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11회차] 범인을 찾아라!
▷종류: 스킬
▷명칭: 교사
▷등급: S
▷SS: 학생의 사생활을 열람한다.
▷S: 학생의 생각을 열람한다.
▷A: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열람한다.
▷B: 학생의 능력치를 열람한다.
▷C: 학생의 성적기록부를 열람한다.
▷D: 학생의 교내활동을 열람한다.
▷E: 교재를 활용할 수 있다.
▷F: 신분을 공개할 수 없다.
스킬 설명이 두루뭉술한 E등급과 F등급 외의 모든 등급 효과가 ‘학생’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말이 좋아서 교사지, 제삼자의 눈으로 냉정하게 스킬을 살펴보면 스토커나 다름없었다.
내가 직접 사용하는 스킬은 아니다.
공유한다고 할까?
아줌마가 관리자 권한 스킬인 ‘교사’로 보고 듣는 정보를 나도 열람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자면,
‘젠장! 부활하면서 소중한 레벨과 스킬 등급이 하락을…! 강한수…! 위대한 여정을 준비 중이던 나, 루크의 앞길을 또 방해하다니! 다음에 만나면 내 발아래에 무릎 꿇게 해주마! 기다려라!’
남대륙 어딘가에서 부활한 루크의 사념이 내게 들려왔다.
의욕 넘치는 그 친구만이 아니다.
판타지아 대륙 전역에 흩어져 있는 505명의 용사 주위에 감시카메라를 부착해둔 것처럼 선명하게 파악됐다.
물론, 전부를 동시에 관찰하는 건 무리였다.
텔레비전 10대를 정면에 놓고 전부 다른 채널을 틀어놓아도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채널 수가 한정되어있는 것처럼.
나도 동시에 수백 명을 관찰하는 건 무리였다.
그러나 상관없다.
변변찮은 용사들이 뭘 하는지 봐서 뭐하겠는가?
자기 마음에 드는 동료들이랑 모험하다가 말고 수풀로 들어가서 ‘뿌지직!’ 하고 잎사귀로 닦는 거 보면, 소설과 만화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인 판타지 모험은 아니었다.
게다가,
“대신 토벌해주길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겠네.”
여전히 고블린에게 농락당하는 용사가 있는가 하면, 주둥이만 산 원주민 음유시인이랑 눈이 맞아서 사랑의 도피를 한 자도 있었다.
상위권으로 짐작되는 용사들도 영….
그리고 전반적으로 놀기를 좋아했다.
판타지 세계에 위기가 도래했든 뭐든 일단은 웃고 떠들며 즐기겠다는 마인드.
현재, 약 400명이 쉬거나 데이트하고 있었다.
이걸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면, 용사들은 하루 중 80%를 놀면서 보낸다는 결론이 나온다!
저러고도 용사라고….
“용사님. 어떻게 하시겠어요? 안락한 이곳에서 며칠 더 머무셔도 좋고, 지금 곧바로 밖에 나가서 일리나랑 향후의 계획을 이야기하시는 것도 좋아요. 물론, 그때는 저도 딸 모르게 그림자 속에서 동행할 거예요. 아! 그리고 이상한 이름 대신 그림자라고 불러주세요.”
앞으로는 암살자E라고 부를 생각이었는데, 나의 다음 행동을 예측한 장모가 먼저 선수를 쳤다.
그림자에 숨은 암살자니까, 그림자A라고 하자!
기억하긴 쉬울 것 같다.
“그림자A.”
“그냥 그림자라고 불러주세요.”
“네 그림자랑 내 그림자랑 구별이 안 되잖아. 그러니 그림자A.”
“그…. 네.”
“혼돈의 유물부터 내놔봐.”
여길 나가고 말고는 그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
“용사님께서는 유물 안에 깃든 기록을 볼 수 있으신 모양이군요?”
“맞아. 알고 있네? 아! 그리고 혼돈의 유물을 모으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는 정말이야?”
“정말입니다. 이론상으로는.”
“어이? 실패한다는 복선 같은 발언이잖아!”
“그래도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사용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는 용자의 힘으로 이 교육장을 탈출할 수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이미 선례가 있으니까요.”
거기까지 설명한 그림자A가 허공에 손을 뻗어서 혼돈의 유물을 소환한 후, 공손히 내게 넘겼다.
그것은 휴대용 손거울이었다.
“매우 튼튼한 손거울이에요. 대륙 최고를 논하는 절세미녀란 자부심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했던 아내를 위해, 최초의 용사가 제작했어요. 언제 어디서든 소환할 수 있고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는 게 장점이죠. 요렇게.”
뿅!
그림자A가 고의로 떨어트린 손거울이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뿅!
