

절대로 성적표 때문이 아니다.

가장 먼저, 주민보다 약한 용사들을 어떻게든 성장시켜야 했다.

커플 같은 복학생들은 능력치가 고블린 수준은 됐지만, 회귀했거나 처음 납치된 새내기들은 1레벨.

이들은 정말 먼지처럼 쓸려버릴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용사의 특전인 경험치 500%. 이걸 잘만 활용하면 단시간에 강해지는 것도 꿈은 아니다.

여기는 기회의 땅이니까.

일반적인 판타지아 대륙에선 500레벨 넘는 몬스터가 적었다. 몬스터 무리의 보스쯤 돼야 레벨이 높은 탓이다. 그래서 레벨은 어느 순간부터 정체기에 접어들게 되어있다.

그건 내 1회차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 뒤에도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제군들은 현재 지나가는 주민A보다 약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선량한 영주를 습격한 죄는 제가 좋게 대화로 무마했습니다. 이 영지는 안전합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성장에 종사하십시오.”

이 입학시험장에는 500레벨 넘는 존재가 제법 흔했다.

그래도 언젠가 정체기에 접어들긴 하겠지만, 그전에 대륙이 전투의 여파로 가라앉을 것이다.

왜냐?

차원에 사는 존재들의 능력치가 대폭 상승했다.

반면에 대륙은 어떤가?

이 연약한 땅은 그런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

서대륙의 생명력이 500HP라고 했을 때, 난폭한 용사와 몬스터가 전투로 자연을 파괴해서 5HP가 깎이는 수준이면 괜찮다.

그런데 이 입학시험장은 다르다.

서대륙 생명력은 500HP 그대로인데, 강화된 용사와 몬스터가 싸우면 200HP쯤은 순식간에 깎인다.

농구선수가 덩크를 하면, 골대가 파괴돼서 경기 진행이 힘들어지는 상황이랄까!

“잠깐! 네가 뭔데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커억?!”

“다른 질문?”

소집된 100명의 용사는 침묵했다.

불우한 사고로 1명이 안타깝게 탈락하긴 했지만, 우리는 내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용사는 크게 4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었다.

복학생과 신입생.

괄약근이 멀쩡한 자와 헐거워진 자.

성별과 나이, 국적, 외모는 여기서 의미가 없었다. 서대륙에서 살아남으려면 전투력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부 따로 관리해야 했다.

나는 어느 정도의 레벨과 경험이 있는 복학생이면서, 괄약근도 멀쩡한 용사들을 B급으로 정의했다.

1레벨 신입생이긴 하지만, 괄약근이 무사해서 미래가 장밋빛으로 밝은 친구들은 C급.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으나 쌓아둔 능력치 덕분에 쓸모가 아직 있는 복학생들을 D급, 그리고 이 외의 나머지는 E급.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은 맛좋은 식량 확보입니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이 영지의 동쪽에는 강이 흐릅니다. 그리고 이 강에는 통통한 물고기가 다수 서식하지요. 감 잡으신 분도 있는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부터 할 일은 강을 점령하는 겁니다.”

“물고기…!”

“물고기라고?!”

“오! 물고기!”

썩은 동태 같았던 용사들의 눈빛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벌써 이틀째 루시퍼만 먹은 그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어줬다.

나는 이어서 설명했다.

“지금부터 임무를 나누겠습니다. B급은 영지부터 강까지 이어지는 길목을 정리합니다. C급은 물고기 낚시, D급은 물고기를 실은 수레 호위, E급은 수레를 끌고 물고기를 나릅니다. 질문 있습니까?”

“회무침…!”

“생선구이…!”

“매운탕…!”

이미 눈이 돌아간 용사들은 불만 없이 수긍했다.

물고기를 실을 수레는 영주에게 빌리고, 무장도 루시퍼 번데기로 만든 범용갑옷과 뼈로 만든 칼로 저렴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힘차게 출발!

▶감탄: 놀랐어요. 동료를 꺼리는 강한수 생도님께 무리를 통솔하는 재주가 있으리라고는….

교생 아가씨.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망명자 신세였던 공주님 뱃속에서 태어난 나는 1살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북대륙 절반을 정벌하고 황제에 올랐다.

북대륙 원주민들에게 “황제 폐하는 아무튼 귀엽습니다!”라고 정평이 날 정도로 평가가 좋았던 MAX급 용사님에게, 100명의 잡것을 통솔하는 건 일도 아니다.

▶수긍: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판타지아 원주민이 꼽은 가장 귀여운 용사 1위에 강한수 생도님이 뽑힌 걸 보고.

내 귀여움은 과학이야, 교생 아가씨.

어머니는 내가 어릴 적에 아무리 울고 떼써도 테니스라켓으로 때릴 수 없을 만큼 귀여웠다고 하셨어.

“오, 오크다!”

“물러서지 마! 우리는 할 수 있어!”

“이 앞에 물고기가 있다!”

“와아아아!”

영지의 안전지대를 벗어나자마자 위기가 찾아왔다.

