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183화 (183/430)

 183화

[11회차] 위대한 그분

나의 새로운 직업 용자.

동료들이랑 시시덕거리며 놀아도 문제없도록 도와주는 초보자용 직업 ‘용사’ 따위하고는 격이 다른 환상적인 성능을 자랑했다.

▶직업: 용자(전원=1레벨)

이 일대의 모두가 공평하게 1레벨로 하락했다.

초월영역 스킬들은 워낙 고효율이라서 1레벨로 떨어져도 그럭저럭 성능을 발휘하지만, 그 초월영역을 보조해줄 일반영역 스킬이 무력해지면 제대로 된 실력을 낼 수 없다.

“이것은 용자…!”

그 창시자인 짝퉁 선배가 변화를 바로 눈치챘다.

안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진 않지만.

“전부 죽여!”

“복수다!”

“망령들을 쳐부수자!”

“성녀님을 위해!”

부끄러운 부위를 덜렁덜렁 흔들며 나아가는 100만 대군. 그 광경은 엽기적인 스트립쇼를 넘어서서 공포와 광기에 가까웠다.

여기에 대항하는 간악한 무리는?

“사람들이 몰려와요!”

“저 광신도들은 대체 뭐야?!”

“어서 마법으로 날려버려!”

“하지만 레벨이…!”

동료와 하렘을 합쳐서 약 30명쯤 되는 인원이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굳게 먹고 싸우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용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저 신뢰의 눈빛을 잘 알고 있다.

“용사님께서 어떻게든 해결해주실 거란 믿음! 아주 영혼부터 구역질이 치솟는 태도들이야!”

지금, 내가 그 믿음을 깨주겠다.

모두가 공평하게 1레벨.

무장과 스킬은 짝퉁 용사 파티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지만, 그래 봤자 고작 30명이고 이쪽은 100만이다.

쾅! 콰앙! 파지직!

초월영역에 접어든 마법과 마술 등이 포물선을 그리며 돌격 중인 100만 대군 중앙에 떨어졌다.

여기에 휘말린 수만 명이 죽거나 다쳤지만, 성녀H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광신도들은 멈추지 않았다.

“Goool~!”

“Siiiil~!”

성룡왕과 선룡왕이 가증스러운 금발, 은발의 미소녀에서 거대한 용의 모습으로 형태를 바꿨다.

1레벨로 떨어졌어도 용족(龍族)은 강력했다.

하늘로 날아오른 용이 토해낸 숨결에 맥없이 노출된 수십만 명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두 용의 만행은 계속되지 못했다.

“사악한 용에게 천벌을 내리마!”

“함께 죽자! 도마뱀!”

날개를 활짝 펼친 나체가 무척 자연스러운 천사와 악마들이 합심해서 용을 무찌르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들에게 용의 단단한 비늘에 상처를 줄 무기는 없었지만, 날개의 얇은 피막을 찢으며 비행을 못 하게 방해했다.

피용- 푹! 푹! 푹! 푹!

망가진 활대를 어찌어찌 고친 궁수들도 활을 쏘았다.

한 발, 한 발이 강력했다.

알몸의 비무장 광신도들을 수백 명씩 관통하며 꿰뚫었다. 하지만 화살이 무한하지 않았기에 금방 활대를 버리고 근접무기로 전환했다.

“광신도가 많이 줄었어!”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않나요?”

“나의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지!”

“하하! 난전은 내 전문이라고!”

100만에 달했던 광신도는 어느새 1만도 남지 않았다.

똑같이 1레벨이라도 초월영역 스킬을 다수 보유한 용사 파티가 그만큼 강하다는 방증이었다.

그리고 이건, 초월영역 스킬이 레벨의 영향을 확실히 덜 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다시 일어나라, 나의 용사여!”

성녀H가 돌격 중에 쓰러진 99만의 광신도들을 되살렸다. 이번에는 레벨도 소모하지 않았다.

대신, 부활한 자들의 스킬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숫자상으로는 단 1명의 전사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1레벨 상태에선 초월영역 스킬 외에는 큰 효과가 없기에 없으나 있으나 전투력은 별 차이 없었다.

“마, 맙소사!”

“전부 살아났다고?”

“불사의 군대….”

기세등등했던 짝퉁 용사 파티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숫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100만.

하지만 거리는 발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워졌다. 그래서 짝퉁 용사 파티는 각오를 다질 틈도 없이 그들을 맞이해야만 했다.

마침내 두 무리가 충돌했다.

사실, 충돌이라고 말하기도 미안한 수준이었다. 해일을 만난 양 떼처럼 한순간에 쓸려버렸기 때문이다.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알렉스와 기사왕이 10초쯤 버텼지만, 결국에는 인파(人波)에 파묻히고 말았다.

“알렉스! 조금만 더 버티- 아아! 너마저…!”

