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11회차] 대동단결(大同團結)!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를 생성한 나는 짝퉁 라누벨을 향해 살포시 도약했다.
우주의 협찬으로 공기저항 같은 물리법칙에서 한없이 자유로운 내 기동력은 스스로 생각해도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목적은 짝퉁 라누벨의 목.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휘익- 팅!
하지만 짝퉁 선배가 성검2로 내 진로를 방해했다. 순간이동이라고 불러도 믿어질 정도로 눈 깜빡할 사이에 난입했다.
그리고 나를 밀어붙였다.
“사칭범답게 비열하군! 귀여운 소녀를 노리다니!”
이제 막 ZZZ급 스킬 하나 만든 나는 능력치가 빈약한 편이다. 반면에 눈앞의 짝퉁 선배는 스킬 구성이 빵빵했다.
설상가상으로 레벨도 밀리는 상황!
하지만 내게는 성검 뉴클리온이 있었다.
쩌적, 쩍-
짝퉁 선배의 성검2가 견디지 못했다.
이 입학시험장의 효과로 능력치가 올라갔지만, 착용한 장비는 여기에 한참 부족한 탓이다.
심지어 성검2는 분할된 성검이다.
별을 깎아서 만든 순수한 성검 뉴클리온에 대적할 수 없다.
“어, 어떻게 사칭범 따위의 성검이…?”
자기의 성검 상태를 파악한 짝퉁 선배가 혼란스러워했다.
성검은 ‘절대’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표현이 살짝 과장되긴 했지만, 그만큼 성검은 칼날이 날카로우면서도 단단하고 복구기능도 우수하다.
그런 성검이 부서지려 한다.
“당연하지. 내가 진짜니까!”
나는 그렇게 외치며 몸을 뺐다.
어설프게 뒷걸음질하며 허점을 드러내지 않았다. 날갯짓으로 단숨에 추진력을 얻어서 방향을 틀고, 용사님이 싸우는데도 멀뚱멀뚱 관전하는 쓰레기 동료들을 노렸다.
이번에는 누가 좋을까? 아!
고민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라누벨은 순수하게 내 개인적인 감정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분석하면 치유사부터 사냥하는 게 답이다.
성녀A, 성녀B, 성녀C.
판타지아 대륙에서 활동하는 모든 성녀가 한자리에 모였다.
교리와 자존심 등의 문제로 함께 행동하는 법이 없다는 성녀들이 자연스럽게 동행하고 있었다.
이것도 시대의 차이인 걸까?
당장은 아무래도 좋았다.
“헉! 막아요!”
“놈이 이쪽으로 온다!”
“용사님~!”
화들짝 놀라는 짝퉁 용사의 동료와 하렘. 나는 완벽하게 기습으로 끝장내고 싶었지만, 이들의 능력치도 상당히 높았다.
내 움직임을 파악하고 반응을 보였다.
성녀들이 정중앙에 서고, 그 주위를 마법사와 궁수 같은 원거리 공격수가 감쌌다. 이렇게 형성된 진형의 외각은 알렉스와 기사왕처럼 맷집 좋은 녀석들이 서서 보호했다.
그 외의 나머지는 스스로 지키는 자유행동이다.
“얍!”
내 측면에서 찌르듯 들어오는 도적 요정. 일리나를 닮은 이 여성의 가슴도 가짜일까?
당장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녀를 향해 성검 뉴클리온을 휘둘렀다.
방어는 하지 않는다. 비실비실한 요정이랑 한 대씩 주고받으면 누가 더 손해인지는 계산해볼 것도 없으니까.
휙~
내 목을 찌를 기세였던 짝퉁 일리나의 단검이 빗나갔다.
두 눈을 토끼처럼 휘둥그레 뜬 것만 보더라도, 그녀 자신도 믿기지 않는 실수인 것 같았다.
반면에 나는?
“네 상대는 나다!”
...짝퉁 일리나의 머리를 쪼개기 직전에 또 난입한 짝퉁 선배. 혀를 찬 나는 다른 먹잇감을 노렸다.
아쿠아, 도적왕, 현자, 요정왕, 하렘….
하지만 짝퉁 선배의 방해로 단 한 번도 성공하질 못했다. 자잘한 상처는 줄 수 있었지만, 그때마다 성녀들이 나서서 순식간에 회복시키는 바람에 헛수고로 끝났다.
내 머리카락을 붙잡고 롤러코스터를 타듯 즐기던 최초의 정령이 깐죽거렸다.
“내가 말했잖아. 저 녀석은 아군 보호에 특화됐다고. 자기 동료와 여자들에게 자체 제작한 마법 도구를 하나씩 줬다. 거기에는 도구 근처로 곧장 순간이동 하는 마법진과 좌표가 새겨져 있다.”