그 능력에 맞춰서 잡것들의 역할을 분담하긴 했지만, 일단은 강까지 함께 길을 뚫을 필요가 있었다.

역할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헐거워진 괄약근의 회복이 빠르거나, 신입생 중에서 떡잎이 괜찮은 친구는 A급으로 올려서 특별지도할 의향이 있다.

그 반대로 F급이 된 자들은 거름제조기로 쓸 생각이다.

아무튼,

“GuGu!”

“BuBu…!”

“VuVu!”

100명의 잡것 앞에 출현한 오크는 10마리였다.

놈들의 목적은 추운 서대륙에서 자신의 몸을 뜨겁게 달궈줄 인간 암컷과 루시퍼보다는 맛있는 인간 수컷의 고기였다.

오크들의 능력치는 고블린보다 높았다.

▷종족: 오크

▷레벨: 956

▷직업: 도적(약자→행운↑)

▷스킬: 체력SSS 맷집SS 내성SS 야성SS 근력SS…

▷상태: 흥분, 광기

여기가 평범한 판타지아 대륙이었다면, 이 오크 1마리가 용사를 쓰러트리고 아름다운 암컷들을 빼앗아서 하렘을 꾸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쪽도 일단은 평범하지 않았다.

용사가 무려 100명이나 됐으니까!

“돌격…!”

“Kuu…!”

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는 두 종족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비장감만은 인류의 운명을 건 대전투처럼 웅장했다.

복학생들은 수많은 모험을 헤쳐오며 쌓아온 자신만의 독자적인 기술로 오크들을 상대했다.

검기, 마법, 무술, 비기….

그런데 오크들도 만만치 않았다. 여기가 평범한 판타지아 대륙이었다면 진즉 경험치가 됐을 텐데….

놈들은 돼지 탈을 쓴 무술의 달인이었다.

“Puuuu!”

“컥?!”

“아앜?!”

“꺅?!”

오크들은 교미 외에는 관심 없는 것 같은 얼굴과 표정으로 현묘한 손동작을 펼치고 있었다.

주먹이나 발을 내지를 때마다 용사들이 픽픽 쓰러졌다.

그래도 신은 용사들을 버리지 않았다.

“앗?! 보지 마-!”

“FuFu…!”

루시퍼의 껍데기로 만든 조잡한 갑옷이 파괴된 여성 용사들의 가슴과 엉덩이가 사방에서 노출됐다.

그 가파른 계곡에 오크들의 시선이 고정됐다.

실력과 능력치는 높아졌으나, 정신상태는 ‘평범한 오크’의 수준 그대로였던 탓이다.

푹! 푹! 푹!

수컷만 존재하는 몬스터 종족의 치명적인 약점을 파고든 비열한 용사들의 미인계에 현혹된 오크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후세에는 암컷도 있는 종족으로 태어나길. 몰랑.”

멀찍이 떨어져서 상황을 살펴보던 나는, 끝끝내 전멸한 오크들의 명복을 빌어줬다.

용사들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오크들이 생포할 목적으로 살살 공격한 여성 용사들은 무장해제되고 말았지만, 짝짓기 경쟁자로 취급된 남성 용사는 사망자와 중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그래도 전체 전투력은 감소하지 않았다.

오크 10명을 처치한 10명의 용사가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찰떡.”

그리고 성녀H의 부활로 다시 100명을 채웠다. 무장도 수레에 실어온 예비품으로 보충했다.

용사들의 모험은 계속돼야 하니까.

그들은 반나절 사투 끝에, 넓고 푸른 강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고기~ 조개~♬”

“참치~ 새우~♪”

“연어~ 고등어~♬”

여기저기서 자작곡이 들려왔다.

민물과 바닷물을 구분 못 하는 바보들이 많았지만, 죽었다가 되살아난 사람에게 제정신을 바라는 건 무리였기에 가만히 놔뒀다.

그때,

“월척이다!”

영주에게 빌린 낚싯대와 그물로 한창 강가에서 낚시하던 용사 중 하나가 외쳤다.

과장이나 농담이 아니었다.

그의 낚싯대는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휘어져 있었다. 대단히 큰 놈이 미끼를 문 게 틀림없었다.

“도와줄게!”

“같이 잡아요!”

“파이팅!”

용사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리고 일부는 함께 낚싯대를 당기며 도왔다.

“오오!”

“오오오!”

마침내 물고기의 시커먼 등이 수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어째선지 그 크기가 멈추지 않고 계속 커졌다.

계속, 계속….

촤아아아- 덥썩!

물 밖으로 뛰어오른 물고기가 뭉쳐있던 잡것들을 휩쓸었다. 아귀처럼 커다란 입으로 100명이나 되는 인원을 한순간에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유유히 강으로 돌아갔다.

“...전략을 다시 짜야겠는걸.”

“Greee?”

뻐끔뻐끔….

직후에 그 물고기를 잡아서 쑥떡의 등에 실으며, 나는 전략을 보강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 동향 사람들은 약해도 너무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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