순간이동으로 동료들 사이를 누비며 광신도들을 잔인하게 도륙하고 다니던 짝퉁 선배가 탄식했다.

레벨이 멀쩡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화기애애 혹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누가 더 많이 죽이는지 내기하며 자신의 기술을 마음껏 자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꺄아앜?!”

“용사님! 살려- 아악?!”

“꺅~?!”

용사에게 잘 보이려고 가슴과 배꼽, 허벅지 등을 거침없이 노출한 복장의 여성 동료와 하렘이 전멸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말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들의 얄팍한 옷은 금방 찢어져서 사라지고, 아름답게 기른 머리카락은 두피째 뜯겨나갔다.

남성 동료도 큰 차이는 없었다.

좀 더 오래 버티긴 했지만, 숫자의 폭력 앞에 무너졌다. 사람의 무게에 눌린 채 갑옷을 해제당하고 그 뒤에는 여성 동료들이랑 비슷한 신세가 됐다.

손가락에 눈알을 찔리거나 파인 그들의 두 눈에서는 피가 끊임없이 흘렀고, 고통으로 벌어진 입은 뺨까지 찢어지고 이빨도 대부분 빠지고 없었다.

그리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발길질.

이전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졌다. 그래도 숨이 붙어있는 것은 압도적으로 높은 스킬 덕분이었다.

지금은 그게 원망스럽겠지만.

“안 돼~! 저리 비켜~!”

짝퉁 선배가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애쓰지만, 나는 철저하게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순간이동도 더는 쓸 수 없었다.

그가 동료와 여자들에게 나눠준 마법 도구를 광신도들이 전부 파괴했기 때문이다.

쿵! 쿠웅-!

종족 보정으로 가장 오랫동안 버티던 성룡왕과 선룡왕도 마침내 지상에 추락했다.

그 즉시, 커다란 딱정벌레를 사냥하고자 달라붙은 개미 떼처럼 성난 광신도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Goool~~~?!”

“Silll~~~?!”

두 용이 비명을 질렀다.

단단한 비늘로 보호받고 있지만, 바닥에는 유리가 많았다. 그중에 날카롭고 뾰족한 유리 조각을 주운 광신도들은 무기로 활용했다.

주르륵, 주륵….

제대로 된 손잡이나 장갑이 있는 게 아니었기에 손바닥에서 피가 흘렀지만, 그들의 개의치 않고 용의 비늘을 찌르고 벴다.

푹! 푹!

그리고 이 용들은 동료들의 무기에 절망했다.

알렉스의 검과 아쿠아의 창처럼 유명한 무기들이 두 용의 비늘에 아랑곳하지 않고 온몸을 난도질했다.

두 용을 끝으로 사실상 전멸한 셈이다.

남은 건?

“쑥떡. 잘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긍지 높은 녹색 용족이에요. 인간과 천사는 절대 당신의 부모가 될 수 없어요. 그리고 쑥떡이라니! 세상에 어느 부모가 그런 무성의한 이름을 자기 자식에게 짓나요!”

“두 분은 제가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오늘까지 사랑으로 키워주셨어요! 아버지가 엄격하시긴 하지만, 제가 훌륭한 용이 되길 바라셔서 그래요. 종족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저는 이 이름이 마음에 들어요. 아버지는 어머니를 찰떡이라고 부르는걸요!”

“...쑥떡의 몸에 흐르는 피는 저랑 진하게 공명하고 있어요. 그건 당신도 느끼고 있지 않나요? 그리고 어릴 적부터 남다른 덩치. 그것은 제가 사모하는 그분을 쏙 빼닮았어요.”

“제 덩치가 유난히 큰 이유는, 아직 알 속에 있던 저에게 아버지가 힘을 선물해주셨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과 관심이 상승효과를 일으켜서 지금의 제가 있는 거예요. 절대로 혈통이나 유전자 같은 게 아니에요.”

인간 형태로 바꾼 쑥떡과 성룡이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귀여운 소년과 농염한 미녀.

둘 다 녹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졌다.

저 음흉한 용은 순진한 쑥떡이 나를 배신하고 동족을 따르도록 회유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이 우량종 헤츨링은 꿈쩍하지 않았다.

성녀H의 훌륭한 조기교육 덕분으로 분석된다.

이건 나중에 꼭 칭찬해줘야지.

“배신자에게 끔찍한 고통을.”

“까으윽…?!”

신성한 짐승으로 불리는 이족보행 얼음 고양이를 부위별로 해체한 보리스의 손에는 피투성이의 짝퉁 성녀의 목이 쥐어져 있었다.

아예 싸움이 되질 않았다.

수많은 아수라장을 겪은 두 영웅과 왕자, 우월한 몸매의 천사가 합쳐져서 탄생한 이 정령은 1레벨로 하락했어도 막강했다.