그림자A의 손바닥 위에 다시 나타났다.
“어떤 물건인지 잘 알겠네.”
자기 외모에 무관심한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기능이 여기서 끝일 리 없기 때문이다.
방범 장치는 노점상에서 파는 마법도구에도 종종 있으니까. 거창하게 유물이라고 칭하기에는 손색이 많다.
“용사님의 추측이 맞아요. 거울은 반사하는 특징이 있죠. 이 손거울은 물리력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속성 공격을 100% 반사하는 성질이 있어요. 뭐…. 소유주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지만.”
“그래?”
나는 손거울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절세미녀였다는 첫 소유주를 볼 수 있었다.
*
들어가고 나올 곳이 뚜렷한 미녀였다.
풍요의 여신을 연상시키는 진갈색 머리카락의 얼굴은 눈, 코, 입, 귀 하나하나가 전부 예술품.
활짝 웃으면 더욱 예뻤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미녀는 남편 앞에서도 무표정을 유지하며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시체였으니까.
“대체, 대체, 대체….”
아내 앞에 죄인처럼 엎드린 선배1은 똑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대체 언제 살해됐는지 묻는 거라면, 유감스럽게도 우리로선 알 수 없어. 인간과 흡혈귀는 겉보기엔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생명체니까. 차라리 요정이었다면 근접하게 추측할 수 있었을 텐데. 암살이 특기인 당신이 보기엔 어때?”
“저도 잘…. 무척 유감이에요, 용사님.”
선배1의 뒤편에는 엘브하임과 그림자A가 서 있었다.
유물에 깃든 기억의 시기가 언제인지는 불분명했다. 영원히 사는 요정 왕족은 늙지 않기에 도움이 안 됐고, 가진 능력이 신에 근접한 최초의 용사도 그건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으로 짐작은 가능했다.
아직 사회에 찌들지 않는 청소년 같은 얼굴.
이 절세미녀의 죽음은 콩가루 판타지의 서곡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정말 몰랐어.”
“그렇겠지.”
“외부의 침입을 완벽하게 차단한 이 공간에서 살해될 줄은…. 아침마다 꽃의 여신님처럼 정원을 산책하는 아내가 시체였다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어….”
“이해해. 나도 아침마다 그녀를 봤으니까.”
“공무로 바쁘신 엘브하임 폐하께서 최근 몇 개월 동안 규칙적인 기상을 하시게 되어 소녀는 내심 기쁘면서도 안도했는데, 그 이유를 듣고 배신당한 기분이 드네요.”
셋은 낮게 깔린 어조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범인을 추적할 수 있을까?”
선배1이 정의로운 용사다운 올곧은 눈빛으로, 유감스러운 요정왕을 쳐다보며 질문했다.
이에 대한 대답은 바로 나왔다.
“추적은 어렵지 않을 거야. 아직 이곳에 있을 테니까.”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있어, 용사 친구. 미안한 얘기지만, 그녀를 살해한 범인은 이 안에서 우리랑 함께 생활하고 있어. 태연하게 웃으면서.”
“엘브하임. 그건 말이 안 돼.”
“돼.”
살인범이 내부인인지 외부인인지를 놓고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던 두 사내는 얼마 안 가서 입을 다물었다.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나의 마음씨 고운 아내 중 누군가 이런 짓을? 얼마 전까지 함께 모험하며 친자매처럼 지냈는데 이런 짓을? 도무지 믿기지 않아….”
“진정해, 친구. 일단은 범인을 찾는 게 급선무니까. 거참! 동료들의 능력이 뛰어나도 골치 아프군. 우리의 눈을 피할 정도로 시체를 생동감 있게 조종하는 경지의 사령술 보유자만 스무 명이 넘어. 능력을 쭉 감춰왔다면 이마저도 별 도움이 안 되고…. 으음? 이건 죽어서도 갖고 있군.”
죽은 절세미녀의 몸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관찰하던 엘브하임이 손거울을 가리켰다.
그녀의 손에 꼭 쥐어져 있었다.
선배1이 죄인처럼 고개를 뚝 떨군 채 대답했다.
“내가 선물로 준 거야. 겉보기에는 평범한 손거울이지만, 물리 공격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속성을 튕겨내는 성질이 있지. 극도로 높은 유연성과 민첩성으로 웬만한 물리 공격은 전부 피해낼 수 있는 그녀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거야!”
“엘브하임?”
“그녀의 몸에는 자잘한 부상조차 없어. 그리고 손거울이 소환되어 있지. 그 말은 즉, 평소에 매우 친해서 손거울로 방어할 틈도 없이 당했다는 거야. 그리고 육체파 마법사. 아직은 보완할 점이 있지만, 이런 식으로 범위를 좁히면, 용의자는 얼마 안 남지. 어떤가?”