“참 일찍 말해주네!”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 짝퉁 선배의 무기인 성검2가 부서지기 직전이었으니까.
동료 앞으로 순간이동 해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이게 또 간단하지 않았다.
“성물이여! 나를 도와다오!”
남대륙의 성녀B가 지키고 있던 성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생긴 거는 누더기 같은 걸레 조각이지만, 이걸로 문지르면 어떤 물건이든 원상태로 복구된다.
성검도 예외는 아니었다.
짝퉁 선배는 이어서,
“성스러운 존재여! 성스러운 용이여! 성스러운 그대여! 나에게 그 힘을 빌려줘!”
상태에 표시된 성스러운 시리즈들이 줄줄이 소환됐다.
성수, 성룡, 성녀.
그렇게 소환된 성수는 일전에 내가 북대륙의 설산M에서 마주친 이족보행 고양이였다. 성룡은 처음 보는 녹색 용이었고, 성녀는 ‘황녀의 가터벨트’에 담겨있던 장례식장 기억에서 보았다.
우주의 협찬도 이 순간만은 도움이 안 됐다.
짝퉁 용사가 중화하는 탓에 하늘에서 운석이 더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 외의 자연재해도 도움이 안 되긴 마찬가지.
단, 내게 닿는 공격도 없었다.
“콜록콜록!”
“이, 이런 실수를…. 콜록!”
“쿨럭! 뒤를 부탁해!”
짝퉁 용사 파티에 소속된 현자와 마법사들은 갑작스러운 마력 폭주로 자멸하며 쓰러졌다.
궁수들은 활대가 부러져서 어쩔 줄 모르고, 성녀들은 뜬금없이 자신의 신앙을 의심하며 번뇌에 빠졌다.
애초에 전투력이 미미한 하렘은, 용사랑 결혼해서 팔자 고쳐보려는 흑심과 욕망으로 가득한 사설응원단이기에 논외….
실질적인 전력은 몇 명 안됐다.
“내 여동생을 닮은 저 보리스란 여인은 정말로 요정인가?! 어떻게 저리 탐스러운 과실을 하찮은 요정 따위가…. 만져볼 수 있으면 죽어도 여한이…. 흠흠!”
“엘브하임. 나는 그대랑 같이 싸울 수 있어서 대단히 유감이야.”
“거의 날마다 새로운 과실을 만지고 있는 부러운 도박왕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진 않네만?”
“하핫! 아무튼, 평소에 운이 나쁜 친구들은 다 나가떨어진 것 같은데…. 이 세상에 우연은 없지.”
스킬 행운 등급이 높은 자들만이 우주의 협찬을 피했다.
짝퉁 요정왕, 도박왕, 검희, 도적왕.
2남 2녀로 구성된 그들은 짝퉁 선배를 도와서 나를 압박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내가 동료로서 다 만나봤던 자들. 전투 스타일을 완벽하게 꿰차고 있다.
문제는 짝퉁 선배다.
번쩍! 번쩍! 번쩍!
순간이동으로 이리저리 나타나면서 동료의 공격을 보조하거나 위기에서 구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성수, 성룡, 성녀가 합세했다.
이쯤 되니, 우주의 협찬으로도 회피가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
“비열한 우정의 힘…!”
일대일로는 내 상대가 안 되는 약자들이 똘똘 뭉쳐서 압박해오고 있었다. 날마다 놀아서 약한 연놈들이 단합하여, 성실함으로 강해진 사람의 노력을 비웃으려 한다.
불합리와 부조리의 극치!
하지만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패배는 기정사실이었다.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도 벌써 한 차례 잘렸다. 앞으로 재생성할 수 있는 횟수는 2번. 그 뒤에는 골다공증의 위험이 있어서 어렵다.
나는 희생이 불가피함을 느꼈다.
이 전투에서 능력치만 따지면 짝퉁 선배 다음으로 강한 보리스는, 성수와 성룡을 견제하면서 자기 역할과 몫을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둘은….
“찰떡, 쑥떡.”
나는 이를 악물며 소환했다.
성녀H와 녹색 헤즐링은 ZZZ급을 기본으로 깔고 있는 이 싸움에 끼기에는 한참 부족하지만, 지금의 열세를 뚫고 짝퉁의 숫자를 줄여서 역전을 꾀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주인님께서 불러주시길 기다렸습니다.”
“그래….”
나는 찹찹한 심정으로 성녀H의 인사에 응했다.
성녀라는 직업을 떠나, 야만적인 판타지 세계에서 불평불만 없이 내게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여자다.
그 세월이 어느새 50년.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방앗간을 찾던 내가, 완전히 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그녀였다.
이런 곳에서 희생시키는 나를 용서하지 말…. 음?