가진 전투경험이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안전한 뒤편에서 관전만 해온 성녀와 타고난 능력으로 밀어붙이는 짐승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상대였다.

짝퉁 선배가 소환한 성스러운 존재들도 끝.

이제 본인만 남았다.

“용서할 수 없어! 용서 못 해!”

증오에 찬 눈으로 나를 노려본 짝퉁 선배가 도약했다.

1레벨치고는 굉장히 빠른 속도. 그리고 성검2에 담긴 기운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그 농도가 짙었다.

하지만 나는 미소 지었다.

끔찍하게 망가진 동료와 하렘을 보고 감정적으로 변한 상대. 그 움직임은 갓난아기의 사고방식처럼 읽기 쉬웠다.

빨리 나를 쓰러트리고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를 동료와 연인들을 구하겠다는 조급한 마음.

그만큼 검로(劍路)가 짧고 간결했다.

여기에,

“마약 용사! 내 활약을 잊지 마라!”

모든 정령을 설득한 최초의 정령이 호기롭게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그 자신감의 근거가 있었다.

파시시시….

땅, 불, 바람, 물, 마음, 빛, 어둠.

짝퉁 선배가 7가지 기운을 충돌 없이 조화시켜서 증폭한 ‘용자의 힘’이 조금 전까지 성검2를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 5가지가 정령들의 간섭으로 사라졌다.

남은 건, 빛과 어둠뿐.

그 위력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뎅강- 촤아아악!

성검 뉴클리온이 약해진 성검2를 단숨에 베고 짝퉁 선배까지 수직으로 갈랐다. 아무리 대단한 용사님이라도 몸이 좌우로 이등분되면 살 수 없다.

하물며 이 용사님은 진짜도 아닌 가짜. 열혈 만화의 흔한 소재인 드라마 같은 패자부활전은 없다.

짝퉁 선배가 소환한 성수, 성룡, 성녀도 사라졌다.

“이제, 5대 재앙만 죽이면 서대륙 볼일은 끝나는 건가…. 어?”

후식을 기대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멈칫했다.

성녀H의 힘으로 부활한 광신도들이 둘러싸기만 하고 발길질하지 않는 짝퉁 동료가 있었던 탓이다.

나는 누군지 궁금해서 가봤다.

숙녀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어린 묘령의 여인.

하지만 성녀H의 명령을 받은 광신도들은 성별과 나이, 외모를 따지지 않는다.

나머지 짝퉁 동료와 하렘이 어떻게 됐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여인만은 멀쩡했다. 옷이 전부 뜯기고 검은색 가터벨트만 남았으나 피부에는 생채기 하나 없었다.

양팔로 가슴을 가린 여인이 떨면서 말했다.

“저는 비전투원이에요. 여러분에게 일말의 자비라도 있다면 민간인이나 다름없는 저를 살려주세요.”

“황녀가 무슨 민간인이냐?”

가만히 듣고 있다가 기가 막혔던 나는 딴죽 걸었다.

비범한 미모부터 평범이랑 거리가 먼데, 뻔뻔하게 민간인이라고 주장하는 그 여인은 신성제국의 간사한 여우인 황녀였다.

하지만 황녀는 간단히 인정하지 않았다.

“황녀요? 저는 중앙대륙 북서부의 조그마한 마을 출신이에요. 이 가터벨트를 얻고 용사님이랑 만나기 전까지는 평범한 마을 소녀였어요.”

“...그럴지도 모르지.”

나중에 그녀의 ‘설정’이 황녀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마을 소녀로 놔두기에는 너무 뛰어났으니까.

그러나 내 적이란 사실은 변함없었다.

스르릉-

나는 성검 뉴클리온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어째서 광신도들이 황녀의 옷만 찢듯이 거칠게 벗겨놓고 멀쩡히 놔두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대신 처리하면 될 사소한 문제다.

바로 그때였다.

몰랑몰랑.

황녀가 양팔로 껴안고 있던 것은 자기 젖가슴이 아니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써서 파악이 늦었다. 아니, 여기에 그분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위대한 존재께서 어째서 이런 누추한 계집의 품에…?”

몰랑몰랑!

마스터 몰랑이 황녀의 양팔과 가슴골 사이에서 빠져나오시더니, 그녀를 지키듯 몰랑거리셨다.

그리고 그 거친 율동을 본 나는-

쨍그랑!

심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성검 뉴클리온을 손에서 놓쳤다.

마스터 몰랑을 통해서 우주의 심연을 엿본 기분.

아직 정리되지 않았던 ‘유니버설 휴먼’의 종족특성인 ‘티끌만큼 제어하는 힘’에 눈을 떴다.

여기까진 좋은데, 우주 회장님이 손짓하는 환각이 아른거렸다.

내 본능이 대단히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위대한 마스터 몰랑! 여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저에게 변호사를 선임할 시간을…!”

나는 그 변명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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