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192화 (192/430)

 192화

[11회차] 연기를 아무나 하나!

남탕에 있는 용사의 숫자는 약 50명. 여기에 ‘용사 동료’로 추측되는 다양한 종족의 수컷들이 수백 명 섞여 있었다.

남대륙에 소환된 101명의 용사 절반에 해당하는 수였다.

나는 슬레이아스의 둥지에 남성 용사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은 확인이 어렵지만, 여탕에 나머지 50명이 있을 것이다.

용사 성별의 비율은 얼추 1대1.

이건 내 추측이 아니라, 서대륙에서 확인된 사항이다.

나도 남자라서 조금은 남성을 편들고 싶지만, 사회부적응자는 객관적으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내 편견이었다.

남자들은 공개석상에서 “나는 하렘왕이 될 거야!”라고 외치며, 자기가 사회부적응자란 사실을 감추지 않고 당당히 밝힌다.

반면, 여자들은 자기가 사회부적응자란 사실을 숨기는 편이다.

그리고 여성 졸업생에게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알렉스가 하렘의 일원이라니….”

그 마초가?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여성 용사들도 멋진 하렘을 꾸린다.

남성 용사가 미녀들을 편애하듯, 여성 용사는 미남들을 편애한다. 그리고 이런 성향이 판타지아 대륙의 역사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예를 들어, 암시장에 붙잡힌 요정 공주 실비아는 아웃(out)이다. 그리고 요정답지 않게 비실비실하지 않은…. 적당히 마른 꽃미남 스타일의 요정 왕자 나서스가 여성 용사들 사이에서 최고로 인기 좋은 훈남으로 통한다.

그 뒤를 바짝 추적하는 하렘 일원이 북대륙의 현자.

미남보다는 미소년이라고 불러야 할 이 친구는, 미녀만 보면 코피를 흘리는 불우한 체질을 타고났다.

하지만 여성 용사는 괜찮다.

현자가 코피를 쏟을 만큼 굉장한 미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남성 용사도 마찬가지. 판타지아 대륙 원주민들도 인정한 가장 귀여운 용사 1위인 나는 예외지만, 대다수 남성 용사는 부모님의 평범한 유전자를 이어받은 평범한 외모를 가졌다.

▶궁금: 강한수 생도님의 부모님은 어떠세요?

...내 부모님?

테니스 동호회를 꾸준히 다니셔서 몸은 굉장히 좋으시다.

하지만 얼굴 외모는 두 분 다 평범하신 편.

그래도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보자면, 내 귀여움을 누구에게 물려받은 건지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물론…. 유모도 빼놓을 수 없다.

이쪽은 객관적으로 완벽한 미색의 공주님 출신이니까.

“뭐야? 처음 보는 얼굴인걸.”

“어떤 용사의 동료인가?”

“직업이 도적이네. 스킬은 평범하고.”

“미친…. 저 레벨 실화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온천으로 들어온 내게 시선이 집중됐다.

그들은 용사답게 내 능력치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용사가 아닌 ‘용사의 동료’로 착각했다.

내 직업은 현재 ‘도적’으로 감춰져 있으니까.

약자 앞에서 행운이 올라가는 ‘도적’은 판타지아 세계관 최강의 직업 중 하나다. 하지만 농부 같은 생산직 다음으로 굉장히 흔한 직업에 속한다.

그러나 용사들은 나를 얕보지 않았다.

영재 ZZ등급 효과는 ‘평범한 척’하는 거지만 레벨만은 감추지 않도록 내가 설정해둔 덕분이다.

▷종족: 휴먼

▷레벨: 8467

▷직업: 도적(약자→행운↑)

▷스킬: 행운B 신성C 정령D 날조D 요리D…

▷상태: 양호

그 의도는 제대로 먹혔다.

살짝 아쉬운 점이라면, 우주 회장님의 집착 때문에 9999레벨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마냥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영재ZZZ 효과가 아니었다면 5000레벨도 못 넘겼으리라.

“어디 출신입니까?”

용사A의 질문에 나는 살짝 고민에 빠졌다.

사실은 나도 용사라고 밝힐지 말지를.

“북대륙의 어느 망국 출신입니다.”

아직 망하지 않았지만, 투신의 황금 골렘을 앞세운 신흥제국에 짓밟힐 예정이다.

나는 그 나라로 시집 간 공주님의 자궁에서 환생했고.

내 영혼의 고향은 지구의 대한민국이지만, 그래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저런….”

망국이란 표현에 질문했던 용사는 입을 다물었다.

