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194화 (194/430)

 194화

[11회차] 이 용사님은 정상인입니다!

나는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를 좌우로 활짝 펼치고, 저공비행으로 빙룡왕 슬레이아스를 향해 도약했다.

주변은 신경 쓰지 않았다.

소란을 듣고 우르르 몰려드는 온천의 경비병들은 보리스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알몸일 때도 강하지만, 내가 서대륙에서 생산계열 스킬을 올리면서 겸사겸사 제작한 최고급 장비로 무장한 보리스는 더욱 막강했다.

일단, 그 재료부터 평범하지 않다.

순도 100% 경험치 덩어리!

9999레벨 갑옷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건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종족: 스피릿 아머(?)

▷레벨: 9999+

▷직업: 수호자(수호→피해↓)

▷스킬: 수호C 재생D 청결D 불멸E 내성E…

▷상태: 양호, 귀속

보리스의 갑옷도 절반은 정령이기 때문이다.

처음 시도해본 시제품이라서 스킬은 형편없지만, 넘쳐나는 경험치를 쏟아부어서 그 부족함을 메꿨다.

벗을수록 단단해지는 게임 아이템의 법칙처럼 여성의 가슴골과 허벅지, 배꼽, 어깨 등을 과감히 노출한 선정적인 갑옷이 아니다.

날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등을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가렸다.

그 성능은?

콰직, 쾅, 퍼엉, 쿵-!

유감스럽게도 쓸 일이 없었다.

초월영역 스킬로 떡칠한 보리스에게 맞설 수 있는 존재는 빙룡왕 슬레이아스뿐인데, 그 흉악범은 현재 정의로운 MAX급 용사님의 심판을 받기 직전이다.

“우웃... 용사님이 어째서 귀엽고 착한 미소녀를 공격하는 거야...!”

“그 발언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귀여운 척은 라누벨 1마리만으로도 벅차다.

더는 용납할 수 없다.

펄럭!

하지만 빙룡왕 슬레이아스도 만만치 않았다. 수작 부려서 둥지의 영토를 넓히긴 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능력이 받쳐줘야 가능한 짓이다.

그녀의 등에서 새하얀 용의 날개가 솟아났다.

내 ‘티끌의 힘’에 노출돼서 능력치가 엉망진창이 됐어도 종족 고유의 강함과 특성은 그대로였다.

▷종족: 아이스 휴먼→아이스 드래고니안

등에 2쌍의 피복 날개가 솟아나고, 손톱도 길어졌다. 눈동자 또한 사람이 아닌 파충류처럼 세로로 길게 바뀌었다.

“놀고 있네.”

“꺅-?!”

하지만 그게 전부다.

용의 대표적인 변신 중 하나인 용인(드래고니안)은 박테리아처럼 작아서 성가신 상대를 처리하기 위한 전투형태다. 그리고 인간형은 더욱 섬세한 전투를 가능하게 한다.

망룡왕 뇌비우스의 드래고니안이 그 대표적인 예.

이 친애하는 전우는 용의 모습으로 구현할 수 없는 ‘태권’ 같은 스킬이 능력치에 추가되면서 더욱 강해졌다.

그런데 눈앞의 드래고니안은 어떠한가?

피부는 여전히 인간이랑 다를 게 없었다.

온몸이 칠흑빛 비늘로 덮여있어서 약점이나 빈틈을 찾지 못하고 막막했던 뇌비우스의 드래고니안이랑 달랐다.

온몸이 약점투성이!

실용성 대신 미관에 치중한 날개마저 약점이었다.

서걱-

빠르게 접근해서 횡으로 휘두른 성검 뉴클리온이 빙룡왕 슬레이아스를 확실하게 베고 지나갔다.

겉보기에는 인간이랑 차이가 거의 없는 드래고니안 형태였지만, 뼈는 국보급 무기나 갑옷의 재료로 쓰이는 용의 뼈랑 재질이 같았다.

그래도 하찮다는 건 변함없지만.

“작은 몸의 한계지.”

코끼리에게 바늘은 별거 아니지만, 벼룩이 바늘에 찔리면 몸이 뭉개진다.

아담한 소녀의 모습을 고집한 빙룡왕 슬레이아스의 뼈가 허무하게 갈린 것도 그 때문이다.

뇌비우스처럼 제대로 된 드래고니안이나 원래의 용 모습으로 돌아갔다면 성검에 한두 번 베인 정도로는 티도 안 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목숨을 위협할 만큼 치명적!

“이 도마뱀이 잔재주를...”

나는 빙룡왕 슬레이아스의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를 노렸다. 그런데 그녀의 머리통이 아닌 오른팔이 어깨랑 분리됐다.

원인은 프리즘.

내가 유일하게 바꾸지 못한 스킬 ‘빙결’로 얼음 결정을 생성한 빙룡왕이 빛을 왜곡한 것이다.

“어, 어째서 허공을 노렸지...?!”