▷종족: 홀리 엔젤
▷레벨: 9999+
▷직업: 성녀(신앙→부활↑)
▷스킬: 신앙G 심판ZZ 응징ZZ 조련ZZ 비행Z…
▷상태: 거룩
능력치가 이상했다.
다른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신앙의 상태가…?
그녀의 출현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어느새 들러리가 돼버린 망령왕 섹스피어였다.
“크아아앜~?! 내 누우운~?!”
안 그래도 1레벨로 떨어져서 쩔쩔매던 5대 재앙은 G급 신앙으로 무장한 눈부신 천사의 자태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당장에라도 숨넘어갈 듯이 몸부림쳤다.
“이, 이런…!”
망령왕 섹스피어가 소멸하면 형체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눈치챈 짝퉁 선배가 스킬 ‘용자’를 서둘러 해제했다.
그 덕분에 소멸은 면했지만, 망령왕 섹스피어는 초라하게 덜덜 떨면서 흙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무서운 현실을 외면하듯이.
“3년 동안 주인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 그렇구나!”
예전부터 쭉 느껴왔던 사실이지만, 판타지 세계의 성직자들은 용사보다도 사기다.
기도만 해도 강해질 수 있다니!
그 마음이 진실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아무리 기도해도 물질적으로 보답해주지 않는 지구의 신들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니 어찌 안 믿을 수 있겠는가?
“Greeee~!”
쑥떡도 내가 잠든 3년 사이에 더욱 성장했다.
능력치의 스킬은 3년 전이랑 큰 변화가 없었지만, 레벨이 대폭 오르고 덩치가 황혼기 뇌비우스의 발바닥만 해졌다.
절대로 작은 게 아니다.
“RuRu?!”
“RuRu…!”
겁에 질린 루시퍼 무리가 썰물처럼 빠졌다.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질 때도 꿈쩍하지 않던 놈들이 새끼용에게 겁먹고 도망친 것이다.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활짝 펼쳐진 쑥떡의 날개가 하늘을 완벽하게 가린 탓이다.
“저 헤즐링은…?!”
유리로 덮인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려다보는 쑥떡을 올려다보며 격하게 반응하는 존재가 있었다.
짝퉁 선배가 소환한 성룡이었다.
전투적인 여성형 드래고니안 형태로 보리스를 상대하던 그녀는 거대한 용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쑥떡에게 말을 걸었다.
“G, Gree…?”
“Greee?”
“Gree, Gree.”
“Greeee-!”
나는 통역A를 가졌지만, 용들의 언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늘에서 마주친 두 용은 싸우지 않고 끊임없이 대화했다.
나로선 나쁘지 않았다.
성룡과 쑥떡이 싸우면 능력치와 덩치에서 전부 밀리는 쑥떡이 패배할 테니까. 저렇게 시간을 끌어준다면 나로선 고마울 따름.
“안 본 사이에 쑥떡도 눈치가 제법 빨라졌군.”
적의 용(龍)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자기가 어떤 식으로 지원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녀석에게서 전투의 소질을 마침내 발견한 것 같아서 기분이 약간 좋아졌다.
이대로 악룡까지 무사히 성장해다오!
“사칭범! 숨겨둔 동료가 있었- 말 좀 하자!”
“쯧!”
도박왕에게 목디스크를 선물해주기 직전이었던 나는, 한순간 긴장을 놓은 줄 알았던 짝퉁 선배의 방해로 실패했다.
반응속도가 괴물 수준이다.
그렇다면,
“찰떡.”
“신(神)의 뜻대로. 일어나라, 나의 용사여!”
성녀H가 자신의 레벨을 희생해서 죽은 자들을 부활시켰다. 섹스피어의 기억소생이랑 다르다.
이 땅에서 죽은 자들을 살려내는 것이다.
육체가 없어도 상관없다. 성녀H가 만들어준 새로운 육체로 새로운 삶을 얻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이것이 신앙G로 강화된 성녀의 힘이었다.
“섹스피어! 죽어서도 잊지 않았다!”
“내 아내의 원수! 섹스피어!”
“망령왕이여! 내가 지옥에서 돌아왔다!”
망령왕 섹스피어의 사령술 실험에 희생되거나 고문으로 죽은 망령들이 성녀H의 부름에 응하며 부활했다.
그 숫자가 무려 100만!
대부분이 흡혈귀와 인간이었고, 간간이 천사와 악마가 섞여 있었다.
그들은 생전 스킬을 고스란히 계승했지만, 전부 1레벨이고 알몸이라서 전투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용사답게 정정당당하게 싸우자고.”
나는 히쭉 웃으며 ‘직업 효과’를 활성화했다.
1레벨로 대동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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