...내가 아는 그 유감스러운 요정왕이랑 동일인물이 맞는 걸까?
인간 여성의 흔들리는 가슴을 구경할 때만큼 그의 눈이 총명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선배1이 답했다.
“그만둬.”
“친구?”
“나는 아내들을 의심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잊으면 곤란해. 그런 식으로 용의자를 좁힌다면, 너희도 그 명단에 포함돼.”
“...그렇군. 무슨 뜻인지 알겠네.”
“미안, 엘브하임.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
“다 알아.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적지 않은데, 내가 그 정도도 구분 못 할 것 같은가? 가족을 의심하기 싫다는 뜻이겠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용사 친구. 그녀의 장례식까지 좀 쉬게. 여기는 내 이름을 걸고 잘 정리하겠네.”
“그러면 부탁할게. 지금은…. 너무 힘드네….”
어깨를 축 늘어트린 선배1이 퇴장했다. 그리고 유감스럽지 않은 척하는 요정왕과 그림자A만 남았다.
당연히 절세미녀의 시체도 함께.
“폐하. 어떻게 하시겠어요?”
“행성을 감자처럼 썰어버릴 수 있는 용사님께서 범인을 추적하지 말라고 했으니 단념해야지. 하지만 내 가족과 열등한 동족의 안위를 위해서 누군지는 파악해둘 생각이야.”
“소녀는 당신의 그림자. 무슨 명이든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단서도 없이 추적이 가능할까요?”
“단서라면 여기 있잖아.”
“손거울…?”
시야가 물결치면서 장면이 바뀌었다.
그림자A에게 무릎베개를 받으며 정원 벤치에 편안히 드러누운 요정왕이 보였다.
하지만 조금 전의 총명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평소의 유감스러운 표정과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문제의 손거울이 쥐어져 있었다.
“크으…. 인간은 보면 볼수록 우수한 종족이야. 신은 어째서 요정을 버리고 인간만 편애하셨단 말인가!”
“...폐하. 외람되오나, 수사하고 계신 게 맞는지요?”
“당연하지. 보면 모르겠어?”
“소녀가 우민하여 잘 모르겠습니다. 제 눈에는, 인간 유부녀들의 우월한 몸매를 감상하며 온종일 감탄하는 폐하로만 보일 뿐이라서.”
“말에 가시가 있네.”
“송구합니다.”
“뭐, 질투도 사랑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니. 짐은 그런 그대 또한 사랑한다.”
“엘브하임 폐하….”
“다만, 그 사랑이 저 여자처럼 지나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유감스러운 요정왕이 손거울을 보며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거울이 반사해서 비추는 상은 각도에 따라 달라지기에, 그가 정확히 누구를 보고 있었는지는 나로선 알 수 없었다.
*
...음? 설마, 이걸로 끝?
“그림자A. 그래서 범인은 누구였어?”
이런 망작을 보았나!
범인을 응징하는 통쾌한 장면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지 정도는 가르쳐주는 게 상도의(商道義) 아닌가!
그런데 결말을 안 보여준 채 기록이 끝났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요정이신 엘브하임 폐하만이 알고 계세요. 저는 그분의 그림자로서 모든 수사 과정을 지켜봤지만, 범인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어요. 마지막까지.”
“...전부.”
“네?”
“방조죄도 성립한다면, 그 당시에 정원에 있었던 여자들이 전부 범인이야.”
“무슨 말씀이신지….”
“나도 잘은 몰라. 우주의 계시로 그런 느낌을 받았을 뿐.”
그림자A의 집에 보관된 혼돈의 유물은 손거울 외에도 2개가 더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에도 암울한 내용만 담겨 있었다.
선배의 말년은 도대체…?
건질만 한 정보는 딱히 없었다.
▶혼란: 충격적인 이야기를 많이 듣네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밀 친구. 비밀로 부탁해!
▶뿌잉: 강한수 생도님의 시커먼 속이 뻔히 보이지만, 칭찬은 마왕도 춤추게 만든다는 속담이 있죠. 하지만 다음에는 진심으로 칭찬해줬으면 좋겠네요. 흥흥!
진심? 얼굴이라도 보여준 후에 그런 소리를 하라구, 교생 아가씨…. 음?!
그것은 정말 찰나였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똑똑히 각인됐다. 이 자리에 없는 제삼자의 얼굴이 손거울에 잠깐 비쳤었다.
▶의문: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나는 교생 아가씨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이 단어만이 머릿속에서 맴돈 탓이다.
“대박….”
이 세상이 사기와 날조로만 가득한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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