판타지아 대륙에서 멸망하는 소국은 한둘이 아니니까.

넓은 땅을 보유한 영주가 반란을 일으켜서 나라를 세우고, 힘 좀 가진 평민이 영주를 몰아내고 왕을 자처하기도 한다.

그리고 금방 망한다.

주변 강대국들의 텃세가 심하기 때문이다.

▶질문: 그런데 강한수 생도님. 이 남탕에 수백 명의 수컷이 몰려있는데 어떻게 용사 49명을 눈 깜짝할 사이에 셀 수 있으셨나요? 방금 제가 일일이 세보고 놀랐어요.

교생 아가씨, 잘 봐.

여성 용사들이 엄선해선 고른 남성 동료들의 외모는 하나 같이 꽃미남이다. 그렇다고 비실비실한 기생오라비인 것도 아니다.

흉근, 복근, 대퇴근, 이두근, 삼각근….

여자들이 좋아할 단단한 근육으로 상체가 도배되어 있다. 얇은 천으로 가려진 하체와 허벅지도 대단히 건실했다.

능력치는 직업만큼 천차만별이니 논외.

반면에 용사들은 어떠한가?

평범했다.

제법 생긴 녀석도 더러 있었지만, 능력치 보정을 받은 몸치고는 대단히 부실했다.

그리고 또 다른 공통점으로는 표정.

내가 이 세계의 중심 혹은 주인공이란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내가 말을 걸면 어떤 여자라도 유혹할 수 있다고 떠벌렸다가 성범죄에 연루된 일부 남배우들처럼.

물론, 외모는 배우 쪽이 5단계쯤 위다.

못난 녀석들이 잘난 배우 같은 표정을 지으니 참….

“잠깐! 너는…. 음….”

이곳에는 구면도 있었다.

용사 루크.

한 번 졸업해서 지구로 귀환했었지만, 지구에서 외계인들에게 패하여 죽고 판타지아 대륙의 초등교육과정에 재입학한 용사다.

공략집으로 내 앞에서 우쭐댔었는데….

여전히 졸업 못 하고 있었다.

“저를 아십니까?”

나는 시치미 뚝 떼기로 했다.

마음껏 열람이 가능한 능력치를 맹신하는 용사라면, 내 직업을 보고서 비슷하게 생긴 다른 인물로 착각할 것이다.

그리고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내 외모는 정령이 되면서 미묘하게 바뀌었으니까.

노동에 찌든 현실적인 사회인에서, 몽환적인 분위기의 자유로운 영혼으로.

“...미안합니다. 사람을 착각한 모양입니다.”

천사의 옷이나 성검 뉴클리온을 봤다면 직업이 달라도 들통났겠지만, 현재 나는 알몸이고 빈손이다.

미묘하게 달라진 외모와 분위기, 직업, 종족을 본 루크는 쉽게 물러났다.

나도 마냥 능력치를 보여주기만 하진 않았다.

용사들의 것을 살펴보면서 눈여겨볼 자가 있는지 검색했다. 용사의 동료로 발탁된 판타지아 원주민 중에는 우수한 자가 많았지만, 그들은 논할 가치가 없었다.

뻥튀기된 것뿐이니까.

이 입학시험장을 기준으로 할 때, 용사의 동료가 되려면 초월영역 스킬을 5가지 이상, ZZZ급도 1가지쯤 보유해야 한다.

그게 최소 조건이다.

알렉스와 암흑공주, 암흑기사 등이 그랬다.

▷종족: 유니크 휴먼

▷레벨: 1715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포술MAX 명중MAX 관통MAX 궁술SSS 검술SSS…

▷상태: 의문, 노곤, 휴식

이 남탕에서 나를 제외한 용사 중 가장 능력치가 높은 루크의 능력치는 참으로 암울했다.

레벨 대비 균형은 잡혀 있지만, 경험치가 사방천지에 널린 이 입학시험장에서 3년 동안 고작 이것밖에 성장 못 했다는 사실이 대단히 놀라웠다.

루크가 완전한 신입생이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맨땅부터 시작하기엔 여기는 지나치게 허들이 높았으니까.

하지만 루크는 다르다.

마지막에 보았을 때도 900레벨쯤 했었다.

고블린과 슬라임을 사냥할 수 있는 수준만 되면, 성장할 준비는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고작 저 레벨과 스킬이라니….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서대륙은 평균 레벨이 2000이었다.

반면에 남대륙은 1400레벨.

고작 600레벨 차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 전투력은 구축함과 우주모함만큼 격차가 심하다. 애초에 노는 물부터 다르다.