오른팔을 잃은 빙룡왕 슬레이아스는 혼란에 빠진 얼굴로 내게 질문했다.

당연히 나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알더라도 달라질 건 없다.

내 행운 보정은, 빗나간 총알이 U턴해서 표적에 명중하는 경지니까. 이건 대처법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얼른 죽어.”

“네가 용사님이라도 더는 안 봐줘-!”

발악하듯 외친 빙룡왕 슬레이아스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프리즘으로 분신을 생성하고, 고드름 화살을 줄기차게 소환해서 내게 쏘았다.

여기에 얼음 골렘까지!

전투계열 스킬 대부분이 봉인됐음에도 저항이 상당했다. 그것이 ZZZ급 빙결의 힘이었다.

하지만,

푹!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성검 뉴클리온이 빙룡왕 슬레이아스의 몸통을 꿰뚫었다.

나는 그녀의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를 노렸는데, 결과는 2번과 3번 사이에 칼날이 박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고작 하루 쉬었을 뿐인데, 감을 잃은 것 같다. 척추를 부러트렸다는 점에선 다를 게 없지만.

“쿨럭!”

피를 한 움큼 토한 빙룡왕 슬레이아스가 몸을 똑바로 겨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정신없어서 용으로 변신할 생각도 못 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걸로 끝이다.

“슬레이아스 님에게서 떨어져!”

“너는 우리가 상대해주겠다!”

“이 야만인! 여자아이를 공격하다니!”

“제가 당신을 상대해주겠어요!”

남탕에 여자들이 우르르 난입하며 외쳤다.

저들이 소란을 듣고 달려온 건지, 남탕을 훔쳐보려고 왔다가 우연히 목격한 건지는 모른다. 관심도 없다.

지금 중요한 건?

▷종족: 아크 휴먼

▷레벨: 1094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마법SSS 검술SSS 매력SS 민첩SS 화장SS…

▷상태: 용맹, 흥분

저들이 여탕에서 넘어온 여성 용사라는 것이다.

미용이랑 관련된 스킬의 비중이 높아서 전반적으로 남성보다 전투력은 떨어졌지만, 그 부족함을 편중되지 않게 골고루 올린 다양한 스킬 구성의 조합으로 따라잡았다.

여성의 꼼꼼함이라고 할까?

아무튼,

촤악-!

그녀들이 뭐라고 떠들든 나는 하던 일을 마무리했다.

몸이 좌우로 분리된 빙룡왕 슬레이아스가 아담한 육체답지 않게 다량의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슬레이아스 님~?!”

“아, 안 돼~!”

“지금부터 우리가 상대해준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비겁해! 부상자를 공격하다니!”

용사들이 내게 맹비난을 쏟아부었다.

시장바닥을 연상시키는 그 광경을 뒤늦게 돌아본 내 입에선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비겁? 우르르 몰려와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여탕에 있던 용사 중 절반은 온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하나둘 추가로 합류하고 있었다.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뒤통수를 칠지도 모를 대상을 살려두는 것도 우습다.

후환은 넘기지 않는 법.

같잖은 위선을 부리다가 발목 잡히는 수가 있다.

“우리는 전부 한 파티야.”

“협력은 당연하잖아?”

“억울하면 네놈도 부하를 소환하면 되잖아!”

“슬레이아스 님! 원수를 꼭 갚아드릴게요!”

용사들은 거침없이 반론을 제시했다.

억지스러운 논리로 가득했지만, 타당한 내용도 은근히 적지 않았다.

“동료라...”

빙룡왕 슬레이아스가 동료로 합류했던 때가 떠올랐다.

남대륙이 죽음의 사막으로 변한 원흉이라고 알려진 5대 재앙이 내게 토벌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챈 슬레이아스는 수천 년 동안 켜뒀던 에어컨 마법진을 껐다.

그때부터 온도가 차츰 내려갔다.

하지만 남대륙은 원래부터 더운 축에 속했고, 더운 건 질색인 빙룡왕 슬레이아스는 에어컨 마법진을 활성화할 수 없어서 둥지를 포기하기로 했다.

동료로 합류한 빙룡왕 슬레이아스의 악행은 끝이 없었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건 기본, 모험 내내 정의로운 용사를 어린 미소녀를 좋아하는 아동성애자로 몰면서 평판을 깎았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말할 때는...

“죽은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구나, 빙룡왕 슬레이아스.”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

“마약 용사! 정신 차려라! 평상시에도 표정이 좋다고 말하긴 힘들었지만, 지금은 한층 더 흉흉하다.”

“실례잖아. 나는 멀쩡해.”

“진짜 이상한 자들은 자기가 정상인인 줄 안다.”

“...그래?”

나는 여성 용사들이 쏜 마법과 화살 등을 자연스럽게 피하면서 그들의 얼굴과 몸매를 빠르게 살폈다.

남성 용사들을 뽑는 정확한 기준은 모르지만, 제삼자의 관점에서 본 여성 용사의 선별기준에 외모와 나이가 있는 건 틀림없었다.