“서대륙 용사들이 훌륭한 건가, 여기가 한심한 건가….”

경험치 덩어리인 루시퍼 때문에 서대륙 용사들이 유리했던 걸까? 하지만 그것까지 고려해도 이 레벨은 너무 심했다.

제대로 비교하려면 다른 대륙의 용사 능력치도 살펴봐야 했다.

그때,

“원정대를 모집합니다!”

탕에 온천수를 졸졸 내뿜는 용의 동상 머리 위에 올라선 한 용사가 위풍당당하게 외쳤다.

그 주위로 용사들이 우글우글 몰려들었다.

“이번에는 기필코 성공하리라!”

“내 정찰 스킬이 SSS등급으로 올랐지. 믿어봐.”

“흐흐! 내 오른손에 봉인된 힘을 깨울 때가 됐군.”

“나는 동지들을 위해 경비병을 맡도록 하지.”

용사들끼리 어딘가로 몬스터 사냥을 떠나는 듯했다.

알몸으로 할 대화는 아닌 것 같지만, 나도 성녀H나 페스티벌의 하녀A랑 그런 적이 종종 있었기에 부정적으로 보진 않았다.

중요한 건 결과잖은가?

향후 계획을 논할 때, 아랫도리가 덜렁거리는 알몸이라도 결과만 좋으면 과정과 방식은 상관없다.

“여기는 자발적으로 사냥하는군.”

판타지아 서대륙에서는 내가 일일이 용사들의 경추를 잡고 끌어줘야 해서 무척 번거로웠다.

그래서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성실한 용사들의 능력치가 어째서 저것밖에 안 되는 걸까?

이 온천의 주인인 빙룡왕 슬레이아스의 척추 마디를 하나씩 뽑으며 질문하면 알 수 있지….

“이봐- 켁?!”

뜨거운 온천에 몸의 절반을 담근 채 용사들의 열띤 단합을 구경하던 내 어깨에 잡것A가 손을 얹으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잡것A의 목에 먼저 손을 얹으며 호감을 표시했다.

“왜 불렀지?”

“이, 이, 일단은 이것부터 놓고-! 후우! 콜록콜록!”

목을 어루만지며 몇 차례 기침한 잡것A는, 그 과장된 리액션이 끝나길 기다리는 내 배려심과 인내심이 서서히 한계에 봉착하려고 할 때쯤에 이어서 말했다.

“저기에 낄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둥글게 모여서 속닥거리는 용사의 무리를 턱짓으로 가리킨다.

“처음부터 낄 생각은 없었다만…. 한다면 구경쯤?”

판타지아 남대륙에 소환된 용사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한 번쯤은 견식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잡것A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구경이 낀다는 소리잖아.”

“엄연히 다르지.”

사냥에 낀다는 건, 경험치와 전리품을 분배받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건 단순한 관전.

둘은 절대 같을 수 없다.

“아아, 심각한 착각을 하고 있었군. 이제 막 왔으니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다만.”

“...내가 착각을?”

60년 경력의 MAX급 용사님을 바보 취급하다니?

잡것A의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를 보면서 내가 견적을 뽑고 있을 때, 이번에도 잡것A가 한 박자 앞서서 설명했다.

“저들의 목적지는 여탕이거든.”

“...하아?”

“세상의 절반이 여자인데, 용사씩이나 되는 자들이 여자의 알몸 한 번 못 본 숙맥처럼 저러는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야.”

“......”

나도 용사들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지만, 잡것A도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용사이기 때문에 숙맥인 것이다.

사회부적응자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안 된다.

“내가 너무 많은 걸 기대한 모양이군…. 보리스.”

그렇게 원한다면, 요정과 천사의 장점들만 합쳐놓은 절세미녀의 알몸을 실컷 보도록 해주겠다.

“부르셨나요, 주인님.”

여탕으로 원정을 떠나는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던 남성 용사들이 보리스를 발견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보리스가 숨을 쉴 때마다 가슴과 날개가 파도처럼 출렁이고, 용사들의 두 눈도 거기에 맞춰서 상하좌우로 흔들렸다.

“이곳을 정화해.”

“분부 받들겠습니다.”

본다고 닳는 건 아니기에 관람료는 싸게 해주겠다.

평균 1400레벨 용사의 목숨.

9999레벨을 가볍게 넘어서고 ZZZ등급 스킬로 도배한 미모의 퇴마사 알몸을 본 것치고는 너무나 저렴하지 않은가?

“이놈의 오지랖은….”

직업을 도적으로 감춰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는 연기에 소질이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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