학창시절에 아이돌, 여배우 등을 제안받았을 미소녀들.

여기에 판타지 능력치가 얹어지면서 더욱 빛나는 매력을 뽐냈다.

다만, 인간 같지 않은 미모의 공주님과 공녀들이 판타지아 대륙 곳곳에 사는 바람에 경쟁이 안 될 뿐.

“마약 용사. 뭘 하려고?”

“정상인이라고 우기면 이상하다며?”

그러니 증명해주겠다.

요정처럼 비실비실한 용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내 목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숙녀. 내가 정상적인 수컷임을 증명해줄 혼기 찬 암컷이다.

푹! 푹! 푹!

그것을 방해하는 자들은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로 응징했다. 치유를 방해하는 뿔로 거침없이 베고 찔러줬다.

그 대부분이 용사의 동료들이었다.

빙룡왕 슬레이아스 밑에서 일하던 요정들은 도망치고, 얼음으로 이루어진 골렘만이 주인 없는 빈집을 지키기 위해 내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 우정의 힘은 너무나 나약했다.

야만적인 힘이 지배하고 수세식 변기가 없는 끔찍한 판타지아 세계에서 쌓은 1갑자 연륜을 넘어서지 못했다.

숫자만 많으면 뭐하겠는가?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모험의 대부분 시간을 온천에서 무의미하게 보냈는데.

“여, 여러분. 저자를 막아주세요!”

잘생긴 수컷들의 호위를 받으며 안전한 뒤편에서 마법을 쏘던 아가씨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뒷걸음질 치는 모습마저도 요염했다.

내 주관과 취향이 많이 들어간 평가이긴 하지만, 남탕에 모인 여성 용사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미모의 소유자였다.

그만큼 추종자도 많았다.

“우리의 주인님을 지키자!”

“당신의 방패가 여기에 있습니다!”

“너는 내가 상대해주겠다!”

판타지아 대륙 출신의 미남과 미소년들이 내 앞을 호기롭게 막아섰다. 직업과 레벨, 장비, 무기도 개성적이고 다양했다.

이에 나는 미소와 성검으로 답해줬다.

“잡것들은 빠져.”

철퍽.

나는 암컷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던 수컷들의 피와 살로 축축하게 젖은 온천의 바닥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여성 용사에게 말했다.

“저, 저리 가- 우읍?!”

...한 박자 늦게 말했다.

진정한 사내는 구차한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하는 법!

오른손으로 그녀의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를 붙잡고, 왼팔은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리고 가슴과 입술을 맞댔다.

능력치는 덤.

▷종족: 그랜드 휴먼

▷레벨: 1104

▷직업: 용사(경험치 500%)

▷스킬: 마법Z 마성MAX 색기MAX 광기MAX 매혹MAX…

▷상태: 혼란, 광기, 흥분, 욕정, 골절…

예쁘게 어루만져줬다.

곧 스킬의 노예가 된 여성 용사는 내게 호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우득! 우득!

내 매력에 취해서 온몸의 힘을 소진한 아가씨의 가녀린 팔다리가 실 끊긴 마리오네트처럼 축 늘어졌다.

나는 그녀가 온천에서 쉴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풍덩!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다이빙은 심했다.

여기가 야만적인 판타지 세계이긴 하지만, 기본적인 공공예절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얼굴을 물에 담근 채 두둥실 떠오른 여성 용사를 보며 끌끌 혀를 찬 나는, 체감온도보다 내려간 주위의 시선과 분위기를 만끽하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대기 번호 2번. 앞으로 나와주세요.”

나오긴커녕 모두가 돌아서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래서 초등학생이란 걸까? 온천보다 뜨거운 사랑과 우정을 실천하기엔 너무 일렀던 모양이다.

너희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그건 알지만,

“이리 온. 야만적인 중학교에 곧 입학할 낯선 오빠랑 이야기 좀 하지 않을래? 울지 마. 눈물을 닦고 내 얼굴을 한번 보렴. 남을 함부로 해칠 사람으로 보이니?”

빙룡왕 슬레이아스의 둥지가 판타지아 대륙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남대륙의 평균기온이 내려갔다.

“망할...”

최초의 정령 말이 맞는 것 같다.

숨만 쉬어도 무료봉사하는 용사가 정상인일 리 없으니까. 이 직업병은 답이 없었다.

그나저나...

“용사. 전투력이 1조를 넘었다. 슬슬 이 유물이 고장 난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온천을 부수고 합류한 도적E가 말했다.

“아직도 측정하고 있었냐?”

“나는 한번 시작하면 반드시 끝을 보는 요정이다.”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길이나 잘 안내해.”

“알 바 아니라니?! 내 신랑이 될 남자가 맞는지 정말 의심스러운 발언이다! 자각은 있는가?”

“전혀.”

정의구현을 막 마친 용사 일행은 일회용 처가로 이동했다.

19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